[서울마을이야기] '물푸레' 사람들이 사는 법

내 손안에 서울

발행일 2015.06.19 11:10

수정일 2015.07.0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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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기를 모아 바느질해 만든 엄마표 낙하산

보자기를 모아 바느질해 만든 엄마표 낙하산

자연과 환경을 우선 생각하는 카페

북한산을 바로 옆에 낀, 생태공원 안에 조성된 은평뉴타운 1지구 14단지. 아파트 건물 1층에 비밀스럽게 북카페 물푸레가 자리해 있다. 3년 여 동안 미분양된 채 비어 있던 상가를 SH공사에서 리모델링하여 은평구에 무상임대하고, 은평구는 에코상상사업단에 운영을 위탁하는 방식으로 오픈한 것이 2012년 1월. 50평(222.3㎡) 넓이의 102동에는 북카페가, 비슷한 면적(225.6㎡)의 101호에는 강좌나 공부 모임을 하는 에코상상교육센터의 교육공간이 있다.

공모를 통해 선정한 이름인 ‘물푸레’는 진관동의 옛 지명 ‘물푸레골’에서 따왔다. 과거 진관동 일대에 물푸레나무가 많이 자라 주막과 대장간이 많던 이웃 구파발에서 도끼, 호미, 낫 자루를 만드는 데 이곳 물푸레나무를 많이 썼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북카페 물푸레 입구

북카페 물푸레 입구

인터뷰에 응해준 활동가들. 아이들과 친밀하게 지내기 위해 모두 별명을 지어 부른다(왼쪽부터 버들, 블루, 함박울, 말로 님)

인터뷰에 응해준 활동가들. 아이들과 친밀하게 지내기 위해 모두 별명을 지어 부른다(왼쪽부터 버들, 블루, 함박울, 말로 님)

북카페 물푸레의 운영 주체인 ’에코상상사업단‘은 환경 NGO 생태보전시민모임 내의 사업단으로 북카페 운영 외에 도심 텃밭 사업 등도 진행한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먹을거리들은 모두 환경과 마을을 생각하는 것들이다. 아름다운커피에서 공정무역 유기농 커피를 들여오고, 간식으로는 유기농 현미 가래떡과 중증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소올베이커리에서 만든 빵을 판다. 100% 우리쌀·우리밀·유정란과 공정무역 원료, 유기농 원료를 활용해 만들어 몸에 좋을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은평구 ’(주)좋은이웃‘이 국산 콩만을 사용하여 전통적 가마솥 직화 방식으로 만드는 ’아빠맘두부‘ 두 종류와 콩나물, 콩국도 판매한다.

북카페 물푸레 앞에는 ‘여성행복’이란 말이 쓰여 있다. 이곳이 여성이 행복한 도시 만들기 프로젝트, 약칭 ’여행(女幸) 프로젝트‘ 2호점이기 때문이다. 1호점은 강서구 방화6단지 내 ‘SH 여행(女幸) 북카페’다. 미분양 상가를 이용해 북카페로 운영 중이라는 점을 비롯하여 물푸레와는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아 자주 문의를 하고 도움을 많았다고 활동가 ‘버들’님이 귀띔한다.

“카페를 운영해본 적이 없으니 마진이 얼마나 생겨야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생각이 없었죠. 그래서 최대한 저렴하게 가격을 책정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곳에 지출이 나가고, 매출이 들쭉날쭉하더라고요. 활동가 13명이 출자금도 모으고, 근무시간 중 일부를 봉사하는 시간으로 빼서 비용을 맞추고 있어요. 그래도 임대료를 내지 않으니 이 같은 구조가 가능하겠지요.”

진관초등학교 어린이 오케스트라의 캔들데이 공연 모습(좌), 어린이들도 판매자로 나섰던 물푸레 벼룩시장(우)

진관초등학교 어린이 오케스트라의 캔들데이 공연 모습(좌), 어린이들도 판매자로 나섰던 물푸레 벼룩시장(우)

운영주체가 환경 NGO인 만큼 북카페 물푸레에서는 환경을 생각하는 활동도 활발하다.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오후 6시부터 한 시간 동안 열리는 ‘캔들데이’ 행사는 한 달에 한 번, 한 시간만이라도 집안의 불을 끄고 지구 환경과 이웃,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2012년 3월부터 시작해 지금껏 진행하고 있다.

그 외에도 마을 내 문화공간으로써 다양한 쓸모를 자랑한다. 은평구 마을 주민들이 연극을 할 때도 있고, 물푸레 합창단이나 ‘재즈 싱잉’ 강좌 수강생 등 북카페 물푸레를 기반으로 생겨난 모임 사람들이 공연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외부에서 온 음악가들이 무대를 열기도 한다. 매월 열었던 벼룩시장은 이제는 봄·가을만 여는 것으로 변경했다. 이런 다양한 활동이나 강좌 소식을 보고 싶다면 북카페 물푸레의 온라인카페를 참고하면 된다. 서울에서 제비를 직접 관찰해보자는 ‘제비랑 봄소풍’이나, ‘양서·파충류 이동을 위한 생태통로 개선방안 세미나’, ‘산지관광특구와 케이블카 사업, 무엇이 문제인가?’ 세미나까지 그야말로 다양하다.

알고 싶은 것을 알아 가는 사람들이 바로 물푸레

처음 카페를 열었을 때는 강좌를 마련할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처음 시작은 아이들을 위한 찰흙수업이었다. 그러다 활동가들 사이에 ‘공간도 있겠다, 알고 싶은 걸 알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커지면서 강좌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고.

“은평뉴타운은 넓지만 문화공간이 없어서 뭔가 배우려면 멀리 나가거나 비싼 돈 들여 개인수업을 받아야 했어요. 주부로서는 둘 다 어렵잖아요. 그래서 선생님을 이쪽으로 모셔오자고 마음먹었죠.”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 ‘막고’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막막한 고전 읽기’. 2012년 5월부터 시작하여 현재 11기에 접어든 이 강좌는 ‘시로군’ 이시욱 선생님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서 운영하는 강좌를, 같은 내용으로 북카페 물푸레에서도 진행하는 중이다. 우리나라의 독보적 재즈 싱어 말로님은 카페 활동가로 활약하는 동시에 ‘재즈 싱잉’ 강의도 한다.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올 만큼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강의료는 전액 북카페에 기부, 캔들데이 초청 손님들의 출연료로 사용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 외에도 사자소학·천자문·중용 등을 가르치는 ‘물푸레 서당’ 김현태 훈장님, 민요를 가르쳐주는 소리꾼 이랑 선생님 등이 함께한다.

반응은 좋지만 강의를 준비하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강사를 섭외하고 수업을 고지하고 수강생을 모집하는 업무를 활동가 한 명이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다는 걸 깨닫고 물푸레는 한두 개 강좌 빼고는 모두 소모임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한다. 선생님이 직접 수강료를 받거나 수강생 중 한 명을 총무로 선출하여 진행방식을 변경하는 식으로 진행하니 부담도 많이 줄었다고.“카페에 대관료를 내고 선생님은 수강료를 직접 가져가는 방식으로 바꾸니 돌아가는 양상은 똑같은데 훨씬 간단해졌어요. 이렇게 소모임 체제로 바꾼 건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자발적으로 만드는 소모임이 많아지길 바라는 바람도 있어서예요. 10인실 기준, 한 시간에 인당 1,000원으로 대관료도 저렴하거든요. 활동가들이 듣고 싶어 하는 강의가 있으면 성사시키는 편이에요. 그래서 이번 달부터 타로 수업도 새로 생겼죠.”버들님의 이야기를 듣던 말로님이 비밀이라도 털어놓듯 이야기했다.“실은 북카페 물푸레의 기반은 숲동이 사람들이에요. 숲동이 사람들끼리만 놀면 미안하니까 같이 재미있는 걸 마을 사람들과 함께 놀자고 널리 알리는 중인 거죠.” 

북카페 물푸레의 내부 공간. 기둥에 책장을 붙여 공간을 활용했다.

북카페 물푸레의 내부 공간. 기둥에 책장을 붙여 공간을 활용했다

한쪽에는 조금 높게 무대를 설치하여 피아노를 배치했다.

한쪽에는 조금 높게 무대를 설치하여 피아노를 배치했다

아이들이 편안히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공간 일부를 다락방처럼 꾸몄다.

아이들이 편안히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공간 일부를 다락방처럼 꾸몄다

좋은 육아는 잘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잘 지내는 것

북카페에서 일하는 활동가 13명은 숲동이 놀이터(이하 ‘숲동이’) 1~3기 엄마들이다. 일주일에 세 번, 월·수·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취학 전 아이들과 엄마가 동네 숲 이곳저곳을 다니며 함께 논다. 도시락을 준비해서 다 같이 펼쳐 놓고 먹고, 장난감은 숲에 지천인 나뭇가지, 나뭇잎, 흙으로 충분하다.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논다. 한 달에 3만원씩 내는 활동비를 모아 학기말에는 1박 2일로 캠프도 떠난다.

“‘아이는 엄마가 키우자. 혼자 키우면 힘들고 재미없으니 같이 키우자!’ 이런 생각으로 엄마 셋이 만난 게 숲동이의 시작이었죠. 아이들을 숲에 풀어 놓는 걸 ‘방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말하자면 ‘원칙 있는 방치’예요. 아이들에게 전적으로 자율권을 주고 엄마들도 즐겁게 놀지요.”

엄마가 ‘힘들고 고된’ 게 아니라 엄마‘부터’가 즐거워야 하는 것이 숲동이 활동이다. 내 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 나아가 모든 생명이 조화롭게 어울려 살 수 있도록 생태보전에 관심을 갖고, 생태보전시민모임에 가입하는 것이 숲동이 회원의 기본 원칙이라고.

“아이들도 엄마들도 여럿이다 보니 ‘빡센’ 시간을 거쳐야만 자연스럽게 품앗이가 되는 것 같아요. 힘들다면 힘든 것이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고요.”

숲동이 엄마들이 들려주는 힘든 부분은 이런 것들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아이를 맡기는 대신 엄마가 직접 몸으로 부딪쳐야 한다는 것, 아이도 엄마도 숲이라는 공간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 숲동이 활동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친해지는 데 걸리는 물리적인 시간을 수긍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나 아이들끼리 싸웠을 때 내 아이도 남의 아이도 같이 이해해야 한다는 것, 적나라하게 보이는 내 아이의 단점을 똑바로 보기 힘들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이런 시간이 쌓여야 서로에게 든든한 이웃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모든 부모들이 경쟁 위주로만 생각하고 공부시킬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요.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부모들이 언제나 있고, 가치관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웃이 되고 함께 살아가는 거죠. 처음 만났을 때, 10년 되면 어떨까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그땐 그냥 먼 미래의 일 같았는데 이제 7년째니 머지않아 10년 맞이하겠네요.”

숲동이 활동에 관심 있는 다른 부모를 위해 숲동이 엄마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열린 숲동이 놀이터’를 연다. ‘엄마가 아이를 직접 키우자’는 숲동이 정신을 민들레 홀씨처럼 퍼뜨리는 마음으로 2013년부터 진행한 숲동이 놀이터는 올해에도 4월부터 시작하여 총 8차례 진행된다. 말로님 말대로 ‘돈을 좀 덜 벌고 생활수준을 좀 낮추는 대신 돈으로 살 수 없는 시간을 얻고,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쁨을 느끼고, 이웃과 관계를 회복하고 이로써 생겨나는 마을공동체 문화를 누리는’ 숲동이의 가치관에 동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래서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숲동이 놀이터를 ‘졸업(초등학교 입학)’한 아이들이 늘어나며 북카페 물푸레가 그 아이들의 아지트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학교 갔다 오면 일단 북카페에 가방을 내려놓고 엄마도 보고 친구들도 만나 같이 논다. 학교에 다니면서도 숲놀이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 금요일 오후에 숲으로 함께 가서 노는 ‘오후의 숲동이’도 생겨서 활발하게 활동중이다.

숲동이 엄마들은 2008년 12월 첫 만남에서부터 2014넌 12월까지 6년간의 활동일지를 엮은 《숲에서 자란다》를 올해 초 발간하고, 2월 10일에 발간 파티도 열었다. 파티장은 물론 북카페 물푸레. 축하공연은 숲동이 아이들의 춤과 노래였고, 엄마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숲동이 엄마들이 엮어낸 책 [숲에서 자란다]. `북카페 물푸레`  다음카페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숲동이 엄마들이 엮어낸 책 [숲에서 자란다]. `북카페 물푸레` 다음카페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북카페 물푸레로 들어가는 길(좌),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을 반기는 나무 그네(우)

북카페 물푸레로 들어가는 길(좌),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을 반기는 나무 그네(우)

북카페 물푸레는 ‘무엇’인가요?

“북카페 물푸레는 제 두 번째 집(my second home)이죠.” 말로님의 답이다. “알베르 카뮈가 카페에서 모든 것을 했다잖아요. 사람도 만나고, 글도 쓰고. 물푸레는 저에게 그런 공간이에요. 물푸레에서 모든 걸 하죠. 말로를 만나고 싶으면 물푸레로 오시면 됩니다.”

말로님은 일을 하려고 공동육아를 선택했다고 한다. “음악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고, 낳더라도 부모님 도움을 받거나 보육 시설에 일찍부터 맡기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더구나 공연을 하면 밤늦게 끝나니까 어린이집이 소용없죠. 이웃과의 관계를 잘 형성해서 아이도 나도 잘 살자고 생각했죠. 공연이 있어 일이 늦게 끝나는 날이면 아이는 친구네 집에서 자기도 하는데, 그때 ‘엄마가 나를 돌봐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친구네서 잔다! 신난다!’고 생각해요. 마찬가지로 우리 집에도 아이 친구들이 잘 놀러오고요. 내 아이 남의 아이 구별하지 않고 다 같이 챙기는 게 당연해졌어요. 항상 남의 신세를 지니까 역지사지의 마음을 갖게 되죠.”

“북카페 물푸레는 ‘관계’예요.” 숲동이 2기로 활동을 시작하여 6년째 인연을 이어 오는 블루님의 이야기다. 열정적인 커리어우먼이었던 블루님은 고민 끝에 숲동이를 선택했다. “일을 그만두고 육아를 선택하면서 저로서는 가장 극성스러운 교육방법을 택한 게 숲동이예요. 아이를 정말 제대로, 건강하게 키우고 싶어서 선택한 거죠. 시작점은 달랐지만 과정과 결과는 말로와 똑같아요. 가장 좋은 건 아이가 외동임에도 언제나 같이 놀 친구들이 있다는 거예요. 혼자 자라는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친구를 만나러 학원에 가거나 혼자 있을 수밖에 없는데, 이 아이는 따로 뭔가를 하고 오더라도 주변에 늘 친구들이 있어요. 또 생태교사나 텃밭 교사 등 자신의 경력을 숲동이 안에서 쌓아가는 엄마들도 있어요. 그런 분들에겐 숲동이가 일과 육아를 양립하는 길이겠지요.”

오늘도 진관동 상림마을에는 북한산 나무처럼 푸르게 자라는 숲동이 아이들이 있고 아이들과 더불어 행복한 엄마들이 있다.

북카페 물푸레 : cafe.daum.net/mulpurecafe
숲동이 놀이터 : cafe.daum.net/dotoriilgi

출처 : 서울마을이야기 vol.28호(2015.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