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 없다면 삶은 지독한 막장 드라마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4.09.26. 15:09
당신이 공중에 성을 지었더라도 허물고 다시 지을 필요는 없다. 성이 있어야 할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밑으로 토대만 쌓으면 된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중에서 |
어느 날 갑자기 이 구절이 마음으로 들어왔을 때, 나도 모르게 '아!' 나지막이 탄식했다. 날로 경조부박해지는 세상과의 불화에 지쳐 얼마간 풀이 죽어있던 터였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하는 말이, 내가 쓰는 단어가 나조차도 잘 믿기지 않았다. 아름다움, 희망, 행복... 여기다가 가치, 예술, 영혼에까지 이야기가 치달으면 나는 그저 공염불을 외는 몽상가가 되어버리는 기분이었다. 문득 멍해져 있는 나를 향해 뺨따귀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학생 아이가 손을 번쩍 들고 물었다.
"작가는 연봉이 얼마예요?"
더 이상 내가 꾸는 꿈을 들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랬다가는 이상(理想)이 이상(異常)인 세상에서 모욕당하고 조롱당할 뿐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지은 집이 공중누각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허망해졌다. 들보는 침수해 썩고 지붕은 바람에 날아가, 누추하고 너덜너덜한 내가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가난은 어느덧 동정과 연민이 아니라 혐오와 비난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가난조차 그 자체로 온전치 못하고 차등이 생겨, 물질의 가난이 정신의 가난보다 하급으로 치부된다. 그러니 가난한 이상이 선 자리는 말마따나 백척간두다.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 어지럽고 위태롭다.
그러다가 소로의 속삭임을 들으니 다시 조금은 견딜힘이 생긴다. 꿈이, 이상이 없다면 삶은 지독한 블랙 코미디이자 '막장 드라마'에 불과할 것이다. '막장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속물이다. 속물과 현실주의자가 분명히 구분되는 지점은 그들이 한 번도 자기만의 성(城)을 쌓아본 적도, 쌓을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는 데 있다. 속물이란 남이 이미 쌓아놓은 견고한 성 속에 자기를 가두고 영영 그것이 무너지지 않으리라 믿는 청맹과니다.
진정한 현실주의자는 이상을 잃지 않는다. 잊지도 않는다. 이상은 본디 있어야 할 바로 그 자리에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며 방향을 가늠하고 길을 찾는다. 이미 충분히 속되고 상스러운 세상에서 스스로를 지킬 작은 성 하나 짓지 못한다면 실존은 얼마나 위태로울 것인가? 그리하여 소로는 지적하길, 인간성의 가장 훌륭한 면들은 마치 과일 껍질에 붙어있는 과분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만 보존될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이들을 그렇게 부드럽게 다루지 않기에, 우리는 상처 입고 더욱 천해진다.
이상은 공상이나 망상과 다르다. 특별하고 아름다운 책《월든》의 마지막 단락은 어떻게 공중에 든 성 아래 토대를 세워 더 이상 공중누각이 아니게 할 것인가에 대한 통렬한 외침으로 끝맺는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무조건 다음 날 새벽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우리 눈을 멀게 하는 빛은 우리에게 어둠과 다를 바 없다. 우리가 깨어 있어야 비로소 새벽이 찾아온다. 앞으로 더 많은 새벽이 찾아올 것이다. 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에 불과하다."
구름이 아니라 땅을 딛고 단단히 서 있기 위해서는, 깨어 있으리라. 깨어 허방을 메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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