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역사가 역 이름에 쏙! 1호선 북쪽 구간 이야기

신병주 교수

발행일 2026.08.12. 15:35

수정일 2026.08.12. 16:09

조회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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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북쪽의 수도권 전철 1호선 역명에는 시청, 종각, 종로, 동대문, 동묘, 제기동, 청량리 등 서울의 역사와 지명이 담겨 있다. 각 역명의 유래와 주변 유적, 환승 노선, 역명 변경 과정을 알아보자.
신병주 교수의 사심 가득한 역사이야기
서울역 기준 1호선 북쪽 구간의 역명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한다. 사진은 동묘앞역 근처의 동묘 정전
서울역 기준 1호선 북쪽 구간의 역명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한다. 사진은 동묘앞역 근처의 동묘 정전
  128화   수도권 전철역, 그 이름이 품은 역사와 문화(2)

지난 칼럼에서는 서울역을 기준으로 남쪽으로 가는 수도권 전철 1호선 역명의 유래를 살펴보았다. 역명에는 서울이 발전해 온 과정을 고스란히 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주에는 서울역을 기준으로 북쪽으로 나아가는 1호선 역명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시청역에서 동대문역까지

서울역을 기준으로 전철 1호선이 북쪽으로 진행하는 첫 번째 역은 시청역이다. 이곳에 서울시청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붙여진 역명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서울시청이라 할 수가 있는 한성부(漢城府)가 서울시청 조금 북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현재의 광화문광장 좌우에 조선시대에는 육조(육조)의 건물을 비롯하여 의정부, 한성부, 사헌부, 삼군부 등 여러 관청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육조거리’라고도 불렀는데, 오늘날로 치면 주요 정부기관이 모이는 거리라고 할 수 있다.

시청역 다음은 종각역이다. 종각은 이곳에 종을 설치한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태조실록』 1398년(태조 7) 4월 4일에 “새로 주조(鑄造)한 종을 시가(市街)의 누(樓) 아래에 놓았다.”는 기록에서, 이때 처음 주조한 종을 설치했음을 알 수 있다.
종각역 출구
종각역 출구
처음 위치는 청운교 서쪽에 있었는데, 1413년(태종 13)에 2층 누각을 새로 짓고 통운교(현재의 위치인 종로 네거리) 쪽으로 옮겼다. 종각의 명칭을 보신각이라고 한 것은, 4대문인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에 구현된 인의예지 4가지 이념에 신(信)을 더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고종 때인 1895년(고종 32)에는 ‘보신각’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조선시대에는 밤 10시에 28번 종을 울리면 통행을 금지하고, 이를 인정(人定)이라 하였다. 새벽 4시에 종을 33번 울리면 파루(罷漏)라 하고 통금을 해제하였다. 1979년 보신각이 현재의 형태로 중건된 이후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고 계속 제야의 종 타종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종이 있는 누각이란 뜻에서 종루(鐘樓)라고도 불렸고, 종루를 중심으로 시전(市廛)이 형성되었다. 종루가 있는 거리라는 뜻의 종로는 조선시대부터 서울의 가장 중심 도로로 기능하였다. 현재 종로 거리는 광화문 사거리부터 동대문까지 이어지는데, 지하철 1호선은 정확하게 이 길을 따라가며 종로3가역, 종로5가역, 동대문역의 역명을 만들었다. 
종로에 위치한 보신각 앞
종로에 위치한 보신각 앞
종로3가에 위치한 종로3가역은 1호선, 3호선, 5호선이 환승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바로 인근에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가 있으며, 탑골공원과도 가까워 탑골공원이 부기되어 있다. 탑골공원은 이곳에 세조 때 세운 원각사에 10층 석탑을 설치하였고, 원각사지 10층 석탑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탑이 있는 고을이라는 뜻에서 나온 ‘탑골’의 명칭이 그대로 이어진 경우이다. 1990년대까지 종로3가역 일대는 충무로와 함께 대표 영화관이 위치한 주요 장소였다. 단성사와 피카디리 극장이 서로 마주 보고 있었고, 인근에 서울극장이 자리했다. 종로5가역은 종로5가에 위치해 있으며, 인근에 있는 기업인 ‘삼양그룹’이 역명에 부기되었다.

동대문역은 조선시대에 설치한 동대문이 현재까지 이곳에 위치하여 생긴 역명이다. 4호선과 환승한다. 한양도성이 연결되는 지점에 위치하여 1번 출구로 나가면 2014년에 개관한 한양도성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한양도성박물관의 자리에는 이대동대문병원이 있었는데, 2008년에 폐원하고, 박물관이 개관하였다.
관우의 사당 동묘의 정전.
관우의 사당 동묘의 정전.

동묘앞역에서 청량리역까지

동대문역 다음은 동묘앞역이다. 동묘앞역은 2005년에 신설된 역인데, 종로구 숭인동에 위치해 있다. 동묘가 이곳 바로 앞에 있어서 역명이 붙었으며, 6호선과 환승이 된다.

동묘의 유래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동관왕묘(東關王廟)’, 즉 동쪽에 있는 관우(關羽)를 모신 사당의 줄임말이기 때문이다. 관우(關羽)는 명나라의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주요 인물로, 유비(劉備), 장비(張飛)와 의형제를 맺은 인물이기도 하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의 요청에 의해 중국의 최고 명장 관우가 소환된 것이었다.

선조 때인 1598년(선조 31) 처음 남관왕묘가 세워지고, 이어서 동관왕묘가 세워졌다. 고종 때에는 북관왕묘와 서관왕묘를 지었다. 관왕묘는 서울의 동서남북에 모두 지어졌는데 그중 동관왕묘가 제일 규모가 크고 화려하였다. 남관왕묘는 남대문 밖에 있다가 화재 등으로 옮겨져 현재는 동작구 사당동에 위치해 있다. 북관왕묘와 서관왕묘는 일제 강점 시기 조선총독부가 철거하였다. 현재는 동관왕묘가 남아 있고, 동묘라는 역명까지 얻게 된 것이다. 관우의 영향 때문일까? 현재에도 동묘역 인근에는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다.

동묘앞역 다음 신설동역은 동대문구 신설동에 위치해 있다. 동묘앞역까지는 종로구에 속해 있지만, 신설동역은 동대문구이다. 조선시대에 한성부 동부 숭신방(崇信坊)에 속해 있었는데, 숭신방에 새로 지은 동네라는 뜻으로 ‘신설계’(新設契)라 하던 것을, 갑오개혁 이후 신설동으로 고친 것이다. 조선시대판 ‘뉴타운’으로 출범한 동네이다.

신설동역은 처음 이 역을 찾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준다. 2호선 성수역까지 환승하는 지선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즉 1호선 신설동역에서 내려 2호선으로 연결하려면 용두역, 신답역, 용답역을 거쳐 성수역까지 가면 된다. 필자는 대학생 시절 신답역 인근에 거주한 적이 있었는데, 성수 지선을 쏠쏠하게 이용하였다. 신답역에서 성수역까지 가서 서울대입구역까지 가는 2호선을 탔다.

신설동역 다음은 제기동역으로, ‘한국건강관리협회’가 부기되어 있다. 제기동의 명칭은 ‘제기(祭基)’, 즉 ‘제사터’에서 유래한다. 조선시대에 왕이 친히 직접 밭을 갈고 농사의 신인 신농씨와 후직씨에 제사를 지내는 선농단이 이곳에 있었던 것에서 비롯된다. 제기동 옆에는 선농단에서 유래한 전농동(典農洞)이 있다.
제기동역 다음은 서울 동북부의 대표적인 부심인 청량리 지역을 대표하는 청량리역이다. 청량리(淸凉里)는 신라 말기에 세워진 청량사(淸凉寺)에서 유래한다. 고종 때 전차가 다닐 때부터 역이 있었던 곳이며, 지금도 경의중앙선, 경춘선, 수인분당선 등 수도권 전철 노선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KTX-이음, ITX-청춘 등 광역 철도도 운행되어 서울 외곽으로 나가는 교통의 거점이다.

청량리 일대에는 조선왕실의 무덤도 많이 조성되었다. 고종의 비 명성황후(明成皇后)의 능이 있던 홍릉(洪陵) 터를 비롯해 영휘원(永徽園:고종의 후궁 엄귀비의 묘), 숭인원(崇仁園:영친왕의 아들 이진의 묘), 세종대왕기념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제기동역 인근에 위치한 선농단역사문화관
제기동역 인근에 위치한 선농단역사문화관

회기역에서 광운대역까지

회기역에서 회기의 명칭은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무덤인 회묘(懷墓)가 이곳에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1969년에 회묘가 고양시 서삼릉으로 옮겨가면서 회묘가 있던 터라는 뜻에서 ‘회기’라 하였다가, 회(懷)자 대신에 회(回)자로 바꾸었다. 회묘는 1969년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 경내로 옮겨졌다.

회기역 다음은 외대앞역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가 인근에 있어서 붙여진 역명이다. 1호선 개통 당시의 역명은 휘경역이었는데, 1996년 외대앞역으로 바뀌었다. ‘휘경’은 이곳에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綏嬪 朴氏)의 무덤인 휘경원이 있던 것에서 유래한다. 휘경원은 1863년 남양주시 진전읍으로 옮겨졌지만, 휘경동이라는 동명은 그대로 남아있다.

외대앞역 다음은 신이문역이다. 동대문구 이문동에 위치한다. 처음 개통 당시에는 없었으나 휘경역(외대앞역)과 성북역(광운대역) 사이의 거리가 넓어 1980년에 신설되었다. 신이문역의 명칭은 새로운 이문동이라는 뜻으로, 기존에 있던 망우선 이문역(2004년 폐역)과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신이문역 다음 석계역은 개통 당시에는 없었으나, 1985년에 신설되었다. 성북구 석관동과 노원구 월계동에서 한글자씩을 따왔다. 6호선과 환승한다.

광운대역은 노원구 월계동에 위치해 있다. 처음 성북역으로 출발했다가 2013년 광운대역으로 역명이 바뀌었다. 개통 당시에는 성북구에 속했으나, 1973년에 도봉구, 1988년에 노원구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 수도권 전철 경춘선과 이어진다.

월계역에서 서울의 마지막 도봉산역까지

광운대역 다음은 월계역으로 노원구 월계동에 있다. 월계동은 동쪽에 중랑천, 서쪽에 우이천이 지나면서 반달을 닮은 계곡이라는 뜻에서 월계(月溪)라는 명칭이 생겼다. 월계역 다음은 녹천역으로, 도봉구 창동에 있다. 1985년에 개통되었다. 역명은 녹천리에서 유래했는데, 조선시대 중랑천이 범람한 뒤 푸른 사슴이 나타나 목욕하고 풍년이 들었다 하여 녹천(鹿川)이라는 이름이 붙였다고 한다.

녹천역 다음은 창동역으로, 도봉구 창동에 있다. 창동(倉洞)은 조선시대 이곳에 양곡 창고가 있었던 데서 유래하였다. 4호선과 환승한다.

방학역은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하며, 1986년에 개통되었다. 역의 명칭은 학이 노는 모습이나 지형이 학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연산군의 묘가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연산군의 부인 폐비 신씨의 요청으로, 교동도에 있던 연산군의 무덤을 양주군 해등면 원당리(현재 방학동)로 이장하였다. 이후 1537년(중종 32) 신씨의 묘가 연산군 묘의 동쪽에 조성되었다.

방학역 다음에 있는 도봉역은 도봉구 도봉동에 위치하는 역으로, 1986년에 개통했다. 지명은 도봉산에서 유래했다. 수도권 전철 1호선에서 서울에 소재한 마지막은 도봉산역이다. 도봉산 입구에 위치해 있다. 도봉산역은 1986년에 옛 지명인 누원(樓院)을 따서 누원역으로 개통하였다. 이후 7호선 노원역과의 혼선을 피하기 위해 인근 도봉산의 명칭을 따서 도봉산역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7호선 환승역으로, 도봉산을 찾는 등산객들의 이용이 많다.

도봉산은 조선시대부터 문인들이 자주 찾던 명산이었다. 조선전기 서거정(徐居正)의 「도봉산영국사(道峯山靈國寺)」, 조선후기 김창업(金昌業)의 「도봉기유(道峯紀遊)」등 도봉산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도봉산을 유람하는 즐거움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제까지 서울역을 기준으로 북쪽에 소재한 수도권 전철 1호선의 역명들을 좇아가면서 역명이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였다. 다음 시간에는 지하철 2호선. 역명이 품은 역사와 문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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