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서울을 그리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시선
신병주 교수
발행일 2026.07.15. 13:21

두 명의 아이들 (엘리자베스 키스)
126화 엘리자베스 키스, 서울을 그리다
서울을 찾는 관광객들은 서울의 주요 모습들을 휴대폰에 담아간다. 휴대폰이나 카메라도 없던 시절 서울을 찾은 사람들은 어떻게 서울을 기억하려 했을까? 기록과 함께 그림으로 서울의 모습을 담은 외국인이 있었다. 1920년대 한국 땅을 밟은 영국인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1887~1956)는 당시 서울의 건축물과 사람들, 풍속까지 자신의 그림에 담았다.
서울을 찾는 관광객들은 서울의 주요 모습들을 휴대폰에 담아간다. 휴대폰이나 카메라도 없던 시절 서울을 찾은 사람들은 어떻게 서울을 기억하려 했을까? 기록과 함께 그림으로 서울의 모습을 담은 외국인이 있었다. 1920년대 한국 땅을 밟은 영국인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1887~1956)는 당시 서울의 건축물과 사람들, 풍속까지 자신의 그림에 담았다.
엘리자베스 키스, 조선 땅을 밟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1887년 스코틀랜드의 에버딘셔에서 태어나 1898년에 런던으로 이사했다. 여동생 2명, 남동생 1명이 있었다고 알려진다. 런던에서 홀로 화가의 길을 걸어가던 그녀의 삶에 결정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여동생의 초청으로 1915년 일본에 도착한 것이다. 그녀의 나이 29세였고 미혼이었다. 처음에는 두 달 정도 머물 계획이었지만, 동양의 매력에 빠진 엘리자베스는 일본에 체류하면서 홋카이도 등 일본의 여러 도시를 방문하며 그림을 그렸다. 일본에 있던 엘리자베스 키스는 동생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1919년 3월 28일로, 3·1 운동의 흐름이 여전히 전개되던 시기였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엘리자베스는 “마침내 우리는 오랫동안 염원하던 한국 여행을 떠나 우리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로 결정했다.”고 한 후, 이어서 “내가 동생과 함께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19년 3월이었다. 당시는 삼일운동이 일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때여서 한국은 깊은 비극에 휩싸여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엘리자베스 키스가 주로 그림을 설명하고, 동생이 글을 쓴 자매의 책은 『올드 코리아』라는 제목으로 1946년 영국에서 출간되었는데, ‘책과 함께’ 출판사에서는 2006년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송영달 옮김)』라는 제목으로, 이들의 글과 수채화 그림을 실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엘리자베스는 “마침내 우리는 오랫동안 염원하던 한국 여행을 떠나 우리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로 결정했다.”고 한 후, 이어서 “내가 동생과 함께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19년 3월이었다. 당시는 삼일운동이 일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때여서 한국은 깊은 비극에 휩싸여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엘리자베스 키스가 주로 그림을 설명하고, 동생이 글을 쓴 자매의 책은 『올드 코리아』라는 제목으로 1946년 영국에서 출간되었는데, ‘책과 함께’ 출판사에서는 2006년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송영달 옮김)』라는 제목으로, 이들의 글과 수채화 그림을 실었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며 (엘리자베스 키스)
이들은 처음 본 서울의 첫인상에 대해서는 “한국의 수도인 서울은 접시처럼 생긴 분지에 위치해 있고, 경사가 완만한 산기슭에는 초가집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사도 요한의 환상에 나타났던 새 예루살렘처럼 서울도 한때는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아름다운 성문들이 많이 있었다. 내가 서울을 방문했을 때는 이미 화강암 성벽들이 허물어지기 시작하였지만, 아직도 거대한 돌로 만들어진 대문 두 개는 웅장하게 서 있었고, 그 위에는 아름다운 기와 지붕이 얹혀 있었다.”고 하여, 서울이 성곽으로 둘러싸인 점과 동대문과 남대문의 웅장함이 매우 인상적이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엘리자베스가 목판화가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출발점이 된 대표적 작품인 ‘달빛 아래 서울의 동대문’이라는 그림은 당시 동대문의 웅장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3개월 뒤 동생은 돌아갔지만, 그림에 관심이 컸던 엘리자베스는 서울에 남아 계속 그림을 그렸다. 이 도쿄에 가서 한국에서 그린 그림들을 중심으로 수채화 전시회를 개최하게 되었는데, 일본 목판화의 대부인 와타나베 쇼자부로도 참석했다. 와타나베는 엘리자베스가 그린 ‘달빛 아래의 동대문’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를 목판화로 제작하도록 권유하였다. 이 그림이 목판화로 크게 성공하자 엘리자베스는 계속해서 목판화 제작에 전념하여 평생 100여 점이 넘는 목판화와 동판화를 남겼다.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1922년 일본의 판화가 이토 신수이(1898~1972)가 그린 초상화로도 만날 수 있다. 푸른 빛 옷을 입고 방석에 앉은 모습으로, 우아하고 단아한 영국 여성이 눈에 들어온다.
3개월 뒤 동생은 돌아갔지만, 그림에 관심이 컸던 엘리자베스는 서울에 남아 계속 그림을 그렸다. 이 도쿄에 가서 한국에서 그린 그림들을 중심으로 수채화 전시회를 개최하게 되었는데, 일본 목판화의 대부인 와타나베 쇼자부로도 참석했다. 와타나베는 엘리자베스가 그린 ‘달빛 아래의 동대문’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를 목판화로 제작하도록 권유하였다. 이 그림이 목판화로 크게 성공하자 엘리자베스는 계속해서 목판화 제작에 전념하여 평생 100여 점이 넘는 목판화와 동판화를 남겼다.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1922년 일본의 판화가 이토 신수이(1898~1972)가 그린 초상화로도 만날 수 있다. 푸른 빛 옷을 입고 방석에 앉은 모습으로, 우아하고 단아한 영국 여성이 눈에 들어온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작품들
일본에서 전시회를 한 이후에도 엘리자베스 키스는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였고, 서울 이외에도 평양, 함흥, 금강산 등지를 방문하였다. 가는 곳마다 그가 만난 한국인과 한국의 풍경을 그림에 담았고, 그중에서 약 30점을 판화로 만들었다. 그녀의 그림과 판화들은 1920~1930년대 한국의 모습을 그때의 시간으로 들어간 듯한 생생함을 보여주고 있다. 1921년과 1934년에는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엘리자베스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모자 가게’라는 그림에는 기와 지붕 아래 각종 모자가 진열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림의 설명을 보면, “‘높은 모자, 둥근 모자, 리본 달린 것, 세상에 모자란 모자는 다 있습니다.’라고 간판에는 써 있다. 이 자그마한 모자 가게의 주인은 덩치가 큰 사람이었다. … 가게 밖에 놓여 있는 노란 종이를 바른 뾰족한 상자는 모자를 멀리까지 들고 갈 때 쓰는 상자이다.”라고 기록하였다. ‘주막’이라는 제목의 그림에는 갓을 쓰고 담뱃대를 물고 있는 인물의 뒤로, 가족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식사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엘리자베스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모자 가게’라는 그림에는 기와 지붕 아래 각종 모자가 진열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림의 설명을 보면, “‘높은 모자, 둥근 모자, 리본 달린 것, 세상에 모자란 모자는 다 있습니다.’라고 간판에는 써 있다. 이 자그마한 모자 가게의 주인은 덩치가 큰 사람이었다. … 가게 밖에 놓여 있는 노란 종이를 바른 뾰족한 상자는 모자를 멀리까지 들고 갈 때 쓰는 상자이다.”라고 기록하였다. ‘주막’이라는 제목의 그림에는 갓을 쓰고 담뱃대를 물고 있는 인물의 뒤로, 가족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식사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남자들과 쥐들만이 출입하는 곳으로, 고급 음식점이 아니고 막일꾼들이 와서 식사를 하는 곳이다. 솥에서는 매운 고추와 다른 양념이 들어간 국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설명을 붙였다. ‘두 명의 아이들’ 그림에는 색동저고리를 입은 100여 년 전 한국의 아이들을 만날 수가 있다. 이 그림은 1919년에 처음 그려졌는데, 크리스마스 씰의 도안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이 그림을 포함하여 엘리자베스의 작품 중 3점이 크리스마스 씰로 제작되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씰을 도입한 인물은 캐나다 출신 의료 선교사 셔우드 홀(1893~1991)인데, 1932년 처음 시작되었다. 결핵치료비 모금 활동을 위해 씰을 판매하였는데, 그때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들이 활용이 되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 씰 사업은 대한결핵협회가 이어받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신식학교와 구식학교’라는 제목의 그림에는, “내가 처음 서울에 갔을 때 스케치 대상을 찾다가 주위가 참 아름다운 이곳에서 예쁜 옷을 입고 있는 학생들을 만났다. 이 건물은 원래 절이었는데 임시로 교사로 사용하고 있었다. … 몇 년 후에 한국에 다시 갔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바뀌어 학생들은 일본식 교복에다 흉한 치즈 자르는 칼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 한국 사람들은 옷 뿐만 아니라 건축양식에서도 추악한 일본의 잔재를 없앨 수 있을까?” 라는 설명을 달아 식민지로 전락해가는 한국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
‘절의 내부’라는 제목의 그림은 동묘(東廟)를 그린 것이다. 조선후기에는 『삼국지』의 영웅 중의 한 명인 관우(關羽)에 대한 존숭 의식이 높아져 관우를 모신 사당이 서울의 동쪽, 서쪽, 남쪽에 세워졌다. 동쪽에 세워진 ‘동관왕묘(東關王廟)’, 줄여서 동묘라고 하는 사당만이 현재에도 남아 있다. 엘리자베스는 “서울 동대문 밖에 있는 이 사당은 전쟁의 신을 위해서 지어진 곳이라고 한다.”는 설명을 붙였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씰을 도입한 인물은 캐나다 출신 의료 선교사 셔우드 홀(1893~1991)인데, 1932년 처음 시작되었다. 결핵치료비 모금 활동을 위해 씰을 판매하였는데, 그때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들이 활용이 되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 씰 사업은 대한결핵협회가 이어받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신식학교와 구식학교’라는 제목의 그림에는, “내가 처음 서울에 갔을 때 스케치 대상을 찾다가 주위가 참 아름다운 이곳에서 예쁜 옷을 입고 있는 학생들을 만났다. 이 건물은 원래 절이었는데 임시로 교사로 사용하고 있었다. … 몇 년 후에 한국에 다시 갔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바뀌어 학생들은 일본식 교복에다 흉한 치즈 자르는 칼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 한국 사람들은 옷 뿐만 아니라 건축양식에서도 추악한 일본의 잔재를 없앨 수 있을까?” 라는 설명을 달아 식민지로 전락해가는 한국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
‘절의 내부’라는 제목의 그림은 동묘(東廟)를 그린 것이다. 조선후기에는 『삼국지』의 영웅 중의 한 명인 관우(關羽)에 대한 존숭 의식이 높아져 관우를 모신 사당이 서울의 동쪽, 서쪽, 남쪽에 세워졌다. 동쪽에 세워진 ‘동관왕묘(東關王廟)’, 줄여서 동묘라고 하는 사당만이 현재에도 남아 있다. 엘리자베스는 “서울 동대문 밖에 있는 이 사당은 전쟁의 신을 위해서 지어진 곳이라고 한다.”는 설명을 붙였다.

정월 초하루의 나들이 (엘리자베스 키스)
여성에 대한 관심을 담은 작품들
엘리자베스는 여성의 모습을 특히 그림에 많이 담았다. 여성 화가로서 여성의 모습에 많은 관심이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 여성들은 뼈대가 작으며 얼굴 표정은 부드럽다. 온순하기만 한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완고한 구석이 있기도 하다. 가령 이들에게 새로운 문물을 강요한다든지 오랫동안 쌓아 온 그들의 생각이나 생활신조를 바꾸려 든다면 차라리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을 허물어 옮기는 것이 쉬울지 모른다.”는 기록에서 한국 여성들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전반적인 인상을 볼 수가 있다. ‘모자(母子)’, ‘아기를 업은 여인’, ‘바느질하는 여자’, ‘맷돌을 돌리는 여인들’, ‘함흥의 어느 주부’, 아낙네들의 아침 수다’, ‘무당’, ‘여승이었던 동씨’, ‘신부’ 등의 작품에서 다양한 분야 여성들의 모습을 그림에 담았다.
1920년대 서울을 기억하는 건축물과 풍속들
엘리자베스의 그림에는 서울의 풍속과 건축물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도 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건축물은 동대문이다. 목판화가로서 엘리자베스의 출발점이 된 ‘달빛 아래 서울의 동대문’과 ‘해뜰 무렵의 서울 동대문’이 대표작이다. ‘해뜰 무렵의 서울 동대문’은 사방에 눈이 쌓여있는 동대문을 그렸는데, 웅장한 성문의 자태와 함께 눈에 덮인 주변의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신부행차’와 ‘장례를 치르며 돌아오며’의 배경에도 동대문이 보인다. 청계천의 어느 다리를 건너는 것으로 보이는 신부의 꽃가마 행렬을 그린 ‘신부행차’ 그림의 좌측으로 동대문과 초가와 기와로 덮인 집들이 있고, 청계천 아래에서는 아낙네가 빨래를 하고 있다. ‘장례를 치르며 돌아오며’는 등불을 켠 상여꾼들이 빈 상여를 메고 돌아오는 장면을 그렸는데, 상여를 통과하는 문 위 현판에 ‘동대문’ 세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정월 초하루의 나들이’ 그림에는 광하문과 해태상이 보이는데, 현재의 광화문 광장에 한 여인이 설빔을 차려입은 두 자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1920년대 풍속들도 다양하게 포착하였다. ‘연날리기’라는 그림의 해설에서는, “서울은 연날리기에 좋은 도시이다. 연 날리는 철이 돌아오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온통 형형색색의 연으로 뒤덮인다. 웬만한 가게에서는 각종 크기의 연을 파는데 값싼 것은 불과 일전밖에 되지 않는다.”고 기록하였다. 긴 머리에 빨강 댕기를 하고 수놓기를 하는 소녀의 모습을 담은 ‘수놓기’, 두 노인이 장기를 두는 모습을 담은 ‘장기 두기’, 서당의 풍경을 담은 ‘서당 풍경’ 등에서는 엘리자베스의 예리한 관찰력이 잘 표현되어 있다. ‘서당 풍경’에서는 “서울 성문에서 멀지 않은 그 집은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서당 안을 슬쩍 들여다본 자연을 스케치한 것이다.”는 해설을 달았다.
1920년대 풍속들도 다양하게 포착하였다. ‘연날리기’라는 그림의 해설에서는, “서울은 연날리기에 좋은 도시이다. 연 날리는 철이 돌아오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온통 형형색색의 연으로 뒤덮인다. 웬만한 가게에서는 각종 크기의 연을 파는데 값싼 것은 불과 일전밖에 되지 않는다.”고 기록하였다. 긴 머리에 빨강 댕기를 하고 수놓기를 하는 소녀의 모습을 담은 ‘수놓기’, 두 노인이 장기를 두는 모습을 담은 ‘장기 두기’, 서당의 풍경을 담은 ‘서당 풍경’ 등에서는 엘리자베스의 예리한 관찰력이 잘 표현되어 있다. ‘서당 풍경’에서는 “서울 성문에서 멀지 않은 그 집은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서당 안을 슬쩍 들여다본 자연을 스케치한 것이다.”는 해설을 달았다.
엘리자베스 키스를 기억해야 하는 까닭?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은 세계 여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세기 초에 동양을 찾아와 여러 판화로 남긴 화가로 인정받는다. 1946년에 출판된 『Old Korea: the Land of Morning Calm』은 한국을 소재로 한 그림 뿐 아니라,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규탄하고 한국 사람들의 아픔에 동조하는 내용들도 다수 실었다. 이책의 서문에서, “여러 한국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이 투옥된 이야기, 고문당한 이야기, 온갖 처참한 대우를 받은 이야기 등을 들으면서 우리는 마치 고대의 성직자처럼 가슴 속에 불이 활활 타들어 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기록한 것이 대표적이다.
1920년대 한국은 일제강점이라는 큰 시련을 겪은 시기였다. 그런 시련 속에서도 사람들은 일상의 생활을 해야 했고, 그 모습은 엘리자베스 키스에 의해 보다 세심하게 표현될 수 있었다. 1920년대 한국인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화폭에 담은 그녀의 그림으로 인하여, 우리는 100여 전 당시를 살아갔던 선조들의 모습과 풍속을 더욱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1920년대 한국은 일제강점이라는 큰 시련을 겪은 시기였다. 그런 시련 속에서도 사람들은 일상의 생활을 해야 했고, 그 모습은 엘리자베스 키스에 의해 보다 세심하게 표현될 수 있었다. 1920년대 한국인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화폭에 담은 그녀의 그림으로 인하여, 우리는 100여 전 당시를 살아갔던 선조들의 모습과 풍속을 더욱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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