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알고 있다! 오래된 나무가 들려주는 그날의 역사

신병주 교수

발행일 2026.06.17. 14:10

수정일 2026.06.1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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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 교수의 사심 가득한 역사이야기
창덕궁 회화나무 군
창덕궁 회화나무 군
  124화    역사를 기억하는 나무 이야기

6월은 초록빛 나무들이 푸른 자태를 마음껏 뽐내는 계절이다. 주변에 조성되어 있는 푸른 나무들을 보며 걸음을 옮기면 마음까지 상쾌해진다. 수령이 오랜 나무들 중에는 역사를 품고 있는 사례가 많다. 역사를 기억하는 나무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역사를 기억하는 궁궐의 나무들

조선시대 궁궐에는 많은 나무가 심어졌고, 오랜 수령을 가진 나무들은 역사를 품고 있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敦化門)을 지나면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여덟 그루의 회화나무 군(群)을 만날 수 있다. 회화나무는 괴목(槐木)이라고도 하는데, 중국 주(周)나라 때 조정에 세 그루의 회화나무를 심고서 삼공(三公)이 이를 향하여 앉았다는 고사로 인해 예로부터 매우 신성한 나무로 여겼다. 궁궐 입구에 회화나무를 심은 것도 이러한 고사와 관련이 깊다. 1820년대 중반에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을 그린 「동궐도(東闕圖)」에도 이들 나무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수령은 300~400여 년으로 추정된다. 2006년 4월 천연기념물 제472호로 지정되었다.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을 그린 「동궐도(東闕圖)」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을 그린 「동궐도(東闕圖)」
정조는 창덕궁 후원에 규장각(奎章閣)을 설치하면서, 서문인 금호문(金虎門) 인근에 규장각 학사들이 근무하는 대유재(大猷齋)와 소유재(小猷齋)를 세웠다. 이들 건물 근처에 향나무를 심었는데 「동궐도」에도 그려져 있다. 이 향나무는 태종 때인 1405년(태종 5) 창덕궁을 조성하면서 어느 정도 자란 나무를 심은 것으로 보고 있어서 수령은 750년 정도 추정된다.

향나무는 나무에서 향기가 난다고 하여 목향(木香)이라고도 한다.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향을 피우는 재료로 쓰이며 정원이나 공원에 많이 심는다. 창덕궁의 향나무는 원래 높이 12m, 뿌리 둘레 5.9m이며, 일반 나무들처럼 곧게 뻗지 않고, 구부러져 있다. 나무의 모양은 마치 용이 하늘을 오르는 모습처럼 생겼다. 1968년 3월 천연기념물 제194호로 지정되었다. 2010년 태풍 곤파스의 영향으로 나무의 윗부분이 반 정도 꺾이고 가지 일부도 부러졌다.
천연기념물 제194호 향나무는 나이 750여 년에 이르는 궁궐의 터줏대감이다.
천연기념물 제194호 향나무는 나이 750여 년에 이르는 궁궐의 터줏대감이다.
창덕궁에서는 누에를 치기 위해 심은 뽕나무도 눈여겨볼 만하다. 조선시대에는 비단의 주재료가 되는 양잠(養蠶)을 장려하였는데, 왕비가 친히 누에를 치는 의식인 친잠(親蠶) 의식을 거행하기도 하였다. 창덕궁 후원 관람지(觀纜池:뱃놀이를 보는 연못) 입구 창경궁과 경계를 이루는 담장 가에 있는 뽕나무는 높이 12.0m, 가슴높이 줄기 둘레는 239.5㎝로 창덕궁 내 뽕나무 중에 가장 크고 모양이 단정하고 아름답다. 수령은 400여 년 정도로 추정되며, 200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조선 왕실 양잠의 역사를 보여주는 나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문종(文宗)이 아버지 세종을 위해 경복궁 후원에 앵두나무를 심었다는 내용은 『문종실록』의 졸기(卒記:돌아가신 후에 쓴 기록)에 나온다. “후원(後苑)에 손수 앵두(櫻桃)를 심어 매우 무성하였는데 익은 철을 기다려 올리니, 세종께서 반드시 이를 맛보고서 기뻐하시기를, ‘외간(外間)에서 올린 것이 어찌 세자가 손수 심은 것과 같을 수 있겠는가?’라 하였다.”는 기록에서, 아버지를 위해 앵두나무를 경복궁에 심고 이를 올린 문종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중종 때 경연에서 심정(沈貞)은 “문종은 앵두나무를 배양하며 손수 뿌리에 물을 주고, 그 열매를 세종께 드렸습니다. 어찌 진어(進御)할 다른 물건이 없겠습니까마는, 효도를 위해서는 하지 않는 일이 없으므로 그런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앵두나무를 가꾼 문종의 효심을 중종에게 강조하기도 하였다.
단종 유배지 청렴포의 관음송
단종 유배지 청렴포의 관음송

단종과 금성대군의 충절을 기억하는 나무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 등장하는 역사 속 인물과 관련된 나무가 있다. 단종(端宗)의 유배지 영월 청령포에는 600년 정도의 수령을 가진 소나무가 있다. 높이 30m, 가슴높이 둘레 5.5m로 1.6m쯤 되는 높이에서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져 하나는 위로, 하나는 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자라고 있다. 단종이 1457년에 유배되었으니 단종의 모습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하면서 둘로 갈라진 이 나무의 줄기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관음송(觀音松)이라는 이름은 단종의 안타까운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해서 ‘볼 관(觀)’ 자를, 단종의 슬픈 말소리를 들었다고 하여 ‘소리 음(音)’자를 따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관음송이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나무의 껍질이 검은색으로 변하여 나라의 변고를 알려 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1988년 4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단종의 무덤인 영월 장릉(莊陵)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눈에 띄는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定順王后)의 능인 사릉(思陵)에 있던 것을 1999년에 옮겨 온 것으로, 생이별 후 영원히 만나지 못한 단종과 정순왕후의 혼백이 소나무 뿌리를 통해 만나라는 염원을 담았다. ‘정신과 영혼이 함께 하는 소나무’라는 뜻으로, 정령송(精靈松)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錦城大君)이 경상도 순흥(順興:현재의 영주시)에서 단종복위 운동을 꾀하다가 처형된 장소에는 숙종 때 그의 충절을 기리는 신단(神壇)을 세웠다. 금성대군 신단의 오른쪽에는 수령 약 1,100년의 은행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는 충신수(忠臣樹)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금성대군이 처형되고 순흥부가 폐지되었을 때 이 나무가 말라 죽었다가, 금성대군이 복권된 후에 새롭게 가지가 생기면서 충신수로 칭하기 시작하였다.

백송과 소나무

중국 산악지대 온대림이 원산지인 백송(白松)은 조선후기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사람들에 의해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한국에서 크게 자란 백송 개체는 희귀하여 대부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서울에서 백송이 남아 있는 대표적인 곳은 종로구 통의동과 재동의 백송이다.

통의동 백송은 영조가 왕이 되기 전에 살았던 창의궁(彰義宮) 터에 남아 있던 것으로,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가 1990년 태풍으로 줄기가 부러져 천연기념물 지정에서 해제되었다. 나무의 높이는 16m였다.
헌법재판소에 있는 '서울 재동 백송'
헌법재판소에 있는 '서울 재동 백송'
재동 헌법 재판소 구내에 있는 재동 백송은 나무 높이는 약 17m, 밑 부분의 줄기 둘레가 3.8m 정도다. 남서쪽 줄기의 둘레가 2.4m, 동쪽 줄기의 둘레는 1.9m다. 한 그루이지만 뿌리 근처에서 둘로 갈라져 두 그루인 것처럼 자랐다. 헌법재판소가 들어서기 이전에는 창덕여자고등학교의 교정에 있는 백송이었고, 19세기 후반 고종을 왕으로 지명한 신정왕후(神貞王后)의 친정이 있던 곳이었다.

서울 성동구 일대에 조성된 서울숲에는 ‘나무의 천국’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나무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서울숲에는 2008년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이명박 대통령을 방문한 후에 이곳에 심은 반송(盤松:소나무의 한 품종으로 모양이 쟁반 같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 있다. 소나무 앞 안내판에는 “이명박 대한민국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한중 청년 문화교류를 위해 2008년 8월 26일 식재한 소나무입니다(반송, 수령 50년)”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한중우호의 상징물인 이 소나무는 현대의 역사를 기억해 나갈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나무 이외에도 역사를 품고 있는 나무들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신록의 푸르름이 가장 돋보이는 6월, 나무들의 자태와 함께 이들이 품고 있는 역사를 만나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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