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을 즐기는 색다른 방법? 해설과 함께한 골목여행 체험기

시민기자 박미선

발행일 2025.10.28. 09:57

수정일 2025.10.28. 17:53

조회 616

경복궁 옆 창성동에 있는 작은 골목 미로미로 ©박미선
경복궁 옆 창성동에 있는 작은 골목 미로미로 ©박미선
서울의 가장 오래된 동네서촌은 세월이 머문 골목마다 이야기가 흐르는 곳이다. 낮은 담벼락 사이로 비치는 한옥의 기와, 오래된 상점의 간판 그리고 골목 끝에 숨은 작은 카페들까지, 서촌은 걷는 순간마다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붙잡는다. 이 고즈넉한 동네를 그냥 스쳐 지나가기보다, 한 걸음씩 그 속 이야기를 듣고 싶어 ‘서울도보해설관광 서촌의 오래된 골목산책’ 코스에 참여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도보해설관광전문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걸으며 체험하는 무료 프로그램이다.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그 길에 담긴 사람과 시간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살아 있는 역사 산책’이다. 평소 좋아하던 서촌을 색다른 시선으로 만나보고 싶었던 나에게, 이번 프로그램은 오래된 책 한 장을 천천히 넘기듯 설레는 시작이었다.
미로 같은 서촌의 골목 ©박미선
미로 같은 서촌의 골목 ©박미선
걷기 좋은 신발을 신고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근처로 모였다. 첫 목적지는 통의동 백송 터였다. 한때 이곳에는 높이 16m, 흉고 둘레 5m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백송이 서 있었다고 한다.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나, 1997년 7월의 집중호우로 쓰러지며 지금은 밑동만 남아 있다. 하지만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자리를 둘러보니, 그 자리에 여전히 서촌의 세월과 품격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했다.
재단법인 세계정교유지재단이라는 독특한 현판이 눈에 띈다. ©박미선
재단법인 세계정교유지재단이라는 독특한 현판이 눈에 띈다. ©박미선
통의동 백송터를 지나자, 길의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사실 이곳은 서촌을 지나는 사람들도 찾기 힘든 숨겨진 도보 여행 코스다.

넓은 인도 대신 좁은 골목이 수줍은 듯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끈다. 오래된 담장과 낮은 지붕이 이어지는 길은 마치 오랜 시간 속으로 발을 들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골목길은 마치 미로처럼 얽혀 있으며 그 길 위에는 사람의 손때와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다. 담장 사이로 작은 화분이 놓여 있고, 오래된 문패에는 세월의 흔적이 선명하다. 잠시 후, 골목 입구의 벽면에 붙은 ‘미로미로(迷路美路)’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길의 복잡함을 예술로 바꾸는 서촌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골목을 따라 조금 더 걷자 ‘재단법인 세계정교유지재단’이라는 독특한 현판이 눈에 띄었다. 이곳은 20세기 중반 창시자 하정효에 의해 세워졌으며,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점은 이 종교가 모든 교리를 순수 한글로 기록한다는 사실이었다.
전통 한옥 문화 공간, 상촌재 ©박미선
전통 한옥 문화 공간, 상촌재 ©박미선
세계정교유지재단 앞 골목을 돌아 나오자 길의 분위기가 조금 더 단정해졌다. 이곳에는 쌍홍문 터라는 표식이 눈에 들어왔다. 임진왜란 당시 어머니를 구하고 죽은 두 아들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효를 기리는 두 개의 붉은 문을 세웠다고 한다. 서촌 중에서도 이 일대를 효자동이라고 부르게 된 유래가 이곳에 담겨 있다. 이곳을 지나 큰길로 나온 뒤 다시 몇 분 정도 걸어 어느 한옥 건물로 들어갔다. 낮은 담장 사이로 고즈넉한 한옥 지붕이 보이는 상촌재라고 쓰인 한옥이었다.
현재 전시가 진행 중인 상촌재 내부 ©박미선
현재 전시가 진행 중인 상촌재 내부 ©박미선
상촌재(上村齋)는 2017년 6월, 종로구에서 개관한 전통 한옥 문화 공간이다.기와지붕의 선은 유려하고, 마루에는 가을 햇살이 얇게 깔려 있었다.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 별채로 구성된 이 집은 19세기 말 서촌 일대에 살던 중인 계층의 주거 형태를 복원한 것이라 한다.

‘중인’이라 하면 흔히 양반과 평민 사이의 계급으로만 알고 있지만 그들은 조선의 기술자, 역관, 의관, 화원 등 문화와 실무를 잇는 실질적인 중추였다. 그래서인지 상촌재의 공간 구성도 실용적이면서 단정하다. 목재 건물과 마당을 둘러싼 방의 배치, 처마의 모습, 모든 것이 절제 속의 품격을 보여주었다.

이곳을 둘러보다 보니 조선의 중인들이 어떻게 일상을 보내고, 가족과 손님을 맞으며, 마을과 어울려 살았는지를 가만히 상상하게 된다. 백 년 전의 한여름, 이 집의 사랑채에서 들려왔을 법한 웃음소리와 찻잔 소리가 귓가에 어른거렸다.
벽수산장 터 기둥이 눈길을 끈다. ©박미선
벽수산장 터 기둥이 눈길을 끈다. ©박미선
상촌재의 정갈한 안채와 사랑채를 둘러본 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벽수산장 터가 있던 곳이었다. 벽수산장은 이름 그대로 ‘푸른 나무가 있는 산장’을 뜻한다. 조선시대 중인들이 주로 살던 서촌은 1920~30년대 일제강점기, 근대 지식인과 중산층 그리고 일부 친일 부유층이 거주하던 지역이 되었다.

그중 벽수산장은 당시 친일파인 이근택 일가가 소유한 별장으로, 고급 한옥 양식을 갖춘 전통 가옥과 근대식 구조가 혼합된 전환기 한옥의 대표적 사례였다. 지금은 건물은 이미 남아 있지 않지만 몇 개의 기둥이 이곳에 벽수산장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벽수산장 터는 단순한 별장 흔적이 아니라, 서촌 골목의 과거와 현재, 전통과 근대, 아름다움과 상처가 공존하는 공간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였다.
겸재길과 자수궁 터 안내판 ©박미선
겸재길과 자수궁 터 안내판 ©박미선
또한 길의 한쪽으로는 ‘겸재길’이라는 이름과 자수궁 터라는 안내판도 함께 보였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 거주하고 활동했던 곳이기도 하고, 자수궁은 조선 태조의 일곱째 아들 무안대군 방번이 살던 집이다. 문종 때 세종 후궁들의 거처로 삼은 이후 궁궐에서 나온 후궁들이 살았으며 자수원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서촌의 좁은 골목 속에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역사적 층이 겹쳐 있어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거리지만, 한 걸음씩 걸을수록 조선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이어진 시간의 결이 느껴진다.
옥인동 윤씨가옥이 보이는 계단 ©박미선
옥인동 윤씨가옥이 보이는 계단 ©박미선
벽수산장 터를 뒤로하고 조금 더 골목을 걷자 계단 한쪽으로 옥인동 윤씨가옥이라는 한옥이 나타났다. 이곳은 ㄷ자형 안채에 사랑채 구실을 하는 마루방과 대문간이 더해져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안채 앞쪽의 기둥 머리를 일반 민가에서는 보기 드문 익공 양식을 채택하는 등 당시 최상류층 주택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진 못했지만, 계단 위로 바라보며 이곳의 풍경을 상상해 보게 됐다. 남산골한옥마을에 이 집을 똑같이 복제해 전시했다고 하는데, 그곳에 가면 옥인동 윤씨가옥이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곳 역시 일제강점기 친일파 윤덕영이 자신의 소실을 위해 지은 곳으로 어두운 근현대사의 한 부분을 상상하게 한다.
수성동 계곡으로 이르는 언덕길 ©박미선
수성동 계곡으로 이르는 언덕길 ©박미선
인왕산이 보이는 수성동 계곡 ©박미선
인왕산이 보이는 수성동 계곡 ©박미선
옥인동 윤씨가옥을 지나 가파른 언덕을 오르듯 꽤 긴 길을 함께 걸었다. 우리 앞에는 갑자기 계곡이 나타났고 시원한 물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바로 수성동계곡이다. 청명한 물이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며, 골짜기 전체에 맑은 물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을이었지만 몇몇 사람들은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쉬고 있었다.
수성동계곡을 대표하는 기린교 ©박미선
수성동계곡을 대표하는 기린교 ©박미선
겸재 정선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기린교 ©박미선
겸재 정선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기린교 ©박미선
문화관광해설사는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에도 돌다리, 즉 기린교가 있는 수성동계곡이 등장한다고 이야기해 줬다. 기린교 또한 그 자리에 있던 가장 오래된 다리라고 하는데, 돌다리를 보고 있으니 옛 시인들이 이곳을 즐겼을 풍경이 떠오르는 듯했다.

수성동계곡 주변의 바위 틈새로 작은 풀들이 자라고, 햇살이 물 위에 반짝이며, 좁은 골목에서 잠시 숨가쁘게 걸어온 우리는 자연의 소리와 풍경 속에서 한동안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골목과 한옥 그리고 계곡이 한데 어우러지는 이 구간이야말로 서촌 도보 해설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동주 하숙집 터 안내판 ©박미선
윤동주 하숙집 터 안내판 ©박미선
수성동계곡의 맑은 물소리를 뒤로하고 좁은 골목을 따라 걷자, 어느새 종로구 누상동 9번지 앞에 다다랐다. 이곳은 바로 윤동주 시인이 머물던 하숙집 터라고 한다. 1941년 5월부터 9월까지,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던 시인이 이 집에서 하숙하며 시를 썼다고 하는데 지금은 당시의 한옥 대신 다세대주택이 들어서 있어, 겉모습만으로는 시인의 흔적을 느끼기 어려웠다. 하지만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골목을 바라보면, 시인이 이 좁은 골목을 오가며 글을 쓰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그는 이곳에서 그는 <십자가>, <태초의 아침>, <못자는 밤> 등 10편의 시를 남겼다고 전해진다.

좁은 골목길과 주변 주택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은 그 시절을 상상하게 했다. 겉으로는 평범한 주거지이지만, 이 자리는 한국 현대문학사의 중요한 순간이 지나간 역사적 공간이다. 서촌의 골목은 이렇듯 사람과 문학, 역사와 삶이 겹쳐 있는 살아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개관 12주년을 맞은 박노수미술관 ©박미선
개관 12주년을 맞은 박노수미술관 ©박미선
골목을 조금 더 걸어가자 벽돌과 기와가 어우러진 독특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박노수미술관이다. 원래 윤덕영 가문이 딸과 사위를 위해 지은 집이었고 1930년대 근대 건축가 박길룡이 설계했다. 2층 벽돌집 외관은 한식과 양식이 섞인 건축적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1972년부터 박노수 화백이 소유하며, 2011년에는 집과 미술 작품, 수석 등 994점을 종로구에 기증했고, 2013년 9월에는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으로 개관했다.

안으로 들어가려면 입장권을 끊어야 해서 우리는 외관만 바라봤다. 하지만 언뜻 보이는 벽돌과 기와 그리고 정갈한 마당 풍경만으로도, 이 집 안에는 한국 근현대 미술과 건축의 향기가 고스란히 스며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안으로 들어가 작품과 집을 함께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생겼다.
청전 이상범 가옥 ©박미선
청전 이상범 가옥 ©박미선
박노수미술관을 지나 좁은 골목을 걷자, 또 다른 한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청전 이상범 화백 가옥이라고 한다. 1929년부터 197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43년 동안 이 집에서 생활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고 한다. ㄱ자 안채와 ㅡ자 행랑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도시형 한옥으로, 옆에 붙어 있는 청전화숙은 1938년에 신축되어 제자들을 가르치고 작품 활동을 하던 공간이다.

2005년에는 등록문화재 제171호로 지정되어,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공간으로 인정받았다. 밖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한옥의 단정한 선과 마루 그리고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마치 화백이 붓을 들고 앉아 있었을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통인시장이 보이는 서촌의 중심 거리 자하문로 ©박미선
통인시장이 보이는 서촌의 중심 거리 자하문로 ©박미선
골목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과 소리는 여전히 20세기 중반의 서촌을 느끼게 하는 듯했지만, 걸어오는 동안 서촌의 골목 사이사이에는 카페와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눈길을 끌었다. 서촌을 찾은 여러 사람들이 이곳을 걸으며 맛집 핫한 카페와 베이커리 그리고 서점 등을 찾아다녔다. 또한 전통시장 관광지로 유명한 통인시장이 이곳에 있어 활기가 도는 분위기도 느낄 수 있었다. 서촌은 단순히 역사와 예술만 있는 공간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일상의 거리임을 느끼게 했다.
이상의 집 안에 전시물 ©박미선
이상의 집 안에 전시물
골목을 따라 걷자 조금 더 현대적인 느낌의 한옥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이곳은 바로 작가 이상의 집이다. 2009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매입하여 문화 공간으로 개방했다고 한다. 이 집은 <날개>의 작가 이상이 큰아버지의 양자로 들어와 스물세 살 때까지, 약 20년간 거주한 곳이다.

하지만 이곳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복원된 한옥이 아니라, 그가 20여 년 살았던 통인동 154번지의 일부 터만 남은 자리다. 당시 이곳은 본채와 사랑채, 행랑채가 딸린 300평 규모의 큰 집이었지만, 지금은 여러 필지로 나뉘어 각기 다른 한옥들이 들어서 있다. 그 가운데 154-10번지만이 ‘이상(李箱)’을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흔적이다.

작은 마당과 전시 공간으로 꾸며진 이 집터에는 그의 대표작 <날개> 속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의 그림자가 여전히 드리워져 있었다. 당시 이상의 답답한 마음을 반영한 공간과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골목과 서촌을 내려다볼 수 있는 베란다가 함께 설계되어 있어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곤 했다.
서촌 골목에 있는 배수구의 모양도 재미있다. ©박미선
서촌 골목에 있는 배수구의 모양도 재미있다. ©박미선
‘서울도보해설관광 서촌의 오래된 골목산책’은 3시간 정도로 결코 짧지 않은 코스로 진행된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꽉찬 볼거리가 많았다. 서촌은 단순한 ‘옛 동네’가 아니라 시간과 이야기가 겹쳐 있는 살아 있는 공간임을 느낄 수 있었다. 경복궁 서쪽에 자리한 이 지역은 조선시대부터 중인과 예술가, 서민이 함께 살아온 터전이었고 그래서 지금도 골목을 걷다 보면 화려하지 않은 삶의 냄새가 묻어난다.

길들은 대로처럼 반듯하지 않고, 서로 얽히고설켜 마치 미로처럼 이어진다. 그러나 그 복잡한 골목길 속에는 오래된 한옥의 처마 끝, 벽돌 담장 사이로 피어난 들꽃, 수십 년 된 간판 같은 서촌만의 정취가 숨어 있다.

통의동 백송 터에서 시작된 여정은, 미로처럼 얽힌 골목과 ‘미로미로’ 간판, 세계정교유지재단과 상촌재를 지나며 역사와 문화, 건축과 삶을 한 걸음씩 경험하게 했다. 벽수산장과 옥인동 윤씨가옥을 보며 근대의 어두운 면도 바라보고 수성동계곡에서는 자연, 문학적 감성을 동시에 느껴지기도 했다. 윤동주 하숙집 터와 박노수미술관, 이상범 가옥, 이상의 집을 거치는 동안에는 한국 근현대 문학과 미술의 숨결을 따라 걸었다. 골목 사이사이 예쁜 가게와 맛집 그리고 통인시장 뒷골목까지 스며든 서촌의 일상 풍경은, 도보 여행의 즐거움을 더했다.
걷기 좋은 서촌 일대 ©박미선
걷기 좋은 서촌 일대 ©박미선
좁은 골목과 한옥, 계곡과 미술관, 문학과 역사까지 서촌이라는 동네가 가진 다층적 매력을 한눈에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촌만이 끝이 아니다. 서울 곳곳에는 경복궁, 창덕궁, 북촌, 남산, 성북동 등 다양한 테마의 도보해설관광 코스가 준비되어 있어, 각 지역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서울도보해설관광무료로 참여할 수 있어, 부담 없이 신청할 수 있다.

참여 방법은 간단하다. 비짓서울 누리집에 접속해 원하는 코스와 날짜를 선택한 뒤,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된다. 정원과 일정이 제한되어 있으니,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골목 하나하나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와 건축, 자연과 예술을 따라 걷는 서울도보해설관광은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직접 느끼고, 새로운 시선으로 서울을 바라보는 시간이 된다. 이번 서촌 투어처럼, 발걸음을 따라 펼쳐지는 서울의 풍경과 이야기를 무료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서울을 여행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서울도보해설관광 ‘서촌의 오래된 골목산책’

◯ 출발 장소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 도보 코스 : 경복궁역 3번 출구→통의동 백송 터→상촌재→옥인동 윤씨가옥→수성동계곡→윤동주 하숙집 터→박노수미술관→이상범가옥→노천명 집 터→이상의집→금천교시장(약 3시간 소요)
◯ ☞ 예약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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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박미선

서울시 문화행사에 관심이 많은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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