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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정문 입장 후, 왼쪽 구역의 공간 투어 주황색 표지판 ©장미화 -
1층 양옆에 기차표를 끊었던 매표 창구(매표소)가 있다. ©장미화 -
중앙홀 높은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와 반달 모양 창에 햇살이 들고 있다. ©장미화 -
공간 곳곳 통로 문 위쪽에 창문이 더 있어 답답하지 않다. ©장미화
옛 서울역서 떠난 100년 역사 여행…문화역서울284 공간투어
발행일 2025.09.24. 13:00

문화역서울284 공간 투어에 참여했다. ©장미화
기차 여행으로 KTX를 이용하던 옛 서울역(현 문화역서울284)의 100년 스토리가 이렇게 많을 줄이야~. 온라인 신청 후 참여한 문화역서울284 공간 투어는 본관 1층 오렌지색 둥근 표지판 앞에서 참여자들과 함께 시작되었다. 투어 시작 전 주변 행사장 소음과 섞이는 것을 방지하고 전문 해설사의 설명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각자 이어폰을 받았다. 공간 투어의 문화적 품격을 높일 수 있는 작은 배려였다.
일제 강점기인 1925년 경성역으로 처음 문을 연 이 건물은, 해방 후 2003년까지 기차가 운행되었다. 복원된 경성역은 지금의 ‘문화역서울284’로 재탄생했다. 사적 제284호 문화재로 등록되어 1981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정되었다. 귀빈실과 귀빈예비실, 부인실, 역장실, 2층 고급레스토랑, 복원 전시실 등 내부 공간 투어는 약 1시간 이상 진행되었다.
일제 강점기인 1925년 경성역으로 처음 문을 연 이 건물은, 해방 후 2003년까지 기차가 운행되었다. 복원된 경성역은 지금의 ‘문화역서울284’로 재탄생했다. 사적 제284호 문화재로 등록되어 1981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정되었다. 귀빈실과 귀빈예비실, 부인실, 역장실, 2층 고급레스토랑, 복원 전시실 등 내부 공간 투어는 약 1시간 이상 진행되었다.
1층 중앙홀 내부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와 높은 벽에 걸린 시계, 반달 모양의 아치형 창문 디자인이 근대 건축 예술 작품 같았다. 양 옆에 매표소로 이용되었던 곳들이 있고, 개성 있는 내부 공간의 역사들을 옛 사진을 보며 전문 해설을 들었다. 1900년 남대문 정차장에서 시작해 경성역, 서울역, 그리고 현재의 문화역서울284에 이르기까지 옛 서울역 건축의 역사와 특징, 근대 서울의 도시 변화, 역사적 사건과 인물, 주요 공간의 용도 및 현재 활용 방식 등 100여 년의 역사를 훑다 보니 영화 한 편을 본 듯했다.

중앙홀 출입문 위 시계와 유리창은 르네상스 건축의 설치 작품 같다. ©장미화
100주년을 기념한 공간투어는 단순한 관람을 넘어, 곳곳이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었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산업화와 민주화의 상징적인 광장의 장소로, 올해 100년이 되는 국가 근대 건축물로서 서울역은 단순한 철도역이 아니라,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장소다. 붉은 벽돌, 화강암 바닥, 인조석을 붙인 벽 등으로 이루어진 유럽식 르네상스 건축으로 이국적인 외관은 광장 너머 현대 빌딩들과의 조화로 그 시대의 역사를 잇고 있다.
전문 해설사가 보여주는 오래된 사진 속 자료를 보며 서울역 앞 광장의 활용도와 사회적인 현상도 알 수 있다. 1936년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으로 향할 때 기차를 타고 출발했던 곳이기도 하다.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광장에서 노숙을 하기도 했고, 그 틈을 노린 사기꾼들과 암표상들이 기승을 부렸다. 실제로 날짜 지난 표를 팔거나, 너구리 떼처럼 몰려든 암표상들 사이에서 사기 피해도 빈번했다. 서울역 광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수두 예방접종도 했다.
해방 후에도 서울역은 사람들의 이동과 만남, 기다림으로 여행자들의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1등급, 2등급, 3등급 대합실 등 등급에 따라 나뉘었다. 30전에 파는 약밥은 조선인을 위한 메뉴였다. 쌀 1되에 10전이던 시절 꽤 비싼 편이었다. 아이스커피, 사이다, 일본 오뎅, 샌드위치가 팔렸고, 2층에 이발소도 있고 유료 화장실(당시 3전)이 있었다.
‘부인방’이라는 여성 전용 공간도 있다. 당시까지도 남녀를 엄격하게 구분해야 하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는 전통적 가치관이 남아 있었다. 귀빈실은 덕혜옹주가 일본으로 유학 가는 길에 이용했던 곳으로 흑백 사진 속 남아 있는 슬픈 역사를 옛 서울역 한 켠 에 담고 있다.
전문 해설사가 보여주는 오래된 사진 속 자료를 보며 서울역 앞 광장의 활용도와 사회적인 현상도 알 수 있다. 1936년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으로 향할 때 기차를 타고 출발했던 곳이기도 하다.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광장에서 노숙을 하기도 했고, 그 틈을 노린 사기꾼들과 암표상들이 기승을 부렸다. 실제로 날짜 지난 표를 팔거나, 너구리 떼처럼 몰려든 암표상들 사이에서 사기 피해도 빈번했다. 서울역 광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수두 예방접종도 했다.
해방 후에도 서울역은 사람들의 이동과 만남, 기다림으로 여행자들의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1등급, 2등급, 3등급 대합실 등 등급에 따라 나뉘었다. 30전에 파는 약밥은 조선인을 위한 메뉴였다. 쌀 1되에 10전이던 시절 꽤 비싼 편이었다. 아이스커피, 사이다, 일본 오뎅, 샌드위치가 팔렸고, 2층에 이발소도 있고 유료 화장실(당시 3전)이 있었다.
‘부인방’이라는 여성 전용 공간도 있다. 당시까지도 남녀를 엄격하게 구분해야 하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는 전통적 가치관이 남아 있었다. 귀빈실은 덕혜옹주가 일본으로 유학 가는 길에 이용했던 곳으로 흑백 사진 속 남아 있는 슬픈 역사를 옛 서울역 한 켠 에 담고 있다.
2층에 자리한 최초의 양식당 ‘그릴(Restaurant Grill)’은 스테이크와 양식 메뉴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으로 나혜석, 이상 등 문화예술인들이 자주 들렀을 정도로 큰 인기였다. 은제 식기에 포크와 나이프가 나왔고, 지하 주방시설에는 2층 레스토랑까지 이어지는 음식 이동용 화물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그 시절에 이런 첨단 시설이 있었다는 사실에 참여자들은 신기해 했다. 서양식 분위기를 갖춘 인테리어로 당시 도시의 신여성, 상류층의 발길이 이어졌다고 한다. 귀에 쏙 들어오는 해설사의 설명은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참여자들을 그 시절로 데려갔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벽난로도 볼 수 있었다. 통로로 이어진 간이 식당 아치형 창문을 통해 햇살이 비치며 바닥에 그림을 만들어낸다. 층고 높은 창의 디자인과 모양이 시대적 고유 개성을 담고 있다. 2층 간이 식당에서 1층 중앙홀 시계를 내려다 볼 수 있어 시간에 맞춰 기차를 타러 갈 수 있었다. 장시간의 대기와 여행 전 간이 식당의 추억은 역사가 된다. 음식 값이 다소 높았던 것은 좋은 위치에 창밖으로 보이는 기차 승강장의 풍경이 더해져 '기차역 속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공간' 값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 시절 사치로 보일 수 있는 이용자 부류들의 기차역 속 사교 생활도 엿볼 수 있었다. 역장실은 귀빈들을 맞이하기 위해 플랫폼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으며, 귀빈들의 출입문은 두 번의 문을 통과해 들어오도록 만들어졌다. 한 번 더 걸러서 출입할 수 있고 건물의 지붕 처마는 귀빈들이 비와 햇빛을 피해 바로 들어 올 수 있는 구조로 지어졌다. 이 모든 것은 기능과 위계를 고려한 건축이자 당시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6.25전쟁 당시 벽에 총탄자국을 보존해 놓아 건물 전체가 역사적인 흔적을 보존하고 있다.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기차 플랫폼으로 과거 사람들이 다니던 계단도 볼 수 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벽난로도 볼 수 있었다. 통로로 이어진 간이 식당 아치형 창문을 통해 햇살이 비치며 바닥에 그림을 만들어낸다. 층고 높은 창의 디자인과 모양이 시대적 고유 개성을 담고 있다. 2층 간이 식당에서 1층 중앙홀 시계를 내려다 볼 수 있어 시간에 맞춰 기차를 타러 갈 수 있었다. 장시간의 대기와 여행 전 간이 식당의 추억은 역사가 된다. 음식 값이 다소 높았던 것은 좋은 위치에 창밖으로 보이는 기차 승강장의 풍경이 더해져 '기차역 속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공간' 값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 시절 사치로 보일 수 있는 이용자 부류들의 기차역 속 사교 생활도 엿볼 수 있었다. 역장실은 귀빈들을 맞이하기 위해 플랫폼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으며, 귀빈들의 출입문은 두 번의 문을 통과해 들어오도록 만들어졌다. 한 번 더 걸러서 출입할 수 있고 건물의 지붕 처마는 귀빈들이 비와 햇빛을 피해 바로 들어 올 수 있는 구조로 지어졌다. 이 모든 것은 기능과 위계를 고려한 건축이자 당시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6.25전쟁 당시 벽에 총탄자국을 보존해 놓아 건물 전체가 역사적인 흔적을 보존하고 있다.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기차 플랫폼으로 과거 사람들이 다니던 계단도 볼 수 있다.
2층 복원전시실은 옛 서울역의 복원 전 과정과 주요 복원 공정이 전시되어 있다. 유로 화장실과 이발소로 나누어져 보존해 놓은 자료들은 건축 당시의 역사적 의미가 있다. 수많은 인력과 노동력이 깃든 옛 서울역의 흔적들은 그 시대상을 알 수 있게 사진과 설명을 붙여 상상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전시해 놓았다. 그 시대 서울역 이용자들이 교류하는 시간 공간의 생활상을 파악 할 수 있다.
서울역은 단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시간의 기준이다. 역 중앙에 설치된 파발마 시계는 서울역의 상징이다. 1925년 설치된 이 시계는 총 60개가 있었고, 1m 60cm 정도의 입구를 통해 출입하던 이들은 항상 이 시계를 마주했다. 한국전쟁 중에는 역무원들이 시계를 분해해 피난을 떠났고, 휴전 후에는 돌아와 다시 시계를 조립하며 서울역의 시간을 복원했다. 시계의 분침마저 직접 역무원들의 손길이 깃든 것이다. 멈추지 않게 시계를 소중히 여겼던 것은 전국 철도의 기준이었다. 경인철도를 통해 서구와의 외교 통상 루트가 형성되고 개항 이후 서울의 성장축이 되었다.
100년의 시간을 기념하며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난 문화역서울284는 넷플릭스 드라마 촬영지로도 사용되며 현대 문화와 과거의 역사를 만나는 접점의 공간이다. 경성역을 복원한 이곳 복합문화공간은 전시와 행사로 많은 시민들의 문화예술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마침 열리고 있는 미술전은 유럽의 미술관을 연상케 하는 품격 있는 고건축 문화 공간에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며 한국 철도 역사를 전문가의 해설을 통해 들으며 새로운 문화 체험을 하게 했다.
100년의 시간을 기념하며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난 문화역서울284는 넷플릭스 드라마 촬영지로도 사용되며 현대 문화와 과거의 역사를 만나는 접점의 공간이다. 경성역을 복원한 이곳 복합문화공간은 전시와 행사로 많은 시민들의 문화예술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마침 열리고 있는 미술전은 유럽의 미술관을 연상케 하는 품격 있는 고건축 문화 공간에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며 한국 철도 역사를 전문가의 해설을 통해 들으며 새로운 문화 체험을 하게 했다.
옛 서울역은 단지 기차를 타는 장소가 아니었다. 이곳은 해방과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만남과 이별 여행 이야기들이 모인 뿌리 같은 공간이다. 지금은 문화역서울284로 100년의 세월을 넘어, 이곳은 전시와 공연,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과거의 기억과 현대의 문화를 잇는 공간으로 새로운 시대를 향해 꽃을 피우고 있다. 철도역 광장에서의 학창 시절과 젊은 시절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이들은 추억을 맞이할 수 있는 체험이다. 건너편 복잡한 빌딩을 마주하고 있는 문화역서울284은 도심 속 답답함을 날려버리는 시원한 계절 추억을 만들 수 있는 독툭한 문화 체험이다. 현장 접수도 가능하니 여행 전 미리 와 기차를 기다리며 한번 둘러 보는 것을 추천한다.
문화역서울284
○ 위치 : 서울시 중구 통일로 1
○ 교통 : 지하철 1∙4호선 서울역 2번 출구, 경의중앙선 서울역 1번 출구
운영일시 : 화~일요일 11:00~19:00, 매주 월요일 정기휴관
○ 입장료 : 무료
○ 문화역서울284 누리집
☞ 공간 투어 신청 바로가기
○ 교통 : 지하철 1∙4호선 서울역 2번 출구, 경의중앙선 서울역 1번 출구
운영일시 : 화~일요일 11:00~19:00, 매주 월요일 정기휴관
○ 입장료 : 무료
○ 문화역서울284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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