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의 비밀, 알고 보면 공기 반 재료 반?

곽재식 교수

발행일 2025.07.30. 15:51

수정일 2025.07.30. 16:36

조회 3,186

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무더위를 잊게 만드는 아이스크림은 언제부터 먹은 음식일까?
무더위를 잊게 만드는 아이스크림은 언제부터 먹은 음식일까?

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36) 서울은 아이스크림의 도시

더운 날을 보내고 있을 때면 아이스크림만큼 훌륭한 음식도 없다. 그렇다면 아이스크림은 도대체 누가 언제부터 먹은 음식이었을까? 이야기를 좀 쉽게 풀어 가기 위해 일단 얼려 먹는 디저트 그러니까 빙과류 전체로 넓혀서 생각해 보자. 그러고 보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중동 지역에서 전쟁을 벌이던 시절에 높은 산에 쌓여 있던 눈을 퍼담아 와서 꿀과 같은 달콤한 재료와 섞은 음식을 만들도록 해서 먹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기는 하다.

혹시 한국사에서 빙과류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중국의 역사 기록 《삼국지》에는 고대의 부여 사람들이 장례식에 얼음을 사용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되어 있다. 또 역시 중국의 역사 기록인 《신당서》에는 신라에서 여름에 음식을 얼음 위에 올려 둔다는 풍습이 실려 있다. 중국인들이 기록을 남길 때 중국과 비슷한 풍습을 굳이 강조해서 써 두지는 않았을 테니 옛 중국인들이 보기에 상당히 놀라울 정도로 부여나 신라가 생활에 얼음을 활용하는 문화가 발달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구체적으로 얼음을 먹을 것으로 활용했다는 이야기에 조금 더 가까워 보이는 기록은 조선 시대에 나타난다. 일단 《조선왕조실록》의 1434년 음력 6월 11일 기록에는 조정에서 사람들에게 쇄빙(碎氷), 즉 깨부순 얼음을 주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조선 시대만 하더라도 겨울철 얼음을 석빙고 같은 지하 창고에 가득 저장해 두었다가 여름철까지 녹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을 여러 용도로 산업하던 문화가 잘 발달해 있었다. 그러니 생각하기에 따라서 1434년의 기록을 두고 얼음을 잘게 부수어서 마치 요즘의 빙수와도 비슷한 음식을 만들어 준 것으로 짐작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1434년이 깨부순 얼음이 맛있는 디저트를 목적으로 개발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때 얼음을 받은 사람들이 열병 환자들이었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조선에는 ‘활인원(活人院)’이라고 해서 일종의 국립 병원이 설립되어 있었는데 동쪽과 서쪽에 각각 동활인원과 서활인원이라고 하여 두 곳이 있었다. 각기 지금의 서울 혜화동 인근과 서소문 인근에 있었던 기관이다. 즉 이 때의 얼음은 디저트라기보다는 약이나 보양식에 가까웠다. 어쩌면 그렇게 받은 얼음을 그냥 얼음 찜질을 하는 용도로 쓰는 사람들이 있었을 수도 있다.
석빙고에 얼음을 옮기는 모습을 재현하는 행사
석빙고에 얼음을 옮기는 모습을 재현하는 행사

400년 전 허균이 쓴 '도문대작'에 등장한 '빙과'

확실히 디저트와 관계된 이야기라면 작가로도 유명한 조선 중기의 인물 허균이 남긴 기록이 있다. 허균은 귀양살이 중에 〈도문대작(屠門大嚼)〉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내용은 허균이 옛 생각을 하면서 고향 시절과 서울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하던 때에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떠오를 때마다 그 기억을 써서 정리해 둔 것이다. 그 당시의 허균으로서는 그저 쓸쓸한 마음을 달래 보려고 쓴 글이었겠지만 지금은 400여 년 전 조선의 음식 문화가 어떠했는지 살펴보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특히 높은 벼슬을 살았던 허균의 입맛에 맞는 음식이 주로 설명되어 있기에 평범한 음식보다는 맛있고 뛰어난 요리가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아 더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도문대작>이라는 글 맨 말미에 다양한 디저트와 과자들이 설명 되어 있고 그 중에 바로 “빙과”가 포함되어 있다. 요즘도 한과로 자주 먹는 산자를 언급하고 바로 다음에 써 둔 과자가 빙과다. 그러니까 400년 전의 허균이 서울에서 빙과류를 사 먹었을 거라는 이야기는 충분히 해 볼 만하다. 이 정도면 서울을 세계적인 빙과의 도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단, 이 빙과가 지금의 아이스크림처럼 복잡한 음식이었을 가능성은 낮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도문대작〉에서 허균이 빙과를 언급하면서 다른 아무 설명 없이 그저 빙과라는 이름만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균은 〈도문대작〉을 통해 수십 가지의 음식을 소개했는데 이런저런 짤막한 이야기를 덧붙여 놓곤 했다. 그러나 빙과에 대해서는 그런 설명이 전혀 없다. 그러니 아마도 빙과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만한 음식이었을 듯 싶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얼음과 상관없이 그냥 설탕 덩어리 같은 것을 이용해서 겉모양을 얼음처럼 만들어 놓은 과자일 수도 있고, 단순히 얼음에 물엿을 뿌려 놓은 정도의 음식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차갑게 먹으면 좋은 어떤 과자나 과일의 별명이었을 수도 있겠다.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빙과류를 즐기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다.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빙과류를 즐기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다.

길거리에서 판매 된 아이스께끼, 서울의 여름 풍경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빙과류를 즐기기 시작한 것은 역시 과학 기술이 급격히 발달한 20세기 중반 이후다. 이 시기 이후에 한국인들은 아이스크림의 주재료인 설탕, 우유, 얼음을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는 한국에서 자연 재배가 불가능하고 조선 시대 이전 한국에서는 우유를 마시는 문화도 그다지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아이스크림을 위한 기본 재료들이 풍부해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냉동 기술을 이용해 자유자재로 얼음을 만들고 음식을 얼린 채로 유통할 수 있게 되면서 한국의 빙과류는 빠르게 성장했다.

현대 한국 빙과류의 시초로 널리 이야기하곤 하는 것은 설탕물을 먹기 좋게 길쭉하게 얼려서 만든 ‘아이스께끼’라는 제품이다. 얼음으로 만든 케이크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인데 냉장고를 갖춰둔 동네의 가게에서 아침에 설탕물 얼린 것을 여럿 만들어 놓으면 그것을 행상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아이스께끼”라고 외치면서 판매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런 제품은 빙과류를 보관하기 위한 별도의 냉동 시설 없이 길거리에서 판매된다. 그렇기에 사람이 많은 곳을 돌며 빨리 판매되어야만 했고 그래서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인 서울 거리에서 특히 자주 볼 수 있는 제품이었다. 아이스께끼를 판매하는 행상들이 그 시절 가난한 어린이들이었다는 것도 한 시대를 상징한다고 할 만한 서울의 여름 풍경이었다.

설탕물을 얼린 것에 불과한 아이스께끼도 잘만 하면 괜찮은 빙과류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어는점 내림 혹은 빙점강하(freezing point depression)라고 부르는 화학 현상 덕택이다. 물은 얼어붙을 때 물끼리 서로 규칙적으로 연결되면서 단단히 굳게 된다. 그런데 만약 물이 순수한 물이 아니라 다른 물질이 녹아 있는 물이라면 그 다른 물질이 물끼리 규칙적으로 연결되는 현상을 방해한다. 그런 일이 생기면 평소보다는 더 심하게 낮은 온도로 온도가 내려가야만 물이 언다. 강물이 얼어붙을 때 바닷물은 잘 얼지 않는 것도 같은 원리다. 바로 이 현상을 어는점 내림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물에 설탕이 많이 녹아 있으면 평소보다 물이 잘 얼지 않는다. 그렇다는 말은 평소에 비해 언 얼음이 잘 녹고 약해진다는 뜻도 된다. 특히 설탕물을 얼리다 보면 물이 많은 부분은 먼저 얼어붙고 그러면 설탕이 얼음 사이에 끼어들기 어렵게 되다 보니 설탕이 점차 밀려나서 한 군데 몰리게 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는 점 내림 현상이 더욱 심하게 일어나 제대로 얼지 못하는 부분이 생겨날 수 있다. 주스나 음료수 따위를 얼리다 보면 바닥이나 한쪽 구석에 달콤한 성분이 특히 다 몰려 있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유사한 일이다. 이런 현상을 잘 활용하면 그런대로 덜 딱딱하고 먹는 질감이 독특한 아이스께끼를 만들어 내는 것도 가능하다.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다양한 종류의 아이스크림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다양한 종류의 아이스크림

대량 생산, 부드러운 질감 조절까지…빙과류 제조 기술의 발전

아이스께끼로 시작된 한국 빙과류가 큰 변화를 맞은 시점은 1962년이다. 이 해에 국내의 한 식품 기업에서 아이스께끼 대신 사 먹을 수 있는 대량 생산 제품을 판매한 것이다. 더 뛰어난 질감과 맛을 갖춘 제품을 개발해 더 체계적으로 유통한 이 빙과류는 대단히 큰 인기를 끌었다. 어찌나 인기가 좋았는지 이런 제품들이 계속 등장하면 소규모 아이스께끼 제조 업자들이나 아이스께끼 행상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걱정에 1960년대 국회에서 이 제품이 언급될 정도였다. 바로 이 제품의 상품명이 ‘하드’인데 그 당시의 인기 덕택에 지금까지도 흔히 빙과류를 먹고 싶을 때 “하드 하나 사 먹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이후 한국의 빙과류는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로 발전했다. 현대의 아이스크림 공장에서는 물, 설탕과 우유 지방을 섞어서 질감을 조절할 뿐만 아니라 제품을 얼리면서 공기를 불어 넣어 섞는 독특한 기술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아이스크림을 만들면 공기 덕택에 아이스크림 질감이 훨씬 부드러워진다.

불어 넣은 공기의 양이 나머지 아이스크림 재료의 양에 비해 얼마나 되느냐를 흔히 오버런(over run)이라고 부르는데 오버런 100%라면 공기의 양이 아이스크림에 있는 나머지 다른 재료와 같다는 뜻이다.

실제로 오버런 80% 정도의 아이스크림은 시중에서도 접할 수 있다고 한다. 종종 독특한 가요 창법을 소리 반 공기 반이라고 부를 때가 있는데, 아이스크림이야 말로 재료 반 공기 반으로 만드는 셈이다. 그 외에도 대단히 긴 시간 동안 유통될 수 있는 빙과류 제품의 특성상 오래 보관했을 때 문제가 없도록 세균, 곰팡이 따위에 노출되지 않게 최대한 위생적인 살균 환경을 유지하는 일도 현대 아이스크림 공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이다. 한국 빙과류 업체들은 이 모든 기술들을 꾸준히 향상시켜 왔다.

그리고 1960년대 이후 주요 빙과류 공장과 제과 공장들이 바로 서울 영등포구에 건설되었다. 그리고 이 업체들은 이 모든 기술을 총동원해 전 국민의 여름 나기를 도왔다. 특히 지금의 선유도역 인근인 양평2동 지역에서는 국내 제과 업계의 대표 라이벌 대기업인 두 회사의 공장이 나란히 자리 잡고 긴 세월 가동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곳은 한동안 한국 과자의 성지라고 할 만한 곳이었다. 비록 21세기 이후 두 회사 모두 생산 시설의 많은 부분을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키기는 했다. 그래서 매년 수천만, 수억에 달하는 과자와 아이스크림들을 산더미처럼 만들어 내던 그 전성기의 모습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아직도 잘 찾아보면 여전히 영등포에는 과자 공장과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곳들이 있다.
1960년대 양평동 공장 지대(해태제과) (출처:영등포 근대 100년사)
1960년대 양평동 공장 지대(해태제과) (출처:영등포 근대 100년사)
근래에는 세계 각지로 수출되는 한국 빙과류의 양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서 경제계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의 관세청 통계를 보면 2025년 6월까지 이미 한국 빙과류 해외 수출액은 6,814만 달러를 돌파했고 연말까지 1억 달러 돌파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나는 이런 실적을 달성한 이유로 한국 가요, 영화, 게임 같은 한국 문화가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한국 식생활이 호감을 얻었다는 점과 함께 치열한 국내 경쟁을 통해 그동안 다양한 제품 개발이 있었다는 점을 꼽아 본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그 독특한 한국 아이스크림의 뿌리는 영등포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노력과 그 옛날 여름 서울 거리에서 아이스께끼를 팔러 다니던 어린이들의 고생에 있다고도 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옛 모습이 갈수록 사라져 가고 있지만 영등포의 옛 공장 터와 그 인근 어귀에 한국 아이스크림 산업을 기념할 수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나 디저트 가게 같은 곳들을 한곳에 모여 있도록 해 두고 오 가는 사람들마다 관심을 갖고 찾을 수 있도록 해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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