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통명전에 귀신이 있다? 궁궐 이야기 따라 역사 모험
발행일 2025.07.23. 14:35
역사적 사실과 전설, 다양한 이야기가 공존하는 K-콘텐츠의 보고, 창경궁 ©양정화
실록에 기록된 창경궁 통명전 귀신 소동
창경궁 통명전은 조선 제18대 임금 현종의 어머니인 인선왕후가 거처하던 전각으로, 궁궐 내에서도 유독 고요하고 기품 있는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666년 봄, 이 평온한 공간에 기이한 현상이 잇따랐다. 궁녀들의 머리카락이 잘리고 옷에 불이 붙으며 돌덩이가 날아오는 등 이상한 소문이 돌자, 현종은 통명전에 음기가 맺혀 요사스러운 재앙이 생긴 것 같다며 인선왕후를 경희궁으로 옮기게 했다. 이후에도 통명전 괴담은 연산군 시절 폐비 윤씨 관련 후궁들의 한 때문이라는 소문과 함께 끊이지 않았다. 이는 <조선왕조실록> 현종 7년(1666년) 5월 16일 기록에도 언급된 내용이다.
이처럼 서울의 고궁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실제 역사와 인물 그리고 전설이 살아 숨 쉬는 장소다. 통명전의 ‘귀신 소동’ 이야기처럼 고궁의 이야기는 현대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신비로운 이야기로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1666년 봄, 이 평온한 공간에 기이한 현상이 잇따랐다. 궁녀들의 머리카락이 잘리고 옷에 불이 붙으며 돌덩이가 날아오는 등 이상한 소문이 돌자, 현종은 통명전에 음기가 맺혀 요사스러운 재앙이 생긴 것 같다며 인선왕후를 경희궁으로 옮기게 했다. 이후에도 통명전 괴담은 연산군 시절 폐비 윤씨 관련 후궁들의 한 때문이라는 소문과 함께 끊이지 않았다. 이는 <조선왕조실록> 현종 7년(1666년) 5월 16일 기록에도 언급된 내용이다.
이처럼 서울의 고궁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실제 역사와 인물 그리고 전설이 살아 숨 쉬는 장소다. 통명전의 ‘귀신 소동’ 이야기처럼 고궁의 이야기는 현대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신비로운 이야기로 회자되고 있다.

창경궁의 정문인 명정문을 지나 궁 안으로 들어서는 관람객들 ©양정화

일월오봉도 병풍과 어좌가 놓인 명정전 내부는 왕실 권위가 느껴지는 곳이다. ©양정화

명정전 꽃살무늬 창 뒤로 아스라이 행각이 보인다. ©양정화

벽사와 길상 의미를 담은 창경궁 꽃살문 ©양정화

정교한 색감의 단청으로 장식된 홍화문 처마에서 전통미와 장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양정화

날개를 활짝 펼친 두 마리 봉황 문양이 새겨진 명정전 계단 답도 ©양정화
왕실 여성의 권위를 기린 ‘효(孝)의 궁궐’
창경궁은 조선 왕실이 중시한 ‘효’와 여성 권위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1483년, 성종은 어머니와 할머니를 모시기 위해 기존 수강궁을 확장하고 ‘창경궁’이라 명명했다. 이는 당시 왕실이 여성 어른들의 존재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창경궁은 ‘왕비의 궁궐’이라 불리며 조선 궁중 문화의 위계질서를 반영한다.

창경궁의 돌다리인 옥천교 너머로 정면의 명정문이 보인다. ©양정화

명정전 앞 조정 마당에 품계석이 놓여 있고, 중앙에는 박석이 깔린 길이 곧게 뻗어 있다. ©양정화
조선 후기, 정치와 일상의 중심 무대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타 폐허가 되자, 창경궁은 창덕궁과 함께 왕실의 주 궁궐로 기능하며 ‘동궐’로 불렸다. 이곳에서는 임금의 즉위식, 세자 책봉, 외국 사신 접견 등 주요 국가 의례가 치러졌고, 왕의 일상과 정치가 어우러진 중요한 무대였다. 특히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둔 비극과 정조의 붕어 같은 역사적 사건은 창경궁 공간에 깊이 각인돼 있다.
일제강점기의 수난과 문화 침탈의 상징
창경궁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큰 상처를 입는다. 일본은 궁궐의 위엄을 의도적으로 훼손하고자 이곳을 ‘창경원’이라 부르며 동물원·식물원·박물관을 설치해 오락 시설로 전락시켰다. 벚나무를 대량으로 심고 전각을 철거해 궁궐 본연의 모습을 지웠다. 이는 단순한 시설 변화가 아니라 조선 왕실의 권위와 민족 문화를 조직적으로 파괴한 대표적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붉은색 기둥과 검은 기와지붕이 조화를 이루는 전각 ‘양화당’ ©양정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인 창경궁 대온실 ©양정화

1909년 건립, 복원 후 국내 식물 전시 중인 창경궁 대온실 ©양정화
복원의 길, 고통과 회복의 문화유산
광복 이후 창경궁은 다시 제 모습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1983년 동물원과 식물원이 철거되고, ‘창경원’이라는 명칭도 본래의 ‘창경궁’으로 환원되었다. 현재까지 일부만 복원되었지만, 창경궁은 조선 궁궐의 건축 양식과 왕실 생활상,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함께 간직한 상징적 문화유산으로 자리하고 있다.

넓은 마당 한편에 자리한 육각 정자 ‘함인정’과 그 뒤편에 보이는 경춘전과 환경전 ©양정화

석축 계단식 화단 위로 창덕궁과 연결된 궁궐 담장이 이어져 있다. ©양정화
공간 구성 의미와 건축미의 유산
창경궁은 창덕궁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어 ‘동궐’이라 불렸으며, 궁중 생활과 보조 궁궐 기능을 함께 수행했다. 이 중에서도 ‘명정전’은 조선 왕궁의 정전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국가적 의례가 거행되던 중심 공간이다. 궁 전체는 자연 지형을 따라 배치된 점에서 조선 궁궐의 건축 철학을 잘 보여주며, 방문객들에게 공간적 깊이를 선사한다.

명정전 앞마당을 배경으로 전통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남성과 여성이 나란히 걷고 있다. ©양정화

창경궁의 전각 복도 아래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이 아이를 안고 사진을 찍고 있다. ©양정화
K-콘텐츠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보고, 창경궁
창경궁은 과거 왕실의 실제 생활 무대였을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이야기와 전설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각 전각마다 깃든 사연은 현대 대중문화 콘텐츠의 원천이 되며, 드라마·영화·전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창작의 영감을 주고 있다. 창경궁은 더 이상 과거의 유물에 머물지 않고, K-콘텐츠 시대의 문화 보고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창경궁 앞에 설치된 무인 자동 입장 시스템 ©양정화

창경궁 정문 홍화문 우측에 위치한 티켓 부스와 무인 발권 키오스크 ©양정화

창경궁 모바일 리플릿 안내 보드로 한국어, 영어 등으로 구성된 QR코드가 정렬되어 있다. ©양정화
교통도 입장도 간편하게, 똑똑하게 즐기는 창경궁
창경궁은 대중교통으로도 접근이 매우 편리하다. 또한 최근에는 무인 자동 입장 시스템이 도입되어 매표소 대기 없이 교통카드나 신용카드를 단말기에 태그하면 바로 입장할 수 있어 관람 편의성이 크게 향상됐다. 종이 티켓 없이도 QR코드 인증으로 바로 입장이 가능하며, 특히 주말이나 공휴일처럼 관람객이 많은 날에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역사적 의미와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어우러진 창경궁은 도심 속에서 고궁 산책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다. 보다 여유로운 관람을 원한다면 평일 오전 시간대 방문을 추천한다.
역사적 의미와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어우러진 창경궁은 도심 속에서 고궁 산책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다. 보다 여유로운 관람을 원한다면 평일 오전 시간대 방문을 추천한다.
창경궁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 운영시간 : 화~일요일 09:00~21:00, 마감 1시간 전까지 입장
○ 휴무 : 월요일(휴무일이 공휴일과 겹칠 경우는 다음 날 휴무)
○ 입장료 : 대인(만 25세~만 64세) 1,000원
○ 궁능유적본부 누리집
○ 운영시간 : 화~일요일 09:00~21:00, 마감 1시간 전까지 입장
○ 휴무 : 월요일(휴무일이 공휴일과 겹칠 경우는 다음 날 휴무)
○ 입장료 : 대인(만 25세~만 64세) 1,000원
○ 궁능유적본부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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