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닐다, 서촌 골목에서 만난 서울의 진짜 얼굴

시민기자 이상돈

발행일 2025.06.12. 10:05

수정일 2025.06.12. 19:31

조회 5,444

서촌마을관리소 개소, 그리고 골목 너머로 피어나는 이야기들
그 옛날 선비들이 붓을 들고 오갔던 서촌골목길이 방문객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한 광경 ©이상돈
서촌골목길이 방문객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하다. ©이상돈
서울의 한복판, 경복궁 서쪽에 기대어 자리한 서촌(西村), 수백 년 전 선비들이 붓을 들고 오갔던 골목은 이제, 묵은 숨결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덧그리며 살아 숨쉬고 있다. 이곳은 지금, 서울에서 가장 ‘서울다운’ 마을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서촌마을의 전통을 잇고, 이웃과 소통하는 장소인 '서촌마을관리소' 모습 ©이상돈
서촌마을의 전통을 잇고, 주민과 소통하는 '서촌마을관리소' 모습 ©이상돈
소장과 직원들이 상주하는 '서초마을관리소' 내부 모습 ©이상돈
소장과 직원들이 상주하는 '서초마을관리소' 내부 정경 ©이상돈

문화공유소 '서촌마을관리소' 오픈

지난 4월 '서촌마을관리소'가 문을 열었다. 누하동 필운대로 길가에 한옥 두 채를 잇대어 만든 아담한 공간이다. 이곳은 단순한 행정 공간이 아니다. 마을을 기억하고, 전통을 잇고, 이웃이 얼굴을 마주하는 살아있는 문화공유소다. "서촌은 그냥 마을이 아니라, 시간이 고여 있는 우물 같은 곳이에요. 매일 걷지만, 매번 다른 얼굴을 만납니다." 오명렬 서촌마을 관리소장의 말이다.

이곳에서는 ▴ 한옥의 보수와 유지 관리 지원, ▴한옥 공구 무료 대여, ▴ 주민 대상 한옥 생활 교육, ▴ 예술가와의 협업 프로그램 등 서촌의 전통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실질적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전통은 그냥 두면 사라져요. 손으로 지키고, 마음으로 이어야 해요.” 관리소를 지키는 사람들의 손에는 흙먼지가 묻고, 눈빛에는 나라사랑의 진심이 어려 있다.
외국인도 반한 서촌마을의 한옥 모습 ©이상돈
외국인도 반한 서촌마을의 한옥 모습 ©이상돈

외국인도 반한 ‘진짜 한국’

최근 서촌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외국인 여행객들이 부쩍 늘었다. 북촌이 정갈한 옛 양반의 기품을 지녔다면, 서촌은 우리네 생활의 숨결이 살아있는 서민의 골목이다. “여기선 시대가 공존하는 서울의 하루를 온전히 느낄 수 있어요. 무엇보다 한옥의 아름다움에 매료됩니다.” 프랑스에서 온 여행객 사라 씨의 소감이다. 한옥 기와 위로 전깃줄이 걸리고, 담벼락 아래에는 장독대가 숨 쉰다. 그 이질적 공존이 오히려 따뜻하고, 그 낡은 풍경이 더할 나위 없이 ‘서울’스럽다.
서촌 골목길에서 감성적인 모습으로 영업 중인 카페의 모습 ©이상돈
서촌 골목길에서 감성적인 모습으로 영업 중인 카페 ©이상돈
서촌마을 내에 있는 먹거리가 풍성한 '음식 문화거리' 들머리 ©이상돈
서촌마을 내에 있는 먹거리가 풍성한 '음식 문화거리' 들머리 ©이상돈

골목 속 보물 찾기, 맛집 & 감성 카페

서촌의 또 다른 매력은 숨은 맛집과 카페들이다. 유난히 조용한 골목 안쪽, 허름한 대문을 열면 고수의 손맛이 반긴다. 우연히 들어간 한식집이 20년 단골이 되고, 햇살 좋은 날 들른 카페가 평생 기억에 남는다. “서촌은 지도가 필요 없는 동네에요. 그냥 걸으세요. 그럼, 어김없이 발견하게 돼요.” 서촌에서 만난 커플의 말이다.
서촌의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만나는, 지역 예술가의 숨결을 품고 있는  종로구립 '박해수미술관'의 정경©이상돈
지역 예술가의 숨결을 품고 있는, 종로구립 '박해수미술관' ©이상돈
1950년대 문을 연, 오랜 시간을 지키고 잇는 '대오서점' ©이상돈
1950년대 문을 연, 오랜 시간을 지키고 잇는 '대오서점' ©이상돈
민족시인 '윤동주'가 젊은 시절 머물렀던 '윤동주 하숙집터' ©이상돈
민족시인 '윤동주'가 젊은 시절 머물렀던 '윤동주 하숙집터' ©이상돈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서촌 골목길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서촌의 골목길을 걷는다. 낮은 담벼락 위로 담쟁이넝쿨이 조용히 번지고, 담장 너머로 오래된 기와지붕들이 고개를 내민다.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종로구립 ‘박해수미술관’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한옥과 현대 건축이 조화를 이루는 이 공간은 지역 예술가의 숨결을 품고 있는 작은 갤러리다. 그 맞은편에는 오랜 세월 책과 함께해온 ‘대오서점’이 자리 잡고 있다. 1950년대에 문을 연 이곳은 단순한 서점을 넘어, 세월을 머금은 기억의 장소로 남아 있다.

길가에는 민족시인 윤동주가 머물렀던 하숙집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그가 이 골목길을 오가던 젊은 날의 풍경을 상기시키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골목은 단순한 길이 아니다. 예술과 문학, 시간이 나란히 흐르며, 걷는 이의 마음 깊은 곳을 조용히 두드린다.
서촌 골목길의 끝자락, 인왕산 오름길에 있는 '수성동 계곡' ©이상돈
서촌 골목길의 끝자락, 인왕산 오름길에 있는 '수성동 계곡' ©이상돈
'윤동주문학관' 위 '시인의 언덕'에 있는 윤동주의 <서시>가 새겨진 시비 ©이상돈
'윤동주문학관' 위 '시인의 언덕'에 있는 윤동주의 <서시>가 새겨진 시비 ©이상돈

'시인의 언덕'으로 이어지는 자연 산책

조금 더 걸으면 시멘트 바닥은 어느덧 흙으로 바뀌고, 수성동 계곡의 물소리가 고요한 숲속의 숨결처럼 들려온다. 인왕산 자락은 병풍처럼 펼쳐져 산책자의 눈을 감싼다. 인왕산 자락을 한 발, 또 한 발 걷다보면, 그 길 끝에는 '윤동주문학관''시인의 언덕 '위에 윤동주의 <서시>가 새겨진 시비가 기다린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시인의 목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온다. 이 언덕은 그저 풍경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의 무언가를 일깨우는 조용한 성소다.
서촌마을에서 인왕산 자락길을 걸으며 바라본, 남산이 조망되는 수도 서울의 정경 ©이상돈
서촌마을에서 인왕산 자락길을 걸으며 바라본, 남산이 조망되는 수도 서울의 정경 ©이상돈
지금, 걷기 좋은 계절의 인왕산 자락은 걷는 이의 마음까지 품어준다. 서촌에서 시작된 이 길은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시와 자연, 그리고 시간과 마주하는 여정이다. 천천히 걷고 싶은 날, 서촌으로 서촌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오래된 만큼 단단하고, 낡은 듯 따뜻하다. 마을마다 저마다의 속도로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이어주는 골목이 있다. 서촌마을 관리소는 그 골목의 시작점이다. 오늘 당신이 누하동을 걷는다면, 그 문을 살며시 열어보라. 자신도 모르게, 서촌의 시간이 당신의 발끝에 내려앉을 것이다.

서촌 골목 산책 코스 추천

○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는 하루'를 위한 코스 : 경복궁역 2번 출구 → 효자동 통인시장 → 서촌마을 관리소 → 윤동주 하숙집터 → 수성동계곡 → 시인의 언덕
○ 먹거리 : 통인시장에서 현지인이 추천하는 ‘기름떡볶이’ 한 접시와 도시락 카페에서 원하는 반찬을 담아 골목 의자에 앉아 먹는 맛도 별미!

서촌마을관리소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필운대로 45
○ 운영일시 : 화~금요일 10:00~18:00, 토요일은 프로그램 운영
○ 휴무일 : 매주 월요일

시민기자 이상돈

밝고 긍정적인 서울 토박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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