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동·박노수 두 화백의 집에 초대받은 듯…고즈넉한 미술관 나들이

시민기자 이종빈

발행일 2025.02.27. 15:06

수정일 2025.02.27. 15:06

조회 2,662

고즈넉한 개량 한옥의 멋을 느낄 수 있는 종로구립 고희동미술관 ©이종빈
고즈넉한 개량 한옥의 멋을 느낄 수 있는 종로구립 고희동미술관 ©이종빈
우리나라에는 오랫동안 지켜온 전통 문화재들이 참 많다. 그러나 대중화된 관광 문화재는 조선시대와 그 이전에 건축된 문화재가 대부분이다. 역사적 가치를 전달하고 전통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근대의 역사를 빼놓고 본다면, 현재와 과거는 시공간이 뚝 끊겨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느껴짐에도 말이다.

지난 2월 25일, 서울 한복판인 종로에서 근대 전통 가옥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두 개의 근대 건축물인 종로구립 고희동미술관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을 방문했다.

이 두 곳은 ‘고희동’과 ‘박노수’라는 두 명의 화가와 함께 서로 다른 분위기의 근대 건축물을 함께 만나볼 수 있는 장소였다. 경복궁을 중앙에 두고 마음의 평온함을 얻기 좋았던 장소, 종로문화재단에서 운영중인 고희동미술관과 박노수미술관에서의 소중했던 시간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소박한 감성의 가옥, 근대 미술 역사를 간직한 '고희동미술관'

종로구 창덕궁5길에 있는 고희동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은 정신없고 시끄러운 현대에서 잠시 벗어나는 여정과도 같았다. 창덕궁 정문 돈화문 서쪽 돌담길을 따라서 미술품과 전시가 함께 공존하는 원서동으로 들어섰다.

고희동미술관으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 6번 출구에서 창경궁 금호문(창덕궁종합관람지원센터)을 따라 위로 직진하거나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로 나와 도보 14분 정도 걸으면 된다. 창덕궁의 옆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고희동미술관의 포스터가 설치되어 있는 담장을 발견할 수 있다.
켜켜이 쌓인 붉은 벽돌로 담장을 두른 외벽이 인상적인 고희동미술관 ©이종빈
켜켜이 쌓인 붉은 벽돌로 담장을 두른 외벽이 인상적인 고희동미술관 ©이종빈
이 담장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고희동 화백직접 설계하고 시민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고택인 고희동미술관의 마당으로 입장할 수 있다. 가옥 앞으로 넓게 펼쳐진 마당과 정원은 겨울임에도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주변에 다소 높게 지어진 빌딩들과 옆으로 보이는 북악산의 끝자락은 자연과 사람을 늘 가까이하고 사랑하고자 하는 고희동 화백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고희동미술관의 마당에서 바라본 고희동 화백의 고택 ©이종빈
고희동미술관의 마당에서 바라본 고희동 화백의 고택 ©이종빈
고희동미술관으로 운영 중인 고희동 화백의 고택은 1918년, 그가 직접 설계하고 거주한 근대식 한옥이다. 전통 한옥의 양식과 일본 가옥의 절충을 통해 가옥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전에 서양과 일본에서 유학했던 경험으로 나온 자연스러운 결과다.

덕분에 가옥 안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는 전통 한옥과는 사뭇 다르다. 가장 특징적으로 구분되는 점은 채와 채 사이, 현대식으로 표현하자면 방과 방 사이를 쉽게 오갈 수 있는 좁은 복도를 설치했다는 점이다. 이 복도에는 전통 양식의 큰 창을 설치해 가옥의 안쪽인 ‘중정’의 전경을 사방에서 볼 수 있도록 했다. 외부와 내부를 분리하는 동시에 전통 한옥의 개방감을 잃지 않는 융합을 확인할 수 있다.

관람객으로 방문하게 된다면 가옥의 현관으로 들어가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다음, 자료실에서 직원의 안내를 받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이 미술관은 먼저, 자료실에서 가옥과 고희동 화백에 대한 소개를 천천히 읽어본 후, 복도를 따라 제1전시실부터 제3전시실까지 관람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전시실은 가옥의 공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작품만을 감상하는 것에서 벗어나 공간 자체를 함께 체화할 수 있다.
전통 한옥에서 볼 수 없었던 특별한 감각의 구조가 특징인 가옥 내부 복도 ©이종빈
전통 한옥에서 볼 수 없었던 특별한 감각의 구조가 특징인 가옥 내부 복도 ©이종빈
복도뿐 아니라 창밖의 중정도 바라다보여 답답하지 않다. ©이종빈
복도뿐 아니라 창밖의 중정도 바라다보여 답답하지 않다. ©이종빈
고희동 화백이 그린 자화상, 화조도(꽃과 새가 담긴 그림), 자연을 담은 작품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그의 자화상은 현재 일본 도쿄예술대학과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어 고희동미술관에서는 복제품으로 전시 중이다. 복제품의 품질이 훌륭하여 그의 작가 정신을 감상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특히 고희동 화백의 졸업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특히 그의 작품에서는 차분한 톤의 청색 그리고 분홍색과 다홍색이 주로 사용된 점이 눈에 띄는 특징이다. 전통적인 동양화에서 잘 사용되지 않던 색상의 조화는 그가 유학 시절 끊임없이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제된 그만의 색조 어법으로 보인다. 또 그림의 층을 분리하여 겹쳐 보이게 그리는 레이어 기법과 사물의 크기를 사실적으로 크거나 작게 그리는 방법을 통해 원근감을 표현한 점도 그의 유학 시절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단지 이전에 화가들이 그리던 화풍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닌 고희동 화백의 개인적인 경험과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예술 세계를 이 미술관에서 느낄 수 있었다.
고희동 화백의 일대기를 담은 설치물로 병풍의 형상을 본딴 것이 흥미롭다. ©이종빈
고희동 화백의 일대기를 담은 설치물로 병풍의 형상을 본딴 것이 흥미롭다. ©이종빈
고희동 화백의 작가 정신과 일대기를 알기 쉽게 정리해 둔 설치물은 주목할 만하다. 단지 백과사전처럼 서술한 것이 아니라, 사진과 관련 작품들을 함께 정리하여 변화하는 당시의 시대상과 작가 정신을 함께 이해할 수 있었다. 작품의 심미적인 특성을 그대로 보고 느끼는 과정도 좋지만 작가의 삶을 알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작품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와 감상을 얻어갈 수 있다.
화실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AI 전시관으로 현대 기술과 가옥의 조화가 아름답다. ©이종빈
화실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AI 전시관으로 현대 기술과 가옥의 조화가 아름답다. ©이종빈
사랑방은 배지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관으로 운영(유료)하고 있다. ©이종빈
사랑방은 배지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관으로 운영(유료)하고 있다. ©이종빈
사랑방 배지 만들기 체험에 관한 안내문 ©이종빈
사랑방 배지 만들기 체험에 관한 안내문 ©이종빈
전시관에서 나와 자료실의 반대편으로 향하면, 가옥의 화실에는 AI 기술을 통해 관람객들이 직접 고희동 화백의 자화상이 되어볼 수 있는 체험관이 설치되어 있다. 꼭 이젤 위에 캔버스를 얹은 듯한 디자인은 이 화실의 공간과 잘 어울리게 설계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관람객은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화면 옆에 놓인 작은 디스플레이를 통해 세 개의 자화상을 생성할 수 있다. 작동하는 방법이 어렵다면 직원에게 문의하여 기기를 작동하는 것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생성된 자화상은 자신의 얼굴을 똑 닮았기 때문에 화실 안에서는 웃음이 가득했다.

또한 사랑방에서는 관람객들이 직접 나만의 배지손거울을 만들어 소장할 수 있는 체험관이 준비되어 있다. 이 공간에서 체험하는 것은 직원에게 문의하여 진행할 수 있는데, 이용료는 개당 1,000원으로 다소 저렴한 편이다. 아트 수첩을 1개 포함하더라도 3,500원이니 부담 없이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체험은 전용 압축 제작 기계를 사용해야 하므로 특히 관람객이 임의로 조작하면 위험하다는 것을 주의하고 꼭 직원을 통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희동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고희동 화백의 동상 ©이종빈
고희동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고희동 화백의 동상 ©이종빈

'박노수미술관'의 감성적인 건축 구조와 여백의 미

경복궁의 서쪽에 위치한 박노수미술관은 종로의 골목길로 들어가야 하므로 길을 찾는 데 힘들 수 있다. 박노수미술관은 통인시장의 후문으로 향하는 '종로09번' 버스의 종착지인 박노수미술관 역을 따라가면 좀 더 수월하게 길을 찾을 수 있다. 다행히 박노수미술관의 입구에는 다양한 안내 표지판을 설치해 두었으니, 근처에서 헤맬 걱정은 없을 것이다.
박노수미술관은 유료로 운영되고 있다. ©이종빈
박노수미술관은 유료로 운영되고 있다. ©이종빈
화백이 40여 년간 거주하던 가옥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박노수미술관 ©이종빈
화백이 40여 년간 거주하던 가옥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박노수미술관 ©이종빈
박노수미술관의 관람료는 유료이다. 성인 3,000원, 청소년 1,800원, 어린이 1,200원으로 운영 중이며, 종로구민과 한복 착용자, 단체 관람객의 경우 관람료를 할인해 준다. 저렴한 관람료로 작품과 가옥, 야외 전시까지 모두 관람할 수 있으니 크게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다.

다만, 입장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오래된 가옥을 그대로 보존하여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가옥 내부의 시설에 접촉하거나 걸음을 걷는 데 좀 더 유의하는 것이 좋다. 각 방의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대화하거나 이동하는 데에도 서로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가옥의 내부는 미디어 전시를 제외하고 촬영할 수 없도록 안내하고 있다.

박노수미술관은 고희동미술관처럼 근대 가옥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바닥은 나무로 된 마루로 되어 있어 슬리퍼를 신고 걸으면 살짝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 은근한 향수와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이 가옥은 2층으로 되어 있어 가옥 내부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다.

박노수 화백의 작품이 전시된 1층과 다르게 2층에는 현대적인 재해석이 가미된 미디어 작품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특히 다락방에서는 가옥에 대한 내용을 담은 동영상을 전시하고 있는데, 이 다락방에 앉아 있으면 더욱 아늑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가옥의 뒤뜰에는 산책로를 따라 다양한 수석과 박노수 화백의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이종빈
가옥의 뒤뜰에는 산책로를 따라 다양한 수석과 박노수 화백의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이종빈
박노수 화백의 작품전경, 중경, 배경이 분리되어 있다. 다소 눈에 띄는 강렬한 색채의 전경은 주로 넓은 들판이나 나무, 바위 등이 그려져 있으며, 배경에는 다른 색감의 산과 자연을 그려 전경과 분리되도록 그린 특징이 있다. 그러나 박노수 화백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중경인 강과 자연을 여백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흔히 ‘여백의 미’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전통화의 특징을 이 전시에서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간결하게 표현한 붓 터치현대적 해석을 함께 감상하면 다른 장소에서는 볼 수 없는 박노수미술관만의 전시를 볼 수 있다.
박노수미술관의 뒤뜰에 설치된 박노수 화백의 동상 ©이종빈
박노수미술관의 뒤뜰에 설치된 박노수 화백의 동상 ©이종빈
사진 왼쪽에 보이는 돌계단을 통해 언덕으로 올라갈 수 있다. ©이종빈
사진 왼쪽에 보이는 돌계단을 통해 언덕으로 올라갈 수 있다. ©이종빈
박노수미술관에서는 가옥 내부에서 전시를 관람하고 난 뒤, 가옥 외부의 뒤뜰로 시작되는 산책로를 천천히 걸어보기 추천한다. 퇴장 시 직원을 통해 안내를 받을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건물의 외부를 한 바퀴 돌아 구경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정원에는 다양한 수석과 박노수 화백의 동상을 볼 수 있고, 당시 이 가옥에서 생활했던 박노수 화백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이 가옥은 내부만큼이나 외부도 특별한 감각으로 디자인되어 있어 건물의 건축양식을 살펴보며 심미적인 외관을 함께 감상하는 과정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가옥 뒤 언덕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산책로가 인상적이다. 그리 높진 않지만 자연 속에서 넓은 종로의 모습과 박노수미술관의 전경을 위에서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점이 특이하다. 탁 트인 언덕에서 잠시 숨을 깊게 쉬면서 여유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미술관이 함께 있는 언덕 위 벤치에 앉아 있으면 잠시라도 안정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 돌계단으로 올라가는 동안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느낌을 받는다. ©이종빈
    돌계단으로 올라가는 동안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느낌을 받는다. ©이종빈
  • 언덕으로 올라가면 미술관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이종빈
    언덕으로 올라가면 미술관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이종빈
  • 자연과 탁 트인 배경, 미술관이 함께 있는 이 장소는 마음의 안정을 준다. ©이종빈
    자연과 탁 트인 배경, 미술관이 함께 있는 이 장소는 마음의 안정을 준다. ©이종빈
  • 돌계단으로 올라가는 동안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느낌을 받는다. ©이종빈
  • 언덕으로 올라가면 미술관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이종빈
  • 자연과 탁 트인 배경, 미술관이 함께 있는 이 장소는 마음의 안정을 준다. ©이종빈
두 화백의 가옥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화백에 대해 깊게 공부하고 작품을 이해하려 애를 쓰는 것이 아니라, 두 화백의 집으로 초대 받은 것처럼 편한 마음으로 부담 없이 방문해 보자.

종로에는 골목길의 구석구석 흥미로운 소품 가게와 카페, 제과점, 갤러리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어 좋은 사람 또는 좋은 음악과 함께 방문하기도 좋은 장소다. 이번 방문을 통해 느꼈던 모든 긍정적인 감각들을 많은 시민들이 함께 느껴봤으면 좋겠다.

종로구립 고희동미술관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창덕궁5길 40
○ 교통 :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 6번 출구에서 창경궁 금호문(창덕궁종합관람지원센터)을 따라 위로 직진 또는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에서 907m
○ 운영시간 : 화~일요일 10:00~18:00(관람 종료 30분 전까지 입장 가능)
○ 휴무 :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당일
○ 입장료 : 무료
종로문화재단 누리집
○ 문의 : 02-741-8424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옥인1길 34
○ 교통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853m
○ 운영시간 : 화~일요일 10:00~18:00
○ 휴무 :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당일
○ 입장료 : 어른 3,000원, 청소년 1,800원 어린이 1,200원
종로문화재단 누리집
○ 문의 : 02-2148-4171

시민기자 이종빈

더욱 많은 서울 시민들과 함께할 다양한 축제와 문화행사를 취재하는 서울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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