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주인공! 마을극장 '흰고무신'에서 펼쳐진 감동의 연극제

시민기자 강사랑

발행일 2024.11.14. 09:26

수정일 2024.11.14. 20:04

조회 12

시니어 연극팀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강사랑
시니어 연극팀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강사랑
지난 10월 26일, 서울 도봉구 방학 2동에 위치한 마을극장 흰고무신이 활기로 가득 찼다. 매년 열리는 행사인 ‘수안 연극제’가 시민들의 참여 속에 성황리에 개최된 것이다. ‘우리, 함께, 모두’라는 주제로 열렸으며 일반적인 연극제와 달리, 이곳에선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없었다. 일흔살에 가까운 최고령 배우부터 일곱 살 꼬마 배우까지, 무대에 선 이들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연기하는 동안만큼은 제가 20대로 돌아간 것 같아요.” 시니어 연극팀은 공연을 마친 후 담담한 목소리로 소감을 전했다. 이들이 선보인 연극은 과거의 한 장면이거나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었다. 때론 그리움과 아련함이 묻어나는 그들의 연기에 관객들은 숨죽여 몰입했다.

이어서 무대에 오른 어린이 연극팀은 활기찬 에너지를 발산했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라는 제목의 작품은, 팬데믹 시대를 겪은 아이들의 내면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포착했다. “방구석에만 있으라고 해서 정말 싫었어요. 근데 상상하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걸 알았죠!” 어린이 연극팀은 제한된 현실을 뛰어넘는 어린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전문 극단들의 무대는 또 다른 차원의 감동을 선사했다. 특히 ‘프로젝트 다상’의 <도봉역에 사는 사람>은 일상적 공간인 지하철역을 새로운 시선으로 조명했다. 매일 수만 명이 스쳐 지나가는 지하철 역에서, 누군가는 사랑에 빠지고 누군가는 이별을 겪는 모습을 1인극 특유의 밀도 높은 연기로 풀어내어 관람객들을 몰입하게 했다.

연극제의 피날레를 장식한 극단 ‘창작의 방’의 <한낮의 꿈>은 신화와 전설, 민담과 동화의 인물들을 재해석하며 눈길을 끌었다. 성냥팔이 소녀가 겪은 비극을 통해 세상사를 꼬집으면서도, <어린 왕자>의 사막 여우와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엮어 진정한 사랑과 삶의 의미를 관객들에게 전하며 공감을 이끌어냈다. “어린이와 어르신들의 열정 어린 연기부터 전문 극단들의 수준 높은 연기까지, 종합세트 선물을 받은 느낌이에요.” 관람객 박지현 씨(쌍문2동 거주)의 소감이 연극제의 감동을 대변했다.
  • ‘프로젝트 다상’의 <도봉역에 사는 사람> 1인극 열연 모습 ©강사랑
    ‘프로젝트 다상’의 <도봉역에 사는 사람> 1인극 열연 모습 ©강사랑
  • 극단 ‘창작의 방’이 선보인 <한낮의 꿈> 작품 모습 ©강사랑
    극단 ‘창작의 방’이 선보인 <한낮의 꿈> 작품 모습 ©강사랑
  • 신화와 전설, 민담과 동화의 인물들을 재해석하며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강사랑
    신화와 전설, 민담과 동화의 인물들을 재해석하며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강사랑
  • ‘프로젝트 다상’의 <도봉역에 사는 사람> 1인극 열연 모습 ©강사랑
  • 극단 ‘창작의 방’이 선보인 <한낮의 꿈> 작품 모습 ©강사랑
  • 신화와 전설, 민담과 동화의 인물들을 재해석하며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강사랑
연극제 현장에는 어린이 연극팀과 시니어 연극팀, 그리고 전문 극단 단원들의 지인과 친지들도 총출동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무대에 오른 연기자들을 말없이 응원하며 때로는 미소로, 때로는 박수로 공연의 순간순간에 감동을 더했다. 무대에 선 연기자도, 꽃다발을 한아름 안고 찾아온 지인들도, 일반 관람객들도 모두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다.
무대 밖 테라스에서는 핸드드립커피, 타로카드, 다육화분 만들기 등 체험부스가 마련돼 축제의 흥겨움을 더했다. 체험부스를 찾은 시민들은 핸드드립커피의 향기에 취하는가 하면, 흰고무신 모양의 작은 화분에 다육식물을 옮겨 심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다.

현장에는 떠들썩한 행사 분위기에 이끌려 마을극장을 처음 찾은 시민도 있었다.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김영모 씨는 “우연히 들렀다가 연극도 보고 체험 부스에도 참여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라며 마을극장에 이 같은 지역민 참여형 행사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핸드드립커피, 타로카드, 다육화분 만들기 등 체험부스가 마련됐다. ©강사랑
    핸드드립커피, 타로카드, 다육화분 만들기 등 체험부스가 마련됐다. ©강사랑
  • 마을극장의 상징인 흰고무신에 다육식물을 심는 참여자들 ©강사랑
    마을극장의 상징인 흰고무신에 다육식물을 심는 참여자들 ©강사랑
  • 핸드드립커피, 타로카드, 다육화분 만들기 등 체험부스가 마련됐다. ©강사랑
  • 마을극장의 상징인 흰고무신에 다육식물을 심는 참여자들 ©강사랑
2019년 시작돼 매년 열리는 ‘수안 연극제’는 마을극장 흰고무신의 대표적인 문화행사이다. 이름은 민주화운동가 계훈제 선생의 호에서 따왔으며, 그의 헌신과 정신을 기려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열린 예술의 장을 제공한다.

마을극장 관계자는 수안 연극제를 가리켜 “단순한 공연 행사를 넘어, 지역민 모두가 하나 돼 즐길 수 있는 마을 잔치로서 그 가치와 의미가 깊다”고 전했다. 특히 올해의 무대는 ‘지역 문화’라는 말이 더는 ‘변방의 문화’를 의미하지 않음을 조용히 증명했다. 세대와 장르의 경계를 넘어 모두가 주인공이 된 연극제 현장은 지역 공동체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을극장 흰고무신에서는 매년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수안연극제가 진행된다. ©강사랑
마을극장 흰고무신에서는 매년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수안연극제가 진행된다. ©강사랑
‘마을극장 흰고무신’은 도봉구에서 오랫동안 거주하며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계훈제 선생의 집터 위에 세워진 문화예술 공간이다. 일제강점기와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의 선두에 서 있던 계훈제 선생은 당대의 젊은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으며, 그가 생전 자주 신었던 ‘흰 고무신’은 그의 상징이 되었다.

지난 2018년 개관하여 계훈제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아 지역 주민들이 소통하고 예술적 경험을 나눌 수 있는 마을극장으로 거듭났다. 현재 도봉문화재단이 운영을 맡아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마을극장 관계자는 “연극 정기 강좌가 대표적이며, 참여한 시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연극 예술의 진입 문턱을 낮춰 보다 많은 사람에게 예술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에요”라고 설명했다.
  • 계훈제 선생이 생전 자주 신었던 흰 고무신은 그의 상징이 되었다. ©강사랑
    계훈제 선생이 생전 자주 신었던 흰 고무신은 그의 상징이 되었다. ©강사랑
  • 계훈제 선생이 자주 신었던 흰 고무신의 실제 모습 ©강사랑
    계훈제 선생이 자주 신었던 흰 고무신의 실제 모습 ©강사랑
  • 계훈제 선생이 생전 자주 신었던 흰 고무신은 그의 상징이 되었다. ©강사랑
  • 계훈제 선생이 자주 신었던 흰 고무신의 실제 모습 ©강사랑
연극 강좌는 도봉구 거주 어린이와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며, 각각 15명 정도의 소규모 인원으로 구성된다. 수강생들은 10회에 걸친 강좌를 무료로 수강한 후, 수안 연극제에서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그동안 갈고 닦은 연기를 선보인다.

마을 극장 관계자는 “단순히 연극을 배우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강생들이 실제로 무대에 서는 경험을 통해 자부심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기획했어요”라며 “수강생들이 연극제 무대에서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전했다.
  • 마을극장 흰고무신은 어린이 연극 강좌의 지속적 참여로 지역을 대표하는 연극팀 창단을 꿈꾸고 있다. ©강사랑
    마을극장 흰고무신은 어린이 연극 강좌의 지속적 참여로 지역을 대표하는 연극팀 창단을 꿈꾸고 있다. ©강사랑
  • 어린이 연극 강좌에 참여한 어린이들의 소감이 인상적이다. ©강사랑
    어린이 연극 강좌에 참여한 어린이들의 소감이 인상적이다. ©강사랑
  • 마을극장 흰고무신은 어린이 연극 강좌의 지속적 참여로 지역을 대표하는 연극팀 창단을 꿈꾸고 있다. ©강사랑
  • 어린이 연극 강좌에 참여한 어린이들의 소감이 인상적이다. ©강사랑
또한 마을극장 흰고무신은 공연장을 저렴하게 대관하는 한편, 요가와 마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주민들이 새로운 취미를 발견하고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내년에는 ‘수안 연극제’가 ‘수안 예술제’로 이름을 바꿔 연극뿐만 아니라 인문학 강의, 음악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예술 장르를 포함할 계획이다. 마을 극장 관계자는 “더 넓은 영역의 예술을 선보이며 마을극장이 지역 문화의 중심 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저렴한 대관료로 지역민들에게 공연장을 대관하고 있는 마을극장 흰고무신 ©강사랑
저렴한 대관료로 지역민들에게 공연장을 대관하고 있는 마을극장 흰고무신 ©강사랑
지역민들과 예술이 가깝게 만날 수 있는 문화공간은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 어렵게 찾더라도 예술에 문외한이라면 문턱을 넘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마을극장 흰고무신은 그래서 특별하다. 마을 안 깊숙한 곳에 자리하여 지역민들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사랑채’와 같은 곳이다. 마을극장 흰고무신이 앞으로도 지역민들에게 특별한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며 사랑받기를 기대해본다.

마을극장 흰고무신

○ 위치 : 서울시 도봉구 시루봉로15마길 13 2층
○ 교통 : 1호선 방학역 1번 출구 하차 후 신방학중학교 방향 버스 이용(신도봉시장, 도봉구청, 방학북부역 버스정류장 1167번 승차 후 방학중학교 하차), 4호선 쌍문역 2번 출구 하차 후 1126번 버스 이용(샘말어린이공원 하차)
○ 이용일시 : 수~토요일 10:00~19:00(휴게시간 13:00~14:00)
○ 휴무일 : 매주 월요일, 일요일
도봉문화재단 문화공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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