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3.1운동의 발자취, 아이들과 함께 가슴으로 기억하자!

시민기자 홍혜수

발행일 2024.02.29. 14:54

수정일 2024.02.29. 17:20

조회 1,466

청년학도와 애국시민이 모여 3.1운동을 벌였던 탑골공원, 손병희 선생의 동상 ⓒ홍혜수
청년학도와 애국시민이 모여 3.1운동을 벌였던 탑골공원, 손병희 선생의 동상 ⓒ홍혜수

1919년 3월 1일은 종로 태화관에서의 독립선언서 발표를 시작으로, 전국은 물론 전세계 각지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동참해 “대한독립만세”의 물결을 일으키며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는 독립운동이 시작된 날이다.

그 뜨거웠던 날로부터 105년이 지난 지금의 대한민국은 빠르게 발전해 전세계에 K열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서인지 요즘 아이들은 3.1절이 무엇을 했던 날인지, 왜 국경일로 지정이 되었는지 모른 채 그저 '휴일'로만 인식을 하고 있다는 뉴스를 듣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엔 아이들과 함께 가보기 좋은 3.1운동이 시작되었던 실제 장소들과 그 흔적들을 찾아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소개해 보려고 한다.
  •  독립선언문을 발표했던 태화관이 있던 자리 ⓒ홍혜수
    독립선언문을 발표했던 태화관이 있던 자리 ⓒ홍혜수
  • 지금은 그 자리에 빌딩이 들어서 있다. ⓒ홍혜수
    지금은 그 자리에 빌딩이 들어서 있다. ⓒ홍혜수
  • 하지만 그 정신을 이어받아 '태화빌딩'으로 이름 지었다. ⓒ홍혜수
    하지만 그 정신을 이어받아 '태화빌딩'으로 이름 지었다. ⓒ홍혜수
  •  독립선언문을 발표했던 태화관이 있던 자리 ⓒ홍혜수
  • 지금은 그 자리에 빌딩이 들어서 있다. ⓒ홍혜수
  • 하지만 그 정신을 이어받아 '태화빌딩'으로 이름 지었다. ⓒ홍혜수

먼저 들려본 곳은 민족 대표 33인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태화관'이 있던 장소다. 이곳에서 29명의 민족 대표들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뒤 조선총독부에 전화를 걸어 독립선언식을 열고 있다고 선언을 했고, 전화를 받고 일본경찰 80명이 들이닥쳤지만 이들에게 당당히 만세삼창을 한 뒤 연행되었다.

그 역사적인 장소였던 태화관은 지금 사라지고 빌딩이 들어섰지만, 그 정신을 이어받아 '태화빌딩'이라 이름을 지었고, 그 앞에 '삼일독립선언유적지' 표지석을 만들어 놓고 '3.1독립선언광장'으로 조성했다.
'삼일독립선언유적지'에서 독립선언문이 새겨진 벽을 볼 수 있다. ⓒ홍혜수
'삼일독립선언유적지'에서 독립선언문이 새겨진 벽을 볼 수 있다. ⓒ홍혜수

지금도 사람들의 왕래가 활발한 종로구 인사동, 종로경찰서 옆에 위치한 이곳은 필자도 평소 많이 지나 다녔지만, 이런 역사적인 장소인지 몰랐다. 의미가 남다른 장소인 만큼 한번 방문하여 독립선언문도 읽어보며 그날의 결의를 상기시켜 보는 것도 좋겠다.
  •  본격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던 탑골공원 ⓒ홍혜수
    본격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던 탑골공원 ⓒ홍혜수
  • 이곳에도 독립선언서가 새겨져 있다. ⓒ홍혜수
    이곳에도 독립선언서가 새겨져 있다. ⓒ홍혜수
  •  본격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던 탑골공원 ⓒ홍혜수
  • 이곳에도 독립선언서가 새겨져 있다. ⓒ홍혜수

한편 본격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던 건 '탑골공원'이었다. 지금은 어르신들의 휴식처로 애용이 되고 있는 장소지만, 그 당시 많은 인원들이 모여 학생 그룹을 필두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거리로 나가 만세운동을 시작하게 된 장소이기도 하다.
 벽에 새겨놓은 독립선언서 ⓒ홍혜수
벽에 새겨놓은 독립선언서 ⓒ홍혜수

때문에 탑골공원 한쪽에는 독립선언서도 새겨 두었고, 3.1운동을 주도했던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도 만들어 그날을 기록해 두고 있었다.

1919년 3월 1일 이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대한독립만세” 물결은 수십만 인파가 모여 보신각을 거쳐 숭례문 쪽과 덕수궁 대한문 쪽까지 퍼져 나갔고, 일본 헌병과 기마부대가 폭압적으로 시위를 진압하려 했지만 시위대는 물러서지 않았다.
  • 유관순 열사가 다녔던 이화학당(現 이화여자고등학교) ⓒ홍혜수
    유관순 열사가 다녔던 이화학당(現 이화여자고등학교) ⓒ홍혜수
  • 이화박물관에서 유관순 열사에 대한 내용을 관람할 수 있다. ⓒ홍혜수
    이화박물관에서 유관순 열사에 대한 내용을 관람할 수 있다. ⓒ홍혜수
  • 유관순 열사가 다녔던 이화학당(現 이화여자고등학교) ⓒ홍혜수
  • 이화박물관에서 유관순 열사에 대한 내용을 관람할 수 있다. ⓒ홍혜수

이런 만세운동의 물결은 유관순 열사가 다니고 있던 이화학당(現 이화여자고등학교)까지 퍼져나갔고, 학교에 있던 학생들은 학당의 담장을 뛰어넘어가 전원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 이화학당이 있던 자리는 이화여자고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는데, 유관순 열사에 관한 것들을 볼 수 있도록 이화박물관을 만들어 놓아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게 열어 두었다.
 당시 수업을 받던 이화학당 교실을 재현해 둔 모습 ⓒ홍혜수
당시 수업을 받던 이화학당 교실을 재현해 둔 모습 ⓒ홍혜수

이화박물관 1층엔 그 당시 교실을 재현해 두었는데 어떤 모습으로 공부를 했었는지도 확인할 수 있고, 학교를 다니던 당시의 유관순 열사의 사진도 전시되어 있어 그 당시 얼마나 어린 나이에 만세운동에 참가했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선 유관순 열사에게 명예 졸업장을 주었다 . ⓒ홍혜수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선 유관순 열사에게 명예 졸업장을 주었다. ⓒ홍혜수

그렇게 시작된 3.1운동은 멈추지 않고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유관순 열사는 고향인 천안에서도 만세운동을 이어나가다 체포 당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하지만 수감된 뒤 옥중에서도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결국 1920년 9월 28일 향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옥사했다. 이에 이화여자고등학교에사는 그 뜻을 기리며 유관순 열사에게 명예 졸업장을 전달했고, 이화박물관에 졸업장과 함께 훈장들을 전시해 두어 관람할 수 있었다.
평화로운 모습의 광화문광장. 선조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지켜낸 대한민국이다. ⓒ홍혜수
평화로운 모습의 광화문광장. 선조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지켜낸 대한민국이다. ⓒ홍혜수

그 당시 독립운동을 하다 희생 당한 열사들은 무려 7,500여 명이 넘는데다 구금시킨 인원이 4만 6,948명이나 되었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지켜낸 대한민국이다.

시간이 많이 흘러 지금의 3월 1일은 바쁜 일상 속 달콤한 연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많은 애국지사들의 염원이 담긴 역사적인 날인 만큼 그 날의 역사적 장소들을 되짚어보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삼일절의 의미를 알려주는 것은 어떨까?

태화관 자리(3.1독립선언광장)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94-39
○ 교통 : 지하철 종로3가역 5번 출구에서 414m

탑골공원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종로99 탑골공원
○ 교통 : 지하철 종로3가역 1번 출구에서 249m

이화박물관

○ 위치 : 서울시 중구 정동길 26
○ 운영일시 : 화~토요일 10:00~17:00(매주 일, 월요일 정기휴무), 삼일절 당일 휴무
○ 관람료 : 무료
○ 문의 : 0507-1345-1965

시민기자 홍혜수

서울시 곳곳에 숨겨진 소식을 찾아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카카오톡 채널 구독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