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한계가 아닌 또 다른 도전! 청각장애인 엄기원 선수

시민기자 김은주

발행일 2023.04.21. 13:03

수정일 2023.11.08. 14:29

조회 1,344

제10회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 사진 부분 동메달 수상자 엄기원 씨를 만나다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 실내 사진 부문에서 동메달을 수상한 엄기원 씨 Ⓒ김은주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 실내 사진 부문에서 동메달을 수상한 엄기원 씨 Ⓒ김은주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일반인과 함께 일하고 생활하며 취미를 통해 꿈을 펼치고 있는 이가 있다. 3D 캐릭터 디자이너인 엄기원 씨다. 그는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에 출전해 한 번 수상하기도 어려운 메달을 두 번이나 연속 수상, 금메달과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엄기원 씨를 만나 궁금했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엄기원 씨는 평소 취미로 즐겼던 사진 부문에 참가해 수상했다. Ⓒ김은주
엄기원 씨는 평소 취미로 즐겼던 사진 부문에 참가해 수상했다. Ⓒ김은주

엄기원 씨는 2016년 제9회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에서 캐릭터 디자인 부문 금메달리스트가 되었고, 2023년 올림픽에서는 실내 사진 부문에서 동메달을 수상했다. 캐릭터 디자인 부문은 캐릭터의 성격과 얼굴 표정, 외모, 동작 등을 묘사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기능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의 얼굴 표정 등을 콘셉트로 아이디어를 내는 미션을 통해 1위인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장애인기능올림픽은 같은 종목으로 연이어 출전할 수 없기에 엄기원 씨는 지난 번 출전했던 캐릭터 디자인이 아닌 실내 사진 부문으로 2023년 다시 출전했다. 사진은 그가 가진 취미활동 중 하나였기에 자연스럽게 재능을 키워 나갈 수 있었다. 실내 사진 부문은 경쟁이 치열해 수상하기 어려운 분야로도 유명하다. 엄기원 씨가 빛을 이용한 그림자, 사물의 구도와 배치 등이 중요한 실내 사진 부문에서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일해 온 3D 캐릭터 디자인과 비슷한 맥락의 사진 촬영을 취미 활동으로 즐겁게 꾸준히 해 왔기 때문이다.
엄기원 씨는 (주)갤럭시코퍼레이션에서 GX/지식경영팀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김은주
엄기원 씨는 (주)갤럭시코퍼레이션에서 GX/지식경영팀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김은주

돌 즈음 열병에 의해 청각을 상실한 그는 어릴 때부터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톰과 제리> 같은 디즈니 만화를 시청하면서 만화의 매력에 반했다고 한다. 달력을 뜯어 뒷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독학으로 그림 실력을 쌓았다. 그의 재능과 열정이 합쳐져 학창시절 수많은 미술대회에서 수상할 수 있었다. 

서울농학교 졸업 이후에는 애니메이션 회사, 게임 회사의 디자이너를 거쳐 넥슨에 입사해 3D 캐릭터 디자이너로 10년 동안 일했다. 현재는 메타버스 회사인 (주)갤럭시코퍼레이션에서 3D아트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입사 시험은 일반인과 같이 동등하게 치렀고, 그의 가능성과 능력을 인정 받아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회사에 장애인은 오로지 그 혼자다. 
3D아트 디자이너인 엄기원 씨는 평소 꾸준히 사진 촬영을 하며 실력을 쌓았다. Ⓒ김은주
3D아트 디자이너인 엄기원 씨는 평소 꾸준히 사진 촬영을 하며 실력을 쌓았다. Ⓒ김은주

“회의에서 듣지 못하는 어려움은 있지만 카톡을 통해 업무를 잘 해나가고 있습니다. 동료들과의 의사소통은 메신저를 활용하고 있어요. 청각 장애가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업무를 할 수 없게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더 자신의 분야에 집중하고 몰입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한 상상력을 활용하는 메타버스에 관심이 많았던 엄기원 씨는 현재의 직장인 (주)갤럭시코퍼레이션에 작년 6월 입사했다. GX/지식경영팀에서 3D아트 디자이너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그는 자신과 같은 농인들을 위해 가상현실인 메타버스 안에서 수어를 이용해 표현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고 있다. 모션이 있는 연기를 하고 싶은 농인들을 위해 아바타를 활용해 내가 직접 표현할 수 없던 것을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누구보다 농인들이 처한 어려움과 한계를 잘 아는 그이기에 잘 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엄기원 씨는 실내 사진 부문에 출전해서 작품을 연출하여 촬영을 했다. Ⓒ김은주
엄기원 씨는 실내 사진 부문에 출전해서 작품을 연출하여 촬영을 했다. Ⓒ김은주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 장애인의 꿈과 희망이 되어 주다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International Abilympics)는 국제연합(UN)이 정한 ‘세계장애인의 해’인 1981년에 시작되어 장애인의 잠재 능력 개발, 사회 일반의 이해 확대, 국제 친선 및 지식 교류 등을 목적으로 4년마다 개최되고 있다.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으로 인해 10회 개최지였던 러시아의 대회 취소 및 연기로 이번 올림픽은 7년 만에 개최되었고, 그 기다림의 시간은 꽤 길었다.

2023년 제10회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는 프랑스 메스에서 지난 3월 22일부터 25일까지 열렸다. 이번 올림픽에는 44개 직종에 27개국 420명이 참가했고, 우리나라는 34개 직종에서 34명의 대표선수들이 경쟁을 펼쳐 금메달 18개, 은메달 4개, 동메달 9개로 직업기능직종 종합우승 7연패 달성을 이뤄냈다.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에는 전 세계 수많은 장애인들이 도전해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는 매년 6월경 지역장애인기능대회와 9월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를 개최하며 올림픽 선수들을 선발하고 있다. 참가직종은 직업기능직종, 직업기능기초직종, 레저 및 생활기능직종 그리고 시범직종으로 나뉜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참가한 직업기능직종에는 전자기기, 웹마스터, 컴퓨터 수리, 컴퓨터 프로그래밍, 실내 사진, 실외 사진, 워드프로세서, 가구 제작, 양복, 양장, 목공예, 바구니 만들기, 화훼 장식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치과기공, 자전거 조립, 귀금속공예, 케이크 장식, 네일아트, 자수 등 참가할 수 있는 직종은 다양하다.
엄기원 씨는 3D캐릭터를 디자인하는 일을 하며 메타버스에서 아바타를 구현하고 있다. Ⓒ김은주
엄기원 씨는 3D캐릭터를 디자인하는 일을 하며 메타버스에서 아바타를 구현하고 있다. Ⓒ김은주

엄기원 씨는 어떻게  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에 참가하게 되었을까?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보여 주고 싶었고 대한민국 장애인에게 모범이 되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기능을 배우는 것도 재미있고 다른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며 어울리는 것도 행복했어요. 올림픽을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올림픽에 참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도 많이 하고 싶습니다.” 그는 사회 속에 만연되어 있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 인식 개선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엄기원 씨가 꿈꾸는 다음 행보는  다시 4년 뒤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 메달 획득이다. 그는 실외 사진 부문으로 도전해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는 멋진 포부를 밝혔다. 엄기원 씨의 이런 도전 자세는 취미 부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레이싱 대회에도 참여할 정도로 수준급인 그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하게 활동을 해 오고 있다. 레이싱 대회는 청각장애인 최초로 참가하는 것이라 더욱 놀라웠다. 

“제 삶의 모토는 ‘인생을 즐겁게 살자’는 것입니다. 여러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다 보면 재밌게 즐길 수 있고 일과 관련되어 더 폭넓게 배워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는 무언가를 도전하고 시도하는 것 그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용기와 함께 작은 꿈이라도 꼭 가지기를 바랍니다. 
불가능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고, 
내일 못하면 모레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시도하다 보면 이룰 수 있을 거예요.

엄기원 씨는 자신과 같은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의미 있는 도전을 권한다.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에 참가하고 싶은 다른 장애인들에게 선배로서 조언을 부탁했다.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기회를 잡으세요. 그러려면 일단 열정이 필요합니다. 열정과 함께 도전하세요. 중국에서는 이번 올림픽의 실내 사진 부문에 600명이 참가해서 그 중에서 1년 동안 여러 단계를 거쳐 2명이 선발되었습니다. 600명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도전했어요. 여러분도 도전하시길 바랍니다.”
엄기원 씨는 농인을 위한 다양한 방송 콘텐츠를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 Ⓒ김은주
엄기원 씨는 농인을 위한 다양한 방송 콘텐츠를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 Ⓒ김은주

올림픽에 참가하려면 올림픽을 준비하며 꽤 오랜 시간 동료 선수들과 합숙훈련을 해야 한다. 그때는 가족이 걱정되기도 했었단다. 이러한 힘든 시간들을 거쳐 마침내 값진 결실을 얻어낼 수 있었던 그에게 올림픽 출전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실내 사진은 다른 부문과 달리 사전에 주제 발표를 안 해 당황스러웠어요. 재활용품을 활용해서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주제였는데 그 재료들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죠. 대회 당일에 공개되었고 캔, 종이와 같은 재료들을 이용해 연출해야만 해서 긴장이 많이 되었습니다.”

올림픽 출전은 회사의 배려로 2달 반 무급휴가를 얻어 참여할 수 있었다. 꽤 긴 시간 자리를 비워야 해서 한 달 동안 출전을 해야 하나 포기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고 한다. 다행히 회사는 엄기원 씨를 배려해 주었고 참가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가 가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나 부정적인 인식에 대해 엄기원 씨는 “장애인들을 위한 연구와 도움을 주는 방법 등이 사회 속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선입견 등의 고정관념이 개선되길 바랍니다. 다른 나라들은 그러한 사례들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부족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장애인을 배려하는 시설이 많아져야 하고 사회의 따뜻한 관심도 있었으면 좋겠어요.”라는 바람을 표현했다.
엄기원 씨는 다음 올림픽대회에도 참가해 메달을 획득할 포부를 가지고 있다. Ⓒ김은주
엄기원 씨는 다음 올림픽대회에도 참가해 메달을 획득할 포부를 가지고 있다. Ⓒ김은주

엄기원 씨의 앞으로 계획이 궁금했다. “농인을 위해 여러 도움을 주는 전문적인 TV 방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관심을 가진 여러 분들과 함께 하고 있는데요. TV 참가자들이 전부 농인들로 구성된 농인 전문 방송을 만들어 농인들에게 다양한 배움과 혜택을 주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습니다.”

엄기원 씨를 만나 그의 삶과 꿈,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니 장애인의 능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이 해소되고 능력 있는 장애인에 대한 고용과 정책적 지지가 뒷받침되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히 느껴졌다. 누군가는 장애인의 한계를 말하지만,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힘차게 도전하는 엄기원 씨를 보며 뜨거운 열정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을 가능으로 만들고, 포기하지 않는 꿈이 성공이 되어 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현재진행형인 도전에 힘찬 격려를 보낸다.

시민기자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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