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 가득 채운 배움의 열기

시민기자 윤혜숙

발행일 2023.10.13. 11:43

수정일 2023.10.13. 18:04

조회 499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에서 한창 영어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윤혜숙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에서 한창 영어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윤혜숙

장애인 평생교육시설'너른마당 사회적협동조합(이하 ‘너른마당’)'은 야간에도 불이 환하다.

평일 저녁 7시 30분경 방문하니 안쪽 강의실에서 왁자지껄 소리가 들린다. 누가 누구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교사와 학생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들리는 가운데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학창시절의 한때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에서 수업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해, 교사와 학생들의 양해를 구한 뒤 기자도 수업을 참관해 봤다.
'너른마당'의 영어수업에서 수업 자료로 뉴스를 보여주고 있다. ⓒ윤혜숙
'너른마당'의 영어수업에서 수업 자료로 뉴스를 보여주고 있다. ⓒ윤혜숙

마지막 3교시 영어수업에서 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마주보고 앉아 있다. 이진주 교사가 학생들에게 주말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번주의 특별한 일은 무엇이었는지를 묻자, 학생들은 각자의 경험치에 따라서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크고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여느 교실의 조용하고 정숙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지만 학생들은 편안하게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에 열심이었다. 

한 학생의 “오늘 일하고 와서 피곤해요.” 라는 갑작스런 말에 교사는 “낮에 일하고 저녁에 공부하는 여러분~~ 정말 수고 많아요. 이제 한 시간 지나면 수업이 끝나니까 참을 수 있겠지요?” 라고 호응하고, 다들 씩씩하게 “네!” 하고 대답하고는 다시 활기찬 수업을 이어갔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조금 전 시청한 뉴스의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윤혜숙
교사가 학생들에게 조금 전 시청한 뉴스의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윤혜숙

수업을 이끌어 간 이진주 교사는 보건환경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이자 '너른마당' 자원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낮에는 학생, 저녁에는 교사로 매주 수요일 주 1회, 저녁 6시 55분부터 8시 35분까지 2, 3교시 연속으로 영어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영어학습의 기초가 되는 알파벳의 발음, 알파벳 대문자 및 소문자, 그리고 영어 단어를 지도한다. 수업은 영어학습과 실생활을 연계하고자 첫머리에서 최신 뉴스 영상을 살펴본 뒤 주제에 맞는 영어 단어를 키워드로 선정해 익히는 방식이었다.

기자도 처음 영어를 배웠던 중학교 1학년 그 시절로 되돌아가 봤다. 우리말과 전혀 다른 외국어인 영어를 알파벳부터 시작해서 단어나 문장 등을 학습하는 게 쉽지 않다. 이렇게 동영상 뉴스를 시청하면서 키워드가 될 만한 영어 단어나 표현을 학습했더라면 지루하고 어렵기만 했던 영어수업이 훨씬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뉴스에서 키워드가 될 만한 단어들을 선별해서 한글로 알려주고 있다.ⓒ윤혜숙
교사가 학생들에게 뉴스에서 키워드가 될 만한 단어들을 선별해서 한글로 알려주고 있다.ⓒ윤혜숙

수업이 끝난 뒤 이진주 교사를 만나봤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교육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봉사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수업에서 만나는 발달장애인들의 공통적인 특성이 있는지도 물었다.

“누군가에게 모르는 정보를 알려주는 것을 좋아해서 어린 시절 장래희망이 국어교사였던 적이 있어요.”라고 말문을 연 이진주 교사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역시 개개인의 성격이나 성향이 모두 다 다릅니다. 그래서 개인별 맞춤형으로 학습을 지원하고 또 지속해서 맞춤형 학습 지원과 관련된 정보를 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너른마당'에서 수업하는 교사들은 모두 이 점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한다.

수업에 관해 궁금한 점이 많았던 기자는 이진주 교사에게 질문을 이어갔다.

Q : 수업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A : 오늘 학습할 영어 단어를 칠판에 적을 때 학생들이 알파벳 발음을 크게 외쳐 주실 때 보람을 느낍니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학생들에게 일상적인 질문을 던지는데 그때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줄 때도 감사합니다. 이렇듯 늘 감사함의 연속입니다.

Q : 수업 중 특별한 기억이 있을까요? 소개해 주세요.
A : 때때로 신체적·정신적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가 있어요. 수업시간에 기침을 하거나 표정이 안 좋을 때 학생들이 가만히 제 얼굴을 살펴보곤 “건강하세요.”, “아프지 마세요.”, “힘내세요.” 라며 응원의 말을 전해줍니다.”

Q : 수업을 준비할 때 가장 고심하는 부분은 어떤 걸까요?
A : 비단 발달장애인 학생들뿐 아니라 어떤 교육생들을 대상으로 하든, '어떻게 하면 이 내용을 더욱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죠. 알기 쉬운 자료를 이해하기 쉬운 말로 전달하는 게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일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교사라면 누구나 고심하는 부분이 아닐까요?
수업 자료인 뉴스 속 키워드가 되는 영어 단어의 알파벳을 전자칠판에 적고 있다. ⓒ윤혜숙
수업 자료인 뉴스 속 키워드가 되는 영어 단어의 알파벳을 전자칠판에 적고 있다. ⓒ윤혜숙

Q :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안이 있다면요?
A : 장애인과 같은 교통약자의 이동권 보장입니다. 집 밖을 나오면 가까운 거리를 걸어서 혹은 먼 거리를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동해야 하는데 혼자 이동하기 어렵거나 이동이 불가능하다면 사회생활 자체가 마비되죠. 먼저 이동권이 보장되어야 교육받을 권리, 노동할 권리 등의 다른 기본권 역시 보장 받을 수 있을 겁니다.

Q. 교통약자 이동권 보장을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떤 일을 하는 게 좋을까요?
A. 대중교통에 있어서는 ‘저상버스 보급’‘1역사 1동선’을 위한 노력이 우선 필요합니다. ‘1역사 1동선’은 지상에서 승강장까지 교통약자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엘리베이터 등을 이용해서 하나의 동선으로 이동할 수 있는 정책이에요. 또한 배차시간을 단축해 이용이 편의가 확보되는 '장애인콜택시'도 많이 필요합니다. 물론 지금 서울시는 이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 나날이 달라져 가는 점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진주 교사는 비단 장애인만 교통약자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고령자, 어린이, 임산부, 영유아 동반자 등도 교통약자에 해당하므로, 이동권 보장은 우리 모두를 위해 반드시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진주 교사는 장애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만큼 장애인 인식 개선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았다.
'너른마당'의 강의실은 평일 저녁인데도 교사와 학생들로 가득하다. ⓒ윤혜숙
'너른마당'의 강의실은 평일 저녁인데도 교사와 학생들로 가득하다. ⓒ윤혜숙

4월 20일은 국가에서 지정한 법정기념일인 ‘장애인의 날’이다. 이진주 교사는 ‘장애인차별 철폐의 날’이 맞을 것 같다고 조심스레 의견을 꺼낸다. 일상 속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모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Q :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해 시민들이 무엇을 하는 게 좋을까요?
A : 저 스스로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서 조심스럽습니다만, 제가 생각하는 바를 말씀드릴게요. 먼저 장애인 모두가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장애인을 도와주려고 할 때 당사자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주시면 좋겠습니다.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의 영향이 큰데요, 모든 발달장애인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같지 않습니다.

또한 ‘장애우’는 잘못된 표현이니 장애우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다릅니다. 동일한 시선이나 잣대로 보기 보다 세계 인구 80억 명의 시대, 80억 개의 인생이 존재하는 만큼 개별성을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너른마당'은 장애인이 지속해서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과 공동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윤혜숙
'너른마당'은 장애인이 지속해서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과 공동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윤혜숙

이진주 교사의 말을 듣고 ‘장애인’과 ‘장애우’의 뜻을 찾아봤다. '장애인''장애를 가진 사람'이란 뜻의 중립적 표현이지만, '장애우'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을 우리와 동등한 사회구성원이 아닌, 우리랑은 다른 집단으로 보고 만든 비중립적 표현이다. 따라서 이진주 교사의 말처럼 ‘장애우’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원봉사를 한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대가를 바라지 않은 채 나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원봉사 활동하는 분들이 많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우리 사회가 온정과 희망으로 따스하다.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은 이진주 교사처럼 자원봉사 활동하는 분들이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었다.

“밥 먹고, 노래 부르고, 공부하고, 일하는 너른마당의 일상과 함께 호흡해 나가고 싶은 분들께서는 언제든지 자원봉사활동의 문을 두드려주시길 바랍니다.”
'너른마당'에는 장애인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윤혜숙
'너른마당'에는 장애인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윤혜숙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은 장애인이 지속해서 공부하고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과정과 공동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평생교육시설이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기초문해, ▴학력 보완, ▴문화예술 및 ▴심리정서지원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지역 사회 자립 생활 지원 및 ▴인권 증진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장애청소년 사회성 발달 및 심리정서 지원 사업의 하나로 ▴장애-비장애 청소년 통합프로그램인 ‘마을아 함께 놀자’ 등을 진행하고 있다.

장애가 있어도 국민의 기본권인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정규교육과정을 이수했다고 배움이 끝나는 건 아니다. 평생교육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배움을 충족하고 있다. 장애인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너른마당'에서 만난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는 배움에 대한 욕구가 가득했다. 몸의 불편함이 배움을 향한 의지를 꺾진 못하리라.

수업을 끝마친 후 이진주 교사와 나란히 걸어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문득 서울시가 추진하는 '약자와의 동행'이 떠올랐다.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이야말로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약자와의 동행을 실천하고 있는 생생한 현장이었다.

너른마당 사회적협동조합

○ 위치 : 서울시 성북구 동소문로20다길 10, 세창빌딩 3~5층
○ 교통 : 지하철 4호선· 우이신설선 성신여대입구역 2번 출구에서 도보 5분
누리집
○ 자원봉사 신청 ☞사회복지자원봉사인증관리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 장애성인 대상 학습지도 자원활동가 모집
○ 문의: 02-921-2171

시민기자 윤혜숙

시와 에세이를 쓰는 작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다양한 현장의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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