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니까! 문화 에너지 가득 비축~ 볼만한 전시 추천

시민기자 정유리

발행일 2022.12.22. 10:00

수정일 2022.12.22. 16:46

조회 700

문화비축기지는 석유 저장고에서 문화복합공간으로 탈바꿈해 도시재생의 바람직한 예로 쓰인다. 도심 속 생태, 인문, 예술 프로그램을 마련해 시민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문화비축기지에서는 3가지 전시회가 내년 1월까지 진행된다. 역사, 도시, 삶의 기억을 공유하는 ‘기억을 걷는 시간’, 멸종된 동물의 이미지로 구성된 전시 ‘세대 간 기후범죄 재판소’, 생물학적 성별 외에 다양한 젠터 캐릭터를 연구한 ‘더블 스피릿’ 전시다. 전시를 통해 잃어버린 장소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기후변화를 살펴보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꾸고, 젠더 개념을 분석해 새롭게 조명해 보았다.
문화비축기지 T5 1층 전시실 내부에 건물 사진, 그림, 영상이 전시되어 있다.
‘기억을 걷는 시간’ 전시는 문화비축기지 T5에서 내년 1월 29일까지 진행된다. ⓒ정유리

문화비축기지에서 기획한 ‘기억을 걷는 시간’ 전시는 2023년 1월 29일까지 T5관에서 운영된다. 전시는 한국전쟁의 비극과 분단 현실에 대한 성찰을 나누고, 재개발로 인해 없어진 삶의 터전과 흔적을 찾으며 장소와 추억이 사라지는 우리의 삶과 동일시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 이념적 갈등, 자본주의 등을 고찰해본다.

1층 영상미디어관에는 인천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동인천탐험단의 전시가 운영된다. 동인천탐험단은 건축가, 사진작가, 큐레이터, 시각예술가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근대화, 산업화의 흔적이 있는 오래된 건축물을 찾아 함께 걷고 토론하며 건축, 사회, 역사적 증거들을 수집해 도시의 정체성을 연구하는 단체다.

전시를 통해서 1930년 조선인 노동자를 위해 지어진 신흥동을 둘러보며 그곳에 있는 주택을 살펴본다. 일본식 가옥으로 되어있는 일곱 주택이 가진 특징을 분석해 당시 거주자의 생활상과 설계적 의미를 들여다봤다. 나아가 디자인에 얽혀 있는 사회·역사적 맥락을 발견할 수 있다.
문화비축기지 T5 2층 전시실 내부에 식물 스캔 사진, 영상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문화비축기지 T5의 2층 이야기관 우측에는 김미련 작가의 식물 사진과 영상이 전시돼있다. ⓒ정유리
문화비축기지 T5 2층 전시실 내부에 사진과 영상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야기관 좌측에는 이성민 작가의 작품들이 있고, 스크린에 다큐멘터리 영상이 상영된다. ⓒ정유리

2층 이야기관에서는 가족사와 개인사를 중심으로 전시가 전개된다. 김미련 작가의 작품은 한국전쟁이나 재개발 영향을 받은 대구경북 지역 시민들의 삶을 여러 매체로 그려냈다. 한국전쟁이 불러온 이념 갈등은 공포 속에서 살아가도록 했고,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재현한 가상현실을 만들어 불안한 정서를 재현해냈다. 대구 동인아파트 재개발과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이사할 곳을 찾지 못한 노인들이 외면 받은 현실을 영상에 담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이성민 작가는 재개발 지역이었던 개포동에서 보낸 어린시절 기억 속 풍경을 사진과 영상으로 공유하며, '개포동 그곳' 프로젝트를 통해 생활터전이자 휴식처였던 나무에 대한 기억을 모으고 정서적 연대를 형성해 나간다. 작가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나무 보존에 관해 고민하며 개포주공 1단지에 자리하던 나무들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 건물이 무너지고 터가 사라져도 사람들의 기억과 삶은 무너지지 않았다. 일련의 과정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담아 상영하고 있으며, 재건축 과정에서 폐목 처리된 나무들로 액자와 깃발 지지대로 만들어 새로이 생명을 불어넣었다.
드럼통에 막대기를 붙인 뒤 동물 그림을 올려 세운 작품을 T4전시장 내부에 여럿 배치하였다.
드럼통에 막대기를 꽂고 사진을 붙인 후 중앙을 향하도록 배치했다. ⓒ정유리

문화비축기지는 ‘아트랩’ 문화예술 활동지원 사업을 통해 창작자에게 공간과 장비를 대여해주는데, 올해 네 번째로 지원 받아 진행된 전시가 ‘세대간 기후범죄 재판소(CICC): 재판정에 선 법’이다. 2023년 1월 1일까지 T4에서 운영된다. 이 전시는 학자, 작가, 변호사, 활동가인 라다 드수자와 예술가 요나스 스탈이 식민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멸종된 동물 이미지를 전시장 곳곳에 선보이며, 국가와 기업들이 저지른 기후 범죄를 비판한다. 이 전시를 통해 법과 제도를 개편하고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다음 세대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막아, 지구의 모든 생명이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서구의 식민지 시대 이후로 멸종되는 종의 수가 급증했지만 아무도 자연을 보호하지 않았다. 여러 생물들이 멸종했다는 사실을 사회와 국가가 저지른 범죄의 증거로 내놓았다. 전시에서 제시되는 ‘세대 간 기후 범죄법’은 자연 보호를 위한 행동 기준을 정의한다. 결국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기업과 국가에 경고의 뜻을 전하고 있다. 한때 석유 저장고였던 문화비축기지에서 전시해 기존의 부조리함을 탈피하고 새로운 정의를 세우는 의미가 엿보인다.
T1 전시관 벽에 걸린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시민
‘더블 스피릿’ 전시는 T1 파빌리온에서 내년 1월 8일까지 전시된다. ⓒ정유리
더블 스피릿, 즉 타고난 성별 이외의 반대 성별의 성향도 함께 가진 젠더 캐릭터를 추적해 시각화한 안보미 작가의 작품.
더블 스피릿, 즉 타고난 성별 이외의 반대 성별의 성향도 함께 가진 젠더 캐릭터를 추적해 시각화한 안보미 작가의 작품. ⓒ정유리

안보미 개인전 ‘더블 스피릿 Double Spirit’도 올해의 아트랩 후원 전시로, T1 파빌리온에서 2023년 1월 8일까지 진행되며 추후 작가와의 토크쇼도 준비돼 있다. 사모아, 하와이, 우리나라 해안가 지역 등 태평양 일대 지역의 토속 문화에서 보이는 다양한 젠더형에 대해 알아본다.

제목이기도 한 ‘더블 스피릿’은 타고난 성별 이외의 반대 성별의 성향도 함께 가진 이들을 뜻한다. 단일화된 서구 문화와 반대로 조화, 자연 친화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문화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 서구의 식민지 확장으로 인해 토속 문화가 억압되면서 서구의 젠더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차별의 대상이 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사회 곳곳에서 차별이 발생하고 있다. 전시에는 더블 스피릿을 연구한 자료와 인터뷰 내용을 시각화 했다. 몽환적인 회화 작품을 통해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사회를 기대하며, 인간이 정체성을 형성해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을 상상해 보았다.

기자는 위 소개한 3가지 전시를 통해 관심을 갖고 생각해 볼 만한 다양한 소재를 얻었다. 한국전쟁, 시대적 변화, 이념적 갈등, 재건축, 기후변화, 자연보호, 토속신앙, 다양한 성향과 문화, 그리고 석유 저장고에서 변모한 문화비축기지가 갖는 상징성까지 생각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과 주변의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존재하는 사람들과 문화까지 고민해 볼 가치가 있다.

문화비축기지

○ 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증산로 87
○ 운영일시 : 10:00~18:00 (매주 월요일 휴무, 야외공원은 24시간 연중무휴)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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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 : 02-376-8410

시민기자 정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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