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든 사통팔달! 송현동 부지 개장, 숨겨진 골목길도 열었다
발행일 2022.10.12. 11:30
서울공예박물관 옥상에서 내려다본 열린송현녹지광장 ⓒ이선미
낮고 너른 광장 앞에 서자 가슴이 뛰었다. 오랫동안 봉인돼 있던 송현동 부지가 시민들에게 돌아왔기 때문이다. 항상 있었던 땅이지만 자유로이 만날 수 없는 곳이었다. 앞으로 2년 동안 임시개장되는 ‘열린송현녹지광장’을 찾아가 보았다. 임시개장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열린송현녹지광장에는 여덟 곳의 출입구가 있다. ⓒ이선미
주말에 삼청동과 인사동을 방문한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열린송현녹지광장에 들어섰다. 다들 표정이 좋았다. 낮은 담장 너머로 광장이 한눈에 들어오고 정성스레 조성한 꽃밭이 펼쳐졌다. 더 반가운 건 키 작은 해바라기와 코스모스, 백일홍 물결이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만나는 꽃물결이 주변의 사찰과 오래된 집들과 어우러지며 편안한 풍경을 만들었다.
도심 한복판에서 꽃물결을 만나게 되었다. ⓒ이선미
'송현'은 원래 ‘소나무고개’라는 뜻으로 조선시대에는 주변에 왕족과 세도가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안평대군과 봉림대군도 여기 살았고, 숙종 때는 희빈 장씨도 잠시 이곳에 거처했다. 광장에는 ‘송현’의 의미를 상기시키는 소나무도 심어져 있다. 남산에서 채종한 씨앗으로 키운 25년 수령의 소나무가 좋은 배경이 되었다.
남산소나무 후계목이 있는 풍경 ⓒ이선미
개장을 축하하는 기념식이 시작되고 이내 공연이 이어졌다. 무대 앞에 자리하고 앉아 공연을 즐기는 시민들이 있는가 하면, 아직 남은 빛 속에서 꽃길을 걷는 시민들도 많았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즐기는 사이에 광장에 어둠이 드리워졌다.
임시개장을 축하하는 <가을달빛송현> 음악회가 진행됐다. ⓒ이선미
5미터 지름의 보름달이 두둥 빛나고 작은 달들이 방사형으로 퍼졌다. 어디서 어느 각도로 찍어도 멋질 수밖에 없는 풍경에 시민들의 인증샷 세례가 이어졌다.
너른 광장에 두둥실 내려앉은 보름달과 작은 달들은 포토스팟이 되었다. ⓒ이선미
하늘에서는 보름을 앞둔 달이 차올랐다. 구름이 빨리 흐르는 저녁, 달이 나타났다 숨었다를 반복했다. 교교한 달빛이 송현 광장을 물드는 것 같았다.
보름에 가까워진 달이 교교한 빛으로 젖어들었다. ⓒ이선미
열린송현녹지광장에 여덟 곳의 출입구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정말 곳곳으로 길이 이어졌다. 높다란 담장 주변으로 걷지 않아도 곧장 경복궁으로 나갈 수도 있고, 정독도서관으로도 길이 이어진다.
감고당길로, 종친부길로 어디로든 이어지는 길들이 좋다. ⓒ이선미
덕성여중 뒷길을 걸었다. 처음 걷는 길이라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약간의 감동 같은 것이 마음에 흐르고 있었다. 길은 낯선 골목으로 이어지고 오래된 집들을 지나 걸었다. 알던 사람만 알던 골목을 이제 누구나 환히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야말로 송현동의 속살, 내밀하게 덮였던 공간들을 이제 만나게 됐다. 단순히 송현동 부지만이 아니라 새로운 골목길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새로 난 길은 종친부길로 접어들었다. ⓒ이선미
낯선 골목으로 접어들어 몇 걸음 들어서자 낯익은 건물이 나타났다. 30년 동안 정독도서관 마당에 있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 옮겨온 종친부였다. 국립현대미술관 뒤에 자리해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풍경이 새삼 반가웠다. 이제 열린송현광장을 통해 곧장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가는 지름길이 생겼다. ⓒ이선미
다시 왔던 길을 돌아 나왔다. 더 많은 시민이 밤의 광장을 산책하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흐르는 음악을 즐기기도 하고, 천천히 걷는 연인들도 많았다. 높이 4미터의 담이 낮아지고 길이 사통팔달 만들어졌다. 없던 길이 생기고 없었던 길을 걷는다. 아니, 있었던 길을 이제 되돌려 걷는다. 비로소 그 옛날의 시간과 이어지는 기분이다.
어둠이 깊어지는 광장에서는 계속해서 공연이 진행되었다. ⓒ이선미
임시개장이어서 인위적인 시설을 설치하지 않는다는 서울시 입장을 보았다. 앞으로도 굳이 뭔가가 들어서지는 않아도 좋을 것 같다. 2025년부터는 '이건희기증관(가칭)'이 조성된다고 하는데 자연을 그대로 살리고 품은 건축물이 되기를 희망한다.
인위적인 시설 없이 이대로의 광장이 좋다. ⓒ이선미
송현동 부지는 개장 하루 만에 초고속으로 핫플레이스가 되어버렸다. 호젓하게 즐기기는 어렵게 됐지만 오며가며 서울 한복판의 넓은 공원을 만나는 시민들의 기쁨만으로도 덩달아 즐겁다. 서울이 더 걷기 좋은 도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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