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 야행이 수놓은 서울의 아름다운 밤
발행일 2022.10.06. 09:28
조선의 마지막 역사와 고종의 개혁 의지가 담겨있는 서울 정동. 정동은 우리가 자주 거닐면서도 잘 알지 못했던 ‘대한제국’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는 곳이다. 을사늑약이 체결됐던 중명전, 대한제국의 마지막 궁궐인 덕수궁 모두 정동에 있다.
이러한 정동의 문화를 야행을 통해 만났다. 바로 3년 만에 돌아온 ‘정동 야행’이다. 정동 야행은 ‘정동의 르네상스’라는 주제로 정동이 과거와 미래를 잇는 우리나라의 문화 중심지로의 정동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정동의 문화를 야행을 통해 만났다. 바로 3년 만에 돌아온 ‘정동 야행’이다. 정동 야행은 ‘정동의 르네상스’라는 주제로 정동이 과거와 미래를 잇는 우리나라의 문화 중심지로의 정동을 보여주었다.
정동 야행 플리마켓 전경 Ⓒ조수연
지난 9월 23일과 24일 양일 간 진행됐던 정동 야행을 문화재와 행사 두 개의 측면으로 나눠 살펴보려 한다.
먼저 덕수궁에는 5대 궁궐에서 유일한 서양식 건축물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사진 속 건물인 석조전이다. 석조전은 말 그대로 ‘돌로 쌓은 건물’이라는 뜻으로, 1897년 착공해 1910년 완공됐다.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시작돼 경술국치(庚戌國恥)가 일어났던 1910년에 완공된, 비운의 건물이기도 하다.
먼저 덕수궁에는 5대 궁궐에서 유일한 서양식 건축물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사진 속 건물인 석조전이다. 석조전은 말 그대로 ‘돌로 쌓은 건물’이라는 뜻으로, 1897년 착공해 1910년 완공됐다.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시작돼 경술국치(庚戌國恥)가 일어났던 1910년에 완공된, 비운의 건물이기도 하다.
비운의 역사를 가진 석조전 Ⓒ조수연
석조전은 일제강점기 때 고종이 귀빈 접대 및 만찬을 행하는 장소로 사용했다가 1933년에 일제가 덕수궁을 공원화하여 일반인에게 개방하면서 ‘이왕가미술관(李王家美術館)’으로 사용했다. 이후 석조전 좌측에 건물을 하나 더 짓고, 1938년에 이왕가미술관을 옮기고, 석조전은 근대일본미술진열관이라고 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석조전에 담긴 아픈 역사를 뒤로 하고, 돌담길이 보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덕수궁 돌담길’이다. 서울 걷기 좋은 길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덕수궁 돌담길은 수많은 노래의 가사에도 등장하는데, 흔히 연인이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반드시 헤어진다라는 속설도 있다. 왜냐하면 과거 덕수궁 돌담길이 ‘서울가정법원’으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바뀌었는데, 정동 야행에는 그 속설이 해당하지 않는 듯, 수많은 연인들이 정동 야행을 즐기고 있었다.
석조전에 담긴 아픈 역사를 뒤로 하고, 돌담길이 보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덕수궁 돌담길’이다. 서울 걷기 좋은 길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덕수궁 돌담길은 수많은 노래의 가사에도 등장하는데, 흔히 연인이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반드시 헤어진다라는 속설도 있다. 왜냐하면 과거 덕수궁 돌담길이 ‘서울가정법원’으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바뀌었는데, 정동 야행에는 그 속설이 해당하지 않는 듯, 수많은 연인들이 정동 야행을 즐기고 있었다.
덕수궁 돌담길을 거니는 사람들 Ⓒ조수연
돌담길을 따라 걸어가면 정동 로터리가 나오고, 정동교회가 보인다. 이문세의 노래 ‘광화문 연가’에 나오는 ‘눈 덮인 교회당’이 정동교회인 셈이다. 정동에는 낙엽 떨군 가로수, 옛 러시아 공사관과 아담한 찻집 등은 정동길에서 만나는 회상의 오브제이기도 하다.
플리마켓도 열려 다양한 수공예품이 발길을 붙잡았다. Ⓒ조수연
정동이 남긴 문화 아래, 화려하게 막오른 정동 야행은 볼거리가 상당히 풍부했다. 먼저 플리마켓이다. 다양한 수공예품이 한데 전시됐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생활에 유용한 수공예품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기 충분했다.
정동 야행을 둘러보는 중, 노랫소리에 저절로 발걸음이 옮겨졌다. 이날 같이 온 친구들도 노랫소리를 찾아 떠났다. 바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된 ‘구석구석 라이브’ 였다. 두 청년은 꿈에 대해 노래하고 있었다.
정동 야행을 둘러보는 중, 노랫소리에 저절로 발걸음이 옮겨졌다. 이날 같이 온 친구들도 노랫소리를 찾아 떠났다. 바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된 ‘구석구석 라이브’ 였다. 두 청년은 꿈에 대해 노래하고 있었다.
서울시립미술관 구석구석 라이브 Ⓒ조수연
“저는 대학에서 드럼을 전공했습니다. 드럼을 전공했으니까 밴드에서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도 했죠. 하지만, 전 노래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나와 있습니다. 저에게는 이 자리가 시작입니다. 그래서 가호의 시작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꿈을 가지고 계시나요? 옛날 어렸을 때 우리는 누구나 꿈을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무엇이 되고 싶어요!’라고 자신 있게 말했던 옛 모습은 어디 있나요? 지금 우리는 꿈을 물어봤을 때, 자리를 피하거나 대답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꿈과 관련한 노래. 봄여름가을겨울의 어떤이의 꿈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꿈을 가지고 계시나요? 옛날 어렸을 때 우리는 누구나 꿈을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무엇이 되고 싶어요!’라고 자신 있게 말했던 옛 모습은 어디 있나요? 지금 우리는 꿈을 물어봤을 때, 자리를 피하거나 대답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꿈과 관련한 노래. 봄여름가을겨울의 어떤이의 꿈을 들려드리겠습니다.”
가호의 시작 - 구석구석라이브
이 날의 백미는 정동로터리에서 진행된 대취타 연주였다. 대한제국 밤의 수문장 대취타 연주는 약 10분 동안 진행됐지만, 모든 사람이 발걸음을 멈추고 감상했다. 대취타는 조선시대에 관리들의 공식적인 행차에 따르는 행진 음악이다. 부는 악기인 취(吹)악기와 때리는 악기인 타(打)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이라는 뜻에서 ‘대취타(大吹打)’라는 곡명이 붙여졌다. 이른바 행진곡인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 행진곡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정동로터리 무대에서 진행된 대취타 공연
정동 야행은 우리에게 시작과 꿈, 문화재로 만나는 120~130년 전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구한말이라고 불렸던 대한제국의 꿈과 희망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개화기, 역사의 현장과 정치의 중심에 있었던 정동. 정동 야행으로 그동안 수없이 왔던 정동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정동 야행' 행사는 끝났지만, 10월 6일부터 8일까지 ‘시월 정동’ 축제가 열려 정동의 역사와 문화, 다양한 볼거리는 계속 만나볼 수 있다.
'정동 야행' 행사는 끝났지만, 10월 6일부터 8일까지 ‘시월 정동’ 축제가 열려 정동의 역사와 문화, 다양한 볼거리는 계속 만나볼 수 있다.
시월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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