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서울 모습이 촤라락! 10년만에 새단장한 '서울역사박물관'
발행일 2022.07.25. 11:00
수도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체험과 전시가 가득
수도 서울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곳. 바로 2002년에 개관한 서울역사박물관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서울올림픽 준비가 한창이던 1985년,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을 만들자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제기되며 세상에 알려졌고, 1993년 현 건물이 완공됐다.
이후 월드컵을 앞둔 2002년 봄 개관했고, 개관 이후 전시와 조사연구, 아카이브 및 보존처리 등 박물관 본연의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했는데, 특히 개관 이후부터 20년 동안 계속된 기획전시는 서울의 못다한 이야기를 시민에게 전해주고 있다. 강남 40년의 역사를 담은 특별전, 서울과 베이징, 도쿄 등 동북아 3개 국가의 수도 이야기, 지하철 1호선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기획전시는 서울역사박물관의 랜드마크였다.
이후 월드컵을 앞둔 2002년 봄 개관했고, 개관 이후 전시와 조사연구, 아카이브 및 보존처리 등 박물관 본연의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했는데, 특히 개관 이후부터 20년 동안 계속된 기획전시는 서울의 못다한 이야기를 시민에게 전해주고 있다. 강남 40년의 역사를 담은 특별전, 서울과 베이징, 도쿄 등 동북아 3개 국가의 수도 이야기, 지하철 1호선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기획전시는 서울역사박물관의 랜드마크였다.
서울역사박물관에 대한 설명 ⓒ심재혁
하지만, 20년이라는 세월은 상설전시의 재미를 떨어트렸다. '보는' 박물관에서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박물관으로 변화하는 지금, 서울역사박물관의 상설전시는 지루하기도 했다. 이에 서울시는 리모델링을 단행했다. 10년만에 바뀐 상설전시관은 1존을 제외한 2, 3, 4존 모두 바꿨는데, 조선 시대의 서울을 제외한 근현대사의 서울의 전시를 모두 변경했다.
20년 동안 계속된 기획전시 ⓒ심재혁
상설전시관 2존은 '개항과 대한제국기의 서울'을 담았다. 가장 먼저 ‘개화의 거리, 종로 디지털 영상 체험존’이 관람객을 반겼다. 25m 길이의 터널 양벽으로 1900년대 개화기 당시 종로의 모습을 디지털 영상으로 재현했다.
19세기 중반, 개항을 맞은 서울은 전통과 서양의 근대가 공존하는 지역이었다. 그동안 전통 양식으로 생활했던 서울 시민들은 호롱불 대신 전기가 들어오고, 인력거 대신 전차가 다니는 모습을 지켜봤다. 새로운 문물이 일상생활에 들어오면서 적잖은 변화가 생긴 서울이다.
19세기 중반, 개항을 맞은 서울은 전통과 서양의 근대가 공존하는 지역이었다. 그동안 전통 양식으로 생활했던 서울 시민들은 호롱불 대신 전기가 들어오고, 인력거 대신 전차가 다니는 모습을 지켜봤다. 새로운 문물이 일상생활에 들어오면서 적잖은 변화가 생긴 서울이다.
거울과 전차, 전기의 등장은 생활양식을 바꿔놓았다 ⓒ심재혁
서울역사박물관은 그동안 모은 800여 점의 사료(史料)를 통해 150년 전의 서울을 소개하고 있었다. 아래 사진은 대한제국 시기의 여권이다. 조선에서 근대국가인 대한제국으로 변하면서 여권을 발급했는데, ‘황제’를 상징하는 오얏꽃(자두꽃)과 태극기가 그려져 있다.
대한제국 시기 발행된 여권. 상단에 오얏꽃과 태극기가 그려져있다. ⓒ심재혁
근대사회로 변화하면서 서울에는 근대 신문도 발행됐다. 바로 한성순보와 한성주보다. 한성순보(1883)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으로 박문국에서 발간했다. 한성순보는 ‘순’이라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 10일 간격으로 나왔고, 갑신정변으로 박문국이 소실되자 1885년 교동에 자리를 옮겨 한성주보를 발행했다. ‘주’라는 말이 들어간 한성주보는 일주일 간격으로 발행했다.
고종황제가 덕수궁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대한제국시기 정치의 중심지는 정동으로 변했다. 따라서 정동에는 서양의 공사관과 함께 교회 등이 설립됐고, 정동은 이 시기에 상당한 발전을 이뤘다. 정동이 정치의 중심지였다면, 종로는 경제의 중심지였다. 조선후기부터 시전상인들이 종로에 터를 꾸렸고, 종로는 일제강점기까지 수도 서울의 대표 상권으로 군림했다.
고종황제가 덕수궁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대한제국시기 정치의 중심지는 정동으로 변했다. 따라서 정동에는 서양의 공사관과 함께 교회 등이 설립됐고, 정동은 이 시기에 상당한 발전을 이뤘다. 정동이 정치의 중심지였다면, 종로는 경제의 중심지였다. 조선후기부터 시전상인들이 종로에 터를 꾸렸고, 종로는 일제강점기까지 수도 서울의 대표 상권으로 군림했다.
한성순보와 한성주보 ⓒ심재혁
상설전시관 3존은 일제강점기의 서울의 모습을 다뤘다. 대한제국까지 수도 서울의 책임자는 한성판윤이었다.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으로도 불리던 한성판윤은 오늘날의 서울특별시장으로 일제강점기에는 한성부가 경성부로 격하됐다.
대륙침략의 발판이었던 한반도. 그 중심에 있었던 서울은 일제의 식민 통치에 편리하게 변했다. 과거 대한제국 시대의 국권을 상징하던 건축물은 파괴됐고, 창경궁은 창경원으로 격하됐다. 조선의 궁궐이 동물원이 된 셈이다. 이후 도시 행정과 관리는 일본인의 편익을 우선시했는데, 1936년 경성부의 영역을 확대해 전쟁 물자 생산시설들을 재배치했다.
1936년 당시의 경성시가지계획평면도와 경성부명세신지도를 살펴보면 오늘날 서울과 비슷한 모습을 띄는데, 일제는 경성부를 계속 확대하면서 거대도시로의 서울을 만들었다.
대륙침략의 발판이었던 한반도. 그 중심에 있었던 서울은 일제의 식민 통치에 편리하게 변했다. 과거 대한제국 시대의 국권을 상징하던 건축물은 파괴됐고, 창경궁은 창경원으로 격하됐다. 조선의 궁궐이 동물원이 된 셈이다. 이후 도시 행정과 관리는 일본인의 편익을 우선시했는데, 1936년 경성부의 영역을 확대해 전쟁 물자 생산시설들을 재배치했다.
1936년 당시의 경성시가지계획평면도와 경성부명세신지도를 살펴보면 오늘날 서울과 비슷한 모습을 띄는데, 일제는 경성부를 계속 확대하면서 거대도시로의 서울을 만들었다.
1936년 당시의 '경성시가지계획평면도'와 '경성부명세신지도' ⓒ심재혁
서울에서는 독립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기도 했다. 고종의 서거로 촉발한 3.1운동과 순종의 장례식에 맞춰 벌인 6.10 만세운동 모두 서울이 중심지였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3.1운동과 6.10 만세운동에 대해 사료와 함께 자세히 설명해놓았는데, 일제강점기 서울에 있었던 대표적인 독립운동을 소개한 점이 좋았다.
3.1운동과 6.10 만세운동에 대한 설명과 전시자료들 ⓒ심재혁
한쪽에는 1930년대를 상징하는 모던 걸, 모던 보이가 즐겼던 대중가요를 소개했다. 1930년대는 유성기와 LP판의 보급으로 대중가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 1930년대에는 민요를 바탕으로 한 신민요 열풍이 시작됐고, 재즈 음악도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김해송과 같은 가수가 활약했는데, 이들은 ‘선술집 풍경’과 같은 노래를 통해 식민지 청년의 무기력함, 서울 도시민의 모습 등을 노래로 표현했다.
유성기의 보급은 대중가요 시대를 열었다 ⓒ심재혁
상설전시관 4존에서는 해방 이후의 서울을 담았다. 해방 이후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로 지정됐는데, ‘정부 수립 기념 사진엽서’와 정부수립 전후의 사료들은 당시 서울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었다.
정부 수립 기념 사진엽서 등 다양한 정부 수립 기념 우표, 사진들 ⓒ심재혁
이후 서울은 본격적인 ‘건설붐’을 맞는데, 도로 건설과 지하철 건설, 아파트 건설 등이 이뤄진다. 서울역사박물관에도 포크레인을 전시하면서 ‘돌격건설’이라는 표어를 사용했는데,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했던 김현옥 시장이 군 출신으로 건설을 군사작전 하듯이 지휘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때 세종대로와 명동을 확장했고, 세운상가를 지었다. 한강 북쪽에 제방을 놓아 강변북로를 만들었고, 여의도에 제방을 쌓아 여의도 개발을 시작했다. 청계고가도로로 대표되는 고가도로도 역시 이 시기에 놓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이 때 세종대로와 명동을 확장했고, 세운상가를 지었다. 한강 북쪽에 제방을 놓아 강변북로를 만들었고, 여의도에 제방을 쌓아 여의도 개발을 시작했다. 청계고가도로로 대표되는 고가도로도 역시 이 시기에 놓아지기 시작했다.
'돌격건설'이 적힌 포크레인 ⓒ심재혁
서울고속버스터미널도 1970년대 착공했고, 한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한강대교와 한남대교 등에 불과해 '제3한강교(한남대교)'라고도 불렸던 한강다리를 대대적으로 조성하기도 했다. 현재는 한강에 27개의 한강다리(시계외 교량은 제외)가 놓여있다. 지하철도 1974년에 서울역~청량리를 운행하는 1호선이 개통됐고, 이후 2호선, 3호선, 4호선이 모두 1980년대에 준공됐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준공 기념품 ⓒ심재혁
서울 건설의 마지막이자 핵심은 바로 아파트. 2014년 철거된 서초삼호아파트의 한 호의 모습을 재현했는데, 당시 중산층의 주거 형태 및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외에 현재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상설전시관 4존은 마무리된다. 밀레니엄 서울의 모습을 600년 역사도시, 보행자 위주의 매력 있는 시민생활공간, 개발과 보존의 조화, 균형 발전, 다양성&생동감, 경제적 활력 등의 키워드로 나타냈는데, 서울의 모습을 최신 박물관의 트렌드에 맞게 자세히 전시해 놓았다.
그 외에 현재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상설전시관 4존은 마무리된다. 밀레니엄 서울의 모습을 600년 역사도시, 보행자 위주의 매력 있는 시민생활공간, 개발과 보존의 조화, 균형 발전, 다양성&생동감, 경제적 활력 등의 키워드로 나타냈는데, 서울의 모습을 최신 박물관의 트렌드에 맞게 자세히 전시해 놓았다.
1970~2000년대 초반 서울 중산층의 거실을 재현했다. ⓒ심재혁
600년 넘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도 서울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서울역사박물관. 10년 만에 바뀐 상설전시관에서 여름방학을 맞은 자녀들과 함께 알지 못했던 서울의 이모저모를 체험한다면 유익한 시간이 될 것 같다.
서울역사박물관
○ 위치: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55
○ 교통: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7번 출구,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에서 도보 7~8분
○ 관람시간: 09:00~18:00 (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
○ 관람료: 무료
○ 홈페이지
○ 문의: 02-724-0274~6
○ 교통: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7번 출구,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에서 도보 7~8분
○ 관람시간: 09:00~18:00 (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
○ 관람료: 무료
○ 홈페이지
○ 문의: 02-724-02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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