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촬영 범죄자 잡은 '지하철 의인' 만나다!

시민기자 윤혜숙

발행일 2021.08.19. 16:03

수정일 2021.08.1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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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에는 승객들이 이용하는 계단과 에스컬레이터가 많다.
지하철역에는 승객들이 이용하는 계단과 에스컬레이터가 많다. ⓒ윤혜숙

오전 8시가 가까워지자 전철역은 수많은 승객들로 가득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사통팔달 연결된 지하철은 출·퇴근 시간 이동하는 승객들로 붐빈다. 일시적으로 사람이 많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지하철역에서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3월 25일 오전 8시경, 여느 날처럼 출근하던 길이었던 최현웅 씨는 에스컬레이터에 탑승했다가 직감적으로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현웅 씨 앞에 탑승했던 남성이 여성 뒤에 바짝 붙어서 카메라로 몰래 신체를 촬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수상한 남성은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듯 아주 빠른 속도로 다급하게 그곳을 빠져나갔다. 

최현웅 씨는 처음 그런 장면을 목격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어쩌면 내가 잘못 보고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을 거야’라는 생각에 일단 사무실로 출근했다. 그런데 자꾸만 그 일이 생각나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문득 경찰서에 근무하는 친구가 떠올랐다. 친구에게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고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지를 문의했다. 친구로부터 지체 없이 112에 신고하라는 답을 들었다. 그때 마침 최 씨가 근무하는 은행을 방문한 영등포시장역의 역장에게 아침에 목격했던 일을 설명하고 역장의 연락처까지 확보했다.
사건이 발생했던 영등포시장역에서 최현웅 씨를 만났다.
사건이 발생했던 영등포시장역에서 최현웅 씨를 만났다. ⓒ윤혜숙

바로 다음날 오전 8시 21분경 영등포시장역에서 출근하다가 전날 봤던 남성을 봤다. 어제처럼 앞에 있는 여성의 신체를 카메라로 몰래 촬영하고 있었다. 오늘도 그 장면을 보니 확신이 생겼다. 자신이 이틀 연속 목격한 것을 보니, 상습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 씨는 바로 112에 신고하고, 영등포시장역의 역장에게 전화로 상황을 알렸다. 역장이 바로 에스컬레이터 앞으로 달려왔고 그 모습을 본 남성은 얼른 휴대전화를 들고 자신이 촬영한 사진들을 삭제하고 있었다. 최 씨는 역장에게 남성을 인계하고 사무실로 출근했다. 

그리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최 씨는 경찰서에 가서 목격자 진술을 했다. 그때 담당 경찰이 범인의 휴대전화를 디지털포렌식한다고 했다. 디지털포렌식은 PC나 노트북, 휴대전화 등 각종 저장 매체 또는 인터넷상에 남아 있는 각종 디지털 정보를 분석해 범죄 단서를 찾는 수사기법을 말한다. 범인이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문서나 사진 등의 자료를 삭제했다고 해도 그것을 복원할 수 있다. 최 씨는 범인을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사건을 잊은 채 지내고 있었다. 
최현웅 씨가 영등포시장역 사무실에서 감사패를 받고 있다. ⓒ최현웅
최현웅 씨가 영등포시장역 사무실에서 감사패를 받고 있다. ⓒ최현웅

서울교통공사는 올해 상반기 서울 지하철 1~8호선에서 승객 구조, 안전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선 ‘지하철 의인’ 총 7명을 선정했다. 공사는 7월 28일부터 30일까지 3일간 선정된 의인들이 각각 활약했던 역으로 이들을 초청해서 포상금과 감사패 등을 지급하며 감사의 뜻을 표하고 이들의 의로운 행동을 기렸다. 7명 중에 최현웅 씨도 포함되어 있다. 

최현웅 씨는 바쁜 출근 시간대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날카로운 눈썰미로 불법 촬영 범행 현장을 목격했다. 재빠르게 역에 알리고 범인 검거를 돕는 등 지하철에서 정의를 실천하여 의인으로 선정됐다. 필자가 영등포시장역에서 최현웅 씨를 직접 만나서 인터뷰했다. 
최현웅 씨가 불법 촬영 범행 현장을 목격했을 때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최현웅 씨가 불법 촬영 범행 현장을 목격했을 때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윤혜숙

최 씨는 “이번에 의인으로 선정되신 나머지 여섯 분이 저보다 훨씬 뛰어나신 것 같아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보다 더 뛰어난 일은 없어요. 다른 분들은 자칫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위기 상황에서 활약하셨어요”라고 말한다. 

이번에 지하철 의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된 황수호 씨는 지난 7월 3일 새벽 3시 42분경, 우연히 길동역 대합실에 설치된 물통 받침대 등이 불에 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를 재빨리 진화하여, 역의 안전을 ‘수호’한 공을 인정받았다. 이봉원 씨, 오기운 씨는 지난 2월 26일 9시 34분경 응암역 승강장에서 쓰러진 중년 남성에게 역 직원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것을 보고, 함께 남성의 손과 다리를 주무르며 혈액이 순환하도록 돕는 등 생명을 구하기 위해 힘썼다. 백나영 씨, 오승주 씨, 윤수빈 씨도 지난 2월 5일 19시 45분경 3호선 양재역 승강장에서 갑자기 쓰러진 승객을 구하는 데 큰 활약을 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역 화장실의 불법 촬영 카메라를 점검 중이다.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역 화장실의 불법 촬영 카메라를 점검 중이다. ⓒ윤혜숙

하지만 필자는 최 씨의 행동이 생명을 구한 것 이상으로 의미 있다고 본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카메라 불법 촬영의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의도 때문이다. 현재 국민 95%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남녀노소 누구든 스마트폰에 장착된 카메라로 쉽게 촬영할 수 있다. 그만큼 카메라 불법 촬영에 따른 범죄도 늘어나고 있다. 지하철이나 공중화장실에서 몰래 타인의 신체를 촬영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최 씨는 “에스컬레이터에 탑승할 땐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어둡니다. 제가 불법으로 촬영하지 않는다고 해도 누군가로부터 의심받을 수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에스컬레이터나 계단을 이용하는 분들은 새겨듣고 실천할 말이다. 스마트폰을 보고 이동하면 위험할 수도 있는 데다 굳이 주위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줄 필요는 없다.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서 불법 촬영하는 것은 범죄 행위다.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서 불법 촬영하는 것은 범죄 행위다. ⓒ윤혜숙

최현웅 씨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이동 중에도 그냥 지나치지 말아 달라”라면서 “사정상 내가 직접 나서지 못한다면 재빨리 112나 119에 신고하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각박하고 메마른 사회에 사람 사이의 정을 나누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지하철 의인과의 인터뷰는 유쾌했다. 그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20대 청년이었다. 하지만 범죄 현장을 목격하고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의 정의로운 모습에서 우리의 밝은 미래를 보았다.  

시민기자 윤혜숙

시와 에세이를 쓰는 작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다양한 현장의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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