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년 전 '뚝섬 만세운동'을 아시나요?

시민기자 조시승

발행일 2021.03.03. 14:00

수정일 2021.03.03.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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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섬만세운동 기념비의 모습.
뚝섬만세운동 기념비의 모습. ⓒ조시승

1919년 3월 1일 기미 독립선언서가 인사동 태화관에서 낭독된 지도 벌써 102년의 세월이 흘렀다. 처음 만세운동이 종교인 등 민족대표나 학생층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후에 농민, 노동자로 들불처럼 번져나가던 또 하나의 만세운동이 있었다. 당시 서울(경성) 주변을 둘러싼 지역 (당시 고양군) 전체에서 가장 크고 격렬한 만세운동이 성동(뚝섬지역)에서 진행됐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뚝섬만세운동기념비 작품설명판.  민중들이 만세를 외치는 두 팔을 모티브로 했다. 배수영작가가 디자인, 김준만조각가가 제작했다.
뚝섬만세운동기념비 작품설명판. 민중들이 만세를 외치는 두 팔을 모티브로 했다. ⓒ조시승

1919년, 당시 경기도 고양군은 한지면과 뚝도면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뚝도면은 지금의 광진, 잠실, 면목동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이었고 성수동 지역이 바로 면사무소 소재지로 뚝도면의 중심지였다. 성동구는 성동역사문화연구회와 함께 성동문화역사 사업을 추진하던 중 한 주민으로부터 뚝섬에서 일어난 3·1만세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점검하게 됐는데, 당시 뚝섬에 우체국 관사, 지주집 등 많은 역사적 사료를 토대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뚝섬만세운동 기념비 제막식이 지난 1일 철저한 방역 속에서 진행됐다.
뚝섬만세운동 기념비 제막식이 지난 1일 철저한 방역 속에서 진행됐다. ⓒ조시승

4소문 중 하나인 광희문을 통해 한양도성을 나오면 동녁으로 전개되는 들녘이 있었는데 이 들녘을 동교 또는 전교(화살을 꽂았다는 의미. 우리말로 살곶이)라 불렀다. 한양도성의 동녘은 성동이다. 성동의 성수동지역은 면사무소 소재지로 뚝도면의 중심가뿐 아니라 한강을 접한 지역으로 물류의 중심지였다. 이 곳 평화로운 고장 성동의 뚝도에서 만세운동의 물결이 일었고 경성 주변을 둘러 싼 지역에서 가장 큰 함성이 울렸다. 그날의 함성은 어떤 과정으로 전개되었고 규모는 어떠했을까? 성동역사문화연구회에서 발간한 ‘뚝섬삼일운동’은 다음과 같이 실감나게 서술하고 있다.
그날의 희생자를 기억하는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그날의 희생자를 기억하는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조시승

3.1운동 당시 고양군에 속해있던 뚝섬(현재의 성수동 일대)은 서울시민을 위한 땔감의 양륙지였다. 지리적 특성상 뚝섬 주민들 대부분이 뗏목에 실려 온 땔감을 내려 달구지나 지게로 한양으로 옮기는 일에 종사했다. 뚝섬만세운동 주도자 대부분도 짐꾼, 달구지꾼, 노동자들이었다. 뚝섬지역의 만세운동은 3월12일과 26일 두 차례 일어났다. 3월12일 운동은 둑도간이농업학교와 둑도 공립보통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두 번째 운동은 며칠 전부터 유인물이 가가호호 뿌려진 것으로 보아 조직적으로 큰 규모로 준비했던 것이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제막행사 후 내빈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제막행사 후 내빈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시승

‘3월 26일 우물앞으로 나오라!’ 유인물을 보고 모인 1,500여명의 민중들은 수탈과 탄압의 중심지인 면사무소와 헌병주재소를 포위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시위가 마무리되는 과정에 헌병대측과 교섭으로 해산하려던 중 증파된 일본헌병의 무차별 발포로 사망 1명과 12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103명이 일제에 체포되었다. 이날 일본측도 헌병오장1명, 상등병2명, 일본인 소방수3명이 부상입었을 정도로 고양군에서의 시위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격렬한 시위였다.
행사 참여자들이 태극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행사 참여자들이 태극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조시승

102년이 지난 2021년 3월 1일 일제로부터 자주독립을 이루려는 만세의 시위와 함성이 울렸던 이곳 성수동 뚝섬문화공원에서 ‘뚝섬만세운동 기념비건립’ 행사가 열렸다. 비가 오는 가운데 비옷을 입고 우산을 받쳐들며 그날의 의의를 되새기며 기억하는 뜻깊은 기념행사였다.

그날의 희생자를 기억하는 묵념에 이어 기념비 제막식과 기념촬영, 감사패 수여 및 내빈축사 태극기 퍼포먼스로 이어진 행사에 50여명의 참석자 외 100여명의 참관인이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함께 동참하면서 의미를 되새겼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기념사에서 “뚝섬만세운동 기념비가 3·1운동후 102년만에 건립되어 늦은 감이 있지만 향후 초·중·고등학생 등 청소년들에게 역사적 교육자료로 활용될 것과 이 뚝섬만세운동의 정신이 후대와 함께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뚝섬만세운동기념비 제작에 기여한 배수영작가가 감사패를 받았다.
뚝섬만세운동기념비 제작에 기여한 배수영작가가 감사패를 받았다. ⓒ조시승

이날 행사에서는 기념비 제작에 기여한 공로로 배수영작가와 사료발굴에 이바지한 공로로 성동역사문화연구회 박영천사무국장 등이 감사패를 받았다. 기념비는 ‘민중들이 만세를 외치는 두 팔을 모티브로 다른 석조가 만나 하나의 마음을 만들어 표현되는 성동구의 희망’을 표현했다. 설치미술가 배수영작가가 디자인하고 성동역사문화연구회의 자문을 통해 기념비 문구를 삽입했다.

‘님들이 있어 우리의 민주주의, 독립국가는 현실이 되어 갔습니다. 님들의 용기와 희생,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성동역사문화연구회가 구청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성동역사문화연구회가 구청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조시승

시민기자 조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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