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길엔 가로수가 없다

admin

발행일 2010.06.14. 00:00

수정일 2010.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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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동 가로수길이 서울을 대표하는 거리로 자리매김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TBWA KOREA가 위치한 J-타워에서 압구정 현대고등학교 근처까지 해당하는 가로수길은 원래 압구정로 남5길이다. 삼청동과 마찬가지로 80년대 초 가난한 미술가 및 화랑이 가로수길로 이전하기 시작했기에 가로수길은 한국판 소호거리로 불렸다. 요즘에는 젊은이들이 즐겨찾는 카페, 브런치식당, 디자이너샵 등이 특히 큰 인기다. 날씨 좋은 주말에, 가로수길은 젊음과 패션의 거리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명백히 가로수길은 최근 서울의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곳에 틀림없다.

그 유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가로수길로 인구가 유입되기 시작했던 80년대 초를 지나 본격적인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만 해도 이곳에는 가로수가 풍성했다. 거리 양 옆으로 은행나무가 풍성히 조성되어 있었고, 여름과 가을이면 이 길을 걷는 사람들로 거리는 북적였다. 서울시가 디자인서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도로정비 및 가로수 조성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최근이었으니, 예전의 가로수길이 형성될 무렵에는 지금처럼 모든 거리마다 가로수가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예술과 패션의 문화가 살아숨쉬는 압구정로 남5길은 그 전망 따라 가로수길로 불리기 시작했고, 이것이 우리가 오늘날 걷고 있는 가로수길의 유래다. 가로수길은 이제 그 어원을 넘어 하나의 독특한 브랜드가 되었다. 인사동과 같이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청담동처럼 화려함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자유분방함이 그것이다.

그러나 현재 신사동 가로수길에는 가로수가 없다. 가로수길이라는 이름을 만든 바로 그 은행나무가 사라지고 있다. 지난 3월 가로수길을 찾았을 때 가장 놀라웠던 것은 길가의 나무들이 가지가 모두 잘려져 있던 모습이었다. 올해 봄은 유난히 날씨가 차가웠기에 수종 보호조치라고 여겼지만, 여름이 되어 다시 찾은 가로수길은 더욱 앙상하게 변해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은행나무가 풍성하게 조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압구정 현대고등학교에서 J-타워까지를 걸으며 이곳이 가로수길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지금 그곳엔 황량함만 가득했다.

길가에 세워져 있는 나무를 가로수라고 부르기에는 가지가 모두 잘려져 나가 있으며 그나마 남아 있는 것도 지중매립되지 않은 전봇대 때문에 흉물스럽게 얽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작년 가을 이후 가로수길의 최근 변화는 정말 놀랍다. 추운 날씨로 인한 가로수 보호 차원에서 이런 조치가 이루어진 것도 아니며, 일관성 있게 가로수를 모두 재정비한 것도 아니다. 이에 대해 강남구청 공원녹지과는 “작년 가로수길 보도블럭을 교체하며 뿌리가 잘려나간 일부 나무에 대해 가지치기를 실시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보도블럭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지반이 낮아졌고, 일부 나무들이 뿌리가 잘리게 되었다. 이에 강남구는 지난 겨울부터 말라붙은 가지 및 잎사귀를 제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또한 고압선에 얽힌 가지를 정리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일본은 체계적으로 그리고 정성을 들여 가로수를 정비하고 있다. 일본 도쿄 오모테산도 거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오모테산도는 도쿄 미나토~시부야 사이의 거리로,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하라주쿠 역에서 내려 걸어갈 만한 곳으로 유명하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2006년 건축한 「오모테산도 힐즈」등 패션, 디자인, 쇼핑의 거리인 이곳은 흔히 '도쿄의 샹젤리제'라고 불리운다. 그러나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거리에 훌륭히 조성되어 있는 가로수다. 이 거리의 상징인 느티나무를 본따 외관을 조형한 건물들이 곳곳에 있는가 하면, 거대하게 자라 있는 가로수들을 단지 경관에 저해가 된다거나, 안내판을 가린다거나, 건물 외형을 가린다는 이유로 잘라내거나 철거하지 않는 자세다. 오모테산도 거리에 위치한 토즈, 프라다 건물을 보면 가로수와 건물 외형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들에게 가로수가 점점 자란다는 것은 건물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건물의 일부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멀리 해외에서 그 사례를 찾을 것만도 아니다. 실제로 가로수길 초입 맞은편 현대고등학교 방면 거리에는 가로수가 풍부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오히려 가로수길 이정표가 가리키는 가로수길의 앙상함이 부끄러울 정도로 가로수길은 죽어가고 있다. 물론 서울시와 각 구청이 의욕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거리조성사업 결과 서울의 거리는 놀랍도록 변해왔다. 2009년 실시한 거리정비사업 결과 울퉁불퉁 나 있는 보도는 깔끔하게 정비되었고 그 형태와 색에 있어서도 점점 통일성을 갖춰가고 있다. 더 튼튼하고 아름다운 수종으로 가로수를 새로 심거나 조례를 개정하여 길거리의 이정표 및 신호등도 점점 디자인서울의 한 축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강남구청 역시 지속적으로 가로수길 환경미화사업 및 거리조성사업을 통해 더욱 시민들이 찾고 싶은 거리로 만들려는 노력이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가로수길은 은행나무가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던 그 가로수길이 아니다. 시민들이 가을이면 조용히 차를 마시며 가로수를 옆에 두고 걷던 그 가로수길이 아니다. 지금 신사동 가로수길엔 가로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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