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밤을 밝힌 서커스 무대

admin

발행일 2010.06.07. 00:00

수정일 2010.06.07. 00:00

조회 1,831

어릴 적 동네에 서커스단이 왔다. 일주일 전부터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가 공연을 알리고 있었다. 불을 뿜는 기인의 모습과 코끼리는 꼬마들에게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 드디어 공터에 붉은 천막이 쳐지자, 꼬마의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다. 아버지를 졸라 표를 끊고 들어간 장막 속 세상은 별천지였다. 삐에로가 웃는 듯하면서도 우는 묘한 표정으로 꼬마를 맞았다. 외줄을 타고 공중으로 치솟는 미녀의 몸짓은 탄성을 절로 터지게 했다. 항아리가 빙빙 돌았다. 꼬마의 고개도 빙빙 돌았다. 기분 좋은 현기증이었다. 스릴이 이런 것이구나. 아슬아슬하다. 사람과 사람이 손을 맞잡고 공중으로 치솟을 때, 꼬마의 가슴은 최고조로 뛰었다. 기예의 극점에 달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커스는 인간이 꿈꾸는 판타지를 보여준다. 새처럼 공중을 날고 싶은 욕망을 외줄에 매달린 공중제비로 실현시킨다. 캐나다 출신의 곡예사 랄리베르테가 창설한 '태양의 서커스'는 연간 8억 달러의 막대한 수익을 낸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도 제대로 된 서커스가 있을까? 우리 귀에 이름도 익숙한 동춘 서커스단이 있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이어져 온 역사가 깊다. 60~70년대에는 소속 단원이 250명이 넘었다고 한다. 서영춘, 배삼룡 같은 스타들을 배출할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방송과 영화 상영관의 호황으로 쇠락의 길을 걷는다. 한 때 폐업의 위기를 맞은 적도 있었다. 현재는 서울 경마장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관객에게 신기한 서커스의 정수를 보여주며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민족의 애환과 함께 이어져온 동춘 서커스! 주말에 서울광장에서 만나 볼 수 있었다. 스마트 폰을 통해 정보를 검색하고 인공위성에서 쏘아주는 지도를 보며 길을 찾는 세상이다. 그런데 인간의 몸으로 승부하는 서커스라니! 그것도 명맥이 끊길 뻔한 국내 토종 서커스단의 곡예다. 과연 아날로그적인 사람의 몸짓이 큰 감동을 줄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낡았다고 요즘 관객에게 외면당하지는 않을까? 그러나 그것은 괜한 걱정이었다. 동춘 서커스단의 공연은 충분히 재미가 있었다.

코믹 요소가 들어간 저글링이 곡예사의 손에서 빙글빙글 돈다. 관객석에서 꼬마를 데리고 와 즉석으로 공연을 함께 한다. 신기하게도 곡예사가 넘긴 접시가 꼬마의 손에서 잘도 돈다. 여기저기서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넘친다. 이것이다. 서커스의 매력! 공연 안에 사람이 담겨 있다. 곡예사의 기예가 보는 이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마음까지 함께 움직인다. 탄성과 탄성이 연신 터진다. 집단 인간쌓기를 하는 단원들이 하나 둘 나와 점점 큰 인간 탑이 쌓아진다.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 제 키보다 높이 올라갈 수 없다. 그러나 인간과 인간의 연대의 힘은 저리도 아름다운 예술을 만들 수 있다.

외줄을 타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무희의 아련한 몸짓으로 마지막 공연이 끝났다.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었다. 서커스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장내 아나운서는 연습생이 무대에 오른 기초적인 공연만 닦는 데도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동춘 서커스단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 외국 유명 서커스를 능가하는 우리만의 멋진 서커스 기술을 펼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시간과 자본만 지속적으로 투자되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오랜만에 인간의 수련이 극점에 달했을 때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다. 동춘 서커스단의 화려함이 주말의 밤을 환하게 밝혔다.

시민기자/최근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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