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의 기묘한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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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9.09.08. 00:00
시민기자 고은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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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혀 있던’ 옛 국군기무사령부 건물(이하 기무사)이 드디어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플랫폼 2009’의 일환으로 펼쳐지는 ‘플랫폼 인 기무사’란 이름의 전시로, 그것도 101개나 되는 방대한 작품들과 함께. 일찍부터 이 전시를 기다려왔던 기자는 기무사를 '감히' 전시공간으로 사용한 이 특이한 행사가 개막하는 날, 모든 일을 제치고 달려갔다. 옛 기무사 건물은 건축가 박길용(1898-1943)이 설계한 것으로 근대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 건물의 역사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일제 강점기인 1928년에 경성의학전문대학교 부속병원으로 개원한 이후, 광복 후에는 서울대 의과대학 부속병원, 6.25 전쟁 중에는 육군통합병원으로, 1971년부터는 보안사령부 건물로 사용되었다. 군사정권 시절 정치군인이 많았던 이곳은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과 신군부의 등장, 5공 정권의 탄생을 거치며 민주화 세력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12.12사태 직후 신군부가 쿠데타 성공을 자축한 곳이자, 보안사(국군보안사령부, 후일에 기무사로 개명)의 비밀을 폭로한 윤석양 이병이 심문을 당했던 서빙고분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년 2010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분관으로 새롭게 변신하게 된다.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기무사의 본관, 식당, 별관 등을 전시를 위해 바꾸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활용했다는 사실이다. 내년 미술관 개장에 앞서 리모델링 이전의 역사를 고이 간직하고 있는 기무사를 볼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겉보기에는 작지만 실제로 둘러보면 기무사, 아니 전시실은 매우 크다. 건물의 있는 그대로를 사용했기 때문에 간혹 녹슨 곳도, 창문이 깨져버린 곳도 있다. 지하 전시실로 내려가는 계단은 그 당시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지하 전시실의 철문에는 다른 전시실의 문과는 달리 총알 자국 같은 구멍들이 나 있다. 붉은 빛들이 곳곳에 묻어 있는 철문과 어두운 통로를 보며 그 때를 잠시나마 상상해볼 수 있었다. 전시회 규모도 알고 보면 크다. 참여한 작가들은 20개국 101명. 기무사 각각의 방 하나가 작품 하나만을 위한 전시실인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의 거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작품 중에서는 허구를 모아 실제인 것처럼 만든 정연두 작가의 ‘공중정원’과 유토피아의 붕괴를 표현한 이불 작가의 ‘Aubade(아침의 노래)’가 눈에 띈다. 대형 전시미술 또한 새롭게 다가온다. 철망으로 만들어진 미로인 지니서의 'keep looking beyond', 내가 아닌 상대방만을 볼 수 있는 방인 AVPD의 'Stalker', 기무사에서 떼어낸 문들로 만든 미로 같은 방인 아이코 미야나가의 ‘The door without a knob' 등은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단조롭고 정적인 기존의 미술 전시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플랫폼 인 기무사'에서는 현대미술의 다양한 형태와 확장된 영역의 현주소를 체감할 수 있다. 관람객들이 오감을 이용해 보고 듣고 냄새를 맡아볼 수 있게 하는 작품들은 생동감이 넘친다. 관람객의 심장 소리를 녹음하여 직접 들을 수 있게 해주는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처럼 관객 참여 작품을 선보인 작가도 있다. 영상물도 많기 때문에 일일이 다 보자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기자도 마음에 드는 영상물 몇몇을 포함해 본관과 별관, 식당, 수송대까지 둘러보다가 그만 3시간 반 정도를 전시장에서 보내고 말았다. 그러니 바쁜 일정의 시민들이라면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진행되는 '도슨트 투어'를 추천한다. 중요한 작품만 꼽아보며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물론 모든 작품을 하나하나 보고 싶다면 오후 5시부터 시작되는 자유관람이 당연히 제격이다. 다만, 너무 한 작품에 몰입해 다른 작품을 보지 못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이번 주말, 친구와, 연인과, 가족과 함께 역사와 예술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기무사를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주변에 삼청동과 경복궁도 있으니 일석삼조인 하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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