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에게 노는 법을 가르칩니다
발행일 2010.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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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벅터벅, 하자센터의 옥상에 올라서자 영등포 일대의 하늘이 고스란히 안겨온다. 올망졸망 이웃 건물들에 둘러싸여 탁 트인 전망은 아닐지라도 노을 진 하늘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니 기분 좋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문득 옥상에 올라본 게 언제였던가. 아차, 매일 이런 하늘을 머리에 이고 지내면서도 잊고 있었다니……. 일상에 가려졌던 인간적 탄식이 슬그머니 뒤따라 나온다.
농원으로 조성된 옥상에서는 이번 창의서밋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외국인들과 하자센터 식구들, 그리고 인근 주민들이 올망졸망 둘러앉아 숟가락으로 봉숭아 꽃잎이 담긴 면주머니를 두드려 꽃물을 들이느라 여념이 없다. 어찌나 열심인지 볼그족족 달아오른 얼굴빛이 꽃보다 더 곱다. 연이어 석양을 조명삼아 수줍은 듯 당차게 자작곡과 [언니네 이발관] 밴드 등의 노래를 부르는 사회적 기업 ‘유자살롱’의 젊은이들. 그들의 공연에 흥이 겨워 덩실덩실 춤을 추는 관객들. 이윽고 배우들이 관중 곳곳에서 튀어나와 숨죽이게 만드는 ‘이야기꾼의 책 공연’의 퍼포먼스 등이 이어지고……. 앳된 얼굴의 청소년들이 시장해진 이들에게 증편을 뻥튀기에 담아 오미자차와 함께 대접한다. 시장해진 이들 사이를 누비며 군밤을 권하는 청소년들의 인심도, 이를 받아드는 이들의 얼굴에 피어오르는 미소도 두루두루 넉넉하다.
옥상 노을파티의 압권은 역시 노을이다. 해는 뉘엿뉘엿 기울어 땅거미가 내려앉는데 달은 아직 어렴풋이 눈썹만 내비치고, 저 멀리서부터 어슬렁거리던 어둠이 다가와 사물의 윤곽을 흐려놓는 시간. 프랑스에서는 해가 기울고 어스름이 피어나 빛을 잠식해 들어가는 이런 저녁 무렵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했다던가. 제도권의 질서와 규율대로 처신해야만 했던 이성의 낮이 저물고, 낮에 가려졌던 늑대의 강인한 야성 같은 또 다른 본성이 깨어나는 시간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날이 저물어가고 자신만의 시간을 되찾은 마법 같은 시간(Magic hour)에 들어선 하자센터 옥상 노을파티에서는 모든 것의 경계가 모호하다. 무대와 관객도, 공연자와 관중의 구분도, 주인과 객도 분간되지 않는다. 통념의 금은 사뿐히 무너진다. 아니 어쩌면 애초부터 판돌(스태프)과 죽돌(학생)의 구분, 일과 놀이의 경계 등 제도의 벽을 뛰어넘은 이곳 하자센터 사람들에게 구분이나 금 혹은 경계라는 것은 의미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같이 잘 놀고, 그런 가운데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자기 자신과 사회를 풍요롭게 하자는 기획답게, 다들 알아서 재미있게 일한다. 제각각 즐겁게 맡은 바를 수행하기에 어느 누구에게서도 제도적 억압의 견고함에 찌든 흔적이란 발견할 수 없다. 억지로 끌려 다니는 이들에게 느껴지는 안타까움이 없다. 풋풋하고 싱그럽다. 그 개운한 느낌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그들의 모습에서 서로 감싸고 어깨 기대며 살맛나게 살아가는 어렴풋한 희망을 본다.
문득 지금 이 시간에도 콩나물시루마냥 빽빽한 교실에 앉아 강제속성 재배되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을 떠올린다. 숨 막히는 교실 속 답답함을 호소하는 아이들 중 잠시 시선만 돌려보면 자신의 머리 위에도 이런 멋진 하늘이 펼쳐진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발상의 전환. 꽉 막힌 서울의 도심에도 하늘은 언제나 열려 있듯, 생각을 바꿔보면 답답한 우리 청소년들의 현실에도 늘 가능성은 열려 있음을 일깨워줄 수 있지 않을까.
누군들 헛헛한 가슴 채우기에 해질 무렵 옥상 위 만한 곳이 없다는 걸 모르겠냐고,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현실이 만만치 않은 것을 모르느냐는 제도적 억압의 견고함 탓일랑 잠시 접어두고, 한번 속아주는 셈 치고, 헛걸음한다손 치고, 우리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옥상에 노을 한 번 바라봄은 어떨는지. 이 땅의 청소년들의 현실에 대한 거창한 대안이 되어주지 못하더라도 좋다. 그저 새우등처럼 굽은 아이들의 뒷모습이 못내 안쓰럽다면 오늘 하루만큼은 그들에게 해지는 하늘 앞에 서서 창의성을 억압하는 제도의 무게를 벗고 자신을 되찾을 시간을 허하라. 가랑비를 따라 콘크리트 틈새로 솟아오르는 풀잎처럼, 노을 진 하늘을 보며 견고한 현실의 벽을 헤집고 일어서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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