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새 성지 '광화문'을 걷다

시민기자 변경희

발행일 2016.12.14. 09:20

수정일 2016.12.14. 15:14

조회 1,650

서울에 첫 눈 오던 날 마주한 서울 미래유산 `배화여고 캠벨기념관` ⓒ변경희

서울에 첫 눈 오던 날 마주한 서울 미래유산 `배화여고 캠벨기념관`

서울에 새하얀 첫눈이 내리던 날, 서울시 미래유산 역사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았습니다. 전문 해설사와 함께 서울 미래유산을 중심으로 서울의 숨은 보물들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세종문화회관을 출발해 세종로공원 - 세종대왕 동상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고종황제 칭경비 - 광화문지하보도 - 이순신장군 동상 - 종교교회 - 사직단 - 배화여고 캠벨기념관(배화여대) – 필운대까지 둘러보는 탐방 코스를 ‘청년 소셜미디어PD’가 함께 동행해 보았습니다. 서울 미래유산 그 두 번째 편은 민주주의 새 성지, 세종대로 일대 이야기입니다.

서울미래유산(2) - 광화문 세종대로 일대 편

서울에 첫눈이 내렸다. 제법 쌀쌀한 날씨에 옷깃을 여미고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광화문광장은 그야말로 서울 미래유산의 산실이다. 광장마당의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 장군 동상, 그 지하의 광화문 지하보도, 광장 바로 옆의 세종문화회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까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니 말이다.

토요일의 광화문 광장은 몇 주 전부터 시민들의 정규 촛불집회로 인산인해이다. 아침 시간대에는 한가로울 줄 알았던 것은 오산이었다. 이미 많은 시민들과 도로 양옆에 늘어선 언론사 차량으로 붐볐다. 다행히 ‘빨간 손수건’ 덕분에 붐비는 무리 가운데 서울 미래유산 역사탐방 그룹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서울 미래유산 역사탐방에 참여하면 나눠주는 손수건. 덕분에 무리를 놓치지 않고 잘 찾을 수 있었다 ⓒ 변경희

서울 미래유산 역사탐방에 참여하면 나눠주는 손수건. 덕분에 무리를 놓치지 않고 잘 찾을 수 있었다

이 날의 탐방은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광화문은 현재에도 다양한 정부기관이 많은 곳이지만, 전문 해설사가 펼친 지도를 들여다보니, 과거 조선에는 더욱 그랬다.

광화문 광장이 예전에는 ‘총독부 광장’, ‘미군정청 광장’ 등으로 불렸을 만큼 광화문 광장의 역사는 깊다. 2002한일월드컵 때 실질적으로 ‘시민의 광장’으로 거듭나기 시작한 이후, 지금은 촛불을 들고 시민의 목소리를 내는 광장으로서 우리 역사의 중요한 한 순간, 한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서울을 대표하는 종합문화공간 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은 1961년에 지어졌던 시민회관이 1972년의 화재로 인해 전소되어 새롭게 지어진 건물이다. 1978년 개관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대표적인 종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건축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평양에 지어진 기와지붕을 얹은 만수대 같은 건물을 우리도 지어야 한다며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건축가는 1970~80년대 한국의 옛 건축양식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적용해 지금의 세종문회회관의 모습으로 디자인했다. 웅장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주는 건축물로 호평 받고 있다.

문화 예술의 공간으로 자리잡은 세종문화회관 ⓒ서울미래유산

문화 예술의 공간으로 자리잡은 세종문화회관

애민정신을 담아 세종대왕 동상

성군이라 평가받는 세종대왕의 동상은 토요일마다 시민의 촛불과 함께하고 있다. 혹자는 오랜 집회 시간 동안 세종대왕님의 무릎에 앉아 편히 집회 광경을 보고 싶다며 너스레를 떨 만큼 동상의 모습은 포근하다. 왕의 위엄보다는 한글 창제에 담긴 애민정신을 고려해 온화한 모습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기록유산인 한글, 그 한글의 창제가 세종대왕의 가장 큰 업적이다. 한글은 과학적인 측면에서 뿐 아니라 만들어진 시기와 만든 사람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유일한 문자라고 하니 더욱 뿌듯했다.

대한민국을 기록하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근현대와 관련한 다양한 자료를 수집·보존·연구해 전시하는 아카이브 기능과 교육로그램을 결합한 역사문화공간이다. 2012년에 개관해 대한민국의 발전상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특히 그 과정에서 발생한 시행착오도 담고 있어 더욱 의미 있다.

흥미로운 점은 바로 옆 미 대사관 건물과 함께 지어져 그 외관이 같다. 미국 대외 경제 원조국에서 지원받은 돈이 남아, 옆에 하나 더 지은 건물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다. 초기에는 국가 재건 최고 회의에서 이 건물을 사용하다가 경제 기획원, 재무부, 문공부의 순으로 사용처가 바뀌었다. 특히 옥상정원에서의 내려다보는 서울 시내의 전경은 참으로 장관이다. 의사가 저렇게 멋있어도 되냐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용팔이>에서 서울이 내려다 보이는 야경을 뒤로하며 배우 주원과 김태희가 탈출을 감행하던 공간이 바로 이 옥상이다.

서울미래유산인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세종대왕 동상 ⓒ 변경희

서울미래유산인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세종대왕 동상

빨리빨리의 교훈이 남긴 광화문 지하보도

광화문 지하보도는 자동차가 늘어나 교통난이 가중되던 1960년대 중반, 세종로 사거리 지하에 건설되었다. 김현옥 서울시장 시절이었던 1966년에 단 164일 만에 완공되었다. 광복 이후 우리 기술진에 의해 처음으로 건설된 지하보도의 영광은 준공 후 단 6일 만에 천장에서 물이 새고, 1971년에는 물에 잠기는 등 시민들의 불안을 가중시킨 날림공사 결과물이 되었다. 광복 이후 우리 기술진에 의해 처음으로 건설된 지하보도의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빨리빨리, 전시효과를 노린 속사포 행정에 대한 교훈을 함께 주기도 한다. 그 후 여러 번의 보수공사와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는 갤러리 등의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고,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관련 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여러 번의 보수 공사와 리모델링을 거쳐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은 광화문 지하보도 ⓒ서울미래유산

여러 번의 보수 공사와 리모델링을 거쳐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은 광화문 지하보도

안타까운 논란의 이순신 장군 동상

지하보도에서 광화문 광장으로 올라오면 위풍당당한 이순신 장군 동상의 모습이 보인다. 임진왜란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우리 민족을 지켜준 이순신 장군. 세계 유명 해군제독들이 이순신 장군을 그 시대의 최고 전략과 전술을 가진 장군으로 평가한다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일제에 의해 변형된 서울의 도시 중심축을 바로 세우기 위해 건립된 동상으로 시민들과 함께 대한민국 현대사를 함께 해오고 있다.

그러나 해설사가 들려준 이순신 장군 동상과 관련된 논란은 흥미로웠다. 논란은 ①왼손잡이라 알려져 있는 이순신 장군이 왜 오른손에 칼을 잡고 있는가? ②용맹함의 대명사 장군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③그림으로 남아있는 장군의 얼굴 생김새가 다르다(작가 얼굴이 투영되어 보인다) ④중국풍 디자인의 갑옷을 입고 있다. ⑤장군 앞에 있는 북이 누워있는 것은 항복의 의미인가? 등이다. 이러한 논란이 계속되자 동상을 다시 만들려는 노력이 펼쳐졌으나 10.26사태가 발생하며 모든 것이 백지화되고 말았다고 한다.

광화문 광장의 수호신 이순신 장군 동상 ⓒ 변경희

광화문 광장의 수호신 이순신 장군 동상

땅 신에게 제를 올리던 사직단

사극에서 “전하~, 종묘 사직에 없었던 일이옵니다~” 하며 신하들이 임금의 의견에 반할 때 자주 등장할 때 나오는 대사이다. ‘종묘’는 임금의 조상을 기리는 곳이고, ‘사직’은 땅 신에게 빌어 농사의 풍성함을 기리는 곳이다. 농사는 백성의 생활에 직결되기에 땅 신에 대한 제가 더 중요했다. 그러나 조선시대 임금들은 사직의 제보다 그들의 조상인 종묘 제를 더 중시했다 전해진다. 정통성이 약한 왕일수록 더욱 그러했다고 한다. 이 사직단은 거의 방치되었다가 올림픽 때 즈음 담장을 두르고 관리를 시작했다.

농경사회에서 의미가 큰 땅 신에게 제를 지내던 사직단 ⓒ변경희

농경사회에서 의미가 큰 땅 신에게 제를 지내던 사직단

근대 교육사적 의미를 간직한 배화여고 캠벨 기념관

1898년 여자 선교사가 설립한 오랜 역사를 품은 배화여고에 들어섰다. 학교 초입에 위치한 캠벨 기념관은 1926년 배화여고 설립자 조세핀 필 캠벨 여사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건축물이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일본군대가 점유하여 사용하였고, 1950년 한국전쟁 때에는 건물이 반파되어 이후 개축되었다고 한다. 외관의 붉은 치장벽돌은 훼손이 많이 진행되어 원형을 복구하려 시도하고 있으나 유사 벽돌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은 머릿돌과 초석이 남아있으며 건립 당시의 모습이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배화여고 설립자 조세핀 필 캠벨 여사 동상 ⓒ 변경희

배화여고 설립자 조세핀 필 캠벨 여사 동상

복사꽃 필 때, 꼭 다시, 필운대

필운대는 배화여고 뒤편 끝자락에 자리한 바위이다. 오성과 한음의 일화로 잘 알려진 백사 이항복의 집터이기도 하다. 산수풍광이 뛰어나 장안의 풍류객이 찾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안타깝게도 학교 건물이 한참 공사 중이라 아쉬움을 남긴다. 복사꽃이 피면 절경이라던데, 다가올 봄에 꼭 다시 찾아와야겠다.

너무 구석지고, 건물 뒤의 협소한 공간에 위치해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 필운대  ⓒ 변경희

너무 구석지고, 건물 뒤의 협소한 공간에 위치해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 필운대

탐방을 마치고 멋진 서울 전망을 보기 위하여 잠시 발길을 돌렸다. 전문 해설사의 해설만 듣는 것이 아니라 참가한 시민들이 그 장소에 얽힌 서로의 추억, 기억을 공유하는 점이 참 좋았다. 특히 이번 탐방 참가자 중 배화여고가 모교인 시민이 있었다. 그 분께 듣는 이야기는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서울 미래유산 탐방과 함께한 전상봉 해설사님(좌), 굵은 눈발에도 열정적으로 서울의 모습을 좇고 있는 시민들(우) ⓒ 변경희

미래유산 탐방과 함께한 전상봉 해설사님(좌), 굵은 눈발에도 열정적으로 서울의 모습을 좇고 있는 시민들(우)

눈발이 점점 굵어지는 궂은 날씨에도 그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고 진지하고 즐겁게 서울 미래유산 역사 탐방에 참여했다. 여러 번 답사에 꾸준히 참여해 서로 서로 낯을 익힌 시민들도 있다고 한다. 따끈한 만둣국으로 얼었던 몸을 녹이며 이 날의 탐방 코스는 끝을 맺었다. 토요일 아침, 서울 미래유산 역사 탐방과 주말을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은 기억이 될 듯하다. 마감되었다고 실망하지 말자. 홈페이지에 안내된 메일로(remedium69@naver.com) 문의하면 추가 참여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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