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최고의 애정이자 최선의 예의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6.05.20 09:55

수정일 2016.05.2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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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뉴시스

남의 작은 허물을 꾸짖지 말고
남의 은밀한 비밀을 발설하지 말며
남의 지난 잘못을 마음에 두지 말라.
이 세 가지면 덕을 기르고 해를 멀리할 수 있다.

남의 잘못을 지적할 때는 너무 엄격하게 하지 말라.
그가 감당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남에게 선을 가르칠 때는 너무 높게 말하지 말라.
그가 따를 수 있을 만큼 해야 한다.
-- 홍자성의 [채근담]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24

남의 허물을 집어내 가리킬 때도 격식이 있다.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어 자잘한 것까지 들추지 말 것이며, 굳이 숨기고 싶은 비밀이나 지난 일까지 캐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상대가 감당하며 따를 수 없을 만큼 폭로하고 까발릴 때, 그것은 고스란히 ‘지적질’이 되어버린다. 애초에 ‘-질’은 단어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에 불과하지만, 특정한 단어 뒤에서 그 어감이 사뭇 비하와 부정의 편으로 기울어진다. ‘지적’과 ‘지적질’ 사이에는 작은 듯 큰 간극이 있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하는 방식과 태도에 따라 당하는 이의 반발을 사게 되며 원한만 키울 수 있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 애정이 없는 비판은 비난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채근담』에서는 지적의 태도가 잘못 되었을 때 도리어 지적당하는 사람보다 지적하는 사람의 됨됨이가 드러남을 덧붙여 밝힌다. 이를테면 남의 소소한 잘못까지 지적하는 사람은 마음이 좀스러운 사람이라고 한다. 좁쌀눈으로 바라보기에 쪼잔한 것들만 보이는 게다.

또한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남의 감추고 싶은 속사정을 함부로 떠벌리는 사람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인생에는 공짜와 정답, 그리고 영원한 비밀이 없지만, 어른에게는 비밀이 있다. 아이가 아닌 이상, 있어야 마땅하다. 이때의 비밀은 범죄성의 꿍꿍이나 흑막이라기보다 들키고 싶지 않은 혼자만의 은신처 같은 것이다. 벌을 받을 게 두려워서라기보다 자기가 한 일의 문제점을 알고 있기에 부끄러워 숨기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비밀은 행여 알게 되더라도 모른 척 눈감아줄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굳이 당장의 잘못만이 아니라 남의 지나간 소소한 허물까지 마음에 쌓아 두는 사람은 속이 좁은 사람이라 할 만하다. 단순히 속이 좁은 것을 넘어 잔인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난 시간의 내가 시간을 거슬러 끌려나와 야단을 맞을 때, 지금의 나는 반성보다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는 타인의 삶과 타인의 취향에 그리 너그럽지 않다. 강제적인 교훈의 감옥에서 영혼 없는 당위, 남의 것만 같은 선(善)과 정의를 수업 받는다. 그래서야 배우고 가르치는 즐거움을 느낄 리 없다. 감당할 만큼의 잘못을 지적하고 따를 수 있을 만큼의 선을 가르치는 일은 옳음을 넘어 아름답다. 그것은 남의 허물을 보기 이전에 자신의 허물을 헤아리는 내면의 눈을 가진 이에게 해당되기 덕목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따져보지 않고 핏대를 세우며 자기를 주장할 때 우리는 그를 ‘꼰대’라고 부른다. 그는 자기가 가르치고자 하는 것에서 가장 먼 자리에 있다.

이 모두가 너무 어렵다면, 차라리 입을 다물어야 한다. 때로 침묵이야말로 최고의 애정이자 최선의 예의일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