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 간 공업지역 되살릴 수 있을까?

정석

발행일 2016.03.08. 14:55

수정일 2016.03.08. 15:11

조회 4,499

영등포구 문래동 철강거리 일대ⓒ뉴시스

영등포구 문래동 철강거리 일대

정석 교수의 서울 곁으로 (10) 공장 마을 만들기(도쿄 오오타 크리에이티브 타운 사례)

한때는 도시의 산업과 경제를 이끌던 잘나가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사람들 관심에서조차 멀어지고 애물단지 취급까지 받는 곳이 있다. 도시 내 공업지역들이다. 공장들이 몰려있는 곳은 서울에도 많다. 영등포역 주변 문래동이 있고, 지금은 구로디지털단지, 가산디지털단지로 불리는 옛 구로공단 일대가 있으며, 뚝섬 주변 성수동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강서구와 도봉구, 양천구에도 공업지역이 남아있고, 서울 도심부에도 청계천 주변과 을지로 일대에 수많은 공장들이 남아있다.

서울의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옛날처럼 공장들이 활발히 가동되지는 않아도, 이들 공업지역 안에서는 기계, 금속, 플라스틱, 전기제품들을 만들고 조립하는 제조업 활동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공장이 문을 닫은 곳도 있고 공장이 이전한 뒤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섰거나 다른 용도로 개발된 곳도 많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도시 안에 여전히 남아서 살아 꿈틀거리고 있는 공장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부적격 기능이라 낙인찍고 전부 서울 바깥으로 내쫓아야 할까? 기운 빠진 공장들이 다시 기운을 차리게 할 수는 없을까? 공장과 주변의 마을이, 공장과 도시가 서로 긍정적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상생하고 공존하는 길은 없을까?

도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또 도시행정을 책임진 이들에게 도시 내 공업지역은 늘 중요한 연구거리이고 풀기 힘든 골칫거리였다. 얽힌 실타래를 풀 듯 지혜로운 묘안을 만나기 전까지는 나도 그랬다. 지난해 여름, 일본 도쿄에 출장을 가서 방문했던 오오타구 사례에서 나는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했다.

오타구(大田區)는 도쿄도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고 하네다공항에서 아주 가깝다. 타마강(多摩川)이 지나가는 곳이어서 일찍이 도쿄의 대표적 공업지역으로 조성되었고 1990년대까지만 해도 9,000여개 공장이 가동되었다고 한다. 유명한 캐논 카메라의 본사도 바로 이곳에 있다. 큰 공장도 있지만 직원이 10명이 채 안 되는 작은 공장들도 많다. 1층에는 작은 공장이 있고, 2층과 3층에는 공장주나 직원들이 거주하는 '마을공장형 건물(마찌코바, 町工場)'이 많다. 2000년대 이후 공장이 크게 줄어 현재는 3,000여개 정도가 남아있고, 문을 닫은 공장이 주택으로 바뀌면서 주거환경 침해 문제로 주민과 공장 간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쇠퇴하는 공장지역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처음 시작한 건 공장주들의 모임인 공업협동조합(工和會協同組合)이었고, 여기에 오오타 관광협회와 대학교(수도대학동경, 요코하마국립대학)가 함께 힘을 모았다. 2009년에 세 주체가 참여하는 연구회가 만들어졌고 ‘오오타 크리에이티브 타운’ 구상을 시작했다. 기운 빠진 공장지대를 지역주민과 공장주들이 함께 살려보기 위한 협력과 연대의 결과로 이들이 찾아낸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오오타 오픈 팩토리>, 즉 공장개방 이벤트였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포함한 주민과 방문객들이 공장을 둘러보며 다양한 체험과 학습을 하는 오픈 팩토리 행사는 2011년에 처음 시작된 이후 2015년 11월의 제5회 행사까지 모두 다섯 번 진행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오오타 오픈 팩토리 행사(출처 : 오픈 팩토리 홈페이지 www.o-2.jp/oof/)

오오타 오픈 팩토리 행사

오픈 팩토리 행사를 하는 핵심 이유는 셋이다. 첫째는 '마을 만들기'다. 주민들이 스스로 공장과 마을을 살려나간다. 둘째는 '관광진흥'이다. 지역주민들과 외부 방문객들을 마을과 공장으로 초대하여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한다. 셋째는 '산업진흥'이다. 공장지대를 단순한 관광지로 만드는 게 아니라 여전히 살아있고 생명력이 넘치는 산업공간으로 키워가겠다는 것이다.

오픈 팩토리 프로그램도 아주 다채롭다. 쉽게 경험하기 힘든 공장의 내부 모습과 장인들의 수작업 장면을 제조공정을 따라가면서 현장에서 체험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경험일 것이다. 어린이들은 자기가 직접 눈으로 보면서 체험했던 물건을 기념품으로 받고 무척 행복해 한다. 가장 인기를 끈 프로그램은 <모노즈쿠리 타마고>다. 대학생들의 디자인 공모전을 통해 선정한 제품을 장인들이 만들어 달걀모양의 케이스에 담아 자판기에 넣어 뽑기 형태로 판매한다. 2014년의 공모전 땐 응모작 63개 가운데 9개가 제작되어 오픈 팩토리 행사 날 판매되었는데 336개 전부가 세 시간 만에 완판되었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

공장개방 행사에 참가하는 각각의 주체들은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된다. 지역 내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우리 마을에 대해 공부하고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되며, 제조업에 종사하는 공장주와 직원들은 서로의 기술을 교류하고 소개하면서 비즈니스 기회를 넓혀간다. 주민들도 공장지역이 애물단지가 아닌 보물단지의 가치를 지닌 곳임을 깨닫고 마을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되며,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공장 마을 만들기'의 가능성을 보여준 <오오타 오픈 팩토리> 사례가 서울의 성수동과 문래동과 구로와 가산과 을지로에도 좋은 참고가 되고 든든한 이웃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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