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한 방법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5.10.13. 11:05

수정일 2015.11.16.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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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관광객과 시민들이 가수들의 공연을 즐기고 있는 모습ⓒ뉴시스

외국인 관광객과 시민들이 가수들의 공연을 즐기고 있는 모습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118 – 마지막 회

오늘날과 같은 소비사회를 만든 것은 프랑스의 근대 백화점이었다. 근대 백화점이 나타나기 전까지 상점은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는 곳일 뿐이었다. 그러다 화려한 백화점이 휘황한 빛의 세례 아래 물건들을 진열하기 시작했다. 백화점은 상품홍보가 아닌 라이프스타일 교육에 나섰다. 각 시기별로 존중 받는 계층이 해야 할 일들을 교육하고 그에 필요한 상품들을 알려준 것이다. 이로 인해 생활에 필요해서가 아니라, 상류층처럼 되려는 욕망 때문에 구매하는 소비대중이 탄생했다. 또 백화점 안에서 고급 취향의 문화를 즐길 수 있게 해, 상류층의 환상에 빠지도록 했다. 이제 사람들은 특별히 필요한 물건이 없어도 백화점에 가서 배회하게 되었다.

현대에 접어든 이후엔 근대 백화점의 역할을 대중문화가 떠안았다. 최초의 드라마는 소프오페라라고 불렸는데, 비누를 팔기 위해 만들어진 드라마였다. 드라마 속의 스타들에게 빠져 그들의 삶을 동경하면서 저절로 그 속에서 제시되는 상품을 사게 되는 구조다. 대중문화는 각 시기별로 유행을 교육하는 방송통신학교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병헌이 <올인>에서 몸에 착 붙는 양복을 입자, 사람들은 그 전까지 멀쩡히 잘 입던 풍성한 양복을 다 버리고 새로운 양복을 사기 시작했다. 소녀시대가 스키니진을 입고 노래를 부르자 사람들은 그 전에 잘 입던 펑퍼짐한 청바지를 내버리고 스키니진을 새로 사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대중문화는 우리를 소비대중으로 만든다.

미국의 학자 줄리엣 쇼어는 ‘왜 오늘날 미국의 청소년들이 정신적 불안증에 시달리는가’를 주제로 연구했다. 청소년들이 소비주의와 물질주의에 빠져든 것이 그 원인이며 그 배후엔 TV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대중문화가 심각한 가치관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에는 학교 안에서 방영하는 채널 원이라는 방송이 있다. 일반 방송과 비슷하지만 그래도 학교 안에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상업방송보다는 자극성이 덜하다. 채널 원을 시청한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돈이 모든 것이다’, ‘좋은 차가 학교보다 중요하다’, ‘고급 브랜드가 사람을 달라 보이게 만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업방송이 아닌데도 사람의 가치관을 이렇게 왜곡시키는 것이다.

TV가 없던 캐나다의 노텔이라는 마을에 TV가 도입된 이후 성고정관념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 남자는 이래야 한다’, 이런 인식이 커졌다는 뜻이다. 그렇게 대중문화는 우리 머릿속에 고정관념을 심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TV 프로그램 속에서 나타나는 남녀 진행자의 나이 차이나, 남자 진행자는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는 데에 반해 여자 진행자만 자주 바뀌는 모습에서 여자의 위상을 낮게 보는 시각이 강화된다. 많은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은 남자를 통해 인생역전을 이루는 신데렐라로, 어머니는 잔소릿꾼으로, 시어머니는 표독한 괴물로 묘사된다. 이런 것들이 여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TV가 없던 태평양 피지섬에 TV가 도입된 이후에 여자들 사이에 섭식장애가 나타났다. TV가 보여주는 이상적인 여성상이 비현실적으로 말랐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중문화가 그려주는 세상을 이상적인 세상으로 여기고, 그에 자기자신을 맞추려고 하지만, 대중문화 속 이상향이란 어차피 현실세계에선 구현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좌절된 욕망이 자존감을 갉아먹고 불행감을 키운다.

이외에도 대중문화 부작용 사례는 너무나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대 사회에 살아가면서 대중문화를 끊을 수도 없다. 대중문화는 TV, 영화, 공연, 잡지 등 도처에서 마치 공기처럼 우리를 감싸고 있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대중문화를 즐기기 위해선 생각을 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하면서 봐야 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도 대중문화를 소재로 토론하고 비평하는 버릇을 들이는 것이 좋다. 이렇게 비판적 사유라는 사용법을 익히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라도 대중문화가 주입하는 욕망의 노예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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