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 담양 대숲이? 남산에서 만나는 한국 정원의 풍류

시민기자 신창근

발행일 2026.07.28. 13:00

수정일 2026.07.28. 16:29

조회 394

옛 남산 야외식물원이 3개 테마·11개 정원으로 새 단장
남산에서 만난 한국의 숲, '한국숲정원' 산책 ©신창근
하얏트호텔 정류장에서 내려 길을 건너자 울창한 소나무 사이로 큼지막한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남산 한국숲정원’. 자동차와 건물이 이어지던 도심 풍경에서 몇 걸음 옮겼을 뿐인데 공기의 결이 달라진 듯했다. 나무 그늘 아래로 난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니 새로 꾸민 정원의 단정함과 오래된 남산 숲의 자연스러움이 함께 느껴졌다. ☞ [관련 기사] 남산에서 만나는 '담양·제주 전통숲'…한국숲정원 개방

이곳은 시민들에게 오랫동안 남산 야외식물원으로 알려졌던 자리다. 서울시는 남산 야외식물원 일대를 한국 고유의 자연미와 정원문화를 담은 약 3만㎡ 규모의 한국숲정원으로 조성해 6월 27일 개방했다. 정원은 ‘자연과 생태’, ‘전통과 문화’, ‘휴양과 휴식’이라는 세 가지 테마 아래 11개 공간으로 구성됐다.

입구 주변에서는 여름 햇빛을 머금은 배롱나무가 붉은 꽃을 피워 초록빛 숲에 화사함을 더했다. 반듯하게 다듬어진 화단만 이어지는 정원을 예상했지만, 실제로 걸어보니 기존 숲의 지형과 나무를 최대한 살린 산책 공간에 가까웠다. 정원을 구경한다기보다 남산의 품 안으로 천천히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울창한 소나무 숲 앞에 흰색 입체 글씨로 만든 ‘남산 한국숲정원’ 표지가 설치돼 있다.
소나무 사이에서 방문객을 맞이하는 남산 한국숲정원 ©신창근

솔향 따라 걷다가 대숲의 바람을 만나다

가장 먼저 발길을 붙잡은 곳은 ‘솔숲원’이었다. 굵은 줄기의 소나무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서 있지 않고 저마다 몸을 비틀고 가지를 뻗고 있었다. 오랜 세월 남산을 지켜온 소나무 군락을 살려 조성한 공간답게 인공적인 느낌이 적었다. 흙길과 낮은 초화류 사이로 난 길을 걷자 바람이 솔잎을 스치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잔잔하게 이어졌다.

솔숲원을 지나 죽림원으로 향하면 풍경이 눈에 띄게 달라진다. 담양 죽녹원을 모티브로 조성한 죽림원에는 곧게 솟은 대나무가 산책로 양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대나무 줄기 사이로 들어온 햇빛은 길 위에 가느다란 그림자를 만들었다. 잎이 부딪히며 내는 사각거리는 소리에 자연스럽게 걸음이 느려졌다.

대숲 사이에는 걷기 편한 길이 마련돼 있어 숲의 분위기를 가까이 느끼면서도 부담 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남산에서 소나무숲을 만나는 일은 익숙하지만, 이렇게 깊은 대숲의 풍경까지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은 뜻밖이었다. 솔향과 대숲의 소리가 한 산책길 안에서 이어지는 모습이 한국숲정원만의 인상으로 남았다.
굽고 기울어진 여러 그루의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흙길 입구에 ‘솔숲원’ 글자 표지와 정원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남산의 기존 소나무 군락을 살려 조성한 솔숲원 ©신창근
높게 뻗은 대나무가 산책로 양쪽으로 길게 이어지고, 데크 길이 초록 숲속으로 굽어 들어간다.
빛과 바람, 대숲의 소리를 느끼며 걷는 죽림원 ©신창근

연못과 정자가 건네는 한국적인 쉼

정원 안쪽의 ‘지당원’에 들어서자 숲길 중심이었던 앞선 공간과는 또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다양한 높이의 나무와 풀 사이로 돌길이 이어지고, 그 너머에는 대숲과 어우러진 정자가 보였다. 전통 정자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투명하고 간결한 구조로 현대적으로 해석해 주변 풍경이 자연스럽게 비쳐 보였다.

정자 주변에는 연못과 수생식물, 낮은 관목이 어우러져 있었다. 화려한 장식보다 나무와 돌, 물이 만들어 내는 여백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정자에 잠시 앉아 바라보니 가까운 곳에서는 초록 잎이 흔들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사람들이 천천히 산책로를 걸었다. 도심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하는 풍경이었다.

한국숲정원의 매력은 넓은 공간을 빠르게 둘러보는 데 있지 않았다. 소나무의 굽은 줄기를 살펴보고, 대숲 사이에서 바람 소리를 듣고, 정자에 앉아 연못을 바라보는 짧은 순간들이 하나씩 쌓였다. 정원이라는 말에서 흔히 떠올리는 잘 다듬어진 꽃밭보다 자연 속에서 쉬고 풍경을 음미하는 ‘풍류’에 더 가까운 장소였다.
'지당원' 표지 뒤로 다양한 나무와 초화류가 우거져 있고, 돌길 끝에는 나무 기둥과 투명한 지붕으로 만든 정자가 자리한다.
대숲과 연못,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정자가 어우러진 지당원 ©신창근

가볍게 떠나는 도심 숲 산책

산책을 마칠 무렵에는 숲길 옆 세족장이 반겼다. 걷는 동안 묻은 흙과 땀을 씻어낼 수 있도록 의자와 발 씻는 시설이 마련돼 있었다. 화려한 볼거리뿐 아니라 실제로 숲을 걷는 시민에게 필요한 휴식 시설까지 세심하게 배치한 점이 반가웠다.

한국숲정원은 언제나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서울역이나 시청 방면에서 402번 버스를 타고 하얏트호텔 정류장에서 내리면 쉽게 찾을 수 있으며, 한강진역 방면에서는 405번 버스도 이용할 수 있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소나무숲과 대숲, 연못과 정자가 이어지는 한국의 정원 풍경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빠르게 걷기보다 편안한 신발을 신고 천천히 둘러보기를 권하고 싶다. 정원마다 식생과 분위기가 달라 길을 따라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작은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이 든다.

계절이 바뀌면 꽃과 나뭇잎의 색,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달라질 테니 한 번의 방문으로 끝내기보다 다시 찾아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잠시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잎이 흔들리는 소리와 숲의 냄새에 집중한다면, 익숙했던 남산이 조금 새롭게 보일 것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고 싶을 때, 한국숲정원은 부담 없이 찾아갈 수 있는 도심 속 쉼표가 되어줄 듯하다.
나무 그늘 아래 지붕이 설치된 세족장이 있으며, 수도 시설 앞에 의자와 세족장 이용 안내판이 놓여 있다.
숲길을 걸은 뒤 발의 피로를 씻어낼 수 있는 세족장 ©신창근

남산 한국숲정원

○ 위치 :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259-16 (옛 남산 야외식물원 일대)
○ 구성 : 3만 ㎡ 규모(▴전통과 문화 ▴자연과 생태 ▴휴양과 휴식 등 3개 테마, 11개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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