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출근길에 이런 사건이 있었다고? 중구 역사문화투어 체험기

시민기자 마가은

발행일 2026.05.06. 13:00

수정일 2026.05.06. 14:50

조회 68

서울시 공공예약서비스로 만난 도심 속 역사 이야기
우리가 몰랐던 역사 속 이야기 따라 걸어요, 중구 문화투어 체험기 ©마가은
평소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던 도심의 거리. 매일 오가던 길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은 많지 않았다. 이번에 참여한 중구 역사문화투어는 그런 익숙한 공간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 시간이었다.

투어를 따라 걷다 보니, 이 일대에는 조선 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적 흐름과 맞닿아 있는 장소들이 많다는 점을 알게 됐다. 평범해 보이던 건물과 골목들이 사실은 중요한 사건과 시대의 변화를 품고 있는 공간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새롭게 느껴졌다.

이번 투어는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 누리집을 통해 신청해 참여했다. 별도의 준비 없이 간편하게 예약할 수 있어 접근성이 좋았고, 누구나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중구 역사문화투어의 가이드가 조각 앞에서 남산공원 백범광장과 관련된 역사를 설명해주고 있다. ©마가은
남산공원 백범광장의 역사적 의미를 설명해주고 있는 중구 역사문화투어의 가이드 ©마가은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이 남산의 성곽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다. ©마가은
성곽길을 따라 걸으며 중구 역사문화투어가 시작된다. ©마가은

도심 한가운데, 시간과 함께 살아온 공간들… 숭례문 이야기

투어는 중구 일대를 걸으며 주요 장소들을 해설과 함께 둘러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단순히 장소를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이 지나온 시간과 이야기를 함께 따라가는 여정에 가까웠다. 도심 속 건물과 길들은 지금의 우리와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훨씬 더 오랜 시간을 견디며 다양한 역사를 품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숭례문이었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이 공간은 조선 시대부터 현재까지 도시의 변화를 함께 겪어온 상징적인 장소다. 과거 일본 사신이 드나들며 머리를 숙이고 들어올 수 없다는 이유로 성문 일부가 훼손되는 일을 겪었고, 이후 한국전쟁 당시에는 총탄 자국이 남는 등 시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2008년 화재로 큰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복원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숭례문 현판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숭례문(崇禮門)’이라는 글씨는 양녕대군의 친필로 알려져 있으며, 다른 성문과 달리 가로로 걸린 형태를 하고 있다. 이는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한 의미라는 해석도 전해진다.

이처럼 숭례문은 단순한 문화재를 넘어, 시대의 변화와 사건,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겹겹이 쌓인 공간이었다. 해설을 통해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도심 속 풍경이 더 이상 스쳐 지나가는 배경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공간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시간의 일부였고, 그 안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수많은 이야기가 함께 흐르고 있었다.
  • 숭례문의 전경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구경하고 있고, 숭례문 앞에는 조선시대 복장을 한 사람이 문을 지키고 있다. ©마가은
    조선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시간과 기억을 간직한 숭례문 ©마가은
  • 숭례문에 걸린 현판의 모습이다. 세로로 길게 적힌 현판은 조선 시대의 다른 건축물과 차이가 있다. ©마가은
    양녕대군이 쓰고, 추사 김정희가 감탄한 숭례문 현판 ©마가은
  • 숭례문 벽돌에 다수의 패인 흔적들이 보인다. 한국전쟁 당시 총탄 흔적으로 슬픈 역사가 여전히 있다. ©마가은
    한국전쟁 당시의 총탄 흔적이 남아 있는 숭례문의 벽돌 ©마가은
  • 숭례문의 전경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구경하고 있고, 숭례문 앞에는 조선시대 복장을 한 사람이 문을 지키고 있다. ©마가은
  • 숭례문에 걸린 현판의 모습이다. 세로로 길게 적힌 현판은 조선 시대의 다른 건축물과 차이가 있다. ©마가은
  • 숭례문 벽돌에 다수의 패인 흔적들이 보인다. 한국전쟁 당시 총탄 흔적으로 슬픈 역사가 여전히 있다. ©마가은

익숙함이 새로움으로 바뀌는 순간

특히 우리가 일상적으로 지나치는 공간이 사실은 중요한 역사적 장소였다는 점이 새삼 의미 있게 느껴졌다. 무심코 지나쳤던 곳들이 알고 보니 의미 있는 장소였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다.

대표적인 곳이 상동교회였다.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던 길목이었지만, 이곳은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과 교육, 계몽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역사적인 공간이었다. 여러 인물들이 이곳을 거점으로 활동하며 시대의 변화를 만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익숙했던 건물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동안은 ‘그냥 길’로만 인식했던 공간이, 이야기를 알고 나니 하나의 기록처럼 느껴졌다. 건축물의 모습도 새롭게 보였고, 지금의 일상을 만들어준 과거의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전혀 다른 풍경을 마주하는 듯한 경험이었다.
  • 가이드가 상동교회에 대한 설명문을 읽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큰 기여를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마가은
    겉보기엔 평범한 교회처럼 지나치기 쉬운 이곳에는, 일제강점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역사 속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마가은
  • 교회의 한쪽 벽에는 일제강점기를 지내오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들의 모습이 새겨져있다. ©마가은
    교회 한쪽 벽에 새겨진,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부조 조각 ©마가은
  • 가이드가 상동교회에 대한 설명문을 읽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큰 기여를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마가은
  • 교회의 한쪽 벽에는 일제강점기를 지내오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들의 모습이 새겨져있다. ©마가은

잊고 있던 역사를 마주하는 시간

중구 역사문화투어는 단순히 공간을 둘러보는 것을 넘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와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대한제국 시기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환구단은 잊혀진 역사의 한 부분처럼 느껴졌다.

환구단은 당시의 권위와 상징성을 보여주던 중요한 장소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대형 호텔이 들어서게 된다. 황실의 상징성을 약화시키려는 의도 속에서 원래의 공간은 점차 사라졌고, 현재는 일부 유구만이 남아 그 흔적을 전하고 있다.

지금의 환구단은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 있음에도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자리해 있다. 주변 환경에 묻혀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공간이 되었고, 외국인 방문객들 중에는 이곳을 호텔의 정원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한 환구단 정문은 1968년 도시 개발과 도로 확장 과정에서 매각되어 한동안 행방이 묘연해졌다가, 2007년 우이동 그린파크호텔 재개발 과정에서 다시 발견되었다. 일부 훼손과 변형이 있었지만, 가능한 한 원부재를 활용해 복원되었다는 점도 인상 깊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단순한 공간으로 보였던 장소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화려한 도시의 모습 뒤에 가려져 있던 아픈 역사와 그 흔적을 다시 바라보게 된 순간이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앞으로 우리가 우리 역사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기억하고 보존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 과거 환구단이 있던 자리에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호텔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마가은
    과거 환구단이 있던 자리에는 높은 호텔이 자리하고 있다. ©마가은
  • 빌딩 숲 사이 현재는 황궁우만이 남아 환구단의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 ©마가은
    환구단이 사라진 공간에 홀로 남아 과거의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 황궁우 ©마가은
  • 황궁우의 담장과 호텔이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 호텔의 창가로 황궁우가 보이는 위치다. ©마가은
    부속 정원으로 느껴질 만큼 가깝게 위치한 호텔은 씁쓸함을 안겨준다. ©마가은
  • 환구단의 정문이 처음 지어졌을 때와는 다른 위치에 놓여 있다. 정문은 1968년 도시개발과 도로 확장 계획에 따라 매각되어 한동안 그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다가 우이동 그린파크호텔 재개발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매각과 훼손, 발견과 복원을 거치며 이어진 흐름 속에서 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마가은
  • 과거 환구단이 있던 자리에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호텔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마가은
  • 빌딩 숲 사이 현재는 황궁우만이 남아 환구단의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 ©마가은
  • 황궁우의 담장과 호텔이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 호텔의 창가로 황궁우가 보이는 위치다. ©마가은
  • 환구단의 정문이 처음 지어졌을 때와는 다른 위치에 놓여 있다. 정문은 1968년 도시개발과 도로 확장 계획에 따라 매각되어 한동안 그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다가 우이동 그린파크호텔 재개발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시간의 의미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을 통해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중구 역사문화투어는, 단순한 체험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를 다시 이해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특별한 준비 없이도 익숙한 공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며, 그 안에 담긴 역사와 의미를 자연스럽게 되짚어보게 한다.

매일 지나치던 길과 건물들은 과거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모습을 이루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도심은 더 이상 단순한 생활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이어받은 역사이자 앞으로 이어가야 할 책임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경험은 결국 우리가 어떤 태도로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만들어가야 하는 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 마주한 이 작은 변화는, 앞으로의 시간을 더 깊이 바라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 광화문 월대의 양쪽 난간 앞쪽에 자리했던 서수상이다. 고 이건희 삼성회장이 생전에 소장했던 것으로 2023년 기증했다. ©마가은
    일제가 훼손하고, 고 이건희 회장이 간직했던 광화문 월대의 서수상 ©마가은
  • 현재 광화문 앞에서 위치한 '칭경비념비'를 모신 기념비전의 모습이다. 그 중 만세문의 모습으로 일본인이 떼어가 대문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마가은
    과거 일본인 집의 대문으로 잠시 사용되었던 만세문은 제자리를 찾았다. ©마가은
  • 광화문 월대의 양쪽 난간 앞쪽에 자리했던 서수상이다. 고 이건희 삼성회장이 생전에 소장했던 것으로 2023년 기증했다. ©마가은
  • 현재 광화문 앞에서 위치한 '칭경비념비'를 모신 기념비전의 모습이다. 그 중 만세문의 모습으로 일본인이 떼어가 대문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마가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옥상에서는 경복궁의 전경을 볼 수 있다. 멀리 북악산까지 한 눈에 보여 과거 서울을 상상해볼 수 있다. ©마가은
조선 시대를 상상해볼 수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옥상에서 바라 본 경복궁의 전경 ©마가은

중구 역사문화투어

○ 위치 : 서울시 중구 회현동1가 100-115 (남산공원백범광장 백범선생 상 앞)
○ 교통 : 지하철 4호선 회현역 4번출구에서 도보 15분
○ 운영일시 : 수·금·토·일요일 10:00, 14:00(3시간~ 4시간 소요)
○ 기타사항 : 4인 이상 출발 가능, 초등학교 4학년 이상 신청
○ 예약 :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 누리집

시민기자 마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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