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탄생 150주년,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김구 선생을 만나다

시민기자 박유진

발행일 2026.03.19. 09:22

수정일 2026.03.19. 20:47

조회 397

유네스코는 ‘김구 탄생 150주년(2026년) 기념의 해’를 ‘유네스코 기념해’로 지정했다. ©박유진
유네스코는 ‘김구 탄생 150주년(2026년) 기념의 해’를 ‘유네스코 기념해’로 지정했다. ©박유진
'백범김구기념관'은 자주·민주·통일 국가 건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김구 선생(1876~1949)의 정신을 알리고 이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지난 2002년 10월 22일 개관했다.

1층과 2층으로 구성된 기념관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한 김구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방문객들이 우리 근현대사의 흐름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한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 속에서 자주·민주·평화적 통일의 가치를 되새기고, 민족 고유의 아름다운 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특히 백범김구기념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역사적 성찰과 문화적 체험이 어우러진 복합 문화 공간으로서, 국민들에게 민족 정체성과 미래 비전에 대한 의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백범김구기념관 중앙홀의 백범 좌상 ©박유진
백범김구기념관 중앙홀의 백범 좌상 ©박유진
백범 김구 선생 가족 흉상 ©박유진
백범 김구 선생 가족 흉상 ©박유진

백범 김구를 키워낸 모친 곽낙원

근대건축양식으로 멋지게 지은 백범김구기념관으로 들어가면 중앙홀에 있는 거대한 김구 선생 좌상이 관람객을 반갑게 맞아준다.  바로 옆에 있는 전시실 안쪽으로 들어가 걷다보면 백범 가족의 흉상들을 발견하게 된다. 김구 선생의 부모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정치가나 위인은 아니었지만,  김구 선생을 위대한 인물로 키워냈다. 특히 어머니 곽낙원 여사는 강한 정신력과 애국심으로 김구 선생의 사상 형성과 독립운동에 중요한 영향을 준 인물로 평가된다. 
영상으로 만나는 백범 김구 선생 ©박유진
영상으로 만나는 백범 김구 선생 ©박유진

극적으로 사형집행에서 벗어나다

수많은 전시물들 옆에 설치된 스크린 앞에 발걸음을 멈추면 벽에 붙어있는 버튼을 발견하게 된다. 버튼을 누르자 영상이 시작되었는데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 상영된다. 바로 백범의 살인과 사형집행에 관한 이야기다. 백범 선생이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사실 드물다. 1896년 청년 김구는 한 일본인을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낭인이나 군인으로 판단하고, 국모의 복수를 위해 그 일본인을 맨손으로 때려 죽였다. 이후 체포되어 사형집행을 앞두게 되었는데 고종황제가 간발의 차로 그의 사형집행을 중지시켰다. 이후 탈옥을 한 백범은 항일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고종황제의 사형집행 정지 명령을 전달한 전화기를 재현한 전시물 ©박유진
고종황제의 사형집행 정지 명령을 전달한 전화기를 재현한 전시물 ©박유진

김구를 살린 고종황제의 긴박한 전화

바로 옆에는 당시 고종황제의 사형집행 중지 명령을 전달했던 전화기를 재현한 전시물이 설치되어 있다.  관람객들은 해당 전화기를 통해 당시의 상황에 대한 설명을 귀로 들을 수 있다. 당시 인천까지 가설된 지 사흘밖에 되지 않았던 전화를 통해 집행 정지 명령이 전달되었다는 일화를 바탕으로 꾸민 코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만나는 코너들 ©박유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만나는 코너들 ©박유진

백범의 독립운동, 임시정부에서 꽃피우다

백범은 교육활동과 독립운동, 통일운동에 매진했는데 그 중에서도 독립운동에 대한 전시물로 꾸며 놓은 코너가 눈에 띈다. 백범은 중국 대륙을 횡단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동시키면서 시련 속에서도 임시정부를 지켜냈다. 1919년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여 경무국장을 시작으로 주석을 역임하며 임정을 이끌던 백범은 1931년 한인애국단을 창설하고 단원인 이봉창, 윤봉길, 이덕주 등을 특공작전에 투입시켰다.  
실제 백범과 똑닮은 인형 ©박유진
실제 백범과 똑닮은 인형 ©박유진

백범의 서거, 민족의 슬픔

1949년 6월 26일은 백범 김구가 안두희의 흉탄에 의해 서거한 날이다. 이날은 민족의 큰 스승이 사라진 날이며, 그의 죽음은 결국 6.25 전쟁을 막지 못하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광복 후 백범은 38선을 경계로 남북이 갈라지자 통탄해하며 통일운동을 전개했다. 남북의 통일, 자주, 독립정부를 수립하고 38선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백범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예견하기도 했다. 

백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남북한에 정부가 각각 들어서게 되었지만, 김구 선생은 평화적 협상을 통한 통일 대한민국을 희망하며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A.I. 로 만나는 <백범일지>와 백범 김구 ©박유진
A.I. 로 만나는 <백범일지>와 백범 김구 ©박유진

AI로 만나는< 백범일지>와 백범 김구

시대의 흐름에 맞게 디지털로 구현된 코너들이 인상적이다. 특히  AI로 만나는 <백범일지>와 백범 김구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 더 많고 깊은 정보를 제공해준다. 
스탬프와 합성사진 ©박유진
스탬프와 합성사진 ©박유진

방문기념으로 스탬프와 합성사진을 찍기

관람이 거의 다 끝나갈 무렵에 출구 앞에서 어린이들이 특히 좋아할 만한 기념품들을 발견했다. 김구 선생과 함께 찍은 사진처럼 합성해주는 프로그램으로 나만의 기념사진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사진 출력도 가능하다. 바로 옆에는 리플렛에 방문기념 스탬프를 찍어서 가져갈 수 있게 했다. 
더욱 풍성한 역사교육을 위한 활동지 ©박유진
더욱 풍성한 역사교육을 위한 활동지 ©박유진

백범 김구의 삶과 사상을 배울 수 있는 활동지

백범 김구 기념관에는 어린이나 청소년은 물론 성인들도 활동지를 통해서 학습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 단순히 보고 듣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쓰고 머리를 굴리면서 확실하게 지식으로 가져갈 수 있게 한 배려다. 
백범의 마지막 인사와 당부 ©박유진
백범의 마지막 인사와 당부 ©박유진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백범은 <백범일지>에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오늘날 K-컬처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모습을 백범이 본다면  매우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직도 남북이 통일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백범의 통일운동을 우리가 계속해서 이어나가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백범김구기념관

○ 위치 : 서울시 용산구 임정로 26 (효창동 255)
○ 교통 : 지하철 6호선·경의중앙선 효창공원앞역 1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 관람일시 : 화~일요일 3~10월 10:00~18:00, 11~2월 10:00~17:00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기타 관장이 정하는 날
○ 관람료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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