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길부터 이준 열사 집터까지…지금 가기 좋은 정동 인근 역사코스

시민기자 김대진

발행일 2026.03.19. 16:26

수정일 2026.03.19. 18:36

조회 410

유발 하라리는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본질적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역사가들이 과거를 연구하는 이유는 과거를 다시 불러오기 위함이 아니고, 과거의 묶임에서 풀려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정동과 고종의 길에는 시대의 격랑 속에서 제국의 운명을 짊어져야 했던 이들의 기대와 절망이 화석처럼 축적되어 있다. 사건과 인물, 그리고 대한제국의 마지막을 경험하던 이들의 두려움과 투쟁이 층층이 쌓여 있다.

'고종의 길'에서 이준 열사의 동상까지 이어지는 여정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일궈낸 선조들의 처절한 투쟁 기록이다. 역사는 우리의 기술과 정치 뿐만 아니라 꿈도 만들어낸다. 100여 년 전 정동에서 시작된 고뇌와 노력이 오늘날 성공한 대한민국의 밑거름이 되었음을 확인한다. 과거를 직시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 결박에서 벗어나 더 밝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직접 이 길을 걸으며 선조들이 꿈꿨던 자주 국가의 의미를 되새겨 보길 권한다. 역사를 기억하는 발걸음이 모여 우리의 내일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1. 시련의 길 : '고종의 길' 구 러시아 공사관 (아관파천)

1895년 10월 8일, 경복궁 옥호루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발생한다. 고종은 궁궐 안에서 극심한 고립과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결국 1896년 2월 11일, 고종은 경복궁을 탈출해 정동의 러시아 공사관(아관)으로 거처를 옮긴다. 좁고 가파른 '고종의 길'은 당시 주권을 위협받던 군주의 처절한 선택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고종은 친일 내각을 붕괴시키고 환궁과 대한제국 선포라는 새로운 국가적 구상을 가다듬는다.
'고종의 길' 안내판. 아관파천의 배경과 길의 복원 과정을 설명한다. ©김대진
'고종의 길' 안내판. 아관파천의 배경과 길의 복원 과정을 설명한다. ©김대진
덕수궁 돌담 사이 길. 국가의 운명을 짊어지고 걸었을 긴박함이 서려 있다. ©김대진
덕수궁 돌담 사이 길. 국가의 운명을 짊어지고 걸었을 긴박함이 서려 있다. ©김대진
고종의 길, 옛 러시아 공사관의 흰탑을 향해 걷는 발걸음이 무겁다. ©김대진
고종의 길, 옛 러시아 공사관의 흰탑을 향해 걷는 발걸음이 무겁다. ©김대진
정교하게 쌓인 돌담과 흙길. 이 길을 따라 오가며 고종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김대진
정교하게 쌓인 돌담과 흙길. 이 길을 따라 오가며 고종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김대진
옛 러시아 공사관이 자리한 정동공원 ©김대진
옛 러시아 공사관이 자리한 정동공원 ©김대진
고종이 피신했던 장소, 옛 러시아 공사관(아관)의 흰 탑 ©김대진
고종이 피신했던 장소, 옛 러시아 공사관(아관)의 흰 탑 ©김대진

2. 자주독립의 선포 : 환구단과 덕수궁

1897년 2월,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을 떠나 경복궁이 아닌 덕수궁(경운궁)으로 환궁한다. 같은 해 10월 12일, 고종은 제국의 황제만이 거행할 수 있는 하늘 제사를 환구단에서 올리며 대한제국 수립을 전 세계에 알리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덕수궁 내 석조전과 정관헌은 황제가 꿈꿨던 근대화의 현장이다. 서양식 건축과 문화를 수용하며 자주국방과 산업화를 추진했던 광무개혁의 의지가 이 건축물들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환구단에서 바라보는 풍경, 과거의 투쟁과 오늘날의 번영이 공존한다. ©김대진
환구단에서 바라보는 풍경, 과거의 투쟁과 오늘날의 번영이 공존한다. ©김대진
환구단 입구. 러시아 공사관을 떠난 고종이 자주독립 국가를 선포한 곳이다. ©김대진
환구단 입구. 러시아 공사관을 떠난 고종이 자주독립 국가를 선포한 곳이다. ©김대진
빌딩 숲 사이 고고하게 자리한 환구단 황궁우와 협문이 조화를 이룬다. ©김대진
빌딩 숲 사이 고고하게 자리한 환구단 황궁우와 협문이 조화를 이룬다. ©김대진
황궁우 전경. 팔각 3층 지붕이 제국의 격조를 보여준다. ©김대진
황궁우 전경. 팔각 3층 지붕이 제국의 격조를 보여준다. ©김대진
궁우 계단 석수(石獸). 황제의 공간을 지키는 엄숙함이 느껴진다. ©김대진
궁우 계단 석수(石獸). 황제의 공간을 지키는 엄숙함이 느껴진다. ©김대진
구운 벽돌과 무지개 형태의 홍예문으로 구성된 환구단의 옛 문 ©김대진
구운 벽돌과 무지개 형태의 홍예문으로 구성된 환구단의 옛 문 ©김대진
도심 속 현대 건물과 대비를 이루는 환구단 정문의 고풍스러운 모습 ©김대진
도심 속 현대 건물과 대비를 이루는 환구단 정문의 고풍스러운 모습 ©김대진
환구단 정문인 석조 삼문 중앙을 통해 바라본 팔각 황궁우의 정교한 대칭미 ©김대진
환구단 정문인 석조 삼문 중앙을 통해 바라본 팔각 황궁우의 정교한 대칭미 ©김대진
도심 속 빌딩 사이로 길게 이어진 환구단 돌담길이 고즈넉하다. ©김대진
도심 속 빌딩 사이로 길게 이어진 환구단 돌담길이 고즈넉하다. ©김대진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세워진 석고(石鼓, 돌북) ©김대진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세워진 석고(石鼓, 돌북) ©김대진
그리스 신전 양식을 차용한 신고전주의 건축물인 석조전 전경 ©김대진
그리스 신전 양식을 차용한 신고전주의 건축물인 석조전 전경 ©김대진
황금빛 장식과 서구식 가구가 배치된 근대 황실의 접견 공간, 석조전 ©김대진
황금빛 장식과 서구식 가구가 배치된 근대 황실의 접견 공간, 석조전 ©김대진
덕수궁 서양과 한국의 미가 혼합된 고종의 휴식 및 연회 공간, 정관헌 ©김대진
덕수궁 서양과 한국의 미가 혼합된 고종의 휴식 및 연회 공간, 정관헌 ©김대진

3. 투쟁의 현장 : 중명전과 헤이그 특사

1905년 11월 17일, 일제는 무력을 동원해 중명전에서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한다. 고종은 이에 굴하지 않고 1907년 4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 세 특사를 파견한다. "법과 정의가 살아있다면, 어찌하여 힘을 앞세운 자들이 우리의 주권을 빼앗는 것을 묵인합니까?"라는 외침은 국제 사회를 향한 대한제국의 마지막 사자후였다. 비록 일본의 방해로 회의장에 입장하지는 못했다. 이준 열사는 7월 14일 헤이그에서 울분을 참지 못한 채 순국하며 국권 회복의 의지를 세계에 알린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극의 현장이자 헤이그 특사 파견을 결단했던 장소인 중명전 ©김대진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극의 현장이자 헤이그 특사 파견을 결단했던 장소인 중명전 ©김대진
중명전의 붉은 벽돌 기둥 너머로 외교적 항거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김대진
중명전의 붉은 벽돌 기둥 너머로 외교적 항거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김대진
중명전 입구 안내판, 정동길의 차분한 분위기와 역사의 무게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김대진
중명전 입구 안내판, 정동길의 차분한 분위기와 역사의 무게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김대진

4. 끝이 아닌 시작 : 이준 열사 집터와 동상

특사 파견의 결과로 고종은 강제 퇴위 당하고 1910년 끝내 나라를 빼앗기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이준 열사의 순국은 연해주 무장 독립운동으로 이어졌고, 그 저항의 에너지는 훗날 조국을 되찾는 원동력이 된다. 안국동의 이준 열사 집터를 지나 장충단공원의 동상 앞에 서면, 아픈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진다. 과거의 상처를 직시할 때 비로소 우리는 과거의 결박에서 벗어나 더 단단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시민들의 일상이 흐르는 공간으로 변모한 안국동의 이준 열사 집터 주변 ©김대진
시민들의 일상이 흐르는 공간으로 변모한 안국동의 이준 열사 집터 주변 ©김대진
헤이그 특사 파견의 주역인 이준 열사의 집터임을 알리는 벽면 안내판 ©김대진
헤이그 특사 파견의 주역인 이준 열사의 집터임을 알리는 벽면 안내판 ©김대진
장충단공원에 자리한 을미사변 등으로 순국한 충신들을 기리는 공간인 장춘단 비 ©김대진
장충단공원에 자리한 을미사변 등으로 순국한 충신들을 기리는 공간인 장춘단 비 ©김대진
장충단공원에 우뚝 선 이준 열사의 동상은 독립을 향한 결연한 의지를 대변한다. ©김대진
장충단공원에 우뚝 선 이준 열사의 동상은 독립을 향한 결연한 의지를 대변한다. ©김대진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외교적 노력을 다한 이한응 선생을 기린다. ©김대진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외교적 노력을 다한 이한응 선생을 기린다. ©김대진
독립을 향한 격동의 세월과 극복의 서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장충단 전시실 ©김대진
독립을 향한 격동의 세월과 극복의 서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장충단 전시실 ©김대진

대한제국과 고종황제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

고종의 길 (덕수궁 ~ 구 러시아공사관)
○ 위치 : 서울시 중구 덕수궁길 83 (덕수궁 서북쪽 돌담길 ~ 정동공원 연결)
○ 교통 :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6번 출구 (도보 약 7분), 1·2호선 시청역 1번·12번 출구
○ 운영시간 : (2월~10월) 09:00~18:00 (입장마감 17:30), (11월~1월) 09:00~17:30 (입장마감 17:00)
○ 휴무일 : 매주 월요일
○ 특이사항 : 아관파천 당시 고종황제가 이동했던 120m의 산책로

환구단
○ 위치 : 서울시 중구 소공로 106 (웨스틴조선호텔 내)
○ 교통 : 지하철 1·2호선 시청역 6번 출구 (도보 3분), 2호선 을지로입구역 8번 출구
○ 운영시간 : 24시간 개방 (단, 황궁우 내부 등은 제한될 수 있음)
○ 휴무일 : 연중무휴
○ 특이사항 : 고종황제가 하늘에 제사 지내고 황제 즉위식 거행 장소

덕수궁 내부 석조전, 정관헌
○ 위치 :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99
○ 교통 : 지하철 1·2호선 시청역 1번 출구 바로 앞
○ 운영시간 : 09:00~21:00 (입장마감 20:00)
○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 09:30~17:30 (내부 관람은 궁능유적본부 누리집 사전 예약 필수)
○ 휴무일 : 매주 월요일

덕수궁 외부 중명전
○ 위치 : 서울시 중구 정동길 41-11
○ 교통 : 지하철 1·2호선 시청역 1번·12번 출구 도보 약 10분, 5호선 서대문역 5번 출구
○ 운영시간 : 09:30~17:30 (입장마감 17:00)
○ 휴무일 : 매주 월요일
○ 특이사항 :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장소이자 헤이그 특사를 파견한 장소

이준 열사 집터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148번지 (해영회관 앞) <
○ 교통 :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 도보 약 3분
○ 운영시간 : 외부 길가에 설치된 역사문화 표석으로 상시 확인 가능
○ 특이사항 : 헤이그 특사 파견 당시 이준 열사가 살았던 곳으로, 2017년 표석 설치

이준 열사 동상 (장충단공원)
○ 위치 : 서울시 중구 동호로 257 (장충단공원 내)
○ 교통 :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6번 출구 바로 앞
○ 운영시간 : 공원은 연중무휴 상시 개방
○ 공원 내 장충단 기억의 공간 전시실 : 화~일요일 10:00~17:00
○ 휴무일 : 매주 월요일
○ 특이사항: 을미사변 때 순국한 장졸들을 기리는 장충단공원 내

시민기자 김대진

서울의 아름다운 문화와 역사 이야기를 찾아 전합니다.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카카오톡 채널 구독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