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터널에 불이 났다면? 연기 속에도 빛나는 '안전빛색'

시민기자 김윤경

발행일 2026.01.19. 14:43

수정일 2026.01.19. 14:43

조회 1,542

변화된 안전 시설물 및 안전빛색 ©서울시
변화된 안전 시설물 및 안전빛색 ©서울시
휴대전화로 터널 화재를 알리는 안전 안내 문자를 받은 적이 있다. ‘만약 내가 그 안에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자 두려움이 앞선다. 특히 차를 운전하는 남편을 떠올리면 더욱 걱정이 된다. 터널은 출구가 제한된 밀폐된 공간으로, 화재가 발생하면 연기와 유독가스가 빠르게 차오르고 시야는 앞 1m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해진다.
화재 사고가 났을 때 일반 도로에서는 차를 세우고 갓길로 대피하면 되지만, 터널 안에서는 어디로 가야 할까? 자욱한 연기에 눈을 뜰 수 없는 상황에서 피난 연결 통로가 어디쯤 있는지, 비상구가 어느 방향인지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

이런 아찔한 상황에서 생명을 지켜줄 빛이 서울의 터널에 설치되고 있다. 지난해 5월, 서울시는 전국 최초로 연기 속에서도 뚜렷하게 보이는 ‘안전빛색’안전경관등을 도입했으며, 12월에는 홍지문·정릉·구룡터널 3곳에 시범 설치했다.
직접 찾아가 본 홍지문터널과 정릉터널 ©김윤경
직접 찾아가 본 홍지문터널과 정릉터널 ©김윤경
안전빛색은 눈에 잘 들어올까? 만약 내가 터널에서 화재 사고를 당한다면 제대로 대피할 수 있을까? 직접 확인하고 싶어 운전자 옆에 동승해 홍지문터널정릉터널을 찾았다(두 곳은 도보로는 진입할 수 없다).

터널에 들어서자 일정 간격으로 설치된 안내판소화기가 눈에 띄었다. 조금 더 가자 천장과 벽면을 따라 이어진 조명이 시야에 들어왔다. 천장에서 벽면으로 이어지는 띠 형태의 조명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왔다. 일반 터널 조명의 백색광과는 확연히 다른 밝은 연둣빛 안전경관등이 피난 연결 통로 입구를 감싸고 있었다. ‘이 빛을 따라 피난 연결 통로로 대피해야 하는구나’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일반 조명과 뚜렷하게 구분되어 연기가 가득한 비상 상황에서도 대피로를 찾기 훨씬 수월해 보였다.
터널에 들어서니 곳곳에 안내 표시와 소화기가 보였다. ©김윤경
터널에 들어서니 곳곳에 안내 표시와 소화기가 보였다. ©김윤경
홍지문터널에는 총 3곳, 정릉터널에는 총 2곳의 피난 연결 통로가 있다. 각 지점에는 연둣빛으로 빛나는 터널안전경관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터널안전경관등은 피난연결통로가 위치한 지점의 벽면과 천장에 안전빛색 띠를 둘러 화재 시 연결통로를 안내하고 대피를 돕는 역할을 한다. 기존에는 녹색 피난 유도등만 있어 터널 내 다른 조명과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안전빛색 조명은 훨씬 더 눈에 띄었다.
정릉터널에는 총 2곳의 피난 연결 통로가 있다. ©서울시
정릉터널에는 총 2곳의 피난 연결 통로가 있다. ©서울시
구룡터널에는 축광식 위치 표지가 설치되어 있다. 터널 벽면에 일정 간격으로 부착된 이 표지는 현재 위치의 일련번호와 터널 입구로부터의 거리를 함께 표시한다. 어두운 곳에서도 빛을 내는 축광 시트를 사용해 정전 시 최대 1시간 동안 발광한다. 사고 발생 시 119에 정확한 위치를 알릴 수 있어 유용하다.
정릉터널 성수 방향은 안전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서울시
정릉터널 성수 방향은 안전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서울시
서울시는 시범 운영을 통해 안전 디자인의 적용성을 현장에서 검증한 뒤, 효과가 확인되면 다른 터널과 지하차도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현재 진행 중인 영동대로 복합 개발,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등 각종 도로 지하화 사업에도 이 안전 디자인을 적용할 계획이다.
홍지문터널, 정릉터널에서 피난 연결 통로의 안전빛색을 확인했다. ©김윤경
홍지문터널, 정릉터널에서 피난 연결 통로의 안전빛색을 확인했다. ©김윤경
전국 최초로 적용한 안전빛색은 어떻게 개발된 것일까? 유지 비용은 들지 않을까? 축광 시트가 최대 1시간 동안 발광한다면 화재 진압 시간에 부족하지는 않을까? 여러 가지 궁금증이 생겨 서울시 디자인정책과와 도로기술과 담당자에게 좀 더 자세히 물어봤다.

Q. ‘안전빛색’과 기존 녹색 유도등과의 차이점이 궁금합니다.
A. 안전빛색은 전문가 의견에 따라 YG(Yellow Green) 장파장 빛을 선정했습니다. 이는 기존 녹색 유도등보다 야간이나 저조도 환경에서 더 잘 인식되고, 먼지나 매연에도 투과력이 높아 터널 안전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또한 녹색 유도등과 인접한 색상 계열로 정보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시인성이 우수합니다.
국내 유일의 건설기술 분야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한국산업기술시험원’을 통해 위급 상황에서 빛의 투과율, 투사율, 가시성 등을 실험해 안전성을 확인한 뒤 ‘서울 안전빛색’으로 지정했습니다. 더 나아가 모든 현장에 동일한 조명을 적용하기 위해 단색광 LED 안전조명 소자도 개발했습니다.

Q. 축광식 위치 표지가 최대 1시간 동안 발광한다는데, 실제 터널 화재 상황에서 그 시간이 충분할까요?
A. 축광식 위치 표지는 현 위치 번호와 입구까지의 거리 정보를 제공하고, 추돌 사고나 암전 상황에서 현재 위치를 인지해 신고하는 데 도움을 줘요. 화재 상황에서도 유용하지만, 특히 터널 조명이 정전으로 모두 꺼진 암전 상황에서 더 효과적입니다. 터널 화재는 통상 10~30분 정도 지속되며, 진압 완료까지는 1시간 미만이 소요됩니다.

Q. 유지 보수 비용과 내구성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A. 터널 안전등부식에 강한 내구성 소재로 제작되었으며, 먼지와 습기에 강한 IP66 등급 LED 조명을 사용했습니다. 사계절의 온도 변화에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되었고, 기존 터널등보다 가벼워 유지 보수가 쉽고 비용도 절감됩니다.
 연장이 길고 통행량이 많은 홍지문터널 ©서울시
연장이 길고 통행량이 많은 홍지문터널 ©서울시
Q. 서울시는 ‘안전빛색’을 적용한 안전경관등과 축광식 위치 표지를 홍지문·정릉·구룡터널 세 곳에 설치하고 시범 운영에 나섰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 터널이 시범 대상으로 선정된 이유와 기준은 무엇일까요?
A. 홍지문·정릉·구룡터널은 서울시 터널 중 연장이 길고 특히나 통행량이 많은 터널입니다. 사고 빈도나 시민들의 이용률을 고려해 선정했습니다.

Q. 실제 화재 상황을 가정한 시뮬레이션이나 소방 훈련이 있었을까요?
A.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터널과 유사한 시험장에서 연기를 발생시켜 시인성 실증 실험을 진행하고 전문가 평가를 거쳤습니다. 한국산업기술시험원에서는 비상 조명등이 조도 기준을 충족하는지를 성능 평가했고요. 또한 관리기관과 소방서가 참여하는 소방 합동 훈련을 정기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다가오는 훈련에서는 화재(연기) 환경을 조성해 소방 분야 의견을 청취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다만, 터널 내 연기 발생으로 인한 시야 제한으로 차량 운행 안전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전면 통제를 실시해야 해 시민들의 교통 불편 등을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룡터널에 설치된 터널 안전경관등 ©서울시
구룡터널에 설치된 터널 안전경관등 ©서울시
Q. 터널 내 다른 조명(차량 전조등, 기존 LED 등)과 혼선 가능성은 없을까요?
A. 터널 내 기본 조명과 차량 전조등은 백색으로 서울 안전빛색과 혼선의 여지가 없으며 운전자의 시야에 빛 간섭이 없도록 위치를 선정해 설치했습니다.

Q. 해외에 유사한 사례가 있는지 궁금하고요. 또 서울시만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A. 미국 소방기술사회(SFPE) 제안 디자인, 프랑스 몽블랑(Mont-Blanc) 터널, 벨기에 애니 코르디(Annie Cordy) 터널 등에서 터널 내 피난 연결 통로를 강조하기 위한 다양한 디자인을 개발한 사례가 있습니다. 해외 여러 사례가 비상구의 시인성을 높이기 위해 비상구 문을 중심으로 녹색으로 도색하고 부분 조명을 쓰고 있습니다. 서울 안전빛색은 연기가 가득 찼을 경우에도 보일 수 있도록 빛으로 표시하는 방법을 채택했으며 비상구뿐만 아니라 일대를 구역화하여 인지 거리를 늘리는 방안을 강구했습니다.
한편 서울시설공단 공식 유튜브 채널 서시공TV에서도 홍지문터널 사고 발생 시 대피 요령을 쉽게 설명한 쇼츠 영상을 볼 수 있다. 이 영상은 지난 12월 서울시설공단 전 부서를 대상으로 '재난대비훈련 영상 경진대회' 출품작 19편 가운데 우수상으로 선정된 ‘홍지문터널 훈련 영상’이다. ☞ [영상 보기] 2025년 홍지문터널 유관기관 합동소방훈련 (재난대비훈련 영상 경진대회 '우수상')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화재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화재가 일어난다면 신속히 대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터널 안이 연기로 가득 차 피난 유도등이나 대피 시설을 찾기 어려울 때는 연둣빛 ‘안전빛색’이 보이는 곳으로 대피하자. 평소에 알아두면 위기 시 나와 가족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 서울 전역의 터널과 지하차도에 설치되어 시민들에게 더욱 안전한 도시가 되기를 기대한다.

시민기자 김윤경

정책부터 명소까지 직접 체험하며 역동적인 서울의 모습을 함께 알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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