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 많다! 서울 지명에 숨어 있는 '말(馬)' 이야기

서울사랑

발행일 2026.01.12. 15:18

수정일 2026.01.1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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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올라와 서울을 누빈 말 이야기
올해는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다. 말은 왕실의 위엄을 상징하고, 군사력을 뒷받침하는 중요 국가 자산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말을 서울 한강 변으로 이송해 방목·조련하고, 왕실·군용으로 공급했다. 그 덕분에 서울은 지금까지도 말과 관련한 흔적을 여럿 품고 있다.

말과 관련한 지명

말과 물류가 만나는 포구, 마포나루

한강의 대표 나루인 마포나루는 지방에서 올라온 군마와 역마, 물류가 모이던 교통 중심지였다. 지방에서 수송된 곡물, 세곡선의 물자, 역마 체계의 교환 지점이 여기에서 맞물렸다. 강을 끼고 말을 갈아타던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마포는 조선 후기 한양의 ‘물류 허브’로 자리 잡았다.

관리들의 쉼터, 역촌동

은평구 역촌동은 조선 시대에 장거리 여행을 할 때 말이 쉬어 가던 정류장인 역(驛)의 역할을 했다. 한양 북서쪽의 관문 역할을 한 이곳에서 전국의 소식을 전달하던 파발마와 관원들이 휴식을 취했다. ‘말이 쉬어 가던 정류장’이라는 의미가 지명으로 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관들의 말을 피하던 골목, 피맛골

맛집 골목으로 유명한 종로의 ‘피맛골’도 말과 관련한 지명이다. 말을 피한다는 ‘피마(避馬)’와 ‘골목’이 합쳐진 피맛골은 양반이 말을 타고 종로를 지나갈 때 서민이 길을 비켜주거나 엎드려 예의를 표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만들어진 골목이다. 이 골목에 자연스럽게 목로주점, 장국밥집 등 서민 음식점이 들어서면서 종로구 대표 맛집 골목으로 발전했다.

역참이 모인 교통 요지, 역삼동

강남구 역삼동은 조선 시대에 역(驛)이 세 곳 있던 ‘삼라리(역촌·말죽거리·윗방아다리)’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말이 쉬어 가던 정류장인 역은 지방에서 올라온 관리와 사신들이 말을 갈아타며 한양으로 향하던 교통 중심지였다.

여행자들의 쉼터, 말죽거리

서초구 양재역사거리 일대를 일컫는 말죽거리는 지방에서 도성으로 오는 길목에서 여행자들이 말에게 죽을 끓여 먹이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먼 길을 달려온 말들을 쉬게 하고 여장을 푸는 쉼터였으며, 상인과 행인의 필수 경유지였다.

말 사육장, 마장동

성동구 마장동은 이름 그대로 말을 기르던 마장(馬場)이 있던 곳이다. 조선 시대 국가 목장으로, 왕실용과 군용 말을 사육했다. 왕의 말을 담당한 관리들이 드나드는 곳이기도 했다. 서울 도심이 확장되면서 현재는 육류 도매시장으로 기능이 바뀌었다.
제주에서 올라와 서울을 누빈 말 이야기
말과 관련한 시설

조선 시대 국가 목장, 양마장

양마장(養馬場)은 성동구 마장동과 자양동 한강 변 평야에 조성된 조선 시대 국가 목장으로, 제주도에서 건너온 말을 방목하며 군사와 행정용 말을 공급했다. 이 지역의 평탄한 지형과 한강·중랑천의 물과 풀은 말 사육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했다.

기마 훈련의 초지, 서울숲

성동구 한강 변에 펼쳐진 광활한 평야는 조선 후기에 기마 훈련장으로 쓰이며 다수의 말들이 방목되던 군사 공간이었다. 한강의 풍부한 물을 이용할 수 있는 이 초지에서는 기마 훈련과 말 운용 점검이 동시에 이뤄졌다. 왕명으로 관리하던 이 뚝섬 일대의 초지에서는제주도에서 올라온 말들이 적응 훈련을 하기도 했다.

조선 시대 군사 훈련장, 살곶이벌

살곶이벌은 성동구 중랑천 근처의 넓은 평야로, 조선 시대에 왕이 활 따위를 시험 삼아 쏘는 시사(試射)를 하던 군사 훈련장이었다. 화살의 ‘살’과 꼬치처럼 줄지어 선 행렬이라는 뜻의 ‘곶’이라는 이름처럼 수천의 병사들이 화살과 말 행렬을 동원해 실전처럼 연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태조 때 설치된 살곶이목장은 관용 말과 소를 키우는 목장으로 쓰였다. 이 흔적은 현재 살곶이체육공원과 한양도성길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서울 외곽 방어의 역사를 생생히 보여준다.

기마 이동로의 축, 풍납토성·몽촌토성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은 서울 송파구를 중심으로 한 백제 한성기(기원전 18년~475년)의 대표적 토성 유적지다. 두 토성이 잇닿아 있다는 점은 이곳이 고대부터 기마의 이동과 백제의 정치· 군사 중심지였음을 보여준다. 통일신라 이후에도 송파는 남한산성과 한강을 잇는 기마 이동로가 교차하던 지점 중 하나의 역할을 했다.

왕의 말을 맡던 관청, 사복시

종로구 경희궁 길 일대에 자리했던 사복시(司僕寺)는 왕실의 모든 말을 책임지는 중요한 관청이었다. 왕의 어가 행렬용 말, 군용 말, 의례용 말까지 관리하며 국가의 위엄을 뒷받침했다. 사복시는 말의 건강 상태, 걷는 자세, 화려한 금은 장식 마구까지 철저히 점검했다. 말의 빛깔·장식·진열 순서가 예법의 언어였기 때문에 왕실의 말 행렬은 정치적 행사이자 왕권의 시각적 상징처럼 연출되었다.

군마를 관리하던 군기시

무기와 병기, 갑옷 등을 관리하던 군기시(軍器寺)는 군마 운용과 맞물린 군사 병참의 중심지였다. 군마는 기병 전력의 핵심이었기에 중요한 관리 대상이었다. 현재 종로 견지동·인사동 일대에 자리했던 군기시에서 준비한 무기와 군마는 국방의 최전선으로 보내졌다. 오늘날 이 지역에는 문화시설과 전통문화 거리가 들어섰지만, ‘한양의 군사시설’이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다.
백미희     |     일러스트 조성흠
출처 서울사랑 ☞ 원문 바로가기

#말 #병오년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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