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반지하와 달동네, 주거여건 높이는 해결책은?

박한슬 작가

발행일 2025.11.27. 15:00

수정일 2025.11.27. 18:23

조회 1,504

박한슬 작가의 숫자로 보는 서울 이야기
서울 전경
  13화  서울의 수직 불평등, 반지하와 달동네

영화는 현실을 잔인할 정도로 잘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대표적이다. 영화에서 배우 송강호씨가 연기한 ‘기택’ 가족은 폭우가 쏟아지는 밤, 끊임없이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가야만 했다. 누군가에겐 미세먼지가 없는 쾌청한 내일을 불러오는 반가운 비일지 몰라도, 그들에겐 곧 삶의 터전이 오물에 잠기는 생존의 위협을 의미해서다.

반대로 하늘을 향해 고통스럽게 올라가는 장면도 있다. 영화 <조커>에서 주인공 아서는 매일 밤 지친 몸을 이끌고 끝도 보이지 않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중력(重力)이라는 물리적 하중을 온몸으로 견뎌낸다. 사회 하층민인 그가 살아내는 삶을 상징화한 장면이다.

그런데 서울의 빈곤 상황도 두 영화가 묘사하는 모습과 정확히 겹친다. 중산층에서 낙오된 이들이 향할 수 있는 곳은 도시의 밑바닥인 반지하거나, 혹은 마을버스조차 오르기 힘겨운 고지대의 달동네뿐이다. 대체 어쩌다 서울의 빈곤층은 두 방향의 이질적 공간으로 떠밀린 걸까.

반지하와 달동네의 기원

우리나라 빈곤층의 주거 공간은 자연 발생적인 서양 슬럼가와는 결이 다르다. 미국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슬럼가가 도시화 과정에서 도태된 이들이 모여들며 형성된 결과물이라면, 서울의 반지하와 달동네는 기형적 부산물에 가깝다.

시계를 1970년대로 되돌려보자. 1970년 4월 8일, 마포구 창전동의 와우산 자락이 무너져 내렸다. 입주한 지 불과 4개월 된 5층짜리 시민아파트 한 동이 폭삭 주저앉으며 33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이른바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서울 각지에 난립하던 무허가 판자촌을 밀어내고, 도시 빈민을 수용할 양질의 집단 주거지를 공급하겠다는 명목으로 시민아파트 건립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였다. 하지만 가파른 산비탈에 무리하게 건물을 올리면서도 철근은 빼돌리고, 시멘트 배합 비율조차 지키지 않자, 아파트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건축학적으로야 당시의 흔한 부실시공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되는 데 그칠 수 있겠지만, 해당 사건은 우리나라 공공 주거 정책에선 무척 큰 변곡점이 됐다. 정부는 사고 직후 서민용 집단 주거 공급 계획을 사실상 폐기했다. 대신 '아파트'라는 주거 양식은 중산층을 위한 고급 브랜드 단지로 재설계되며 신분 상승의 사다리이자 욕망의 대상으로 변모했다. 서양에선 주로 서민층이 거주하는 아파트가 우리나라에선 중산층 전유물로 승격된 셈이다.

아파트가 중산층 거주지로 변모하자, 저렴한 주거지를 잃은 서민들은 도시의 주변부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평지에 살 수 없게 된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은 땅을 파고 내려가거나, 하늘과 맞닿은 곳까지 올라가는 극단뿐이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우리나라에만 있는 반지하의 탄생은 더욱 기구하다.
반지하 주택
반지하 주택
원래 반지하는 사람이 살라고 만든 공간이 아니었다. 1968년 1월 21일, 흔히 ‘김신조 사태’라 불리는 북한 간첩단의 청와대 습격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고, 당시 정부는 유사시 서울 시민들이 대피할 방공호(防空壕)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건축법을 개정했다. 연면적 200㎡를 초과하거나 3층 이상인 건물을 신축할 때 의무적으로 지하실을 설치하도록 강제한 것이다. 안보 논리가 주거 정책을 압도하던 시절의 풍경이다.

문제는 1970년대 후반 도시화가 가속화되며 서울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유입되면서 발생했다. 농촌을 떠나 무작정 도시로 상경한 이들을 받아들일 정도의 주택 공급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주택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자, 정부는 1975년 건축법을 다시 손질해 거실, 주방 등 생활 공간이 지상의 50% 이상 노출된 경우에 한해 지하층 거주를 합법화했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의무적으로 만들어야 했던 텅 빈 방공호를 임대 수익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군사적 대피소는 가난한 이들의 보금자리로 둔갑했고, 햇볕이 들지 않는 눅눅한 시멘트 바닥 위로 세간살이가 들어찼다. 결국 영화 <기생충>에서 등장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은 반지하는 남파 간첩의 공포와 급격한 도시화가 화학적으로 결합해 만들어 낸 한국 특유의 '안보형 빈곤 주거'인 것이다. 지상의 아파트가 중산층의 욕망을 투영하며 수직으로 상승할 때, 서민들은 국가가 파놓은 방공호 속으로, 혹은 와우아파트가 무너져 내린 그 가파른 언덕 위로 숨어들어야 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까.

사회적 약자가 되어가는 고령층

우선 저지대의 반지하를 보자. 태생부터 주거용이 아니었던 탓에 채광이나 환기가 불량한 건 예사다. 그런데 여기에 기후 위기가 겹치자, 기존엔 쾌적하지 못한 주거시설 수준이었던 반지하가 자칫하면 묫자리가 될 수도 있다는 사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2022년 여름, 기록적인 폭우가 서울을 강타했을 때다. 지표보다 낮은 창문으로 기록적인 폭우가 들이닥치자, 빗물 때문에 반지하 거주자들은 방에 갇혀 익사했다. 서울시가 침수 사망 사건 직후 '반지하 일몰제'라는 강수를 두며 주거 상향을 약속한 것도 이런 위기감의 발로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현재 서울 시내 반지하 주택은 20만 호가 넘지만, 제도가 시행된 이후 실제로 지상층으로 이주하거나 용도가 전환된 사례는 2만 호 남짓에 불과하다. 공공이 대규모 대체 주거지를 마련하지 않는 한, 민간 시장의 논리만으로 이 거대한 물량을 해소하기란 요원하단 얘기다.

시선을 고지대로 돌리면 양상은 정반대로 나타난다. 고지대의 가장 큰 위험요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중력이다. 서울의 고지대 주거 밀집 지역, 이른바 '달동네'에는 유독 노인 인구 비율이 높다. 젊은 층이 떠난 자리를, 저렴한 주거비를 찾아 흘러든 독거노인들이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잔혹한 역설이 발생한다. 가장 기동성이 떨어지고 관절염 등 근골격계 질환에 취약한 인구 집단이, 가장 가파른 경사와 좁은 계단을 매일 오르내려야 하는 환경에 거주한다는 점이다.

서울시 균형발전본부의 조사에 따르면, 15개 자치구에 걸쳐 차량 진입이 불가능하고 오직 도보로만 이동해야 하는 급경사 계단 지역이 25곳이나 산재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행스러운 건 최근 서울시가 관련 문제에 대해 해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단 점이다.
관악구 봉천동(비안어린이공원 인근) 엘리베이터 설치 예상도(전→후)
관악구 봉천동(비안어린이공원 인근) 엘리베이터 설치 예상도(전→후)
종로구 숭인동(창신역 일대) 경사형 엘리베이터 설치 예상도(전→후)
종로구 숭인동(창신역 일대) 경사형 엘리베이터 설치 예상도(전→후)
서울시가 추진 중인 '고지대 이동약자 편의시설 설치 사업'을 살펴보자. 계획은 꽤 과감하다. 서울시는 2027년까지 전액 시비로, 달동네로 대표되는 고지대 주거지의 이동 환경을 뜯어고칠 예정이다. 단순히 계단을 보수하거나 난간을 설치하는 수준의 소극적 개입이 아니다. 사업 내용을 살펴보면, 경사가 심해 차량 진입이 불가능한 곳에는 '경사형 엘리베이터'나 '모노레일' 같은 신교통 수단을 도입하고, 수직 이동이 버거운 구간에는 수직형 엘리베이터를 꽂아 넣는 방식이다.

2024년 9월부터 10월까지 대상지 선정을 마쳤는데, 종로구 숭인동, 관악구 봉천동, 강서구 화곡동 등 서울의 대표적인 고지대 주거지 5곳이 1단계 시범 사업지로 이름을 올렸다. 노인과 같은 이동 약자가 집 밖으로 나설 수 있는 '이동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 [관련기사] '숨이 턱' 보행약자 울리는 가파른 계단 100곳 '무장애 길'로

이러한 접근은 앞서 언급한 '반지하 일몰제'와도 결이 같다. 다만 반지하는 거주가 불가능한 공간으로 규정해 도시에서 차츰 제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면, 달동네는 인프라 투자를 통해 다시 도시의 기능적 일부로 편입시켜야 할 재생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물론 서울의 모든 비탈길을 평지로 만들 순 없다. 하지만 이 사업이 갖는 상징성은 결코 작지 않다. 그동안 효율성의 논리에 밀려 방치되었던 달동네 접근성 문제를 공공이 인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예산과 기술을 투입하겠단 드문 결정을 내린 것이라서다. 실제로 달동네 주민의 주거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 적극 행정이다.

서울시의 시정 철학인 '약자와의 동행'은 자칫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게 베푸는 온정주의적 구호로 오해받기 쉽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반지하 일몰제나 고지대 이동편의시설 사업은 단순한 시혜(施惠)가 아니라, 고장 난 도시의 시스템을 수리하는 필수적인 복원 작업에 가깝다.

도시를 거대한 유기체로 본다면, 뻥 뚫린 대로(大路)가 동맥이고, 가파른 언덕과 좁은 골목길은 모세혈관이어서다. 모세혈관이 막혀 피가 돌지 않으면 그 끝은 결국 괴사(壞死)다. 지난 수십 년간 방치된 반지하의 침수와 고지대의 고립은 도시의 말단이 썩어들어가고 있다는 위험 신호였던 셈이다.

2025년 10월 투자심사를 거쳐 11월부터 본격적인 설계와 착공에 들어가는 이 사업이 완료되면, 숭인동과 봉천동의 가파른 계단은 더 이상 노인들의 이동을 막는 가파른 장벽이 아니라, 도시의 풍경을 조망하며 오르내리는 일상의 통로로 바뀌게 된다. 도시의 가장 낮은 곳에 물이 차오르지 않게 하고, 가장 높은 곳에 사는 이가 고립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서울이 지향해야 할 진정한 의미의 '균형 발전'이자 '약자와의 동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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