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 회복탄력성 높이는 의외로 간단한 이 행동

김경일 교수

발행일 2025.11.21. 16:26

수정일 2025.11.21. 14:11

조회 4,251

김경일 교수의 천만의 서울 만만의 마음
'잘 지내?'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이 행동
  5화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방법

회복 탄력성이라는 말은 이제 꽤 친숙하게 들린다. 영어로는 resilience라고 하는 단어의 우리말 번역이다.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크고 작은 다양한 역경과 시련과 실패를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튀어 오르는 마음의 근력’.

이를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커다란 역경을 맞이했을 때 좌절하지 않고 다시금 튀어 올라 원래의 지점보다도 더 높은 곳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회복탄력성이 크다 혹은 좋다는 말을 듣는다.

따라서 핵심은 시련과 역경을 겪고 있으면서도 세상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바라보고 낙관적인 사고를 잃지 않는 일상생활의 습관과 자세다. 이러한 긍정성을 평소에 지속적으로 유지해야만 회복탄력성이 좋아지니 말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실제로 이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방법을 우리는 잘 모른다. 두 가지의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힘이 되는 길이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우리가 자신에게 실천할 수 있는 행동이고, 두 번째 방법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작지만 강한 힘을 주는 언어다.

뇌가 느끼는 사회적 고통과 신체적 고통

우리는 살아가면서 동료와의 이별, 중요한 누군가에게 받는 질책, 상사나 주위 사람들과의 갈등, 더 나아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변 등 이른바 관계 속에서 받은 고통으로 아파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사회적 고통(social pain)이라고 한다. 반면, 물리적 고통은 예를 들어, 교통사고와 같은 실제 사고를 당해 통증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회복탄력성은 대부분 사회적 고통으로 야기된 어려움에 필요한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여기에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사회적 고통과 신체적 고통 모두 뇌에서 반응하는 영역이 전반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재미있고 심지어 놀라운 연구 결과들이 있다. 신체적 고통을 느낄 때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진통제를 복용한다. 그런데 진통제는 상처 부위 자체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뇌에서 그 고통을 담당하는 영역을 진정시킨다.

그렇다면 사회적 고통을 느낄 때 우리가 흔히 복용하는 진통제를 사용한다고 해서 그 고통이 덜 느껴질까? 놀랍게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를 보여주는 연구들이 실제로 상당수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

미국 켄터기 주립대학의 나탄 드월(Nathan DeWall) 교수 연구진은 이별과 같은 사회적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타이레놀과 같은 진통제를 지속적으로 복용케 했다. 그 결과 진통제 복용 집단은 같은 기간 아무것도 복용하지 않은 집단이나 위약(placebo)을 복용한 집단보다 3주 후 고통과 관련된 감정을 훨씬 더 낮게 지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신체적 고통과 같이 사회적 고통 역시 진통제로 완화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는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별과 갈등과 같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받은 상처로 고통받고 있는 누군가에게 하는 배려 중 하나가 바로 평소보다 깊은 위로와 안부 챙기기라는 것이다.

동료의 이직, 타인과의 경쟁에서의 탈락, 상사의 질책, 하급자와의 갈등 등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 상처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마치 교통사고 당한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배려해 주는 위로가 사람들의 회복탄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사회적 고통을 받는 사람에게 평소보다 깊은 위로와 안부 챙기기가 회복탄력성을 높인다.
사회적 고통을 받는 사람에게 평소보다 깊은 위로와 안부 챙기기가 회복탄력성을 높인다.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말을 주고 받자

별로 안 친한 사이에서는 부탁하거나 빌릴 것이 있을 때 어떻게 대화하는가? 곧바로 그 용건을 말하기가 쑥스럽고 어려우니 굳이 “잘 지내?” 혹은 “괜찮아?”와 같이 별 의미 없는 안부를 묻거나 위로의 말을 한다.

바꿔 말하자면 정말 친밀한 관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용무나 용건이 없어도 안부를 묻고 위로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뇌는 그 패턴을 기억하고 있다. 즉 별다른 뜻이나 목적 없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가깝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주위에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나의 자존감과 성취동기가 강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한 번쯤 스스로를 돌아보자 나는 얼마나 ‘용건 없이 안부’를 물어왔는가를 말이다.

사람은 일만하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공감하고 소통하며 관계 속에서 자기 삶의 이유와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존재다. 그래서 때로는 용무나 용건이 없는 행위가 필요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안부를 묻는 것이다. 왜냐하면 별로 가깝지 않기에 계약적 관계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용건이 있을 때만 안부를 물으면서 서로와 대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무언가 필요할 때만 전화하거나 안부 묻는 사람을 우리는 가깝다고 느끼지 않으며 심지어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해야 하는 행위가 있다. 용무나 용건 전혀 없이 그저 안부만 묻는 전화를 오늘부터 해 보시라. 싱거운 사람이라고 놀림 좀 받으시면 어떤가. 그런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친밀감을 만들어내고 그중에서 정말 소중한 사람들을 다시금 확인해 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필자 역시 지치고 힘들 때 문득 한동안 소식이 없던 친구로부터 뜬금없이 안부 전화를 받고 소소한 살맛을 느끼며 하루 종일 기분 좋은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적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어 주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좋지 않겠는가. 심지어 자살 직전에 이런 전화를 받고 다시 살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물론 이런 전화에 오히려 무언가 수상쩍다든가 의심스럽다는 느낌을 가진다면 그분은 한 번쯤 심각하게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볼 필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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