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한국 위상, 서울에서 국제 안보회의 가능한 이유 3가지

홍태화 연구원

발행일 2025.07.21. 11:22

수정일 2025.07.22. 17:52

조회 2,405

세계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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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습니다. 수도 서울은 기술, 문화, 경제뿐 아니라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데요. 현재 미국 외교정책연구소(FPRI)의 유라시아 펠로이자 프린스턴대에서 정치학을 연구중인 외교·안보 전문가 홍태화 연구원이 칼럼을 통해 국제 안보 논의의 장으로서 서울의 가능성을 짚어봅니다.
1963년 창설된 연례 뮌헨안보회의(Munich Security Conference)는 대서양 동맹의 구심점이자, 미국과 유럽 간 결속의 상징이다. 전 세계 안보 및 외교정책 결정자들이 모여 국제 안보 환경을 점검하고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핵심 무대다. 특히 나토(NATO)와 EU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미국 대통령, 국무장관, 국방장관, 의회 지도부도 자주 참석하여 주요 안보 이슈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고 정책 방향을 조율한다.

뮌헨 회의는 유럽 각국의 전략적 방향 설정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회의들에서는 다극화와 국제 질서 개혁, 식량안보 및 기후안보 등을 논의했다. 과거 히틀러가 영국과 프랑스의 유화 외교를 악용해 2차 대전의 서막을 연 '뮌헨 회담'의 악명을 떠올리던 뮌헨은 이제 대서양 동맹의 ‘성지’로 변모했다. 특히 미국-나토 관계가 과거와 같지 않은 오늘날, 뮌헨 회의는 대서양 공동체의 지속성을 확인하고 이견을 토로하는 핵심 무대다.

아시아에도 이와 같은 제도적 외교 공간이 필요하다. 국제 질서의 주 무대가 유럽에서 인도-태평양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권은 이 점을 인식하고 있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최근 “21세기는 인도-태평양에서 쓰여질 것”이라 밝혔으며,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도 “미국의 안보 최우선순위는 아시아”라고 못 박았다. 집권 공화당의 외교 전략은 점차 ‘선택과 집중’으로 수렴하고 있다. 전 세계 모든 지역에 동일하게 개입하는 것이 비현실적인 만큼, 지경학적으로 핵심적인 지역에 전략 자산을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이 때, 미국의 입장에서 아시아가 유럽보다 전략적 우선순위가 높다. 첫째, 유럽은 자율적 역량을 결집할 경우 러시아를 억제할 수 있지만, 아시아 동맹국들은 미국 없이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기 어렵다. 둘째, 유럽은 수세기 동안 세력 균형을 유지해온 반면, 아시아는 역사적으로 중국 중심의 단극적 질서에 익숙하다. 셋째, 향후 세계 경제의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지역 질서를 장악할 경우 최첨단 산업의 미래가 베이징의 손에 달릴 수 있다. 미국이 유럽에서 한 발 물러서더라도 NATO 회원국들은 집단적으로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지만, 아시아에서 미국이 후퇴한다면 역내 국가들은 중국의 영향력에 편승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미국으로 하여금 중국 중심의 경제 블록에 자신의 번영을 의존해야 하는 위험을 초래한다.

따라서 인도-태평양 내 주요 국가들이 정례적으로 모여 위협을 평가하고, 전략을 조율하며, 군사·경제·기술 협력을 논의하는 제도적 장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위기관리 능력을 향상시키고,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 구조 이외에도 다양한 협력 네트워크를 병렬적으로 구축할 수 있다.

물론, 싱가포르의 샹그릴라 대화가 이러한 목적에 일부 부합한다. 하지만 이 회의는 비교적 중립적 성격의 싱크탱크 주도로 운영된다. 참가국들의 전략적 합의보다는 공개 발언과 견해 표명이 중심이다. 가치와 국익을 공유하는 국가들 간 전략을 실질적으로 조율하고 행동 계획을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다. ‘항행의 자유’와 ‘교역로 안정’ 등 핵심 가치들을 공유하는 국가들의 파트너십을 활성화할 공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이 주도하는 ‘서울 안보회의(Seoul Security Conference)’ 창설을 고려할 수 있다. 한국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회의 개최국으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첫째, 한국은 20세기 후반 냉전의 최전선에서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출발했지만, 반세기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룩한 드문 사례다. 이는 비서구권 국가들 사이에서도 '가능성의 증거'로 작용하며, 단순한 경제력이나 군사력을 넘어선 리더십을 확보하는 토대가 된다. 서울에서 열리는 안보회의는 단지 선진국들 간의 회동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번영을 함께 경험한 국가로서 한국이 제시하는 비전과 규범을 공유하는 장이 될 수 있다.

둘째, 한국은 중국, 일본, 러시아, 북한 등 역내 주요 전략 행위자들을 접하고 있다. 미국과의 안보동맹을 통해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거점으로 기능해 왔다. 이는 서울이 단순히 중립적인 장소가 아니라, 전략적 이해관계가 겹치는 지점에 위치한 ‘현장성 있는’ 회의장임을 의미한다. 서울 안보회의는 단순한 의견 교환을 넘어, 위기관리 시나리오, 억제전략, 경제안보 협력 등 현실적인 논의를 활성화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셋째, 한국은 미국과의 조약동맹을 기반으로 하는 핵심 파트너이자, G20·IPEF·APEC 등 다자 협의체의 적극적 참여국이다. 동시에 아세안, 아프리카, 중동, 남미 국가들과도 외교적 외연을 확장해 왔다. 이제는 서구 선진국과 비서구 개도국 모두와 접점이 있는 ‘네트워크형 국가’로서의 입지를 활용해야 한다. 또한, 한국은 경제안보·기술안보·사이버 안보 등 신안보 분야에서 자체 역량과 경험을 갖추고 있어, 전통안보를 초월하는 의제 설정에서도 주도권을 발휘할 수 있다.

서울 안보회의는 국제 질서 설계자로서 한국의 위상을 입증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21세기 안보 의제는 군사력뿐만 아니라 기술, 공급망, 인공지능, 반도체, 핵 비확산, 팬데믹 대응 등 다양한 영역을 포괄한다. 우리도 다차원적 안보 의제를 조율할 수 있는 국가로 나서야 한다. 이는 한국 외교의 발언권을 제도적 형태로 확보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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