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양금명은 왜 인강에 주목했을까?

임명묵 작가

발행일 2025.05.08. 16:14

수정일 2025.05.08. 21:05

조회 1,765

임명묵 작가의 K-컬처를 읽어드립니다
‘자녀가 낙오되면 안 된다’는 절박한 심리를 활용해 사교육의 ‘공포 마케팅’이 큰 효과를 거두었다.
‘자녀가 낙오되면 안 된다’는 절박한 심리를 활용해 사교육의 ‘공포 마케팅’이 큰 효과를 거두었다.

임명묵 작가의 ‘K컬처를 읽어드립니다’ (3) 사교육과 인터넷 강의

올해 3월 한국을 떠들썩하게 한 대중문화 콘텐츠는 단연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였다. 제주도의 한 가정사를 통해 평범한 한국인이 겪은 애환과 보람을 따뜻하게 그려낸 이 드라마는 한국인의 공동체와 가정에 대한 감각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할 말이 참으로 많은 작품이지만, 그중에서도 흥미로운 것은 드라마 속 금명(아이유 분)의 행보다.

서울대를 졸업한 금명은 대우그룹에 입사하지만, IMF 외환위기의 파고 속에 정리해고 되면서 위기를 맞이한다. 그러던 와중 금명이 주목한 것은 인터넷이었다. IT 벤처붐 속에서 금명이 선택한 업종은 인터넷 강의였고, 금명은 성공한 여성 사업가로 거듭났다.

지난 세월 한국이 경험한 급속한 사회 변화와 그 속에서 한국인 각각의 삶을 그려내고자 했던 이 드라마의 성격을 고려하면, 작품 말미에 ‘인터넷 강의’를 소재로 넣은 것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1980년대만 해도 대학 진학률은 30% 수준에 머물렀으나, 경제 발전과 치열한 교육열이 맞물리면서 1990년대가 끝날 무렵에는 두 배 가까이 늘어 60%를 훌쩍 넘겼다. 이후 대학 설립을 자율화하면서 각지에 신설 대학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이에 대학 진학률은 2000년대에는 거의 80% 가까이로 늘어나기까지 했다.

고성장 시대였던 과거에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인생의 운명이 완전히 결정될 수 있음을 뼈저리게 깨우친 기성세대 부모들은 ‘자녀가 낙오되면 안 된다’는 절박한 심리를 대개 공유했다. 그리고 이 심리를 활용한 사교육의 ‘공포 마케팅’이 큰 효과를 거두면서 한국은 본격적인 입시 전쟁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1980년대만 해도 대학 진학률은 30% 수준이었으나 2000년대에는 80% 가까이 늘었다.
1980년대만 해도 대학 진학률은 30% 수준이었으나 2000년대에는 80% 가까이 늘었다.
사교육과 치열한 입시 경쟁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한국 대중문화의 중요한 소재로 자리매김했다. 2003년에 방영된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에서도 입시는 언제나 청소년들의 주된 고민으로 제시되었다. MBC 예능 <느낌표>는 아침 7시의 0교시에 고생하는 학생들을 위해 밥차를 제공하는 코너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옆자리 친구도 입시 경쟁으로 믿지 못하게 되며 벌어지는 갈등, 사교육에 얼마나 큰 돈을 쓸 수 있는지를 놓고 갈라지는 계층까지 입시는 세대를 넘나들며 한국 대중문화는 물론이고 실제 삶의 경험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 경향은 대학 진학률이 떨어지고도 계속 이어져서 2018년에 방영된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은 입시 문화를 다룬 콘텐츠의 정점으로 여겨지며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한편 사교육 시장이 급속도로 커져 나가면서 정부와 민간을 가리지 않고 교육방송 영역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EBS를 통해 중등교육용 강의를 방송했고, 민간에서는 메가스터디를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온라인 강의 플랫폼이 생겨났다.
인터넷 강의는 원하는 시간에 필요한 강의를 반복, 배속 시청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인터넷 강의는 원하는 시간에 필요한 강의를 반복, 배속 시청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서울런 정책이 자리 잡는다면, 
오늘날의 또 다른 ‘금명’들이 
자신만의 길을 찾아나갈 수 있는 
든든한 디딤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인터넷 강의는 실제 강의에 비해서 집중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꼭 필요한 강의를 반복 시청, 배속 시청하면서 맞춤형으로 학업 실력을 키울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었다.

물론 가장 결정적인 효과는 교육 시장에 일어난 ‘슈퍼스타 경제학’의 도입이었다. 전국 각지 학교와 학원가에 숨어 있던 명강사들은 인터넷 강의 시장에서 학생들에 의한 즉각적인 인기도 평가를 받았고, 성과를 통해 자신들의 실력을 증명했다. 이 과정에서 부상한 ‘1타 강사’, 혹은 ‘슈퍼스타’ 강사들은 일반적인 공교육, 사교육 종사자로서는 꿈에도 꿀 수 없는 엄청난 인기와 소득을 누리게 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이들의 강의를 어떤 비용도 없이 소비자에게 배포할 수 있었으니 가능한 것이었다. 아마 <폭싹 속았수다>의 금명도 2010년대에는 이런 스타 강사들을 여럿 거느리며 사업을 키워나갔을 게 분명하다.

2010년대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스타 강사들이 생겨났다. 수능을 볼 일 없는 20대와 30대도 공무원 시험을 비롯한 다양한 시험들을 치러야만 했기 때문에 학령 인구가 줄어도 강사 시장은 당분간 계속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튜브가 등장하면서 이 스타 강사들은 사실상의 인플루언서로 성장하게 되는데, 단순한 강의뿐 아니라 강사 나름의 유머와 인생 철학이 큰 인기를 끌면서 강사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 상품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계층간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서울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는 계층간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서울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터넷 강의가 문화의 한 축에도 깊숙하게 심어진 오늘날의 상황을 고려하면, 계층간의 교육격차를 해소하는 서울시 교육플랫폼 <서울런>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1타 강사’는 학생들의 학습에 최적의 강의를 제공해주는 이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또래 문화까지 영향을 끼치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이미 학생들은 강의를 서로 공유하고, 강사가 만들어내는 밈을 이해하며 어른들과는 다른 자신들의 또래집단 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서울런> 정책이 서울을 넘어 전국화되고 큰 효과를 보며 자리 잡는다면, 오늘날의 또 다른 ‘금명’들이 자신만의 길을 찾아나갈 수 있는 든든한 디딤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카카오톡 채널 구독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