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그룹의 뮤직비디오로 엿본 서울의 일상

임명묵 작가

발행일 2025.04.10. 15:40

수정일 2025.04.10. 17:24

조회 1,920

임명묵 작가의 K컬처를 읽어드립니다
K팝 뮤직비디오는 화려한 그래픽과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연출이 등장한다. 사진은 하이커그라운드.
K팝 뮤직비디오는 화려한 그래픽과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연출이 등장한다. 사진은 하이커그라운드.

임명묵 작가의 ‘K컬처를 읽어드립니다’ (2) K팝 뮤직비디오 속 서울

유튜브를 열어서 K-POP 뮤직비디오를 보면 그야말로 신화적이라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다. 대개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뮤직비디오는 화려한 그래픽과 블록버스터 영화에 어울릴 것 같은 연출이 등장하며 시각 이미지를 음악에 맞추어서 폭발시킨다. 이런 문법을 가장 잘 활용하는 그룹은 아마 에스파일 것이다. ‘광야’ 세계관에 따라서 작품이 나올 때가 특히 그랬고, 이후에 ‘슈퍼노바’나 ‘위플래시’ 등의 뮤직비디오도 어딘가 현실 같지 않은 느낌을 준다. 물론 몇몇 뮤직비디오는 실제 현실의 공간을 뮤직비디오의 배경으로 삼는다. 슈퍼노바 같은 경우도 일단은 태국 방콕의 풍경에서 몇몇 장면이 촬영되었다. 그런데 아이돌들이 슈퍼히어로 영화 주인공처럼 날아다니는 뮤직비디오에서 방콕의 풍경이 현실 세계로 보이지 않는 것은 여전하다.

그런 의미에서 블록체인을 K-POP에 결합한 실험적 그룹인 트리플에스(triple S)의 표현은 특별하다. 24명이라는 초유의 다인원 그룹으로 잘 알려진 트리플에스의 실제 뜻은 이름에서도 나오듯 세 가지 ‘S’의 결합이다. 첫 번째 S는 소셜(Social)이다. 코스모라는 소셜앱을 통해서 팬덤과 그룹을 잇는다. 두 번째 S는 24명의 멤버들을 의미하는 소녀(Sonyo)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S가 재밌는데, 바로 ‘서울(Seoul)’이다. 멤버들의 출신지가 다 서울인 것도 아니고, 외국인 멤버들도 있는데 대체 서울은 이 그룹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고 있을까?

뮤직비디오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트리플에스가 최초로 공개한 뮤직비디오 ‘Generation’에서는 엄격한 학교의 규율에서 벗어난 멤버들이 성수동의 아파트를 돌아다니고 군자역에서 춤을 추면서 틱톡을 찍는 장면이 나온다. 그다음 뮤직비디오인 ‘Rising’에서도 편의점, 남산타워 등 서울에 살면 너무나 일상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공간들이 배경이다.

몇몇 노래 가사에서도 이 그룹의 ‘서울적’ 면모가 진하게 나오는데, 곡 이름에서도 서울을 표방하고 있는 ‘서울 소녀 사운드(Seoul Sonyo Sound)’가 대표적이다. “청담역 기나긴 출구처럼 / 내가 바란 미래는 저 멀리로 / 도달할 수 없지 아주 멀리에”, “이 도시의 네온 불빛 더 화려해도 / 이 현실은 서울”이라는 가사에서 드러나듯 이 노래는 화려한 도시의 불빛과는 대조되는, 어두컴컴한 지하철역의 출구처럼 막막한 21세기 청소년과 청년들의 삶을 담았다.

번잡한 도시에서 바쁘게 지나가는 삶 속에서 미래의 전망은 불투명하고, 그럴수록 빛나는 서울의 부가 청소년과 청년들의 마음을 짓누른다. 이런 문제의식은 한국 K-POP 팬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해진 트리플에스의 대표곡 ‘Girls never die’에서 또다시 드러난다. 여기서도 뮤직비디오의 배경은 서울, 혹은 대도시의 고립된 공간이다. 이는 K-POP 팬들 사이에서 꽤 명성 있는 디렉터인 모드하우스 정병기 대표가 표현하고자 했던 서울, 청소년과 청년을 소외시키는 대도시로서 서울이기도 할 것이다.
서울 일출
서울 일출
하지만 흥미롭게도 트리플에스의 ‘서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여기는 동시에 연대할 수 있는 다른 이들과 연결되는 희망의 공간이기도 하다. ‘서울 소녀 사운드’의 가사에는 “2호선은 지루하지만 / 체리톡이 있어 with you”라는 표현도 등장하며 연대를 통해 삶을 이어가는 감각을 드러낸다. ‘Rising’도 음울해보이는 한밤의 서울에서 멤버들이 다 함께 남산에서 떠오르는(rising) 해를 보며 웃는다. 우울증을 암시하는 뮤직비디오 ‘Girls never die’에서는 멤버 2명이 옥상에서 추락하는 충격적인 장면도 등장하는데, 사실 이 추락 이후에 그들이 새가 되어서 하늘로 날아오른다. 서울은 살기 그리 녹록치 않은 곳이지만 함께 고통을 극복하고 비상하는 연대와 동행의 대상을 찾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한 것이다.

트리플에스의 서울은 아마 화려한 K컬처의 중심으로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서울의 삶이 가장 정직하게 표현된 장소일 것이다. 부촌과 ‘핫플’은 북적이지만 다수 시민의 삶은 변두리의 아파트, 빌라, 오피스텔에 있다. 높은 물가와 혼잡한 대중교통을 감내해야 하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경제적 기회를 가장 많이 주는 도시는 여전히 서울이다. 저성장이 당연해진 시대에 서울에서 별다른 기반이 없는 젊은 인구는 미래를 그리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친구들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고 편의점, PC방, 공원을 쏘다니며 스트레스를 풀고 놀 때는 신명나게 논다. 어떻게 보면 이 모습은 전세계 모든 대도시의 모습이기도 하다. 아마 그래서 대도시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밤의 어두컴컴한 골목길의 대비를 가장 잘 드러낸 한국과 서울의 대중문화가 세계의 청년층을 매료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트리플에스가 앞으로도 노래하며 서울의 어떤 모습들을 보여줄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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