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서울'부터 '강남스타일'까지…노래에 담긴 서울 풍경들

신병주 교수

발행일 2024.12.18. 14:00

수정일 2024.12.18. 16:52

조회 89

신병주 교수의 사심(史心) 가득한 역사 이야기
서울을 노래한 가요들에서도 당시 서울의 모습이나 시대상이 나타나 있다.
서울을 노래한 가요들에서도 당시 서울의 모습이나 시대상이 나타나 있다.

신병주 교수의 사심(史心) 가득한 역사 이야기 (86) 서울을 노래한 가요들

1990년대까지 방송국에서 연말에 진행하는 가장 큰 행사는 가요대상이었다. 특히 12월의 마지막 날에 생방송으로 진행했던 ‘MBC 10대 가수 가요제’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한 해의 가요는 물론이고, 시대별 가요는 그 시대상을 반영한다. 서울을 노래한 가요들에서도 당시 서울의 모습이나 시대상이 나타나 있다. 서울을 노래한 대표 가요들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본다.

해방의 감격과 1960년대 서울의 풍경들

1945년 해방 이후 서울의 번영된 모습을 노래한 대표적인 가요는 현인(玄仁:1919~2002)의 ‘럭키 서울’이다. 성악을 전공한 현인은 해방 후 작곡가 박시춘을 만나 1945년 ‘신라의 달밤’이라는 최고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1948년 남한과 북한이 각기 정부를 수립한 후에는 희망찬 서울의 모습을 노래한 ‘럭키 서울’을 선보였다.
서울의 거리는 태양의 거리
태양의 거리에는 희망이 솟네
타이프 소리에 해가 저물면
빌딩가에서는 웃음이 솟네
너도 나도 부르자 희망의 노래
다 같이 부르자 서울의 노래
에스이오유엘 에스이오유엘 럭키 서울
- 현인 ‘럭키 서울’ 中
1945년 9월부터 1948년 8월 정부 수립까지 미군정 시기라는 어려운 시기를 겪었음에도, 이 노래에는 희망과 웃음 같은 긍정적인 가사들로 채워져 있다. 제목의 ‘럭키’부터 ‘타이프’, ‘빌딩’, ‘에스이오유엘(SEOUL)’에서 보이는 영어식 표현은 미국의 문화가 침투됐던 시대상을 보여준다.
현인은 희망찬 서울의 모습을 노래한 ‘럭키 서울’을 선보였다.
현인은 희망찬 서울의 모습을 노래한 ‘럭키 서울’을 선보였다.
현인은 6.25 전쟁 직전인 1950년 6월에는 ‘서울야곡’을 발표했다. 탱고 음악을 활용해 서울 번화가의 풍경과 그 속의 감정을 담았다.
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 걸어갈 때
쇼윈도 그라스엔 눈물이 흘렀다
이슬처럼 꺼진 꿈속에는
잊지 못할 그대 눈동자
샛별같이 십자성같이 가슴에 어린다
보신각 골목길을 돌아서 나올 때에
찢어버린 편지에는 한숨이 흘렀다
마로니에 잎이 나부끼는
네거리에 버린 담배는
내 맘 같이 그대 맘 같이 꺼지지 않더라
네온도 꺼져가는 명동의 밤거리에
어느 님이 버리셨나 흩어진 꽃다발
레인코트 깃을 올리며
오늘 밤도 울어야 하나
베가본드 맘이 아픈 서울 엘레지
- 현인 ‘서울야곡’ 中
가사는 충무로, 보신각, 명동이 당시 사람들의 대표적인 거리임을 보여준다. ‘쇼윈도 그라스’, ‘엘레지’, ‘베가본드’ 등 영어식 가사에서는 미국 문화를 동경했던 서울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1970년대에 가수 전영이 리메이크해 다시 히트를 쳤는데 ‘MBC 금주의 인기가요’에서 오랜 기간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현인의 ‘서울야곡’ 가사는 충무로, 보신각, 명동이 당시 사람들의 대표적인 거리임을 보여준다. 사진은 보신각 일대의 모습.
현인의 ‘서울야곡’ 가사는 충무로, 보신각, 명동이 당시 사람들의 대표적인 거리임을 보여준다. 사진은 보신각 일대의 모습.
1960년대에 서울을 노래한 대표적인 가요는 1968년에 은방울자매가 발표한 ‘마포종점’이다. 당시에 마포는 서울 전차 마포선의 종점이었는데, 마포 차고지의 서글픈 풍경을 노래했다. 노래는 1968년 7월에 발표됐는데, 당해 11월에 마포선이 폐선됐다. 마포종점은 현재의 마포대교 북단인데, 당시에는 인구도 적고 밤에는 거의 조명이 없던 지역이었다.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 전차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섰다
강 건너 영등포에 불빛만 아련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린들 무엇 하나
첫 사랑 떠나 간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저 멀리 당인리에 발전소도 잠든 밤
하나 둘씩 불을 끄고 깊어가는 마포종점
여의도 비행장엔 불빛만 쓸쓸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생각한들 무엇하나
궂은 비 내리는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 은방울자매 ‘마포종점’ 中
밤에는 여의도와 그 너머에 있는 영등포, 서쪽으로 당인리 화력발전소까지 훤히 보였기에 노래에 이들 지명을 담았다.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은 1968년 7월에 발표됐는데, 당해 11월에 마포선이 폐선됐다. 사진은 마포어린이공원 내 마포종점 노래비.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은 1968년 7월에 발표됐는데, 당해 11월에 마포선이 폐선됐다. 사진은 마포어린이공원 내 마포종점 노래비.
1960년대 가수 배호(裵湖:1942~1971)는 ‘돌아가는 삼각지’(1967)와 ‘안개낀 장충단 공원’(1967) 등 서울의 명소를 노래한 가요를 크게 히트시켰다.

‘돌아가는 삼각지’를 발표한 직후인 1967년 12월, 서울에서는 최초로 삼각지 로터리에 4방향 회전 입체교차로가 생겼다. 그러나 개통된 지 27년이 지난 1994년 11월 교통난 해소와 지하철 통과를 이유로 철거가 됐다.

1966년 패티김의 ‘서울찬가’는 서울시의 요청으로 길옥윤이 작사·작곡하고, 패티김이 불렀는데 이후 서울을 대표하는 가요로 자리를 잡았다. 가사는 서울이 사랑을 나누며 살기 좋은 도시임을 찬양하고 있다.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
그리워라 내 사랑아
내 곁을 떠나지마오
처음 만나고 사랑을 맺은
정다운 거리 마음의 거리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 패티김 ‘서울찬가’ 中

가요에 담긴 1970~1980년대 서울의 풍경들

1970년대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이촌향도(離村向都)의 흐름 속에 서울로의 도시 집중이 본격화된 시대였다. 그러나 서울살이는 만만치가 않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서울보다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들의 정서가 반영된 가요들이 크게 유행했다.

마지막 가사인 ‘아아아 타향은 싫어 고향이 좋아’가 큰 공감을 일으켰던 김상진의 ‘고향이 좋아’(1972), 나훈아의 ‘머나먼 고향’(1971), ‘고향역’(1972), ‘물레방아 도는데’(1973)와 같은 일련의 고향 시리즈 가요, 홍세민의 ‘흙에 살리라’(1973) 등은 모두 고향에 다시 가고 싶은 정서가 담긴 곡이었다.

패티김은 1966년 ‘서울찬가’에 이어 1970년대에도 서울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서울의 모정’을 발표했다. 2절에는 ‘남산의 오솔길’, 3절에는 ‘행복한 명동의 거리’가 나오면서 남산과 명동이 대표적인 데이트 코스임을 노래하고 있다.
희망의 새 아침이 밝아오면은
발걸음 가벼운 태양의 거리
푸르른 하늘을 쳐다보면서
오늘도 그대와 둘이서
그리운 서울 정다운 마음 반짝이는 눈동자
그리운 서울 불타는 가슴
언제 언제까지나
- 패티김 ‘서울의 모정’ 中
패티김의 ‘서울의 모정’에는  ‘남산의 오솔길’, ‘행복한 명동의 거리’가 나오면서 남산과 명동이 대표적인 데이트 코스임을 노래하고 있다. 사진은 명동성당 일대의 거리.
패티김의 ‘서울의 모정’에는 ‘남산의 오솔길’, ‘행복한 명동의 거리’가 나오면서 남산과 명동이 대표적인 데이트 코스임을 노래하고 있다. 사진은 명동성당 일대의 거리.
1977년 혜은이가 발표한 ‘서울이여 언제까지나’도 매우 서정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봄이 오는 북악에 꽃이 핍니다
산마루에 거리에 우리네 가슴속에
곱게곱게 피어나 사랑을 담고
서울이여 서울이여 언제까지나
여름에는 한강에 젊음 띄우고
끊임없는 흐름에 꿈을 싣고서
푸른 하늘 드높이 구름이 흐르는
서울이여 서울이여 언제까지나
고궁에 나뭇잎이 빨갛게 물들고
낙엽을 밟는 소리 정다운 사람
가슴 뜨거워지는 사모의 계절
서울이여 서울이여 언제까지나
눈 내리는 명동에 밤이 깊어도
사랑하는 친구야 함께 거닐자
우리들의 우정을 키워가련다
서울이여 서울이여 언제까지나
- 혜은이 ‘서울이여 언제까지나’ 中
가사는 ‘봄의 북악’, ‘여름의 한강’, ‘가을의 고궁’, ‘겨울의 눈 내리는 명동’ 등 계절별 서울의 명소와 함께 서울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는데, 필자는 이곡을 서울의 대표곡으로 추천하고 싶다.
혜은이의 ‘서울이여 언제까지나’는 계절별 서울의 명소와 함께 서울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다. 사진은 가을의 덕수궁 모습.
혜은이의 ‘서울이여 언제까지나’는 계절별 서울의 명소와 함께 서울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다. 사진은 가을의 덕수궁 모습.
1980년대는 서울올림픽 개최가 발표된 분위기 속에서 서울을 찬양한 노래들이 많이 나왔다. 정치적으로는 군부 독재라는 엄혹한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노래한 가요들 대부분은 밝은 분위기의 사랑과 낭만을 담았다. 조영남과 이용이 부른 ‘서울’은 꿈과 사랑이 넘치는 긍정적인 서울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그 길에서 꿈을 꾸며 걸어가리라
을지로에는 감나무를 심어보자
감이 익을 무렵 사랑도 익어가리라
아아아아 우리의 서울 우리의 서울
거리마다 푸른 꿈이 넘쳐흐르는
아름다운 서울을 사랑하리라
- 이용 ‘서울’ 中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조용필이 발표한 ‘서울 서울 서울’은 특히 후렴구의 가사가 서울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정을 널리 각인시켰다.
서울 서울 서울 아름다운 이 거리
서울 서울 서울 그리움이 남는 곳
서울 서울 서울 사랑으로 남으리
오 Never Forget Oh My Lover Seoul
- 조용필 ‘서울 서울 서울’ 中
1980년대 서울을 소재로 한 노래를 부른 대표적 가수는 주현미이다. 1985년에 발표한 공전의 히트곡 ‘비 내리는 영동교’부터, ‘이태원 연가’(1986), ‘신사동 그 사람’(1988) 등은 기존의 서울 명소와는 다른 영동대교, 이태원, 신사동을 주제로 삼았다.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는 기존의 서울 명소와는 다른 영동대교를 주제로 삼았다. 사진은 영동대교 야경.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는 기존의 서울 명소와는 다른 영동대교를 주제로 삼았다. 사진은 영동대교 야경.
1979년 혜은이가 발표한 ‘제3한강교’는 한남대교 위에서의 남녀 간의 사랑을 표현했는데, 1980년대 이후 강남 지역이 서울의 대표 중심지로 자리를 잡은 흐름은 현철의 ‘추억의 테헤란로’(1983)와 ‘여기는 남서울 영동’으로 시작하는 문희옥의 ‘사랑의 거리’(1989)를 거쳐, 2000년대에 이르면 싸이의 ‘강남스타일’(2012)에서 그 절정을 맞게 된다.

이외에 1980년대 서정적으로 서울의 풍경을 회고한 대표적인 노래로는 동물원의 ‘혜화동’(1988)과 ‘시청앞 지하철역에서’(1990)가 있다. ‘혜화동’은 2015년에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삽입곡으로 쓰이면서 많은 사람에게 복고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가요에 대한 또 다른 단상들

“MBC 10대 가수 청백전을 텔레비전을 통해 봤다. 남자는 남진, 이상열, 이현, 김상진, 이용복이었고, 여자는 하춘화, 이미자, 문주란, 김상희, 김세레나, 그리고 최우수 인기 가수에서는 남진이 차지했다.”

1973년 12월 1일 필자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쓴 일기의 한 부분이다. 1970년대 필자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인 ‘금주의 인기가요’에 푹 빠져 있었던 적이 있다. 처음 제목은 무궁화표 밀가루에서 협찬해 ‘무궁화 인기가요’였다. 박건의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이 처음으로 5주 동안 1위를 했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20위까지 가수와 노래를 스케치북을 활용해 쓰기도 했다. 대개 20위부터 5~6곡 정도만 부르고 나머지 순위는 뛰어넘어 1위까지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집중을 해야 20위를 모두 적을 수 있었다. 이에 꾀를 내서 20위에 오를 곡들을 예상하고 미리 적어 놓은 후 순위만을 매기기도 했다.

이러한 열정과 기록 때문인지, 1970년대 후반에 유행했던 노래들은 대부분 기억 속에 남아있다. 특히 1975년에 있었던 대마초 가수 구속 파동으로, 이종용의 ‘너’와 같은 인기곡들이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 새로운 신인들의 노래가 1위를 차지했던 상황들도 기억이 난다. 김인순의 ‘여고 졸업반’, 하수영의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등이 이 시기에 혜성처럼 등장한 가요였다.

최근 시위에서는 8년 전의 ‘아침이슬’과 같은 비장한 노래들과는 달리,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와 같이 밝고 희망적인 노래들이 널리 퍼져 나갔다. 가요를 통해 보이는 시대상과 역사는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져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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