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하면 생각나는 이곳, 허허벌판 강남은 어떻게 개발됐을까?

신병주 교수

발행일 2024.12.04. 16:03

수정일 2024.12.04. 16:03

조회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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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인구 집중으로 인한 대규모 주거지 조성의 필요성에 따라 강남에는 아파트들이 쏙쏙 들어서기 시작했고, 이제는 강남의 상징 하면 아파트를 떠올릴 정도다.
서울의 인구 집중으로 인한 대규모 주거지 조성의 필요성에 따라 강남에는 아파트들이 쏙쏙 들어서기 시작했고, 이제는 강남의 상징 하면 아파트를 떠올릴 정도다.

신병주 교수의 사심(史心) 가득한 역사 이야기 (85) 아파트 공화국 시대를 연 강남

서울에서도 아파트 하면 강남 지역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1970년대까지는 강북에 비해 주거 단지가 크게 형성되지 않았던 지역이지만, 서울의 인구 집중으로 인한 대규모 주거지 조성의 필요성에 따라 강남에는 아파트들이 쏙쏙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제는 강남의 상징 하면 아파트를 떠올릴 정도로 서울의 랜드마크가 됐다. 강남 지역에 아파트가 조성된 배경과 함께 이 지역을 대표하는 아파트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본다.

강남 지역에 아파트가 들어서다

1970년대까지는 서울 하면 한강 이북, 즉 강북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진행된 이촌 향도의 흐름 속에서 서울에는 인구가 집중됐고, 강북이 아닌 한강 이남을 주목하게 됐다. 당시 한강 이남은 영등포 지역에만 주거지가 형성돼 있을 뿐, 현재의 강남구, 서초구, 동작구, 송파구 일대는 거의 허허벌판 수준이었다.
서울시는 강남 지역의 택지 조성에 매진했고, 이렇게 조성된 택지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섰다.
서울시는 강남 지역의 택지 조성에 매진했고, 이렇게 조성된 택지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섰다.
서울로 집중된 대규모 인구의 수용을 위해서는 기존 단독 주택이 아닌 공간 효율성이 높은 아파트여야 했다. 이미 강북 지역에 마포아파트, 종암아파트, 회현시민아파트 등을 조성한 경험이 있었던 서울시에서는 강남 지역의 택지 조성에 매진했다.

1970년대에 들어와 부쩍 높아진 북한과의 긴장 관계, 특히 1975년 4월에 들려온 베트남의 공산화는 강북보다는 유사시 피난에도 유리한 강남 지역을 선호하게 했다. 1970년 최초의 고속도로인 경부고속도로가 1969년 12월에 준공된 제3한강교(1985년 한남대교로 명칭을 바꿈)를 통과한 것도 주변의 거주 여건을 촉진시켰다.

강북 지역 명문고인 경기고, 서울고, 휘문고, 경기여고, 숙명여고, 창덕여고 등의 강남 이전도 학군이 좋다는 소문 속에 이 지역의 아파트 거주를 선호하는 여건이 됐다.

택지로 개발할 당시 강남 지역의 큰 문제점은 한강에 인접한 남쪽의 저지대로 침수 피해가 크다는 점이었다. 이런 점에 주목한 정부와 서울시는 습지의 매립과 제방 공사에 들어갔고, 이렇게 조성된 택지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섰다. 이제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아파트는 강남을 상징하는 용어로 자리를 잡게 됐다.

반포 지역 아파트

1970년대 강남 개발의 선구적 역할을 한 아파트는 반포동 지역에 조성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다. 반포동 지명 유래로는 이곳에 흐르는 개울이 서리서리 굽이쳐 흐른다 해 ‘반포(蟠浦)’로 하다가 한자 훈이 바뀌어 ‘반포(盤浦)’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한강을 끼고 있는 반포동 지역은 저습지였기에 아파트 건설을 위해서는 먼저 지구 매립 공사가 이뤄져야 했다. 매립 공사는 1970년 7월에 착공돼, 1972년 7월에 완공됐다.
반포주공아파트는 초기에 지은 아파트인 만큼 동 간 간격이 넓고, 한강을 바로 뒤쪽에 두고 있어 경관도 좋아 서울의 중산층이 거주하는 대표 아파트로 명성을 날렸다.
반포주공아파트는 초기에 지은 아파트인 만큼 동 간 간격이 넓고, 한강을 바로 뒤쪽에 두고 있어 경관도 좋아 서울의 중산층이 거주하는 대표 아파트로 명성을 날렸다.
1962년 설립 후 동대문아파트 등 강북 지역 아파트를 조성한 경험이 있었던 대한주택공사는 1973년부터 이곳에 5층짜리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다. 반포주공아파트는 지상 5층, 상가 3층으로 구성됐는데, 영어 알파벳으로 동 수를 정했다. 아파트 상가를 거주지와 동일한 건물로 지은 것이 특징이다.

필자는 1970년대 초, 초등학교 시절 어린이 잡지 표지 모델로 나온 아역 배우의 소개란에 반포아파트에 거주한다는 기사를 보고, 이 아파트를 무척이나 동경했던 기억이 있다. 초기에 지은 아파트인 만큼 동 간 간격도 넓고, 한강을 바로 뒤쪽에 두고 있어 경관도 좋아 서울의 중산층이 거주하는 대표 아파트로 명성을 날렸다.

22평~62평 3,786가구의 대단지 아파트로, 단지별로 재건축이 진행됐거나, 현재에도 재건축이 진행 중인 단지도 있다. 반포주공2단지는 2009년 재건축이 완공돼, 반포 래미안 퍼스티지로 탄생했다. 2023년에 완공된 래미안 원베일리는 신반포아파트 3·23차, 반포 경남아파트, 반포 우정에쉐르, 경남상가를 통합한 아파트였다.

반포동에는 주공아파트 단지 이외에도 경남아파트, 한신아파트 등이 들어서면서, 이곳이 아파트의 중심지임을 각인시켰다. 1981년 동대문운동장 쪽에 있던 고속버스터미널이 강남으로 이전한 것도 1980년대 이후 반포아파트의 입지 조건을 더욱 향상시켰다.

부촌의 상징, 압구정 현대아파트

1978년에 완공된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넓은 평수가 다수를 이루면서, 강남 지역에서도 부촌의 대명사가 된 아파트다.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언주면(彦州面) 압구정리였던 이곳은 1963년 서울시로 편입되면서 압구정동(狎鷗亭洞)이 됐다.
1978년에 완공된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넓은 평수가 다수를 이루면서, 강남 지역에서도 부촌의 대명사가 된 아파트다.
1978년에 완공된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넓은 평수가 다수를 이루면서, 강남 지역에서도 부촌의 대명사가 된 아파트다.
압구정동의 유래는 조선 성종의 장인으로, 세조 때부터 성종 때까지 최고의 권력을 누린 한명회(韓明澮)가 이곳 한강 변에 정자를 지은 것에서 비롯된다. 친하게 지낼 압(狎), 갈매기 구(鷗) 자로, ‘갈매기와 친하게 지내는 정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겸재 정선(鄭敾)의 그림 ‘압구정’을 보면 압구정은 팔작지붕으로 구성됐고, 담장으로 둘러쳐져 있는 모습이다. 언덕 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 아래에는 작은 마을이 형성돼 있음을 볼 수 있다. 멀리에는 한강의 백사장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압구정의 원래 자리에는 올림픽대로가 조성돼 있어서, 아파트 단지 안에 ‘압구정 터’라는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주도한 정주영 회장의 현대건설은 공사 대금으로 받은 한강의 국유 수면을 매립해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다. 3여년의 공사 끝에 1978년에 완공한 아파트가 바로 ‘현대아파트’다.

아파트 이름에 기업명을 쓰는 자신감을 보였는데, 이후 아파트 이름에 한양, 미성, 우성과 같은 건설회사 이름을 쓰는 것이 대세가 됐다. 초기 아파트 이름에 종암, 회현, 옥인, 동숭 등 동네 이름이 붙는 것과 차별화한 것이다. 필자는 대구시에서도 청구, 보성, 우방 등 지역의 건설회사가 아파트 이름 앞에 붙은 모습을 많이 목격했다.
현대아파트는 모든 동이 남향을 향하고 있어, 한강을 조망하기 위한 방안으로 북쪽 부엌 벽을 뜯고 큰 창을 내는 흐름이 이어지기도 했다. 사진은 보광동 일대에서 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모든 동이 남향을 향하고 있어, 한강을 조망하기 위한 방안으로 북쪽 부엌 벽을 뜯고 큰 창을 내는 흐름이 이어지기도 했다. 사진은 보광동 일대에서 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모든 동이 남향을 향하고 있어, 한강을 조망하기 위한 방안으로 북쪽 부엌 벽을 뜯고 큰 창을 내는 흐름이 이어지기도 했다. 아파트 단지 내에 현대고, 구정고 등 학교가 들어서고, 고급 백화점을 표방한 현대백화점과 갤러리아백화점의 등장은 이 지역을 대표적인 부촌으로 자리를 잡게 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고급 쇼핑가의 이름을 따온 압구정로데오거리, 1990년대 젊은 층의 소비 욕망을 빗댄 ‘압구정 오렌지족’의 명칭은 이곳이 뭔가 별개의 지역임을 인식시키는 데 일조를 했다.

재건축의 상징, 은마아파트

강남 재건축 단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여전히 뉴스의 초점이 되는 대치동 은마(銀馬)아파트는 입시학원의 중심지로도 늘 언급이 되는 곳이다. 대치(大峙)는 ‘큰 고개’를 뜻하는데, 지금도 이곳에서 삼성역 쪽으로 가는 길에는 높은 고개의 흔적을 접할 수 있다. 인근의 한티역의 명칭 역시 순우리말로 ‘큰 고개’라는 뜻이다.
은마아파트는 1980년대 이후 주변에 학원가들이 들어서면서 입시교육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또 강북에서 이전한 고등학교들이 근처에 자리를 잡으면서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대표적인 거주 공간이 됐다.
은마아파트는 1980년대 이후 주변에 학원가들이 들어서면서 입시교육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또 강북에서 이전한 고등학교들이 근처에 자리를 잡으면서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대표적인 거주 공간이 됐다.
은마아파트는 1976년 삼한건설을 한보주택으로 개명한 정태수가 1979년에 완공한 아파트이다. 원래 이곳은 농경지와 유수지로 비만 오면 침수가 심한 저습지였기에 아파트 건설로는 부적합한 지역이었다. 이에 정태수는 헐값에 이곳을 매입할 수 있었고, 이곳에 4,424세대의 대단지 아파트를 조성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28개동(31동까지 있으나, 4, 14, 24동이 없다), 14층이며, 31평과 34평의 두 개의 평형만으로 구성된 것도 특징이다. 아파트가 조성될 때 지하 1층과 지상 1~2층에 조성된 당시 기준으로는 엄청났던 대형 상가는 지금도 이곳을 떠난 사람들까지 찾는 단골집들이 많다.

은마아파트는 1980년대 이후 주변에 학원가들이 들어서면서 입시 교육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강북에서 이전한 휘문고, 숙명여고, 경기여고와, 중대부고, 단대부고 등이 근처에 자리를 잡으면서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대표적인 거주 공간이 됐다. 중고등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이곳에 거주하다가 대학생이 되면 이곳을 떠나는 비율이 높은 아파트이다.
1983년 은마아파트 인근에 미도아파트가 완공됐다.
1983년 은마아파트 인근에 미도아파트가 완공됐다.
은마아파트에서 큰 수익을 본 정태수는 1983년 은마아파트 인근에 미도아파트를 완공했으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수서와 일원 지역의 자연 녹지를 확보하여 대단지 아파트 건설을 노렸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에 뇌물을 준 것이 발각되는 소위 ‘수서 비리사건’을 불러 일으켰고, 1997년 한보그룹은 최종 부도 처리됐다.

은마아파트는 강남 재건축 이야기만 나오면 늘 언급되기도 했다. 1996년 처음 재건축 논의가 시작됐지만, 안전 진단 문제, 도로 계획, 정부의 규제 등으로 계속해 재건축을 확정받지 못하였다. 2022년 10월, 은마아파트 재건축 계획안이 서울시 재건축 심의를 통과했고, 현재 최고 35층, 33개동, 5,778세대(공공주택 678세대)로 재건축될 예정이라고 한다.

아파트 이름에 대한 단상

처음 아파트가 건설됐을 때는 종암, 회현, 마포, 와우, 동숭, 도곡 등 아파트 이름에 그 지역의 명칭을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물론 지금도 상계, 목동, 잠실, 반포, 상암, 신림 등 지역명이 들어간 아파트 이름이 많다.

1980년대에는 장미, 미성, 미도, 은마, 개나리, 진달래 등 소박한 명칭들을 주로 사용했다. 백두아파트, 백마아파트, 충성아파트는 그 이름에서 군인아파트임을 짐작하게 했다. 2000년대에 들어와 대우 푸르지오, 삼성 래미안, 한화 e편한세상처럼 기업명과 순우리말 이름을 쓰는 아파트가 등장했다.
요즘은 영어식 아파트 이름이 대세다. 사진은 대모산에서 바라본 강남권 아파트의 모습.
요즘은 영어식 아파트 이름이 대세다. 사진은 대모산에서 바라본 강남권 아파트의 모습.
요즘은 아파트 이름에 영어 표기가 들어가지 않으면 값이 떨어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영어식 이름이 대세이다. 캐슬, 파크와 같은 명칭에서 나아가, 단지 내에 작은 웅덩이가 있으면 ‘레이크시티’, 조그마한 언덕이 있으면 ‘힐스테이트’이나 ‘마운틴’, 개천이 있으면 ‘아크로리버’와 같은 명칭이 붙는다.

특별한 상징물이 없으면 ‘센트럴시티’, ‘메트로시티’와 같은 이름이 붙기도 한다. ‘두산위브 더제니스’나 ‘디에이치 클래스트’처럼 입주민도 외우기 쉽지 않은 영어식 이름도 많다. 좀 더 쉬운 명칭을 써도 아파트 값이 떨어지지 않을 시대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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