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놀이터는 처음이야! 지역의 독특함을 닮은 놀이풍경

지정우 건축가

발행일 2024.10.18. 10:38

수정일 2024.10.23. 10:21

조회 1,807

아빠건축가의 다음세대 공간 탐험
잠시 악기 연주를 하는 학생들. 친구와의 여러 활동은 특별한 놀이풍경과 함께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 EUS+ Architects
잠시 악기 연주를 하는 학생들. 친구와의 여러 활동은 특별한 놀이풍경과 함께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 EUS+ Architects

아빠건축가의 다음세대 공간 탐험 (33) 지역의 독특함이 반영된 하나뿐인 놀이풍경

서울의 종묘 왼쪽의 서순라길은 종로에 비해서 발전이 더뎌 한적한 곳이었다. 그러나 불과 1-2년 사이에 이 길을 찾는 사람들이 급증해서 지금은 평일 저녁에도 매장마다 빈자리를 찾기 어려워졌다. 그 흔한 브랜드의 카페나 음식점이 아닌 이곳만의 매장들이 종묘 담벼락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함께 서순라길에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성수동이 그렇듯, 해방촌이 그렇듯 지역의 독특함이 그 장소에 사람들의 경험을 기억나게 하고 다시 찾게 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여러 드라마에서 놀이터는 단골 배경 중 하나다. 어른이 돼서도 힘들 때 찾는 곳,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는 곳이다. 그러나 어느 지역인지 별로 상관없이 모두 시소, 정글짐, 미끄럼틀 등 몇 가지 공통된 놀이기구로 채워진 공터일 뿐이다. 어려서는 지역의 독특함이 없는 곳에서 놀고 생활하다가 어른이 돼서는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그런 곳들을 찾아다니는 상황이다 보니 그 유행은 오래가지 못하고 계속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만약에 지역의 특성이 어떤 식으로든 스며있는 놀이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경험의 시간이 조금은 긴 것에 익숙해져서 도시 상업가로의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역의 독특함이 반영된, 지역에 하나뿐인 놀이풍경의 세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운동장 가장 먼 곳에 있어도 아이들이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아지트의 역할을 하고 있는 치현초 ‘놀이날다(PLAYFLY)’
운동장 가장 먼 곳에 있어도 아이들이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아지트의 역할을 하고 있는 치현초 ‘놀이날다(PLAYFLY)’

치현초 ‘놀이날다(PLAYFLY)’ 놀이풍경

치현초등학교는 서울시 강서구 방화동에 위치한다. ‘방화동’은 ‘사시사철 꽃향기가 퍼지는 개화산 옆에 있는 동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주변 산으로 둘러 싸여 있다. 치현초등학교는 개화산과는 다르게 평지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 환경과 조화로우며 이곳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놀이문화를 반영해 놀이풍경을 설계하는 것이 필요했다.

필자와 EUS+건축은 치현초등학교만의 고유한 정체성으로, ‘개화산의 능선’과 ‘김포공항의 관제탑’을 모티브로 사용해 놀이풍경에 높고 낮음을 반영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또한 기존 학교 건물 곳곳에 나타나 있는 아치 모양의 창문, 문 등의 건축적 요소를 고려해 아이들의 스케일에 맞는 아치 공간을 놀이풍경에 적극적으로 녹여냈다.
살짝 높이가 높아지는 상단은 윗부분에도 놀이 공간을 만들고 아래에도 독특한 공간감을 만들었다.
살짝 높이가 높아지는 상단은 윗부분에도 놀이 공간을 만들고 아래에도 독특한 공간감을 만들었다.
아이들과 학교 측의 요청인 자연친화적인 ‘쉼과 놀이’를 충분히 취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기본적인 설계 방향을 토대로 기존의 수목을 그대로 둬 놀이풍경과 어우러질 수 있는 디자인을 진행했다. 디자인 요소로 그물을 활용해 아이들이 뛰어 놀다가 쉬고 싶으면 누울 수 있고, 누워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해먹을 만들어줬다.

놀이풍경의 사각형 프레임 속에서 아이들과 하늘이 하나로 중첩되는 모습이 연출되며 아이들이 마치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그물에 의해 생기는 그림자는 해의 고도에 따라 시시각각 위치와 각도가 변하면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과 자연스럽게 겹쳐지며 입체적인 놀이풍경의 모습을 자아낸다.
하부의 아치는 낮고 넓은 것부터 높고 좁은 것까지 점진적인 변화를 줘 어린이들이 여러 가지로 놀이에 응용할 수 있게 됐다.
하부의 아치는 낮고 넓은 것부터 높고 좁은 것까지 점진적인 변화를 줘 어린이들이 여러 가지로 놀이에 응용할 수 있게 됐다.
치현초등학교 ‘놀이날다(PLAYFLY)’의 전체적인 모습은 양쪽 끝이 위로 접혀 올라간 형태를 띠고 있다. 이는 마치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듯한 새의 모습과 비행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인근의 김포공항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와 함께 공항의 관제탑처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놀이타워를 같이 설계해 입체적인 시선을 경험할 수 있다.
윗부분은 그물 해먹이 설치돼서 하늘과 바닥이 이어지면서도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윗부분은 그물 해먹이 설치돼서 하늘과 바닥이 이어지면서도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전에는 운동장 지면 하나의 높이에서만 수평적인 관계만 경험했다면 ‘놀이날다(PLAYFLY)’ 놀이풍경에서는 ‘지면 – 그물 위 – 놀이타워’ 세 개의 층위를 오갈 수 있게 되면서 아이들 서로 간의 시선이 수평만이 아닌 수직, 대각선 등 다양한 관계가 만들어졌다. 마음껏 뛰어노는 것뿐만 아니라 친구와 담소를 나누고 잠깐 숨을 돌리고, 주변의 풍경을 보는 등 모든 활동이 이곳에서만의 독특한 경험과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게 세심하면서도 통합적으로 설계됐다.
‘놀이날다(PLAYFLY)’에서 다양한 학년의 학생들이 여러 활동을 하는 모습
‘놀이날다(PLAYFLY)’에서 다양한 학년의 학생들이 여러 활동을 하는 모습
단계별 형태 발전 과정을 나타낸 다이어그램. 학생들의 의견과 워크숍에서 나온 생각들을 통합해 구성했기에 모두의 생각이 담긴 과정이다.
단계별 형태 발전 과정을 나타낸 다이어그램. 학생들의 의견과 워크숍에서 나온 생각들을 통합해 구성했기에 모두의 생각이 담긴 과정이다.

남천초 ‘놀이지형(PLAYTOPO)’ 놀이풍경

남천초등학교는 서울시 송파구 마천동에 위치한다. 마천(馬川)이라는 지명은 임경업 장군이 이곳에서 백마를 얻어 말에게 물을 먹인 곳인 ‘백마물’이라는 곳을 상징하며, 가뭄이 심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해 마천이라고 부르게 됐다. 남천초를 기준을 동쪽으로는 천마산, 서쪽으로는 성내천, 남쪽으로는 각종 시설 및 마천중앙시장이 위치한다.

특히 남천초 서쪽에 위치한 성내천은 서울둘레길에 포함돼 남천초 학생들이 가족, 친구와 함께 자주 놀러가고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현재 마천동은 대부분 빌라와 아파트 단지로 이뤄진 주거지역으로 구성되며, 남천초 학생들은 대부분 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학교 주변 동네에 놀이터가 부족해 학생들이 하교 후 놀거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다.
기존 놀이터와 농구장 사이의 빈 땅에 ‘놀이지형(PLAYTOPO)’을 조성했다. 때로는 농구를 구경하는 스탠드가 되기도, 옆의 기존 조합형 놀이대와 연계해 놀이 순환이 이뤄지기도 한다.
기존 놀이터와 농구장 사이의 빈 땅에 ‘놀이지형(PLAYTOPO)’을 조성했다. 때로는 농구를 구경하는 스탠드가 되기도, 옆의 기존 조합형 놀이대와 연계해 놀이 순환이 이뤄지기도 한다.
이와 같은 연유로 남천초 학생들의 다양한 놀이 활동과 자연 교감을 위해, 운동장 일부를 활용한 특화된 놀이풍경을 조성이 진행됐다. 필자와 EUS+건축은 남천초 동네와 학교 놀이 공간의 맥락을 고려해 안전하면서도 다양한 신체활동이 이뤄질 수 있는 입체적인 놀이풍경을 조성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놀이지형(PLAYTOPO)’은 파이프를 통해 수평으로 계속 이어진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놀이지형(PLAYTOPO)’은 파이프를 통해 수평으로 계속 이어진다.
남천초 학생들의 일상과 다양한 활동이 전개되는 천마근린공원, 성내천의 강조되는 입면선을 모티브로 남천초만의 특색이 담긴 ‘놀이지형(PLAYTOPO)’을 조성했다. 구불구불한 천마근린공원의 산새, 반복돼 리듬감 있는 성내천의 돌다리, 수직성이 강한 아파트와는 대조되는 낮은 주택들의 각이진 지붕의 연장된 풍경과 같은 다양한 활동을 담을 수 있는 입체적인 놀이풍경을 만들었다.

‘놀이지형(PLAYTOPO)’ 돌다리 패턴을 밟고 이동하다가 성내천의 구불구불한 물줄기 파이프를 따라 천마산 능선 슬로프를 오르락내리락 통과하며 힘차게 뛰어 노는 남천초 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놀이풍경이다.
기존의 수평 운동장과 학교 건물과 대조적인 층위를 만들고 있다.
기존의 수평 운동장과 학교 건물과 대조적인 층위를 만들고 있다.
남천초 학생들과 세 차례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의 학교 안팎의 놀이 활동 모습과 일상 풍경을 함께 살펴보고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에 색종이로 놀이 풍경 요소를 콜라주하고 콜라주의 일부분을 패턴화해 스펀지 종이 모듈 구조를 구성한 다음, 마지막으로 빨대 파이프를 모듈에 결합해 놀이의 지형을 구성했다. 남천초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지역 환경을 놀이요소로 치환해 점진적으로 상승하고 확정되는 놀이의 지형의 모습이 담긴 ‘놀이지형(PLAYTOPO)’ 놀이풍경이 탄생했다.
‘놀이지형(PLAYTOPO)’의 볼륨과 선형으로 이어진 구조물들, 바닥 놀이 패턴과 모래사장까지 구성의 다이어그램.
‘놀이지형(PLAYTOPO)’의 볼륨과 선형으로 이어진 구조물들, 바닥 놀이 패턴과 모래사장까지 구성의 다이어그램.
학생 참여 워크숍의 모습과 초기 설계 아이디어 스케치
학생 참여 워크숍의 모습과 초기 설계 아이디어 스케치

정덕초 ‘놀이다리(PLAYBRIDGE)’ 놀이풍경

정덕초등학교는 서울시 성북구 동소문동에 위치한다. 정덕초 주변은 언덕이 많으며 밀집된 주택가와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다. 정덕초 학생들은 운동장 구령대 위, 본관 옆 계단, 소운동장 계단 공간에서 자주 뛰어 논다고 한다. 수많은 계단으로 구성돼 있는 이 공간들은 마치 정덕초 동네의 풍경을 담은 것처럼 보인다.

정덕초 놀이풍경의 대상지인 기존 후문 쪽 놀이터와 구령대를 시작으로 본관 옆 계단, 소운동장 계단, 새로운 놀이터까지 정덕초 학생들이 끊임없이 놀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학교 외부 공간 전체를 통합할 수 있는 놀이 공간으로 조성했다. 정덕초의 솔리드와 보이드한 평입면구조, 곡선 형태의 구령대 지붕과 정덕초 교표, 지형적 특성을 이용한 계단형 놀이공간 그리고 3차 워크숍까지의 과정을 발전시킨 연속적 놀이풍경 ‘놀이다리(PLAYBRIDGE)’를 완성했다.
학교 주변의 회색 아파트 단지와 대조적인 ‘놀이다리(PLAYBRIDGE)’의 노란색 프레임이 아이들의 놀이를 촉진한다.
학교 주변의 회색 아파트 단지와 대조적인 ‘놀이다리(PLAYBRIDGE)’의 노란색 프레임이 아이들의 놀이를 촉진한다.
구령대와 연결된 곡선의 다리 그리고 계단과 로프로 구성된 언덕이 장방형으로 길게 펼쳐지며 그 사이에 놀이를 더 재미있게 해주는 놀이요소들이 위치한다. 곡선형의 여러 조형물, 구불구불한 철봉, 원형의 통과 놀이요소가 학생들의 신체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해준다.

구령대는 체크 모양의 패턴 탄성바닥재로 구성해 학생들이 바닥놀이를 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으며 수업시간에는 조별활동이나 모이기 용도로 이용할 수 있다. 구령대와 연결된 다리는 중간에 로프네트와 콤파운드 로프를 설치해 단순히 통과하는 공간이 아닌 놀이하는 공간으로 변모할 수 있도록 했다.

구령대와 반대편에 있는 언덕은 밧줄을 잡고 오르내릴 수 있는 비교적 가파른 언덕과 계단, 슬로프로 구성된 완만한 언덕으로 이뤄져 있다. 언덕을 따라 운동장으로 내려와 언덕 아래에 있는 원통통로를 통과하거나 조형물 사이를 뛰어다니고 통과하며 끊임없이 연결되는 놀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정덕초 ‘놀이다리(PLAYBRIDGE)’의 다양한 모습
정덕초 ‘놀이다리(PLAYBRIDGE)’의 다양한 모습
필자와 EUS+건축은 정덕초 학생들이 좋아하는 동네와 학교 각 놀이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한 후 그 공간에서의 재미있는 놀이 방법을 구령대와 옆 놀이터 공간을 연결시킬 수 있는 입체적인 놀이요소로 풀어내어, 휴식과 놀이가 공존할 수 있는 놀이풍경을 구성할 수 있도록 워크숍을 진행했다.

구령대와 옆 놀이터 공간을 연결시킬 수 있는 놀이 방법을 콜라주로 표현한 후 최종적으로 주어진 재료를 이용해 두 공간을 연결하고 만드는 입체 모형 작업으로 정덕초 ‘놀이다리(PLAYBRIDGE)’의 형상을 구체화했다.
정덕초 놀이다리의 구성 다이어그램. 기존 구령대를 놀이 공간으로 편입시켰다.
정덕초 놀이다리의 구성 다이어그램. 기존 구령대를 놀이 공간으로 편입시켰다.
학생들의 워크숍 결과물을 분석한 경우, 구령대 공간에서는 수평, 수직적인 놀이의 방법과 암벽타기, 트램펄린, 뛰어내리고 올라가는 놀이 활동의 모습을 표현했다. 구령대 옆 공간에서는 개별적인 놀이의 요소를 전개하면서 점점 운동장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놀이의 모습을 전개했다. 또한 흩어져 있는 놀이 구조물 사이를 지나가면서 장방향으로 길게 진행되는 놀이의 모습을 표현했다.

구령대와 구령대 옆 놀이 공간을 연결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는 그물망으로 연결하기, 투명 미끄럼틀 타고 내려오기, 짚라인(Zipline) 타기 등 대각선으로 연결된 놀이 공간 모습을 보여줬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은 학생 건축가와 클라이언트가 돼 구성한 놀이풍경을 설명하고 디자인을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학생 참여워크숍 모습과 초기 아이디어 스케치
학생 참여워크숍 모습과 초기 아이디어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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