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채우는 것? 비워도 괜찮은 것! 놀이공간의 새로운 유형

지정우 건축가

발행일 2024.07.26. 16:57

수정일 2024.07.29. 09:08

조회 2,041

아빠건축가의 다음세대 공간 탐험
놀이공간은 아이들이 성장하는 마을이자 도시라는 차원에서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놀이공간은 아이들이 성장하는 마을이자 도시라는 차원에서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아빠건축가의 다음세대 공간 탐험 (29) 실내 놀이공간의 새로운 유형

전 세계에서 카페가 가장 많은 국가가 우리나라라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다. 어린이들이 주로 가는 키즈카페 또한 우리나라가 단연 많은 수를 갖고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관광이나 거주 목적으로 왔다가 자국에는 없지만 새로운 서비스로 가득 차 있어 놀라는 장소들 중의 하나가 키즈카페이기도 하다.

그렇게 많은 키즈카페들이 있는 만큼 다양한 공간이 있을까? 특별한 장소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비슷한 유형의 놀이기구들이 차 있는 경우가 많다. 실내 놀이공간은 키즈카페의 주된 요소인데 미국의 패스트푸드점 한쪽에 있는 어린이 놀이공간처럼 쿠션이 둘둘 감겨진 정글짐 형태로 된 구조물 사이를 통과하며 놀도록 구성돼 있곤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놀이공간은 어느 지역이든 차이가 없다. 조금 다른 놀이공간이라 하더라도 실외에서 볼 수 있던 암벽타기나 짚라인, 트램펄린 같은 역동적인 놀이기구가 채워져 있어 놀이기구 백화점 같은 인상을 준다.

이 역시 그 곳만의 장소성이나 지역과의 관계보다는 마케팅 차원의 공간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어린이들의 입장이 아닌, 아이들이 에너지를 빨리 소진시키길 바라는 어른들의 생각이 투영돼 여러 종류의 놀이기구가 공간에 꽉 채워지기만 한 것은 아닐까.

여기 몇 가지 필자와 EUS+건축이 작업한 ‘조금은 다른’ 실내 놀이공간의 이야기를 통해 어린이들의 기억에 남을 새로운 공간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지역 어린이들의 놀이이야기를 담는 공간
이 지역 어린이들과 참여 워크숍을 하며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실제 사이즈로 서로 그렸다. 그것이 놀이 공간의 기본 단위가 됐다.
이 지역 어린이들과 참여 워크숍을 하며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실제 사이즈로 서로 그렸다. 그것이 놀이 공간의 기본 단위가 됐다.

한 지역의 여러 초등학생들이 다니는 종합사회복지관에 실내 놀이공간을 조성하면서 건축가인 우리가 한 일은 그 지역의 어린이들을 주말마다 만난 것이다. 다른 동네 아이들이 아닌 그곳의 어린이들은 그들이 잘 가는 장소들과 동네 지도를 그렸다.

또한 우리가 준비한, 스르륵, 흔들흔들 같은 의태어 100개만 이용해 스스로의 놀이 문장을 만들었다. 그 놀이 문장을 몸으로 직접 표현해 보며 그 모습을 큰 골판지에 서로 그려보며 이 동네 아이들의 신체 사이즈와 움직임을 디자인의 기초로 삼았다.
공간의 모형과 3차원 컴퓨터 모델링. 작은 기존 공간 내에 놀이공간을 만들었지만 이 지역 어린이들의 놀이 신체 움직임을 기초로 디자인된 세계에서 하나뿐인 공간이 조성됐다.
공간의 모형과 3차원 컴퓨터 모델링. 작은 기존 공간 내에 놀이공간을 만들었지만 이 지역 어린이들의 놀이 신체 움직임을 기초로 디자인된 세계에서 하나뿐인 공간이 조성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단위 공간은 서로 중첩되고 단계별로 쌓여서 평면적이던 실내가 입체적인 놀이 공간이 됐다. 이 지역의 어린이들만의 놀이 이야기가 촉진되고 채워질 수 있는 토대가 됐으며, 어린이들은 각자의 집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공간감을 경험하며 놀 수 있게 됐다.
각자의 신체적 차이에 따라 다양하게 놀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다.
각자의 신체적 차이에 따라 다양하게 놀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다.

집들이 거꾸로 쌓여있는 놀이공간

어릴 때 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천장이 바닥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면 바닥에 전등이 솟아있고, 경사 천은 기울어진 바닥이 되어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 같았다. 강남의 한 유치원 실내에 놀이공간을 디자인하며 벽에 집중했다. 바닥에서는 신나게 뛴다면 조금 다른 상상력과 움직임으로 탐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공간의 평평한 한쪽 벽을 이용해 작은 놀이집들이 똑바로, 옆으로, 거꾸로 쌓이며 놀이 공간을 형성했다.
공간의 평평한 한쪽 벽을 이용해 작은 놀이집들이 똑바로, 옆으로, 거꾸로 쌓이며 놀이 공간을 형성했다.

그래서 집 모양의 공간을 여러 각도로 세우며 쌓아서 공간이 계속 이어지게 했다. 벽이었던 면이 바닥이 되고, 바닥이었던 면이 천장이 되는 공간들을 탐험하며 어린이들은 새로운 차원의 공간감을 느끼게 된다. 생각을 더욱 창의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환경 또한 놀이공간이다.
다른 높이에서 다른 각도로 보는 것은 일상 공간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아이들의 기억 속에 특별한 장소로 남을 수 있다.
다른 높이에서 다른 각도로 보는 것은 일상 공간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아이들의 기억 속에 특별한 장소로 남을 수 있다.
잠실 지역은 조선시대에 누에를 치던 곳이었다. 그와 연관해 실을 이용한 공간 구성을 어린이 참여 워크숍에 진행했다.
잠실 지역은 조선시대에 누에를 치던 곳이었다. 그와 연관해 실을 이용한 공간 구성을 어린이 참여 워크숍에 진행했다.

이곳은 놀이터가 아닌 누이터예요

잠실 지역의 복지관에선 역시나 작은 실내 공간에 어린이 놀이공간을 조성하는 작업이었지만, 어린이들과 몇 차례 만나 참여 워크숍을 하며 지역의 역사를 이용했다. 조선시대에 양잠을 치는 곳으로 유명했기에 끈과 실을 이용한 공간을 구성해보는 작업을 통해 이 지역 아이들의 창의적인 공간감각과 놀이 방법을 알 수 있었다.
실제 조성된 놀이공간에도 끈과 고무줄이 다양하게 사용돼 새로운 방식의 인터랙션을 통해 놀게 된다.
실제 조성된 놀이공간에도 끈과 고무줄이 다양하게 사용돼 새로운 방식의 인터랙션을 통해 놀게 된다.
어린이들은 이곳을 누에와 연관시켜 ‘누이터’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어린이들은 이곳을 누에와 연관시켜 ‘누이터’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이를 바탕으로 디자인 한 공간은 집 속에 누에고치가 있는 것 같은 방식의 공간이 된다. 그저 단순한 사각형 공간이 아닌 아늑하고 여러 방식으로 놀이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장소가 됐다. 다른 동네에선 볼 수 없는 이 지역만의 경험이 기억에 남을 것이다.
다양한 공간 요소와 반응하는 놀이 방식의 스케치와 전체 구조.
다양한 공간 요소와 반응하는 놀이 방식의 스케치와 전체 구조.

놀이가 카펫처럼 그라데이션으로 연결된 공간

모든 놀이 공간은 다양한 연령대와 다양한 신체적 정도의 어린이들이 이용한다. 특정 연령의 놀이에만 맞추면 다른 연령대는 아예 사용을 못하거나 너무 시시해질 수 있다. 또한 놀이기구를 ‘배치’하기만 하면 공간은 평면적이게 되고 줄서서 해야 하는 놀이기구의 집합이 되기 쉽다. 그러므로 공간을 입체적으로 구성해 모든 연령의 아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놀 수 있게 하는 토대가 필요하다.
점점 높이가 달라지며 서로 연결되기도 하고 따로 놀 수도 있는 다차원의 놀이요소.
점점 높이가 달라지며 서로 연결되기도 하고 따로 놀 수도 있는 다차원의 놀이요소.

성동구에 있는 이 실내 놀이공간은 크지 않은 빌딩 안에 조성됐지만 훨씬 더 다중적으로 놀 수 있게 구성했다. 카펫처럼 띠로 연결된 각각의 놀이 공간 요소들은 서로 이어져 있어서 어린이들이 점진적으로 적응하고 도전해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격하지 않는 놀이와 아이들 간의 협동과 커뮤니티가 생길 수 있는 여지를 담았다. 각각의 놀이 띠는 하나의 큰 휘어진 벽체로 통합되어 시선의 소통과 장소성을 가질 수도 있다.
휘어진 놀이벽 바깥과 안은 단절되지 않고 서로 시선이 통하며, 좁은 면적이어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휘어진 놀이벽 바깥과 안은 단절되지 않고 서로 시선이 통하며, 좁은 면적이어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스스로 놀이를 창작할 가능성의 공간

바깥 놀이풍경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실내 놀이공간에서도 어른이 정해서 나열하는 놀이는 어린이를 대상화할 뿐이다. 줄서서 놀이기구를 타는 놀이동산의 축소형을 조성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모든 키즈카페나 실내놀이터가 그렇게 지향한다면 어린이들에게 ‘동사’는 있어도 ‘형용사’는 없고, ‘활동’은 있으나 ‘기억’은 남지 않는 결과가 될 것이다.
하남의 이 실내 놀이공간은 아이들이 혼자, 혹은 함께 놀이를 만들어가며 다른 방식으로 이용한다.
하남의 이 실내 놀이공간은 아이들이 혼자, 혹은 함께 놀이를 만들어가며 다른 방식으로 이용한다.
큰 면적의 공간에 마치 ‘어린이 도시’처럼 다양한 장소가 생길 수 있게 구성했다.
큰 면적의 공간에 마치 ‘어린이 도시’처럼 다양한 장소가 생길 수 있게 구성했다.

놀이는 아주 에너지가 큰 활동부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잠깐 쉬는 것까지 포함하는 아이들의 종합적인 생활이다. 오늘 노는 방식과 내일 노는 방식이 다를 수도 있는 것이 놀이풍경이다. 실내 놀이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놀이공간은 아이들이 성장하는 마을이자 도시라는 차원에서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목재로 된 다양한 공간과 장난감을 갖고 노는 어린이들. 그들을 돌보는 어른, 그들을 도와주는 어르신이 함께 하는 모습.
목재로 된 다양한 공간과 장난감을 갖고 노는 어린이들. 그들을 돌보는 어른, 그들을 도와주는 어르신이 함께 하는 모습.

한 가지 재료로 모든 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

일본 도쿄에는 ‘토이 뮤지엄’이라는 곳이 있다. 오래된 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조성한 곳으로 이곳의 주 재료는 목재다. 영유아부터 쓰는 공간이지만 쿠션이나 보호 스펀지 등은 없다. 오로지 나무로 된 장난감과 나무로 만든 구조물, 추상적인 오브젝트들이 가득한 이곳은 그 촉감과 따뜻함과 향이 어우러진 공간감 자체가 어린이 기억에 남는 것이 놀이다.

실내 놀이공간을 놀이활동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 안에서 생활을 하는 어린이가 느낄 공간과 장소성을 다시 한 번 염두에 두는 실내 놀이공간이 다양하게 많아지면 그들의 성장이 조금은 달라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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