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열고 싶은 낯선 공간! '환대'를 디자인한다는 것

지정우 건축가

발행일 2024.08.23. 16:25

수정일 2024.08.23. 18:07

조회 1,489

아빠건축가의 다음세대 공간 탐험
우주로 1216을 설계한 필자가 공간 안내를 하고 있다. 건축가 또한 공간을 개장하며 그 공간의 실이용자인 트윈세대를 누구보다 먼저 환대하며 공간을 안내하는 수순이 확산하길 바란다.
우주로 1216을 설계한 필자가 공간 안내를 하고 있다. 건축가 또한 공간을 개장하며 그 공간의 실이용자인 트윈세대를 누구보다 먼저 환대하며 공간을 안내하는 수순이 확산하길 바란다.

아빠건축가의 다음세대 공간 탐험 (31) 공간 디자인에 ‘환대’를 담다

파리 올림픽은 새로운 경기장을 모아 지어놓고 그곳에서 경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자체가 경기장이었다. 실수와 불편함이 있었지만 행사와 일상의 도시공간이 더 밀접하게 붙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 것은 분명하다. 도시에서 행사를 치를 때 엄격한 통제와 시스템도 필요하지만 행사를 치르는 사람들의 유연함과 자신감도 중요함을 여러 장면에서 알 수 있었다.

사람은 새로운 장소에 가면 개인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일단 긴장한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특히 더 그럴 수 있다. 많은 경우 다음세대를 위한 공간을 잘 지어 놓으면 그 곳에 오는 이용자들이 알아서 잘 사용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빠져 있는 멋진 공간은 그저 거대한 조형물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 중요한 것은 바로 ‘환대’다.
필자가 설계한 공간의 사용자들이 어떤 방식과 마음으로 이곳에 오고 이용하는 과정을 겪을지 미리 스케치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공간의 디자인을 결정하기도 한다.
필자가 설계한 공간의 사용자들이 어떤 방식과 마음으로 이곳에 오고 이용하는 과정을 겪을지 미리 스케치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공간의 디자인을 결정하기도 한다.

터치스크린 시대에 대화가 가득한 마트

코로나 시대를 겪고 전자 기술의 발달로 인건비를 절약하고자 여러 나라에서 터치스크린 등 무인정산 장치를 도입했다. 월마트(Walmart)나 타겟(Target) 같은 미국의 대형마트들도 한동안 계산원들을 대폭 줄이고 무인 계산대를 늘려 나갔다.

무인 계산대가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계산되지 않고 가져간 물건들과 기계적 오류를 이용한 의도적 도난 사례들로 계산원들이 있을 때보다 더 큰 손해가 나 다시 무인 계산대를 줄여가는 추세로 바뀌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예전부터 계속 계산원들이 고객들과 대화를 나누며 계산을 하는 트레이더 조(Trader Joe’s)라는 식품마트는 그 방식 덕분에 더욱더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 식료품점인 ‘트레이더 조’의 계산대 모습. 계산원들과 고객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물건 넘어 경험과 느낌을 주고받게 된다.
미국 식료품점인 ‘트레이더 조’의 계산대 모습. 계산원들과 고객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물건 넘어 경험과 느낌을 주고받게 된다.

“계란을 깨진 것 없이 잘 골랐네요, 잘했어요!”, “이 과자 정말 맛있죠? 저도 매일 챙겨놓고 먹는 것 중에 하나랍니다.”, “저 소스도 한번 시도해보세요. 새로운 맛이랍니다.”, “우유는 따로 담아가시겠어요? 아님 같이 넣어드릴까요.” 등 자신 있고 유연한 작은 대화들에 ‘아, 맞아 우리가 기계가 아니었지’ 하는 살아있음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결국 매장에 대한 고객의 충성도도 높아지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편리함이 사람의 환대를 넘어설 수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학 기숙사 입소 과정에서의 환대 수순
한 미국 대학의 기숙사에 신입생이 도착에서 정착까지 물 흐르듯 이어지는 도움과 학교 정보의 제공 현장. 자원봉사 재학생들은 안내와 짐을 대신 옮겨줄 뿐 아니라 신입생과 그 가족들과 스몰토크를 이어가며 긴장된 마음을 녹여주었다.
한 미국 대학의 기숙사에 신입생이 도착에서 정착까지 물 흐르듯 이어지는 도움과 학교 정보의 제공 현장. 자원봉사 재학생들은 안내와 짐을 대신 옮겨줄 뿐 아니라 신입생과 그 가족들과 스몰토크를 이어가며 긴장된 마음을 녹여주었다.

많은 인원이 한 장소에 한꺼번에 몰릴 때 환대의 과정은 공간과 시설의 준비만큼이나 더욱 중요하다. 필자가 경험한 한 미국 대학의 신입생 기숙사 입소 과정에선 놀라운 환대의 장면들을 봤다.

캠퍼스와 기숙사에 일시에 사람들이 몰리지 않도록 시간대를 나눈 것은 기본이었다. 학생 개인만 짐을 들고 오는 경우도 있지만 지리적 특성상 가족들이 차량에 짐을 가득 싣고 오기에 평소 인원보다 몇 배의 사람들이, 그것도 초행길인 사람들이 몰리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차량을 인도하는 사람들과 학생들의 짐을 받아서 옮기는 재학생 자원봉사자들의 팀워크가 눈부셨다. 단지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닌, 원칙과 융통성을 갖고 도와줌으로 신입생들과 그 가족들은 더 안심하게 되고 가족 내 당분간의 이별의 마음을 충분히 나눌 수 있게끔 한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은 부모와 헤어지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문 하나로 부모의 세계와 어린이집의 세계가 단절되어 있지 않고 점진적으로 즐거운 환대를 통해서 들어설 수 있다면 훨씬 인간적인 헤어짐과 적응일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은 부모와 헤어지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문 하나로 부모의 세계와 어린이집의 세계가 단절되어 있지 않고 점진적으로 즐거운 환대를 통해서 들어설 수 있다면 훨씬 인간적인 헤어짐과 적응일 것이다.

모든 종류의 마음을 위한 도서관

미국의 도시 신시내티에 있는 중심 도서관은 몇 년간의 리모델링을 마치고 새롭게 개장하면서 중앙의 아트리움 공간을 적극 활용했다. 스탠드형 대형 계단을 놓아 여러 공연 등 시민 이벤트를 열고 이어지는 계단을 통해서는 역사적으로 이 도시에서 녹음된 음악들을 표기해서 낯선 긴장 속에서 길을 찾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적응과 파악을 돕고 있다. 이곳의 슬로건은 ‘For Minds of All Kinds’(모든 종류의 마음을 위하여)로 다양성을 나이나 신체적 차이뿐 아니라 다양한 마음, 즉 다양한 사람을 존중한다는 뜻을 담았다.
신시내티 도서관 중앙 아트리움. 환대의 마음을 공간으로 표현한 것으로 느껴진다.
신시내티 도서관 중앙 아트리움. 환대의 마음을 공간으로 표현한 것으로 느껴진다.
보통 중앙에 안내데스크가 있지만 이 도서관은 추가로 영역마다 작은 이동형 테이블에 사서들이 업무를 보고 있어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보통 중앙에 안내데스크가 있지만 이 도서관은 추가로 영역마다 작은 이동형 테이블에 사서들이 업무를 보고 있어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의 한 작은 도시의 도서관에서는 여름 방학 동안 책 읽기 리스트를 공개하며 어린이들이 책을 많이 읽었을 때 그 보상으로 ‘도서관 사서와의 점심’ 특권이 제시됐고 실제로 많은 어린이들이 그 특권을 얻어 즐거워했다고 한다. 이는 사서가 관리자나 통제자가 아닌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궁금한 어른이라는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사서들의 환대는 그 도서관 공간의 물리적 디자인만큼 중요할 것이다.

제5의 공간 디자인 요소 ‘환대의 수순’
청소년, 트윈세대 전용 도서관 ‘우주로1216’의 사서들은 이곳을 탐험하는 우주인들을 지원하는 지구인이라 불린다.
청소년, 트윈세대 전용 도서관 ‘우주로1216’의 사서들은 이곳을 탐험하는 우주인들을 지원하는 지구인이라 불린다.

우리의 도서관들에도 그런 사서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서들은 업무로서 관리자의 역할을 한다기보다는 진정으로 언제든 도서관 이용자들을 도와줄 준비를 하고 있으며 그 과정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백화점에서 부담스러운 것 중 하나가 상품을 둘러보고 있을 때 직원이 바로 옆에 붙어서 물건을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도움을 제공하는 점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공공 공간의 관리자나 사서는 그 이용자들을 도와주되 부담을 주지 않으며 이용자들을 존중해 먼저 다가와 대화를 요청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분위기와 공간에 자신감과 자주성을 가진 사서들이 제공하는 환대는 공간디자인 요소라 할 만하다.
우주로1216의 사서 업무공간인 ‘지구인출몰지역’은 이곳을 이용하는 청소년, 트윈세대들의 작업으로 빼곡하다. 그만큼 친근함이 드러나 있다.
우주로1216의 사서 업무공간인 ‘지구인출몰지역’은 이곳을 이용하는 청소년, 트윈세대들의 작업으로 빼곡하다. 그만큼 친근함이 드러나있다.

벽, 바닥, 천정 같은 물리적인 요소가 제1디자인 요소, 그 위에 더해지는 재료, 마감 등이 제2디자인 요소라면, 컬러나 패턴, 조명 등은 제3디자인 요소일 수 있다. 최근에는 공간의 프로그램이나 콘텐츠, 그래픽, 그리고 지난번 칼럼에 서술한 사이니지 등의 중요성이 많이 언급되고 있는데 그들을 제4디자인 요소라고 한다면, ‘환대’(Welcoming)의 수순(Procedure)‘은 제5디자인 요소로 가장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지만 노하우와 시스템이 필요하고, 적극적인 참여와 자신감 있되 존중하는 태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부족한 부분이 바로 제5디자인 요소이기도 하다.
환대의 수순을 경험한 이용자들은 스스로 공간의 주도성을 갖게 되며 같은 공간이어도 애정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환대의 수순을 경험한 이용자들은 스스로 공간의 주도성을 갖게 되며 같은 공간이어도 애정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환대의 수순 중심에는 관심이 있다

환대라고 해서 일렬로 도열해서 부담스러운 인사를 하거나 억지로 부담감에 업무로써 하는 것은 경쟁이거나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환대의 수순 중심에는 관심이 있어야 한다. 그 공간을 이용하는 다음세대에 대한 관심을 갖되 부담스럽지 않게 작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준비가 돼있어야 하며 관심이 생기기 위해서는 공간뿐 아니라 이용자들이 찾아오는 지역 전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따라서 그 환대를 주도적으로 즐길 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는 로비에 다양한 안내와 정보를 게시하고, 친근한 층별 안내 겸 키를 재볼 수 있는 눈금이 부착돼 있어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다. 이곳의 운영을 맡고 있는 센터장님과 일꾼들은 주도적으로 환대의 수순을 공간에 채우고 있다.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는 로비에 다양한 안내와 정보를 게시하고, 친근한 층별 안내 겸 키를 재볼 수 있는 눈금이 부착돼 있어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다. 이곳의 운영을 맡고 있는 센터장님과 일꾼들은 주도적으로 환대의 수순을 공간에 채우고 있다.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는 환대를 하는 문화와 자율적인 이용의 문화가 균형을 이루고 있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공간으로 설계됐다.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는 환대를 하는 문화와 자율적인 이용의 문화가 균형을 이루고 있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공간으로 설계됐다.
환대를 받는 청소년들은 그 공간에 대한 주도성과 활동성이 높아진다.
환대를 받는 청소년들은 그 공간에 대한 주도성과 활동성이 높아진다.

환대에 든든한 제3의 어른이 필요하다

환대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다. 이용자 입장에선 처음만 받는 것도 아니다. 공간과 함께 지속되고 보완하며 발전돼야 하는 것이며, 공간을 물리적으로 디자인하는 과정에서도 역시 세밀하게 고려돼야 할 부분이다. 어느 장소에서 처음 만나며, 어떤 장소에서 마음을 열고 가벼운 대화를 하며 관심을 주고받을 수 있을지 반영되면 더욱 좋다.
도서문화재단 씨앗에서 만든 대학로의 트윈세대 도서관인 ‘제3의공간’에는 운영자가 이용자들을 환대하는 공간이 있다.
도서문화재단 씨앗에서 만든 대학로의 트윈세대 도서관인 ‘제3의공간’에는 운영자가 이용자들을 환대하는 공간이 있다.

무엇보다 다음세대 공간에서 그런 환대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중요하고 다음세대 자체가 같이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다. 환대의 수순에 대한 매뉴얼 너머의 가치를 전하고 발전시키는 전문가나 운영자는 다음세대들에게 ‘제3의 어른’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 같은 제1의 어른이나 학교 선생님 같은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제2의 어른이 아닌, 느슨한 관계이면서도 언제든 내가 원한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관심을 갖고 보게 되는 사람이 제3의 어른이라 할 수 있다. 다음세대들이 건강하게 생활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잘 조성된 공간만큼이나 든든한 제3의 어른들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교사지만 제3의 어른 역할도 하는 선생님이 공간을 조성하고 학생들의 마음을 환대하며 모으는 과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셨다.
공근초등학교에도 교사지만 제3의 어른 역할도 하는 선생님이 공간을 조성하고 학생들의 마음을 환대하며 모으는 과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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