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공평한 '유니버설 디자인'…배려와 포용을 배우다

시민기자 윤혜숙

발행일 2024.08.26. 11:28

수정일 2024.08.26. 18:18

조회 1,116

공덕역 바닥에 전철 노선 색깔과 같은 유도선을 표시해 두어 갈아타는 곳을 찾아가기 수월하다. ⓒ윤혜숙
공덕역 바닥에 전철 노선 색깔과 같은 유도선을 표시해 두어 갈아타는 곳을 찾아가기 수월하다. ⓒ윤혜숙

공덕역은 4개의 전철 노선이 교차하는 곳으로 전철역사가 복잡하다. 5호선, 6호선, 인천국제공항철도, 경의·중앙선의 환승역이다. 과거 복잡한 전철역사 안에서 갈아타는 승강장을 제대로 찾지 못해서 한참 헤맨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바닥에 표시된 화살표를 따라가면 헤매지 않고 곧장 원하는 승강장으로 갈 수 있다. 누구든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바닥에 전철 노선 색깔과 같은 유도선을 표시해 두었기 때문이다. 글자를 모르는 승객이라도 쉽게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예술극장 엘리베이터 문에 커다란 숫자로 층을 알리는 표시를 해놓았다. ⓒ윤혜숙
모두예술극장 엘리베이터 문에 커다란 숫자로 층을 알리는 표시를 해놓았다. ⓒ윤혜숙

재작년 충정로역 인근 구세군빌딩 1층부터 3층까지 ‘모두예술극장’이 문을 열었다. 모두예술극장은 ‘장애든 비장애든 가리지 않고 누구나 향유할 수 있고, 모든 형태의 예술이 모이는 공간’을 뜻한다. 이곳은 장애 예술인과 장애인 관객 모두의 접근성을 높이게 내부를 구현했다.

그중 하나로 엘리베이터 층수 표시를 들 수 있다. 장애인이 공연장으로 이동하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만 한다. 그들의 눈앞에 보이는 엘리베이터 문에 커다랗게 숫자를 표시해 놓아 층을 알린다.
지하철 안 손잡이의 높낮이를 다르게 설치해 놓아 승객은 자신의 키에 맞춰서 손잡이를 잡을 수 있다. ⓒ윤혜숙
지하철 안 손잡이의 높낮이를 다르게 설치해 놓아 승객은 자신의 키에 맞춰서 손잡이를 잡을 수 있다. ⓒ윤혜숙

공덕역 바닥에 표시된 색깔 유도선, 모두예술극장 엘리베이터 문에 표시된 숫자는 얼핏 보면 단순하다. 하지만 거기엔 그곳을 오가는 모든 사람의 평등을 지향하려는 노력이 내재되어 있다. 이것을 통틀어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라고 표현한다.

최근 수년 내 ‘유니버설 디자인’이 주목받고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다. 즉 모두에게 공평한 배려와 안전이 보장된 환경을 제공하는 디자인이다. 다양한 대상이 차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물리적 환경, 사회적 배려, 경제적 형평성, 맞춤형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적용할 수 있는 디자인의 기본이자 태도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접근성, 다양성, 관계성, 사용자 편의성, 확장성 등 다양한 디자인의 의미로 확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서울시는 모든 시민이 나이, 신체 크기, 국적, 장애, 능력 등과 무관하게 이용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누구나 평등하게 사회에 참여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유니버설 디자인을 구현하고자 적용지침을 개발한 바 있다.
서울디자인재단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가치 확산을 위한 시민 참여 사업으로 <유니버설 디자인 신중년 세미나>를 열었다. ⓒ윤혜숙
서울디자인재단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가치 확산을 위한 시민 참여 사업으로 <유니버설 디자인 신중년 세미나>를 열었다. ⓒ윤혜숙

이번에 서울디자인재단에서 '유니버설 디자인 신중년 세미나'를 열었다. 디자인 문화 선도와 디자인 가치 공유 확산이라는 전략 목표 아래 유니버설디자인팀에서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가치 확산을 위한 시민 참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총 5회에 걸쳐 진행하는 세미나의 1회차는 '삶을 바꾸는 유니버설 디자인, 다시 연결되는 우리'라는 주제로 열렸다. 5070세대를 아우르는 신중년이 마주하는 다양한 삶의 변화 속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의 역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기자의 연령대가 신중년이기도 해서 관심을 갖고 1회차 세미나에 참석했다.
'두 번째 인생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주제로 서연주 의사가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윤혜숙
'두 번째 인생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주제로 서연주 의사가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윤혜숙

두 명의 연사가 순차적으로 각자가 준비한 주제를 발표했다. 첫 번째, '두 번째 인생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주제로 서연주 의사(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응급 내과)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서연주 의사는 인간의 미숙함에 대해 언급했다. 인간은 미숙하고 돌봄이 필요한 상태로 태어나서 또 미숙하고 돌봄이 필요한 상태로 죽음을 맞이한다고 했다. 승승장구하면서 살아왔던 그에게 인간의 생애에 대해서 깨닫는 계기가 생겼다. ‘윙크 의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듯 그는 2년 전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인해 응급실에 실려 왔다. 사고로 왼쪽 눈이 파열되어 함몰되었고, 실명했다.

서연주 의사는 뜻하지 않게 장애를 갖게 되었고, 어느 순간 의사에서 환자가 되어 있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그는 자신에게 닥친 상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게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환자로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병원이 환자의 입장에서 마땅히 편안하게 쉴 공간이 아니라는 점을 인지했다. 오랜 기간 누워 있는데 꼬리뼈가 아팠던 환자용 침대, 수술실 가는 길에 유난히 눈이 부셨던 천장의 조명 등등을 느낄 수 있었다. 장애를 겪지 않았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상황이었다. 그는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 덕분에 상실을 극복하고 일상에 적응해가고 있다. 
서연주 의사는 뜻하지 않게 장애를 갖게 되었고,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 덕분에 상실을 극복하고 일상에 적응해가고 있다. ⓒ윤혜숙
서연주 의사는 뜻하지 않게 장애를 갖게 되었고,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 덕분에 상실을 극복하고 일상에 적응해가고 있다. ⓒ윤혜숙

장애는 초보인 의사이지만 장애인 환자를 위로해 주고 꿀팁을 제공해 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지금 생과 사가 교차하는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다. 응급실에서 그가 할 역할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서연주 의사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힘든 순간에 글을 쓰고 책을 쓰면서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겪었던 경험담을 토대로 <씨 유 어게인 - 서연주 윙크의사 에세이>를 발간했다. 
'삶을 바꾸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주제로 전미자 이사장이 환경디자인의 역량과 효과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윤혜숙
'삶을 바꾸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주제로 전미자 이사장이 환경디자인의 역량과 효과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윤혜숙

두 번째, '삶을 바꾸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주제로 전미자 이사장(한국복지환경디자인연구소)이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 신중년의 가치관 변화, 그에 따른 환경디자인의 역량과 효과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전미자 이사장은 아기를 업거나 유아차에 태우고 다닐 때 계단을 마주하게 된 심정을 언급했다. 휠체어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위해 계단 옆에 설치한 엘리베이터를 어린 아기를 동반한 엄마들도 이용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유니버설 디자인의 기본이라고 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특정인을 배려하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편리해진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고령화로 인해 인지적, 신체적 능력이 떨어지면서 젊었을 때와 달리 불편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윤혜숙
고령화로 인해 인지적, 신체적 능력이 떨어지면서 젊었을 때와 달리 불편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윤혜숙

유니버설 디자인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디자인이다. 동일한 환경이라도 개인의 신체적 조건, 생애주기 등에 따라 느끼는 불편함은 다를 수 있다. 고령화로 인해 인지적, 신체적 능력이 떨어지면서 젊었을 때와 달리 불편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보다 고령화가 빨리 진행된 일본이나 유럽에서는 유니버설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고 정책에도 반영되어 있다.

그러면서 전 이사장은 해외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한 다양한 사례를 사진으로 보여줬다. 그중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있다. 엘리베이터 안의 벽면에 피아노 건반처럼 생긴 게 가로로 배열되어 있다. 우리가 지금껏 본 엘리베이터 내 층수 표시는 세로로 배열되어 있었다. 피아노 건반처럼 생긴 것은 엘리베이터 내 층수 표시를 가로로 배열한 것이다. 청중들이 “아하”하면서 외마디 소리를 낸다. 이른바 발상의 전환이다.
정보를 이미지화해서 나타내는 픽토그램을 서울 시내 다중이용시설에서 볼 수 있다. ⓒ윤혜숙
정보를 이미지화해서 나타내는 픽토그램을 서울 시내 다중이용시설에서 볼 수 있다. ⓒ윤혜숙

또한 정보를 이미지화해서 나타내는 픽토그램도 있다. 픽토그램(pictogram)은 그림을 뜻하는 '픽처(picture)'와 문자 또는 도해를 의미하는 '그램(gram)'의 합성어이다. 이는 어떤 대상이나 장소에 관한 정보를 알리기 위해 문자를 사용하지 않고도 동일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도록 조합한 그림을 가리킨다.

최근 공항이나 대중교통 시설 등에 문자 대신 픽토그램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 시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전 이사장은 “예산이 많이 들지 않는다. 기존 시설물을 변경하기 어렵다면 시트지를 붙여서 픽토그램으로 나타낼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
서울시가 인지건강 디자인을 적용한, 송파노인종합복지관 앞마당에서 조성한 ‘100세 마당’ ⓒ윤혜숙
서울시가 인지건강 디자인을 적용한, 송파노인종합복지관 앞마당에서 조성한 ‘100세 마당’ ⓒ윤혜숙

전 이사장은 신체적인 장애뿐 아니라 정신적 장애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중 인지장애를 꼽았다. 50세를 지나면서 인지 장애를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치매도 인지장애의 하나다. 서울시가 인지건강 디자인을 적용한 사례로 ‘100세 마당’이 있다. 기자도 예전에 송파노인종합복지관 앞마당에 조성한 ‘100세 마당’을 취재했던 적이 있다.

전 이사장은 “디자인이라고 하면 예쁘고 세련된 공간을 생각하는데요. 유니버설 디자인의 진정한 가치는 모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제거되는 것입니다. 누구든 장애를 가질 수 있어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노인이 됩니다”라고 말한다.
전미자 이사장은 제도권 내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나아가 사회통합의 도구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윤혜숙
전미자 이사장은 제도권 내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나아가 사회통합의 도구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윤혜숙

그런 점에서 전 이사장은 유니버설 디자인을 '환경인권'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게끔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고 했다. 성별, 국적, 연령, 문화적 배경, 장애의 유무와 상관없이 노인, 장애인, 여성, 어린이, 외국인 등 다양한 대상자 모두를 포용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인권 환경디자인의 기본으로 계획해야 한다는 것을 제안했다.

전 이사장은 40년 이상 현장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디자인을 복지와 연계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는 우리의 제도권 내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나아가 사회통합의 도구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청중의 관심이 연사를 향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윤혜숙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청중의 관심이 연사를 향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윤혜숙

이어서 두 연사와 참가자 모두가 참여하는 자유로운 네트워킹 시간이 있었다. 서초구는 작년부터 유니버설 디자인을 추진 중이다. 장안마을경로당이 하나의 예다. 어르신들의 보행로에 미끄럼 방지제와 핸드레일 등을 설치함으로써 어르신들이 안전하게 걸어다닐 수 있도록 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배려이자 포용을 상징한다. 약자를 배려하려고 설치했더니 모든 사람이 편리해졌다.

서울시가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줌으로써 공사 현장에도 이를 적용하고 있다. 건축가들이야말로 기본적으로 유니버설 디자인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건축학과 학생들에게 장애인체험센터에서 장애인 체험을 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교육 방법이다. 한경국립대학교 평택캠퍼스가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반포느티나무쉼터의 출입 자동문 버튼에도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되어 있다. ⓒ윤혜숙
반포느티나무쉼터의 출입 자동문 버튼에도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되어 있다. ⓒ윤혜숙

서울시가 2010년경 유니버설 디자인을 선도적으로 도입해 2016년 '유니버설 디자인 도시조성 기본 조례'를 제정한 바 있다. 시는 2017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를 위한 법과 조례, 무장애 건물과 공원 등 법과 관련 지침을 망라한 '서울시 유니버설 디자인 통합 가이드라인'을 개발해 적용했고, 2020년 9월에는 '서울시 유니버설 디자인 종합계획 2020~2024'를 통해 2021년부터 신축 및 개·보수하는 모든 공공시설물에 유니버설 디자인을 의무화하도록 조례 개정을 추진했다.

'유니버설 디자인 신중년 세미나'가 열렸던 반포느티나무쉼터도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된 곳이다. 출입 자동문 버튼이 아래쪽에 달려 있었다. 어린이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앉아서 버튼을 누를 수 있도록 했다. 올해 5월 28일 개관한 반포느티나무쉼터는 신중년을 위한 신개념 어르신 문화여가복합시설이다. 만 55세 이상 서초구 지역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디자인재단에서는 해마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가치 확산을 위한 시민 참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8월 9일 1회차 '삶을 바꾸는 유니버설 디자인, 다시 연결되는 우리'에 이어 14일 2회차 '모두를 위한 디자인, 디자이너의 생각법' 세미나가 열렸다. 유니버설 디자인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어떨까? 그만큼 서울시 나아가 전국 곳곳이 우리 모두를 위해서 편리하게 바뀔 것이다.

서울디자인재단 디자인 가치 공유 확산

반포느티나무쉼터

○ 위치 : 서울시 서초구 신반포로 127 4층
○ 교통 : 지하철 9호선 신반포역 2번 또는 지하철 9호선 고속버스터미널역 8-1번 출구에서 반포우체국 및 반포2동 열린문화센터 방향
누리집
○ 문의 : 02-535-509, banponeuti@naver.com

시민기자 윤혜숙

시와 에세이를 쓰는 작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다양한 현장의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카카오톡 채널 구독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