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만 대화하는 조용한 강의실 "수어 익혀 그림책 읽어주고 싶어요"

시민기자 윤혜숙

발행일 2024.05.31. 13:22

수정일 2024.05.31. 13:22

조회 1,533

4050 직업역량강화로 진행 중인 '수어 활동가 양성과정' 참관기
서대문50플러스센터는 수어 활동가 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윤혜숙
서대문50플러스센터는 수어 활동가 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윤혜숙

서대문50플러스센터의 프로그램을 살펴보다가 서울시 약자와의 동행에 부합되는 교육과정이 한눈에 들어왔다. 수어 활동가 양성과정, 오디오북 활동가 양성과정이다. 그중 수어 활동가 양성과정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했다.

수어 활동가 양성과정시각적 언어인 수어의 기초를 배우고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강좌다. 수어는 청각 장애인이나 언어 장애인 등 음성 언어를 사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음성 대신 손의 움직임을 포함한 신체적 신호를 이용하여 의사를 전달하는 시각 언어다. 수어는 손가락이나 팔로 그리는 모양, 그 위치나 이동, 표정이나 입술의 움직임 등을 종합하여 표현되고 있다.
수어 활동가 양성과정은 수어의 기초를 배우고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강좌다. ⓒ윤혜숙
수어 활동가 양성과정은 수어의 기초를 배우고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강좌다. ⓒ윤혜숙

센터의 수어 활동가 양성과정은 지난 4월 2일부터 6월 13일까지 매주 화,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총 21회차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자는 14회차 강의가 있던 날 서대문50플러스센터를 방문, 센터의 양해를 구한 뒤 강의를 참관해 봤다.

오전 10시가 되자 수강생들이 하나둘 강의실에 입장했다. 그런데 강사에게 눈인사만 건네고 조용히 착석한다. 의아해하던 기자는 곧 의문을 풀 수 있었다.
강사와 수강생들이 오직 수어로 의사소통하고 있어서 강의실이 조용하다. ⓒ윤혜숙
강사와 수강생들이 오직 수어로 의사소통하고 있어서 강의실이 조용하다. ⓒ윤혜숙

강사와 수강생들은 수어로 의사소통하고 있었다. 두 시간 중 1차시는 한참 강사와 수강생들 간에 인사를 주고받고, 지난 시간까지 학습했던 수어를 복습했다. 2차시는 오늘의 진도에 맞춰 교재에 나온 수어 동작을 배우고 익히는 시간이었다.

강의실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기자는 정면에 있는 강사의 표정을 읽으면서 강의실 분위기를 살필 수 있었다. 강의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강사와 수강생들이 무슨 대화를 주고받는지는 좀처럼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 순간 기자는 청각장애인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청각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 틈에 있다면 기자와 같은 심정이었을 테다. 이런 게 바로 동병상련이다.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현한 지숫자로 2를 나타내고 있다. ⓒ윤혜숙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현한 지숫자로 2를 나타내고 있다. ⓒ윤혜숙

강의가 끝난 뒤 수강생 김교남 씨를 만나서 일문일답을 나눴다. 50대 중반의 김교남 씨는 도서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독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수어 활동가를 청각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통을 연결해 주는 중간자라고 언급했다.

Q : 수어 활동가 양성과정을 수강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A : 30년 전에 봉사활동하면서 수어를 잠깐 배웠던 적이 있어요. 그때는 수어를 수화라고 불렀어요. 그때의 느낌이 좋았어요.
이제 자녀들도 다 성장했고 예전처럼 바쁜 시기가 지나갔어요. 오후에 독서 수업을 하다 보니 오전에 시간이 비게 되어서 뭐든 배우기 좋은 시간이에요. 마침 서대문50플러스센터의 프로그램을 살펴보니 수어 활동가 양성과정이 있어서 망설임 없이 신청했어요. 제가 수어를 익혀서 청각 장애인 대상으로 수어로 그림책을 읽어 주고 싶어요.
강의실에 입장한 수강생들은 서툴지만 수어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한다. ⓒ윤혜숙
강의실에 입장한 수강생들은 서툴지만 수어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한다. ⓒ윤혜숙

Q : 수어를 배우는 과정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A : 수어도 언어의 하나입니다. 수어는 단순히 손동작을 익혀서 표현하는 것에 머물지 않아요.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 나라의 단어, 문법뿐만 아니라 문화까지 습득하는 것인데요, 수어를 사용하는 청각 장애인들도 그들이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그들만의 문화가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청각 장애인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 필요해요. 역지사지라고 하겠죠. 그런 점에서 외국어를 배우듯 어려워요. 청각 장애인을 자주 대하면서 그들의 생활방식이나 사고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리라고 봐요. 청각 장애인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있어야만 수어가 힘을 발휘할 수 있어요.
이번 기초반에서 끝나지 않고 추후 중급반, 고급반 등 심화 과정이 개설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센터 측 사정이 있는 거니까 교육이 끝난 후 기초반 교육생들이 매주 모여서 동아리를 결성해서 학습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어요.
수강생들은 강사와 함께 지난 시간까지 학습한 수어를 복습하고 있다. ⓒ윤혜숙
수강생들은 강사와 함께 지난 시간까지 학습한 수어를 복습하고 있다. ⓒ윤혜숙

Q : 수어 활동가 양성과정을 수강하면서 느낀 소감이 있을까요?
A : 수어 활동가 양성과정에 참여한 수강생들을 보면서 수어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지난 2016년 수어가 대한민국의 공식 언어가 되었어요.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공식 언어인 수어를 배워 보는 것은 어떨까요?
첫날부터 강사가 수어로 교육했어요. 그게 낯설고 힘든 경험이었어요. 오늘 수업도 보다시피 수어로 수업을 진행했어요. 수어를 알아듣고 수어로 표현한다는 게 여전히 힘든 과정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언어를 하나 더 알아나간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가볍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수업 2시간 중 첫 시간은 앞에 배웠던 수어를 복습하고, 두 번째 시간은 새로이 배우는 내용을 수어로 학습하고 있어요. 매시간 복습하면서 수어를 익혀 나가고 있어요.

Q : 수어 활동가 양성과정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조언한다면요?
A : 수어를 배우면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진 고정관념을 깨는 작업이 있어야겠죠. 청각 장애인 입장에서 생각하고 표현해야만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거든요.
저처럼 50여 년을 비장애인으로 생활해 오면 그게 쉽지 않아요. 그런데 언어를 배우는 첫 번째 선결 조건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니까요. 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지사지가 꼭 필요합니다.
김교남 씨가 'I LOVE YOU'를 수어로 표현하고 있다. ⓒ윤혜숙
김교남 씨가 'I LOVE YOU'를 수어로 표현하고 있다. ⓒ윤혜숙

한국수화언어법은 한국수화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임을 밝히고, 한국수화언어의 발전 및 보전의 기반을 마련하여 농인과 한국수화언어 사용자의 언어권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제정했다. 지난 2016년 2월 3일은 한국수화언어 즉, 수어가 한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언어로 공식화된 날이다.

우리에겐 한국어, 수어, 점자 3개의 모국어가 있다. 하지만 이것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한국수화언어법에 의하면, 농인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농문화 속에서 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말한다.
장애인의 날 행사에서 수어 활동가 양성과정 수강생들이 자원봉사에 나섰다. ⓒ서대문50플러스센터
장애인의 날 행사에서 수어 활동가 양성과정 수강생들이 자원봉사에 나섰다. ⓒ서대문50플러스센터

지난 4월 30일 서대문구에서 장애인의 날 행사가 열렸다. 수어 활동가 양성과정에 참여 중인 수강생들은 퍼스널 컬러 수어 부스를 맡았다. 부스를 방문한 비장애인들에게 색깔과 관련된 간단한 수어 단어를 알려 주고, 그들이 원하는 색상을 배경 삼아서 사진을 찍어주는 봉사를 진행했다.

김교남 씨는 장애인의 날 행사에 예상 외로 많은 장애인이 방문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대다수 장애인이 바깥세상으로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실제 장애인들의 숫자는 많다. 보건복지부 통계로 본 장애인 현황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 등록 장애인 수는 264만 1,896명에 이른다. 총인구 대비 약 5%에 이를 만큼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수어 활동가 양성과정은 서울런4050 중장년집중지원프로젝트와 연계되어 있다. ⓒ윤혜숙
수어 활동가 양성과정은 서울런4050 중장년집중지원프로젝트와 연계되어 있다. ⓒ윤혜숙

서대문50플러스센터에는 서울런4050 중장년집중지원프로젝트와 연계된 오디오북 활동가 양성과정도 있다. 서대문 점자도서관과 함께 시각 장애인을 위한 도서 낭독자를 양성하는 과정이다. 청각 장애인을 위해 수어 활동가를 필요로 하듯 시각장애인을 위해 오디오북 활동가를 필요로 한다.

‘장애인 행복도시프로젝트’의 하나로, 서울시가 지난 2009년 4월 13일 국내 최초 개관한 서울수어전문교육원도 있다. 수어전문교육원은 수어문화 저변을 넓힐 뿐 아니라 수어전문통역사 배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수어를 배우고 싶은 서울시민은 매월 세 번째 수요일부터 서울수어전문교육원 누리집에 접속해 수강 신청할 수 있으며, 서울시 외 거주자의 경우 서울시민 대상 1차 수강 신청이 끝난 뒤 잔여석에 한해 신청이 가능하다. 물론 서대문50플러스센터에도 수어 활동가 양성과정, 오디오북 활동가 양성과정이 마련되어 있다.

서울시 약자와의 동행에 발맞춰서 수어 활동가나 오디오북 활동가로 활동해 보는 것은 어떨까?

서대문50플러스센터

○ 위치 : 서울시 서대문구 통일로 484 유진상가 2층
○ 교통 : 지하철 3호선 홍제역 1번 출구에서 406m
○ 운영시간 : 월~금요일 09:00~21:00, 토요일 10:00~17:00(12:00~13:00 휴게시간)
○ 휴무 : 일요일
누리집
○ 문의 : 02-394-5060

서울수어전문교육원

시민기자 윤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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