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부모 마음을 모두 만족하는 '돌봄공간'을 위해

지정우 건축가

발행일 2024.01.05. 10:59

수정일 2024.01.09. 10:53

조회 1,918

(타이틀 이미지) 지정우건축가가 들려주는 아빠 건축가의 다음 세대 공간 탐험
대방동 스페이스살림 내 계단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조성한 엄마아빠VIP존 4호 커뮤니티스페이스.
대방동 스페이스살림 내 계단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조성한 엄마아빠VIP존 4호 커뮤니티스페이스.

아빠건축가의 다음세대 공간 탐험 (19) 우리동네 돌봄마을

새해가 된 지 며칠이 지났지만 여전히 2024라는 숫자는 익숙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습관적으로 2023을 쓰다가 슬그머니 3을 4로 바꿔 써넣는 백스페이스의 시간을 여러 번 거쳐야만 비로소 2024년이라는 게 실감 날지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 더 생경하게 다가오는 것은 학령인구 최저를 넘어 여러 지역의 소멸적 상황으로 향하는 영유아 어린이 인구 급감 소식이 아닐까 한다. 

어쩌다 이토록 아이를 낳지 않는 상황이 되었나 한탄하기보다 ‘우리 사회는 다음세대를 제대로 맞을 시스템과 공간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구체적인 것부터 해결해 가는 것이 중요하겠다. 그것은 다음세대 뿐 아니라 현재의 모두가 살만한 환경을 만드는 것과도 닿아있다. 
도시를 닮은 돌봄공간인 엄마아빠VIP존 4호에서 아이와 엄마가 집처럼 편안히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도시를 닮은 돌봄공간인 엄마아빠VIP존 4호에서 아이와 엄마가 집처럼 편안히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돌봄과 양육 그리고 성장

언제인가부터 ‘돌봄’이라는 단어가 우리 생활에서 중요하게 등장하게 되었다. 인구가 빠르게 감소할수록 더 자주 언급이 된다. 그전에는 단순한 사회 구조, 대규모 가족, 누군가의 희생, 고정 관념 속에서 분명히 존재했지만 잘 드러나지 않았었다면 그것들이 모두 급변하고 있는 현재, ‘돌봄’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다음세대를 맞을 준비가 되었는가를 드러내는 단어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돌보다’라는 말은 영어로 ‘케어’(care)이다. 이 care는 고대 영어의 슬픔과 불안, 걱정 등을 뜻하는 caru, cearu에서 왔다고 한다. 마음의 부담을 함께 지고, 함께 신경 쓰고, 서로의 곁에 같이 존재한다는 의미가 있다고도 한다. 단지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키우거나 기르는 것만 돌봄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 걱정해 주고 마음을 나누는 상보적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엄마아빠VIP존 3호 돌봄교실의 어린이 눈높이를 고려해 완성된 놀이공간과 수유공간.
엄마아빠VIP존 3호 돌봄교실의 어린이 눈높이를 고려해 완성된 놀이공간과 수유공간.

비슷하게 자주 쓰이는 단어 중에 또한 ‘양육’(養育)이나 ‘육아’(育兒)가 있는데 이는 모두 ‘기르다’, ‘어린아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고 영어로도 raise나 nurture를 사용해 양육의 주체와 대상의 방향이 정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이와 엄마는 서로 ‘돌봄’의 관계가 될 수 있지만 ‘양육’은 엄마가 아이를 대상으로 하게 되는 것이라 하겠다. 
기존 계단식 구조를 다양한 장소로 재 조직한 엄마아빠VIP존 4호 커뮤니티 스페이스.
기존 계단식 구조를 다양한 장소로 재 조직한 엄마아빠VIP존 4호 커뮤니티 스페이스.

개인적인 생각으로, 한때는 ‘육성’(育成)이나 ‘양성’(養成)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 더 지배적으로 사용되던 때도 있었으나 현재는 일반 사회와 일상생활에서 ‘돌봄’이 더 중요하게 다뤄지는 듯 느껴진다. 이는 서로 간의 돌봄을 통해 각자의 주체성이 반영된 ‘성장’이라는 측면도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스페이스살림 내 엄마아빠VIP존

서울시는 양육자들을 위해 '엄마아빠VIP존' 3호와 4호 공간을 대방동 '스페이스 살림' 내 커뮤니티 스페이스와 영유아 돌봄교실을 리모델링하여 조성했다. 
  
이 실제 공간 조성을 하기 이전에는 필자와 숙명여대 환경디자인과 학생들이 스페이스 살림 내 커뮤니티 스페이스의 개선 방향을 연구한 적이 있었다. 새로운 공공 건축으로 지역에서 마을의 일부로 사용되던 공간이었지만 거대한 일방향의 계단식 공간으로만 되어있어서 어른 대상의 강연 말고는 다목적으로 사용되기에 한계가 있었다. 이런 커뮤니티 스페이스를 다양한 크기와 성격의 공간으로 아기자기하게 구성하여 여러 행사와 모임들이 가능하게 구상해 보는 것이 골자였다. 
길고 경사진 공간에 여러 작은 마을들이 옹기종기 놓이며 아늑함과 개방감을 동시에 가질 수 있었다.
길고 경사진 공간에 여러 작은 마을들이 옹기종기 놓이며 아늑함과 개방감을 동시에 가질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의 설계를 맡은 필자와 EUS+는 대학에서의 이 연구를 바탕으로 ‘엄마아빠VIP존’이라는 구체적인 용도와 지향점을 반영해 실제 가능한 공간을 설계했다. 기본 개념은 스페이스 살림 내에 위치한다는 점을 적극 활용하여 마을 조직과 단절되지 않고 이의 일부가 되도록 공간감을 연계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돌봄 마을 (Caring Village)'란 개념을 정하고 정체성을 가진 마을의 분위기를 가질 수 있도록 설계했다. 
기존 계단식 공간은 시각적으로 시원하긴 하나 거의 1미터에 육박하는 각 단들이 어린이들에게 위험한 요소였다.
기존 계단식 공간은 시각적으로 시원하긴 하나 거의 1미터에 육박하는 각 단들이 어린이들에게 위험한 요소였다.

기존 한 방향 계단식 스탠드만 있었던 거대한 공간을, 높낮이를 활용한 여러 활동들의 공간으로 아기자기하게 재조직했다. 이를 통해 아이들에게도 친숙한 공간의 스케일과 양육자들에게도 안심과 휴식이 되는 공간으로 재탄생 될 수 있었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마치 수직적으로 쌓인 마을 같이 보이기도 하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마치 수직적으로 쌓인 마을 같이 보이기도 하다.
좀더 정적인 활동이 가능한 풍경마을과 소규모 모임이 가능한 살림살롱.
좀더 정적인 활동이 가능한 풍경마을과 소규모 모임이 가능한 살림살롱.

엄마아빠 VIP존 3호는 다양한 돔봄 프로그램들이 이뤄지는 장소로 양육자의 휴식라운지, 돌봄교실, 놀이공간, 수유공간 등 작지만 돌봄에 최적화된 공간으로 구성되었으며, 엄마아빠 VIP존 4호는 살림강연, 놀이마을, 마을서가, 풍경마을, 살림살롱으로 이어지는 입체적인 공간으로 구성되어 좀 더 편안하고 자율적인 돌봄과 커뮤니티 행사가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기존 단 차이를 이용하여 안으로 폭 파져있는 놀이마을에서는 종종 아이들이 뒹굴뒹굴한다.
기존 단 차이를 이용하여 안으로 폭 파져있는 놀이마을에서는 종종 아이들이 뒹굴뒹굴한다.
놀이마을 위쪽의 마을서가에서는 보호자도 각자 일을 보고 아이들도 각자 책을 보거나 숙제를 하는 장면이 목격된다.
놀이마을 위쪽의 마을서가에서는 보호자도 각자 일을 보고 아이들도 각자 책을 보거나 숙제를 하는 장면이 목격된다.
엄마아빠VIP존 4호의 가장 하단에는 작은 강연을 할 수 있는 살림강연이 배치되어 있어 평소에는 마을 거실의 역할을 한다.
엄마아빠VIP존 4호의 가장 하단에는 작은 강연을 할 수 있는 살림강연이 배치되어 있어 평소에는 마을 거실의 역할을 한다.

서로 돌보며 성장하는 마을을 향하여

일상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집안의 좁은 공간에서만 있다 보면 양육자와 아이 사이도 서로 힘들어질 수 있다.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쉽게 손 붙잡고 갈 수 있는 공공의 장소에 집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공간감을 준다면 돌봄의 분위기도 전환할 수 있을지 모른다. 각 장소에선 엄마-아이, 조모-아이, 아빠-아이가 각각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 다른 활동을 하곤 한다. 

이를 통해 양육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고 각자의 독립적인 주체 사이에서 진정한 돌봄의 장소가 되어가고 있다. 이곳의 어른들뿐 아니라 공간을 사용하는 각 아이의 마음속에도 새롭게 남을 공간감이 양육자와의 관계를 더욱 특별하게 기억되길 바라며 공간을 설계했다. 이런 공간이 많아지고, 이곳을 즐기는 다음세대도 더욱더 늘어나길 기대해본다. 
스페이스 살림의 도시적인 구조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엄마아빠VIP존의 특별한 개념을 세우게 되었다.
스페이스 살림의 도시적인 구조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엄마아빠VIP존의 특별한 개념을 세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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