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과 산책하고 햇살과 숨바꼭질…재활용 놀이 파빌리온

지정우 건축가

발행일 2023.10.27. 15:52

수정일 2023.10.27. 16:03

조회 2,354

아빠 건축가의 다음 세대 공간 탐험 타이틀 이미지
강원키즈트리엔날레의 놀이 파빌리온 ‘PLAYPLUS’.
강원키즈트리엔날레의 놀이 파빌리온 ‘PLAYPLUS’.

아빠건축가의 다음세대 공간 탐험 (16) 다음세대의 재활용 놀이 파빌리온

우리 전통건축에는 자연 속에 놓인 ‘정자’라는 것이 있다. 완벽하게 벽으로 막힌 건축이 아닌, 특별한 기능이 없이 그 자체가 자연 속에서 새로운 풍경을 제시하고 주변의 풍광을 즐기기 위한 구조물이다. 한마디로 ‘놀기 위한 구조물’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물론 그 ‘놀다’의 행위는 격렬한 신체적 활동 뿐 아니라 정서적 느낌을 포함하고 있다.

먹고 자고 일하고 공부하는 데 쓰이는 공간을 제1의 공간, 제2의 공간이라고 한다면, 특별히 없어도 지장이 없으나 그 공간에서 몸과 마음과 문화가 성장하는 공간을 제3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카페, 공원 등이 이에 해당되는데 ‘정자’도 지금으로 보면 제3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대 건축에서는 특별한 기능이 없고 한시적인 구조물을 ‘파빌리온’이라고 하고 국내외 여러 건축가들이나 디자이너들은 때때로 다양한 파빌리온을 설계하고 지음으로써 이벤트에 대응하거나 새로운 공간 문화와 사회적 메시지를 제시하기도 한다.

또한 그러한 파빌리온은 평소 정형화된 공간에서만 생활하던 일반 대중들의 공간에 대한 인식을 넓혀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특히 날씨가 좋은 가을에는 다양한 행사에서 건축가들 뿐 아니라 대학생들도 파빌리온을 만들어 시민 사회에 제시하고 있다. 파빌리온이 정자인 셈이다.

파빌리온 중에서도 특별히 다음세대들의 놀이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재활용 재료를 사용한 사례로 어린이들이 공간을 새롭게 느끼고 감각하며 반응할 수 있는 파빌리온 사례를 두 가지 제시해 본다.
파빌리온 구상 단계에서 재료를 최소화하면서도 공간적 경험이 남다를 수 있는 방안을 고안했다.
파빌리온 구상 단계에서 재료를 최소화하면서도 공간적 경험이 남다를 수 있는 방안을 고안했다.

강원키즈트리엔날레 놀이 파빌리온 ‘PLAYPLUS(놀이에 더하다)’

국내 최초의 어린이 전용 시각예술 축제인 ‘강원키즈트리엔날레’가 강원도 평창에서 열렸다. 이에 필자의 EUS+ Architects가 작가 중 하나로 초대되어 디자인과 설치(시공: 더블루)를 담당했다. 

어린이들의 놀이풍경은 새로운 공간감으로 더욱 촉진될 수 있다. 주변의 강원도 산세를 감안하여 높낮이가 다른 미로 형식의 공간이 서로 이어진다. 답답한 벽으로 막힌 미로가 아닌 가벼운 재료인 로프로 벽이 만들어져 주변 공간과 자연광을 투영할 수 있는 스크린 속을 탐험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유연함으로 인해 어린이들이 더욱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공간과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주 재료인 산악용 로프의 연결과 매듭에도 치열한 고민이 담겨있다.
주 재료인 산악용 로프의 연결과 매듭에도 치열한 고민이 담겨있다.
로프는 스크린을 형성해서 그것을 통해 보는 세상이 달리 보이고 바람에 흔들리며 나뭇잎이 쌓이는 효과가 있다.
로프는 스크린을 형성해서 그것을 통해 보는 세상이 달리 보이고 바람에 흔들리며 나뭇잎이 쌓이는 효과가 있다.

중심에는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 팔레트로 피라미드가 만들어져 있다. 다양한 활동을 담고 주변 풍경을 조망하는 중정 공간이 된다. 강원키즈트리엔날레가 열리는 평창군의 ‘ㅍ’과 심벌의 4개 구성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4개의 +가 서로 모여 ‘놀이에 더하다 (PLAYPLUS)’를 형성하며 각 +는 서로 높낮이와 비율이 조금씩 달라지며 새로운 공간감을 준다. 
아이들이 그 사이사이에서 그들의 놀이를 새로 만들게 된다.
아이들이 그 사이사이에서 그들의 놀이를 새로 만들게 된다.

도시나 주거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풍경을 만나게 한다. 이벤트가 있을 때 객석으로 활용이 되기도 한다. 행사에 따라 다양한 물품을 더해 새로운 놀이를 촉발시킬 수 있다. 어린이들과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재료로 구성되었다. 이로써 바람이 불면 로프 사이로 통하는 바람 소리와 로프가 흔들리는 것을 통해 감각이 더욱 확장된다. 햇빛이 비치면 놀라운 그림자가, 햇빛을 흔들거리게 하는 모습이, 더욱 설레게 만든다.
강원도의 깨끗한 10월 하늘이 파빌리온에 투과되어 놀라운 그림자를 만든다.
강원도의 깨끗한 10월 하늘이 파빌리온에 투과되어 놀라운 그림자를 만든다.

일반적인 파빌리온들은 행사가 끝나면 버려지는 데 반하여, 일정기간 지난 후 몇 개의 파트로 나누어 각각 트럭에 적재 가능한 사이즈로 제작, 타 지역 복지관 등에 이동하여 기증할 수 있게 계획하여 이번 강원키즈트리엔날레의 주제인 재활용의 개념을 반영했다.
다양한 연령대의 어린이들이 파빌리온을 즐긴다.
다양한 연령대의 어린이들이 파빌리온을 즐긴다.

소다미술관 놀이탐색 파빌리온 ‘구름산책(Walking in the Clouds)’

EUS+ Architects가 빨래 바구니 500개를 사용하여 오픈 갤러리에 구성한 구름산책.
EUS+ Architects가 빨래 바구니 500개를 사용하여 오픈 갤러리에 구성한 구름산책.

필자와 건축가 서민우는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사립미술관인 소다미술관의 초대를 받아 새로운 유형의 외부 갤러리 전시 겸, 약 10개월간 유지되는 놀이 공간을 만들었다. 이 미술관은 원래 찜질방을 짓기 위해 세웠던 구조물이 버려진 것을 활용하여 역시 새로운 개념의 미술관이 된 것이었는데, 매년 특별한 주제로 건축가나 조경가, 디자이너들의 설치 작업을 전시한다. 

필자와 서민우는 이 공간의 재료를 선택하며 몇 년 전 타 미술관에서 진행했던 어린이 건축 프로그램을 떠올렸고, 그때 구입해놓은 빨래바구니 500개를 재활용하기로 했다. 구성된 빨래바구니들이 마치 구름을 닮아서 이름도 ‘구름산책’. 
빨래 바구니로 할 수 있는 모든 놀이를 모토로 다양하게 구성했다.
빨래 바구니로 할 수 있는 모든 놀이를 모토로 다양하게 구성했다.

구름산책 놀이공간은 어린이들이 함께하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게 만들었다. 혼자 온 아이여도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다른 아이들과 주고받는 놀이과정을 통해 함께하는 풍경에 참여하게 되었다. 찜질방이었던 공간이 미술관으로 바뀐 소다미술관처럼, 놀이공간을 구성하는 주재료인 빨래바구니가 집안에서 허드렛일을 담당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구름을 만들어 이곳에 채워져 있었다. 
회색의 바구니들은 회색의 콘크리트에 멋진 패턴의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회색의 바구니들은 회색의 콘크리트에 멋진 패턴의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지붕 없이 회색 콘크리트 벽이 무심하게 서 있던 소다미술관의 야외전시 공간에 빨래바구니 구름이 뭉게뭉게 있어서 공간의 활력을 만들어 주었다. 일상적인 재료의 비일상적인 이용으로 재미난 풍경이 만들어졌다. 어린이들이 데크를 따라서 오르내리며 다양한 구름의 바구니들을 만져보고 돌려보고 밀어보고 숨어보고 당겨본다. 

이 과정을 통해서 진정한 놀이공간으로 거듭난다. 신체를 직접 움직이고 다양한 반응으로 체험한 이 구름산책 놀이공간이 어린이 몸과 기억 속에 특별히 자리잡는 장소와 시간이지 않았을까. 
구름산책의 전체 구조. 이런 구조가 기존의 콘크리트 벽의 외부 갤러리를 감싸안으며 설치되었다.
구름산책의 전체 구조. 이런 구조가 기존의 콘크리트 벽의 외부 갤러리를 감싸안으며 설치되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만지고 돌리고 통과하며 노는 어린이들.
다양한 방식으로 만지고 돌리고 통과하며 노는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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