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차·구급차 가는 길에 '초록불'만!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범운영

시민기자 한우진

발행일 2023.10.31. 14:14

수정일 2023.10.31. 14:19

조회 3,466

알아두면 도움되는 교통상식 (252) 서울시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 도입
시민기자 한우진의 알아두면 도움되는 교통상식
소방차 길 터주기 훈련 모습. 서울시는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다. ©뉴시스
소방차 길 터주기 훈련 모습. 서울시는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다. ©뉴시스

길을 가다 보면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맹렬히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필시 급한 환자를 찾아가거나 태우고 가는 길일 것이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곧바로 교차로 신호에 걸리고 만다. 이때 원칙적으로는 교차로에서 좌우 방향으로 달리는 차들이 정지를 해주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양보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면이 아닌 측면에 있는 구급차는 교차로 안에 들어올 때까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이렌 소리가 나긴 하는데 차 안에서는 어느 쪽에서 들리는 지도 잘 알 수도 없다.

같은 방향으로 달리던 차들도 마찬가지다. 교차로에서 신호에 걸려 있으면 뒤에 있는 구급차를 위해 좌우로 비켜주기도 쉽지 않다. 차가 제자리에서 좌우로 이동(크랩crab 주행)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조금 앞으로 가면서 좌우로 움직여야 하는데 앞에 교차로가 빨간불로 인해 꽉 막혀 있으니 움직이는 것 자체가 안 되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구급차가 다가올 때 교차로 신호등에 자동으로 파란불이 켜지면 어떨까? 서울에 바로 이런 시스템이 도입된다. 이를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교차로를 통과중인 긴급자동차들의 모습 ©경주시
교차로를 통과중인 긴급자동차들의 모습 ©경주시

사실 녹색불이 필요한 차가 다가올 때 녹색불을 준다는 이 방식 자체는 꽤 오래 전부터 활용되어 왔다. 대표적인 것이 성남 분당신도시 등 수도권 1기 신도시에서 시행되던 연동신호제이다.

당시 신도시에는 차선수가 많은 큰 도로가 많았다. 그때는 도심부 제한 속도가 70km/h였는데, 신호등마다 ‘연동신호 60’이라는 표지판이 붙어있었다. 이것은 운전자가 60km/h로만 달리면 교차로에서 녹색신호를 계속해서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신호등은 개별적으로 동작하는 게 아니라 서로 연계되어 있으며, 이번 교차로를 통과한 차량이 다음 교차로에 도착할 시간에 맞추어 그 교차로에 녹색불이 켜지는 방식으로 되어 있었다.

만약 60km/h보다 더 빨리 달리면, 어느 순간에는 녹색불이 아직 들어오지 않은 교차로에 도착하게 되고 운전자는 여기서 기다려야 한다. 따라서 연동신호제 방식은 운전자의 과속을 예방하고 정속주행을 유도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정류장 정차 때문에 필연적으로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는 버스는 연동속도를 맞추지 못해 매번 신호대기를 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다. 또한 각 교차로마다 교통사정이 다른데 일괄적으로 연동을 시켜두는 것이 오히려 국지적인 교통정체를 유발하는 한계도 있었다.
교통신호제어기 ©서울시
교통신호제어기 ©서울시

다만 소방차나 구급차 같은 긴급자동차에게 녹색신호를 끊어지지 않게 주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사실 이미 우리는 이런 사례를 알고 있다. 대통령이나 외국 정상 같은 국빈이 도심을 지나갈 경우, 각 교차로마다 경찰관이 배치되어 신호등을 수동으로 조절한다. 경찰관들은 무전으로 통제실의 지시를 받아가며 교차로에 VIP가 탄 차량이 지나갈 때 녹색불이 나오도록 교통신호제어기의 스위치를 작동시킨다. 이 덕분에 VIP 차량은 교차로에서 정차하지 않고 도심을 통과할 수 있다.

물론 좌우로 교차하는 쪽에서는 평소보다 더 신호를 기다려야 하는 문제가 생기기는 한다. 그래도 이런 VIP 차량이 정지해 있으면 테러나 암살의 위험도 커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구급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출동을 하는데, 이렇게 매번 경찰관들이 수동으로 조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신호제어를 자동화하고 원격 조작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발상이 나왔는데 그게 바로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Emergency Vehicle Priority (EVP))이다.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 개념도 ©제주특별자치도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 개념도 ©제주특별자치도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이 도입되면, 소방서에서 구급차가 출동해서 달리고 있을 때 교차로를 만나면 구급차 쪽으로 자동으로 녹색불이 들어온다. 따라서 교차로의 좌우 방향 교통류는 저절로 차단된다. 또한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차들도 뒤에 오는 구급차에게 길을 비켜주기가 훨씬 쉬워진다.

구급차 입장에서도 예전처럼 좌우 방향 교통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지고, 서 있는 앞차 때문에 답답해 하지 않아도 된다. 진행 방향으로 달리면서 앞차를 추월하는 정도면 된다.

특히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이 도입되면, 불의의 사고 예방이 기대된다. 뉴스에서 구급차가 달리다가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종종 듣고는 하는데, 좌우에서 오는 차량과 측면 충돌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은 좌우 차량을 막아주므로 사고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 사고가 나더라도 같은 방향으로 비슷한 속도로 달리는 차와의 추돌 사고가 될 것이기 때문에 사고의 심각도가 많이 감소한다.

과거에 기술의 미비로 인하여 이런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어려웠지만, 교통 분야 기술 발달과 제도 개선에 힘입어 수년 전부터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이 전국적으로 많이 도입되었다. 올해 광역 지자체 기준으로 전국에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이 없는 곳은 서울과 대구뿐이다.

사실 서울의 복잡한 교통 환경을 생각하면 아직까지 도입이 안 된 것이 매우 아쉽다. 특히 일부 소방서는 상시적인 교통 혼잡을 보이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우선신호 시스템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할 수 있다. 구급차가 출동할 때 해당 소방서 주변을 빠져나가는 것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강남소방서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 교차로 설치 위치  ©서울시
강남소방서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 교차로 설치 위치 ©서울시

다행히 서울시에서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미래형 ITS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현재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 설치 시범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 해당 소방서는 강남소방서마포소방서이다. 이들은 서울에서 출동 건수가 가장 많은 소방서들이다.

강남소방서는 강남구의 테헤란로 동쪽 끝 탄천가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출동을 할 때는 보통 테헤란로를 따라 서쪽으로 향하게 되는데 문제는 테헤란로가 서울에서 손꼽히는 혼잡 도로라는 점이다. ☞ [관련 기사] 소방차 출동도 어려운 '테헤란로' 교통혼잡 이대로 괜찮은가?

특히 요즘에는 삼성역 근처에서 국제교류복합지구 공사를 하고 있어서 통과가 더욱 힘든 실정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에서는 테헤란로에 동서로 이어진 15개 교차로(3.8km)에 대해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을 적용할 예정이다.
마포소방서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 교차로 설치 위치  ©서울시
마포소방서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 교차로 설치 위치 ©서울시

한편 마포소방서는 6호선 광흥창역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서쪽에 인접한 큰 서강로에 비해 작은 도로인 창전로에 붙어 있어서 큰 길로 나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마포구가 동서로 길쭉하다 보니 서쪽으로 갈 일이 많은데 정작 서쪽으로 가는 길인 월드컵로나 월드컵북로는 그다지 넓지도 않고 길도 자주 막힌다.

특히 서쪽에는 월드컵경기장이라는 대형시설과 상암지구라는 대규모 업무, 주거지구가 있어서 소방 수요가 크다. 물론 이쪽에도 이미 119안전센터들이 있기는 하나, 서로간의 연계 활동을 위해서는 원활한 교통이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에서는 마포소방서부터 월드컵경기장으로 가는 방향인 독막로, 양화로, 월드컵로, 월드컵북로의 총 34개 신호교차로(6.0km)에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을 도입하여 긴급차량이 신호대기 없이 빠르게 지나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 개념도  ©국토교통부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 개념도 ©국토교통부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은 신호등을 제어할 수 있는 각종 제어장치, 통신 장비, 서버 등이 필요하며, 각 긴급차량에도 우선신호 경로에 대해 양방향 통신을 할 수 있는 내비게이션 등이 설치된다. 이를 통해 긴급차량을 운전하는 소방공무원들은 관제센터와 협력하면서 신호대기에 걸리지 않는 최적의 경로를 따라 달릴 수 있게 된다. 또한 긴급차량이 지나간다고 무작정 과도하게 녹색신호를 주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만큼만 최적의 신호를 제공함으로써, 다른 쪽에서 적색신호 대기를 해야 하는 일반 차량의 불편을 최소화한다. 이렇게 완성도 높은 시스템을 만들려면 많은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서울시는 올해까지 시스템을 준비한 뒤 내년 상반기에 시범 운영을 할 계획이다. 결과가 좋으면 서울 전역으로 확대할 계획도 갖고 있다. 그렇게 되면 현재에 비해 구급차의 운행소요시간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의 생명을 살릴 확률도 높아진다. 또한 구급차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일도 줄어든다.

또한 더욱 좋은 것은 구급차의 회전율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현재 119에 전화를 해보면 구급차 부족으로 곧바로 도착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다른 관할 지역의 구급차가 오느라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이 도입되면 구급차가 환자를 병원에 더 빨리 데려다 주고 복귀할 수 있기 때문에 금방 다른 곳으로 출동을 할 수가 있다. 비싼 구급차를 더 많이 운용할 수 있으니, 우선신호 시스템 설치에 쓴 비용은 상쇄하고도 남는다.
트램 우선신호를 긴급차량과 공유할 예정인 대전 2호선 트램 ©대전시
트램 우선신호를 긴급차량과 공유할 예정인 대전 2호선 트램 ©대전시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긴급차량 우선신호 시스템이라는 것이 도로 위에서 달리는 열차인 트램(노면전차)의 우선신호 시스템과 원리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특수 차량이 다가올 때 녹색 신호를 먼저 제공한다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램으로 인해 구축되는 우선신호 시스템을 긴급차량이 공유할 경우 우선신호 구간의 확대가 가능해진다.

실제로 도심 도로 전역에 트램을 설치하는 대전 2호선사업의 경우에는 트램의 우선신호를 긴급차량이 함께 사용함으로써 트램 노선 주변 병원 등의 긴급차량 접근성 개선을 추구하고 있다. 현재 서울에서는 위례신도시에서 위례선 트램사업이 진행 중이다. 위례선은 노선의 대부분이 보행자 전용 구간이라 대전과는 사정이 다를 수 있으나, 도로와 공유하는 일부 구간에서 트램의 우선신호를 활용하여 구급차가 빠르게 통과한다면 시민의 생명 보호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교통혼잡의 모습 ©강남구청
교통혼잡의 모습 ©강남구청

'교통혼잡비용'이란 교통혼잡 때문에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적 손실을 값으로 환산한 것을 말한다. 공회전으로 인한 연료손실, 업무를 못하고 버려진 시간 손실 등이 해당된다. 그러나 교통혼잡으로 인한 손실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구급차나 소방차가 제때 도착하지 못하여 생명을 구하지 못한 손실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러가는 긴급차량을 우선적으로 통행시키는 긴급차량 우신신호 시스템이야말로, 약자와 ‘동행’하고 높은 기술력을 통해 도시의 ‘매력’까지 끌어올리려는 서울에게 꼭 필요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기자 한우진

시민 입장에서 알기 쉽게 교통정보를 제공합니다. 수년간 교통 전문칼럼을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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